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의 홀로서기-9화 (9/261)

9화

해외를 자주 나가던 시절이 아니라 그런지 가족들이 공항까지 배웅 나와 부둥켜안고 작별 인사를 나누는 사람들이 여기저기에서 보였다.

혼자 있으려니 벌쭉하였다. 김윤석이라도 나오라고 할 걸 그랬나? 아니다. 끝내야 하는 인연인데 끝내야지.

캐리어를 끌고 발권 카운터로 갔다. 대기하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조금 기다려 수속을 진행할 수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발권 도와드리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여권과 예약 종이를 내밀었다.

핀란드는 한 번에 가는 비행기가 없어서 독일을 경유하여 거의 20시간이나 걸려 핀란드에 도착하였다.

와! 말이 20시간이지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았다.

젊은 나도 지치는데 나이 드신 분들은 꽤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입국 수속대에서 이민국에 가서 유학 비자 등록을 하라고 해서 이민국으로 향하였다.

안으로 들어가자 수속 창구가 5개가 있지만, 사람은 두 사람만 앉아 있었고 대기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내가 해외에 다닌 경험으로 보면 이민관은 20대 젊은 여자가 아니면 여자는 피하는 것이 지뢰를 밟을 확률을 줄인다.

괜히 까탈스럽게 굴거나 그날 기분에 따라 아무것도 아닌 것을 걸고넘어져 사람을 피곤하게 한다.

그래서 40대 중반으로 보이는 남자 앞으로 갔다.

여권과 입학 서류 등을 내려놓고 영어로 인사하였다.

“안녕하세요?”

여권과 서류를 보더니 환하게 웃으며 인사하였다.

“핀란드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키토스.”

키토스는 핀란드어로 ‘감사합니다’라는 말이었다.

내가 핀란드어로 말하자 나에게 더욱 호감을 보였다.

“한국에서 오셨네요?”

“네. 한국 아시나요?”

“그럼요! 88 서울 올림픽을 개최하지 않았습니까? 그 먼 곳에서 핀란드를 어떻게 알고 유학 오시는 겁니까?”

88 서울 올림픽을 개최하여 세계에 한국을 알렸지만, 이 당시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한국을 아는 사람들이 그다지 많지 않았다.

이런 한국이 21세기에는 세계에 K-팝, K-드라마, K-영화 등 한류 문화를 알리니 자랑스럽고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민관은 내가 신기한가 보다.

핀란드는 유학생들이 선호하는 국가도 아니고 더구나 먼 아시아에서 왔으니 관심이 가는 것은 당연하겠지.

비행기 안에서뿐만 아니라 이민국에 오기까지 동양인은 나 빼고 본적이 없었다. 사람들이 신기하다는 듯이 나를 전부 바라보았다.

“핀란드에 대해 조금 알아요. 자일리톨이 유명하고 사우나도 마찬가지고요. 한국에서 사우나 인기가 많거든요.”

“정말 사우나가 한국에서 인기가 많습니까?”

“네.”

“신기하네요.”

이것저것 말을 시키면서 처리하느라 조금 늦어졌지만, 무사히 수속을 마치고 공항 밖으로 나왔다.

드디어 내가 대박의 땅 핀란드에 왔구나!

반갑다. 핀란드야! 핀란드 드림을 꿈꾸러 내가 왔노라. 기다려라. 대박의 신화를 보여주마.

북유럽이라 되게 추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춥지 않았다. 한국과 비슷하거나 덜 추운 것 같았다.

택시를 타고 유학원에서 잡아준 아파트로 향하였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핀란드는 신기하게도 학생회비를 조금 낼뿐 대학 등록금이 전부 무료였다.

자국민뿐만 아니라 유학생들까지. 물론 내가 다닐 어학원도 당연히 무료였다. 그냥 여기서 대학까지 다닐까?

원래 어느 나라나 유학생들은 자국 학생들보다 학비가 무척 비싼데 유학생까지 무료는 좀 아닌 것 같았다.

현재 핀란드 경제도 어려운데 자기들 세금 낭비하는 거라고 국민들이 반발할 것 같은데.

또 핀란드는 학생 아파트가 있는데 유학생은 선 순위로 입주가 가능하다.

비용이 저렴하기는 하지만 단점은 방을 혼자서 사용하지만 한 집에 여러 학생들과 함께 사용해야 한다는 거다.

그래서 난 학생 아파트를 포기하고 유학원을 통해 학교 근처에 있는 1 베드룸 고급 아파트를 렌트 하였다.

그동안 작은 엄마 집에서 눈치 보고 살았고 돈이 없는 것도 아닌데 이제는 편히 지내고 싶었다.

아파트 관리 사무실에 들러 등록하고 열쇠를 받아 7층인 집으로 올라왔다.

지은 지 5년 된 아파트라 깨끗하였고 냉장고면 침대며 TV 등 기본적인 가전제품들이 구비 되어 있었다.

마음에 들었다.

매트리스만 있는 침대에 그대로 누웠다.

*

며칠 동안은 바쁘게 지냈다.

혼자 사는 거지만 기본적으로 있어야 할 것들이 하나둘이 아니라 필요한 물품들을 사고 어학원에 들러 등록도 하고 은행과 증권회사 계좌까지 개설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핀란드 사람들이 영어를 다들 잘해서 대화하는 데는 문제가 없어 수월하였다.

굳이 핀란드어를 배우지 않아도 될 정도였다.

오늘은 아침에 은행에 들러 ATM기에서 통장 잔액을 확인하고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작은 엄마가 약속대로 돈을 보내왔다.

혹시나 약속 지키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다행이었다.

내가 쓴 각서에 70억 원을 보내지 않을 경우 각서의 내용은 무효라고 기재했으니 안 보내면 거래가 파기된 것이고 내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으니 작은 엄마로서는 무조건 보낼 수밖에 없겠지.

할아버지에게 받은 아빠의 돈은 환전하기가 힘들어 한도까지만 환전하고 나머지는 그대로 한국에 놓고 왔다.

은행 창구로 가자 금발 머리의 예쁜 은행원이 반갑게 인사를 하였다.

“테르베! 휘뱌 후오멘타(안녕하세요! 좋은 아침입니다.)”

“테르베! 송금 좀 보낼 수 있을까요?”

“그럼요. 이 앞에 카드 집어넣어 주세요.”

현금 카드를 창구 앞에 있는 카드리더기에 넣었다.

“보내실 계좌번호 주시고 얼마 보내실 건가요?”

계좌번호와 금액을 적은 종이를 건넸다.

“여기 있어요.”

“잠시만요.”

핀란드는 은행 업무가 한국과는 전혀 달랐다.

먼저 은행에 오면 현금 카드를 카드리더기에 넣으면 은행원 단말기에 내 계좌 정보가 뜨고 그걸 보고 처리를 한다.

또한, 입출금 전표가 없이 말 또는 종이에 적어 주면 그걸 보고 처리한 후에 영수증을 준다. 아니면 통장을 찍어서 거래 내역을 확인하기도 한다.

또 번호표가 없어서 사람이 많으면 줄을 서서 기다린다. 젊은 사람이야 상관없는데 나이 드신 분들은 힘들 텐데.

은행 업무는 한국이 더 잘되어 있었다.

종이를 받아보던 은행원이 꽤 놀란 듯 나하고 종이를 번갈아 보았다.

하긴 놀랄 만하지. 어린 동양인이 거액인 9백20만 달러나 되는 돈을 가지고 있는 것부터 놀라울 것이다.

이 당시 환율이 1달러에 760원 정도라 70억 원이면 9백20만 달러가 된다.

“증권 계좌 같은데 5천7백만 마르카를 전부 송금 보내시는 거예요?”

마르카는 핀란드의 화폐 단위이며 1달러에 6.2 마르카 정도 된다.

“네. 주식 투자를 하려고요.”

“부자시네요. 바로 처리해 드릴게요.”

“부탁드려요.”

송금을 끝내고 은행을 나와서 공중전화로 갔다.

전화를 신청했지만, 아직 설치가 안 되어 공중전화로 작은 엄마에게 전화하였다.

(여보세요.)

작은 엄마 목소리였다.

(저 민재예요.)

(그래. 돈은 받았지?)

(네. 지금 확인했어요.)

(난 약속 지켰다. 너도 약속 지켜.)

(알았어요.)

(이제 거래가 끝났으니 다시는 안 봤으면 좋겠어.)

(저도 그랬으면 좋겠네요. 그럼 안녕히 계세요.)

전화를 끊었다.

나도 다시는 보고 싶지 않고 좋지 않은 인연을 끝내고 싶지만, 진성 그룹 계열사를 인수하려면 다시 볼 수밖에 없을 텐데.

대리인을 내세워도 되긴 한데 그건 그때 가서 상황보고 결정하자.

증권사로 향하였다.

증권사 객장 안에는 많은 사람들이 앉아서 주식 전광판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나같이 얼굴이 어두웠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90년부터 93년까지 북유럽 3국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은 금융 위기를 맞아 부동산이 폭락하고 마이너스 성장을 하던 때라 주가가 폭락하는 시기였다.

80년대부터 꾸준한 성장을 보이던 3국이 80년대 말부터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고 이에 가계대출이 급증하다가 대내외 경제 여건이 급격히 악화하자 곧바로 실물 경기 침체로 이어져 부동산이 폭락하면서 금융권의 부실로 이어졌다.

노카아도 여러 악재와 경기 불황을 벗어날 수 없어 주가가 폭락하던 시기였다.

주식 전광판에서 노카아 주식을 찾아보았다.

현재 주가가 0.8 마르카였다. 주식 계좌를 개설하려고 왔을 때는 0.9 마르카였는 그새 0.1 마르카가 떨어졌네.

0.8 마르카면 미화로 13센트 정도이고 원화로는 99원 정도이다.

주가가 이 정도니 한마디로 망해가는 회사이고 오늘 당장 파산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이런 회사가 기적같이 회생하여 세계적인 기업으로 상장할 것이라고는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92년 초 13센트 노카아 주식이 2년 후인 94년 7월에 미국 나스닥에 1달러 20센트로 상장하고 8년 후에는 최고 59달러까지 상승하여 최고점을 찍고 IT 버블이 꺼지면서 계속 하락하게 된다.

이런 노다지 주식이 세상에 어디 있어? 무조건 싹 쓸어 담아야지.

얼마에 매수 주문을 넣을까? 현재 주가가 0.8 마르카인데 현재가가 워낙 낮기에 더 내려갈 가격도 없을 것 같은데.

매수 금액이 커서 하루 이틀 만에 끝날 것 같지 않은데 그냥 현재가에 매수 주문을 넣자.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