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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3세의 홀로서기-10화 (10/261)

10화

전표에 노카아 0.8마르카에 71,200,000주 매수를 적고 창구로 갔다.

내가 다가가자 며칠 전에 증권 계좌 오픈할 때 도와준 직원이 내 얼굴을 기억하고 반갑게 인사하였다.

“안녕하세요? 또 오셨네요?”

“안녕하세요? 오늘은 주식 매수를 하려고요.”

“제가 뭘 도와드릴까요?”

적어온 매수 전표를 건넸다.

“여기 있어요.”

매수 전표를 받아 단말기에 입력하려다가 꽤 놀란 듯 멈추고 나를 바라보았다.

“혹시 전표 잘못 작성하신 거 아닌가요?”

“아니에요. 맞게 작성했어요. 그대로 해주세요.”

창구 여직원이 주변을 둘러보다가 고개를 내 앞쪽으로 숙이면서 작게 말하였다.

“노카아 주식은 지금 매수하면 안 돼요.”

“왜요?”

“제가 고객들에게 이런 말 절대 하지 않는데 먼 곳에서 핀란드에 유학 온 학생이 빈털터리가 되는 것이 안타까워 말씀드리는 거니 오해하지 말고 들으세요.

제가 창구에서 일하지만 듣고 보는 것이 많아요.

지금 노카아는 계속 적자 상태이고 작년 말에 회장이 자살한 이후로 회사가 파산할 거라는 소문이 자자해요.

그래서 주가도 많이 내려갔어요. 지금 노카아 주식은 사려는 투자자들은 없고 전부 팔려고만 해요.

근데 노카아 주식을 매수하겠다고요? 이건 한마디로 미친 짓이에요. 다른 주식을 매수하세요.”

직원이 말하는 것보다는 서로 얼굴이 가까워지자 화장으로 덮은 주근깨에 더 관심이 있었다.

‘빨강 머리 앤’ 처럼 주근깨 아가씨네.

그래도 날 생각해서 말해주는 게 고마웠다.

“모두가 NO라고 할 때 YES라고 하는 용기, 자신감으로 봐주면 안 될까요?”

“돈키호테가 되고 싶으신 거예요?”

“아뇨. 슈퍼맨이 되고 싶은 거예요.

먼저 저를 생각해 해주신 말씀 고마워요. 하지만 제가 판단하는 노카아는 이대로 힘없이 무너지지 않아요.

슈퍼맨처럼 모든 역경과 고난을 물리치고 반드시 날아오를 거예요. 그래서 믿고 매수를 선택한 거예요.”

설득을 포기했는지? 자신은 할 만큼 했다고 생각하는지? 고객이 원하면 따라야 하는 자신의 업무 때문인지? 더는 말하지 않았다.

“알았어요. 매수 주문 넣어 드릴게요.”

전표를 들고 보면서 매수 주문을 넣으려다가 다시 놀란 듯 나를 바라보았다. 또 왜?

“71,200,000주 매수가 맞는 거예요?”

조금 전에는 노카아 종목만 봤지 수량은 보지 못했나 보네.

“네. 맞아요.”

“잔액이 그만큼 있어요?”

하긴 어린 동양인인 내가 엄청난 거액을 가지고 있다는 게 믿기지 않겠지.

“방금 은행에서 송금하고 온 거예요.”

“한국에서 무슨 일을 하셨어요? 유학 오신 거 아닌가요?”

“할아버지 유산을 받았거든요.”

“아! 그렇군요. 처리해 드릴게요.”

잠시 단말기를 두드리고는 나에게 시선을 돌렸다.

“매수 주문 전부 넣었고요. 0.8마르카에 매도 잔량이 3백2십만 주가 있어서 바로 매수 체결이 되었어요.”

“네. 감사합니다.”

“바로 가실 건가요?”

“아뇨! 오늘은 특별히 할 일이 없어서 주식 시장 끝날 때까지 있을 거예요.”

“알았어요. 장이 끝나면 총 몇 주 매수되었는지 알려 드릴게요.”

“네. 고마워요.”

자리에서 일어나 주식 전광판 앞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핀란드 경제가 안 좋은 것을 반영하듯 전광판에는 빨간색보다는 파란색들이 월등히 많았다.

옆 옆에 앉아 있던 50대 초반의 남자가 호기심을 가지며 나를 바라보았다.

“일본사람인가요?”

“아닙니다. 한국 사람입니다.”

한국을 모르는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한국은 일본 옆에 있습니다. 88년 서울 올림픽 모르십니까?”

“아! 88년에 올림픽 한 나라가 한국이었군요. 서울은 들어봤어도 한국은 낯설어서요.”

서울보다 한국을 더 알아야 하는 게 아닌가? 서울 올림픽이라서 그런가?

“이해합니다.”

“근데 핀란드는 어떻게 온 겁니까?”

“얼마 전에 유학 왔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우리 핀란드가 다른 유럽 국가들보다 교육 시스템은 더 뛰어나다고 생각해요.

다만 이런 점이 널리 알려지지 않아서 좀 안타까워요.”

“제가 그래서 핀란드를 선택한 것이 아닙니까?”

말 한마디에 천 냥 빚도 감는다고 하는데 립서비스를 해주자 기분이 좋은지 얼굴이 활짝 피었다.

“그 정도 안목이라면 학생은 뭐를 하더라도 성공할 것 같습니다. 근데 여기는 주식 투자하러 오신 겁니까?”

“네.”

“어떤 종목에 관심이 있는 겁니까?”

노카아라고 하면 창구 직원처럼 한바탕 설교가 이어질 것 같아 얼버무렸다.

“공부 중입니다.”

“그럼 내가 괜찮은 종목 몇 개를 추천해줄게요. 뭐냐면...........”

결국, 한바탕 설교를 들었다. 호의를 가지고 말해주는데 싫은 티를 낼 수가 없어 끝까지 들었다.

근데 왜 이리 말이 많아?

*

노카아 모바일폰 사장 요로마 울리라는 서류를 보다가 미간을 구기며 서류를 내려놓고 생각에 잠겼다.

지금 노카아 그룹은 절체절명의 시기였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 위기를 벗어날 대책을 찾을 수 없었다.

무엇을 하려고 해도 사방이 꽉 막혀 숨을 쉴 수가 있었다. 뭔가 특단의 조치를 내려야 하는데?

어디서부터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어서 답답하였다.

현재 핀란드 경제는 나아지기는커녕 점점 구렁텅이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구소련과의 교역에 주로 의존하던 핀란드 경제는 구소련의 몰락과 자산 거품까지 꺼지면서 실업률이 급격히 증가하고 소비자는 지갑을 닫는 등 경제 전반이 위기상태였다.

핀란드 경제 전반이 이런 상황에서 노카아는 더욱더 절망적이었다.

이런 위기를 벗어나고자 가전업체로 변신까지 꾀하였지만, 무참히 실패로 끝나고 적자만 쌓여갔다.

오죽하면 경영 악화에 시달리던 회장님이 자살까지 하셨을까? 이해가 갈 정도였다.

괜히 노카아로 이직했나?

젊은 나이에 씨티은행 임원까지 올라갈 정도로 미국 월가에서 잘 나가던 자신이 모든 것을 버리고 고국 핀란드로 돌아왔지만 보이는 현실은 암담하기만 하였다.

그렇다고 후회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여기서 포기하면 자신의 선택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정하는 꼴이 된다.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똑똑.’

노크 소리에 상념에서 빠져나왔다.

“들어와.”

문이 열리고 비서실장이 들어왔다.

“사장님! 큰일 났습니다.”

큰일이야 매일 한두 건씩 터지다 보니 이제는 놀랄 힘도 없었다.

“뭔데?”

“조금 전에 채권 은행단 회의가 끝났는데 회의 내용이 우리 노카아 그룹을 분해해 모바일폰 사업과 통신 장비 사업을 스웨덴 통신 그룹 에릭슨에 매각을 추진하기로 논의를 했다고 합니다.

10일 뒤에 최종 결정 회의를 한다고 합니다.”

요로마 울리라의 목소리가 격앙되면서 커졌다.

“뭐? 진짜야?”

“네. 그렇습니다. 지금 이 안건으로 그룹 이사회가 발칵 뒤집었습니다.”

이상하였다. 지금까지 가만히 있던 채권단이 왜 이런 결정을 내렸을까?

“이상하지 않아? 지금 우리 상황이 좋지 않기는 하지만 급하게 결정 내릴 만한 상황은 아니잖아?”

“그렇기는 합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올란드 은행 헤이키넨 이사가 이 안건을 강력하게 주장한 것 같습니다.”

“이유는?”

“헤이키넨 이사가 스웨덴 노르데아 은행에서 일한 적이 있습니다. 노르데아 은행이 에릭슨 그룹의 주거래 은행입니다.

예전부터 에릭슨에서 우리 통신 장비 회사를 넘보고 있지 않았습니까? 서로 모종의 연관이 있을 겁니다.

그러니 급작스럽게 논의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열불이 나서 자신도 모르게 욕이 튀어나왔다.

‘매국노 같은 놈! 외국 기업에 자국 기업을 팔아먹으려고 해?’

화를 진정하고 물었다.

“단스케 은행 입장이 어떤지 알아?”

“아직 파악하지 못했습니다만 10일 뒤 최종 합의하기로 결정했다는 것은 최소한 무언의 긍정적인 입장일 겁니다.”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찬성했다면 바로 결정을 했을 거야.

노카아 그룹은 역사가 127년이나 되었고 직원 수만 해도 45000명인 핀란드의 대표 기업이자 자존심이야.

그런데 노카아를 분해해 외국 기업에 매각한다고? 말이 안 돼. 일단은 단스케 은행만이라도 설득한다면 매각을 무산시킬 수 있어.

좋은 방법이 뭐가 있을까?”

“감정적이기보다는 채권은행 입장에서 정책적으로 접근해야 할 겁니다.

현재 단스케 은행을 비롯한 채권은행들은 기업들의 부실 부채뿐만 아니라 자산 거품 붕괴로 인해 개인 부채까지 엄청난 부실 덩어리를 껴안게 된 상황입니다.

이에 은행들의 대외신인도까지 하락하여 해외차입도 사실상 어려워진 상태입니다.

그렇기에 채권은행 입장에서는 부실기업을 매각해서라도 부실 규모를 축소하는 방향으로 결정할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결론은 매각보다는 회생이 더 이익이라는 것을 설득해야 한다는 거네.”

“네. 그렇습니다. 이 상황에서 매각하게 되면 제대로 된 가치를 평가받지 못하게 되어 헐값 매각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 점을 파고 들어가야 할 겁니다.”

어떤 이유든 간에 분할 매각은 절대 안 된다. 매각되면 회생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게 된다.

분할 매각은 무조건 막아야 한다.

“이사회에서 대책은 마련한다고 해?”

“오후 5시에 긴급 대책 이사회를 개최한다고 합니다. 사장님도 참석하라는 연락이 왔습니다.”

“알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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