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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3세의 홀로서기-8화 (8/261)

8화

작은 엄마와 거래한 후에 작은 엄마에게 약간의 변화가 생겼다.

내가 마음 변할까 봐 그러는지 그전같이 날 쌀쌀하게 대하는 것이 줄어서 스트레스 없이 편히 지낼 수 있었다.

역시나 작은 엄마는 영리한 여자였다. 곧 떠날 사람 괜히 자극해서 악감정을 가지게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잘 안다.

그렇다고 잘해주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만 해도 어디야?

2월 13일이 고등학교 졸업식이었지만 그전에 핀란드로 떠나기로 하였다.

이전 삶에서는 내가 졸업생 대표까지 했지만 날 축하해주러 오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꽃다발도 받지 못하고 사진 한 장도 찍지 못한 채 혼자 쓸쓸히 졸업식장을 떠난 기억이 있었다.

힘들거나 외로울 때 나도 아빠 엄마가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많이 했지만, 졸업식 때만큼 간절히 바란 적은 없었다.

차라리 잘 되었지! 또다시 그런 쓸쓸한 감정을 다시 겪고 싶지는 않으니까.

모든 준비는 다 끝났다.

2일 후에 떠나면 된다. 그전에 할아버지한테 인사는 가야겠지.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서 와.”

할아버지도 작년 4월에 왔을 때랑 변화가 조금 있었다.

반갑게 맞아 준 것은 아니지만 나를 대함에 있어서 조금 더 유해졌다.

그 뒤로 따로 찾아오지는 않았지만, 작년 추석 때 와서 할아버지랑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더니 나에게 조금 마음을 연 것 같았다.

예전에는 명절 때 작은 엄마 식구와 함께 할아버지 댁에 오면 난 아빠가 쓰시던 방에 들어가 나오지 않았다.

그때는 왜 그랬을까? 할아버지하고 이야기도 많이 나누고 자주 찾아왔다며 내 인생이 바뀌었을 수도 있었을 텐데.

그 당시 난 주눅 들어 무조건 피하려고만 하였다.

“안녕하셨어요? 몸은 좀 어떠세요?”

“걱정하는 놈이 찾아오지도 않아? 말로만 걱정이지.”

진짜로 바뀌셨네.

“지금 찾아왔잖아요.”

“언제 떠나?”

“이틀 후 수요일에요.”

“가면 언제 와?”

“5년을 생각하는데 여름방학이 기니까 방학 때 들어올 수도 있어요.”

“뭐하러 들어와? 갔으면 죽이 되는 밥이 되는 거기서 열심히 해야지.”

“저 안 보고 싶으세요?”

“안 보고 싶다.”

반어법이라고 할까? 보고 싶다는 말인데. 원래는 중간에 들어올 생각이 없었는데 한 번쯤 들어올까?

“정말요? 그럼 저 진짜 안 들어와요.”

“지금 할아비를 놀려?”

“제가 어떻게 할아버지를 놀려요? 상황 봐서 들어올게요.”

할아버지가 테이블에 있던 서류 봉투를 나에게 밀었다.

“이제는 너한테 줘도 될 것 같구나.”

“뭔데요?”

“네 아빠 거야. 그동안 내가 보관하고 있었지만, 너도 성인이 되었으니 네가 가져야지.”

봉투를 열어 보니 통장하고 도장이 있었다.

통장을 보니 내 이름으로 되어 있고 13억 원이라는 거액이 있었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아버지 유산을 정리한 건데 그때는 내가 미성년자라 할아버지가 관리하고 계셨던 거였다.

근데 예전에는 왜 이걸 나에게 주지 않았지? 까먹어서? 아니면 대학 졸업하면 주려고 했던 걸까? 그럴 수도 있겠다.

이번에는 내가 5년 동안 유학을 가니까 미리 주시는 것 같았다.

“잘 보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고맙기는. 네 아빠 유산이니 허튼 곳에 쓰지 마.”

“네. 그럴게요.”

돌아가신 아빠가 생각나서인지 할아버지의 안색이 갑자기 어두워졌다.

“아빠가 생각나세요?”

“내가 그런 불효막심한 놈을 왜 생각해?”

화를 내시는 것을 보니 할아버지도 아빠가 무척 보고 싶은가 보다. 하긴 부모가 자식을 보고 싶은 것은 당연하겠지.

난 아빠에 대해서도 잘 모른다.

과학자라고 했지만 어디서 일했고 무엇을 개발하고 있었는지도 전혀 모른다. 그때는 내가 어렸으니까.

아빠에 대해 궁금한 것이 많았는데 이참에 물어볼까?

또 아빠하고 엄마하고 왜 헤어지게 했는지 그 이유도 묻고 싶었다.

할아버지가 엄마 아빠를 헤어지게 하지 않았다면 아빠가 돌아가시지 않을 수도 있고 나 또한 인생이 180도 달라질 수 있었다고 따지고 싶었다.

아니야! 인제 와서 잘잘못을 따지고 알아서 뭐하게? 다 지나간 일이고 다시 돌이킬 수 없는데 누굴 원망하고픈 마음도 없었다.

“전 가끔 엄마 아빠가 헤어지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생각하곤 해요.”

“날 원망하는구나.”

“맞아요, 예전에는 할아버지 때문에 제 인생이 망가졌다고 원망도 많이 했어요.

지금도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제는 원망도 미움도 사랑도 애증도 미련도 전부 묻고 떠나려고 해요.”

“그땐 난 그게 최선인 줄 알았다. 너한테는 못 할 짓을 한 것 같구나. 미안하다.”

할아버지가 나한테 사과를 하다니? 고집 많고 강직한 분이었는데 할아버지도 후회하시는구나.

감정이 복받쳐 도저히 앉아 있을 수가 없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 그만 가볼게요.”

“잠시만.”

지갑에서 뭔가를 꺼내 나에게 건넸다.

“이거 받아.”

받아보니 명함인데 검은색 바탕에 금색으로 황규천이라는 이름과 전화번호만 달랑 있었다.

근데 이거 글씨를 금으로 도금한 건가? 말로만 들어봤지만 보기는 처음이었다. 이런 명함도 있네.

“이게 뭐예요?”

“그 명함의 주인이 내 고향 친구야. 만약 큰 어려운 일이 있거나 도움이 필요하면 찾아가. 한번은 도와줄 거야.

나한테 신세 진 것이 있거든. 혹시 너를 다시 못 볼지 모르니까 지금 주는 거야. 잊어먹지 말고 잘 간수 해.

든든한 보험이 될 수도 있어.”

“네. 고맙습니다.”

“그래. 어서 가.”

인사를 하고 할아버지 댁에서 나왔다.

엄마 아빠가 생각나자 마음이 싸하면서 아파 왔다.

괜히 아빠 이야기를 꺼냈나? 수십 년이나 지났는데 아직도 엄마 아빠에 대한 그리움이 남아 있나? 잊을 만도 한데.

아! 생각난 김에 엄마도 보고 갈까? 지금까지 엄마를 사진으로만 봤지 실제로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내가 60년 동안 살면서 엄마를 직접 찾아가지 못한 것이 가장 후회가 되었었다.

그때는 엄마가 나를 버렸다고만 생각해 찾아갈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2살 때 헤어지고 한 번도 날 찾아오지 않았고 다른 남자와 재혼까지 했다고 하니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당연하였다.

하지만 나중에 엄마가 나를 한 번도 찾아오지 않은 이유가 엄마가 찾아오면 내가 피해를 볼까 봐 나를 위해서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엄마도 어린 자식을 보내고 얼마나 보고 싶고 마음이 아팠을까? 그런데도 나를 위해 참으신 거였다.

그걸 뒤늦게 알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뒤늦게 엄마를 찾아가려고 미국에서 한국 내 사람을 고용해 엄마 주소까지 알아냈지만, 하루하루 망설이고 미루다가 엄마가 돌아가셔서 영영 갈 기회를 놓쳤다.

그래! 과거로 왔는데 또다시 같은 후회를 반복할 수는 없지. 떠나기 전에 찾아가 보자.

엄마를 만나면 뭐라고 해야 하나? 내가 아들이라고 해야 하나? 반갑게 맞아 줄까? 냉정하게 돌아가라고 하지는 않을까?

재혼까지 하셨는데 괜히 갔다가 상처받으면 어떡하지? 아니야! 엄마 마음을 아는데 그러지는 않을 거야.

조사했던 엄마의 기억을 떠올렸다.

작년 즉 1991년 12월에 분당 아파트에 입주하고 돌아가실 때까지 계속 사셨다.

슬하에 1남 1녀가 있었고 남편은 부모님이 하시던 식당을 물려받아 계속 식당을 운영하였다.

원래는 서울에서 식당을 하다가 분당으로 이사 오면서 분당에 식당을 오픈하였고 아이들이 컸을 때부터 엄마도 식당 카운터에서 일을 시작하였다.

작지도 크지도 않은 중간 규모였지만 음식 맛이 좋아 식당이 잘 되었다고 들었다. 경제적으로 어렵게 살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했었다.

생각을 마치고 바로 분당으로 향하였다.

모 아파트 놀이터 그네에 앉아 커피를 마시면서 아파트 현관을 바라보았다.

분당 모 동에 있는 무슨 아파트라는 것과 동은 기억해도 전화번호나 호수는 기억나지 않았다.

설령 기억한다고 해도 차마 집으로 찾아갈 수 없어 나올 실지 모르지만,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었다.

모레 출발이라 오늘 못 보면 내일은 아침 일찍부터 와서 저녁때까지 기다릴 생각이었다. 장 보러 한번은 나오시겠지.

엄마를 보면 첫마디를 뭐라고 해야 하지? 엄마! 라고 불러야 하나? 제가 민재예요라고 해야 하나?

엄마라고 불러보지를 않아 엄마라는 소리가 나올까? 근데 가만히 앉아 있으려니 너무 춥다.

따듯한 커피가 없었더라면 동태가 되겠네. 내일 올 때 보온병에 따듯한 물을 담아서 와야겠다.

추위에 떨며 2시간 정도 기다리자 엄마로 보이는 중년 여자가 아파트 현관에서 나오고 있었다.

사진은 젊은 모습이었지만 지금은 나이가 든 모습이었다. 하지만 사진 속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엄마는 나이가 들어도 예쁘네.’

드디어 엄마를 처음 본다. 심장이 주체할 수 없도록 마구 뛰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엄마에게 다가가려는데 아파트 현관에서 어린 여자애가 소리치며 뛰어나왔다.

“엄마! 같이 가!”

딸인가 보네. 한 13~14살로 보였고 귀여웠다. 내 동생이네. 이름이 뭘까?

엄마 앞으로 다가갈 수가 없어 엄마 뒤를 따라갔다.

딸과 팔짱을 끼고 아파트 입구에 있는 슈퍼로 들어가자 나도 따라 들어갔다.

물건을 고르는 척 엄마를 가까이서 지켜보았다.

얼굴이 더욱 선명하게 볼 수 있었다.

참 곱고 예쁘시네. 근데 주름살이 조금 보였다. 사진 속의 모습처럼 변함없이 항상 곱고 예쁜 엄마였으면 좋겠는데.

살 것도 없으면서 이것저것 카트에 물건을 넣으며 계속 엄마 주위를 맴돌았다. 난생처음 엄마 얼굴을 실컷 볼 수 있었다.

물건을 다 산 엄마가 계산대로 가자 난 카트 속의 물건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이걸 들고 계산대로 갈 수 없었다.

됐어. 엄마 얼굴 본 것으로 만족하자.

비록 만나서 이야기한 것은 아니었지만 평생 후회했던 마음 미련 없이 털어버려 속이 시원하였다.

카트에 있는 물건을 전부 제자리로 갖다 놓는 사이에 엄마는 슈퍼 밖으로 나갔다.

“엄마! 슈퍼에서 잘생긴 오빠 봤어?”

“아니 못 봤는데.”

“그걸 못 봤었어? 계속 우리 주변에 있었는데?”

“엄마는 살 거 고르느라 주변을 신경 쓰지 못했지. 그렇게 잘 생겼어?”

“응. 그 오빠 보면서 나도 저런 오빠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

딸의 말에 정지희는 순간 진민재가 생각났다.

올해 대학 갈 나이인데 대학은 합격했을까? 어느 대학에 갔을까? 걱정이 들면서 궁금한 마음이 들었다.

“오빠는 없어도 동생이 있잖아.”

“상규는 맨날 날 귀찮게만 하는데.”

***

오늘 출국하는 날이라 김포 공항에 도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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