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의 홀로서기-3화 (3/261)

3화

“어디가?”

“바람 쐬러.”

“같이 가.”

예전에는 내가 어디를 가든지 따라오는 놈이 있어서 든든하고 외롭지 않았는데 실상을 알고 나니 거머리 같다는 생각이 들어 싫어졌다.

그래도 저놈을 이용하려면 싫은 티 내지 않고 같이 다녀야겠지.

공부에는 관심이 없으니 이렇게 해서라도 자기 나름대로 미래를 설계하는 것일 수도 있다. 어쩌면 영리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놈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년 정도 놀다가 군대에 갔다. 그것도 18개월 방위로. 소집해제 후 진성 어페럴에 취업하여 다녔다.

취업에 성공하여 기특하다고 생각해 축하 주까지 사주었는데 그게 다 스파이 한 대가로 작은 엄마가 취업시켜 준 거였다니?

다시 한번 배신감에 몸을 떨었다.

독서실 건물 4층으로 올라와 창문을 열고 창밖을 내다보았다.

화려한 네온사인 밑으로 도로에는 차들이 끊임없이 움직이고 길가에는 사람들이 어디를 가는지 바쁜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녀석이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여기서 피지 마.”

“아무도 없는데 어때?”

“냄새나잖아. 피고 싶으면 밖에 나가서 피고 와.”

새삼스레 왜 그러냐는 듯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다가 혼자 피운다고 그러는 줄 알고 담배 하나를 나에게 건넸다.

“너도 펴.”

이때는 자주는 아니지만 공부하다가 힘들 때 가끔 한 대씩 피기는 했었지만, 이전 삶에서 금연한 지 수십 년이 되어 담배 피우고 싶은 생각 없었다.

“안 펴. 너도 끊어.”

아쉽다는 듯 담배를 다시 넣었다.

“민재야!”

“왜?”

“넌 유학 갈 생각은 없어?”

유학! 예전에도 나에게 이런 말 했던가? 기억이 없었다.

아마도 그때는 유학 갈 생각을 전혀 안 했기에 말을 했어도 그냥 한 귀로 흘려보냈을 것이다.

유학이 저놈 머리에서 나온 것은 아닐 테고. 이때부터 작은 엄마는 날 유학 보낼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건가?

하긴 내가 한국에 있는 것보다는 외국에 나가 있는 것이 더 좋을 테니.

가만! 예전과 달리 난 대학에 연연하지 않으니까 유학을 간다는 핑계로 목돈을 받을까?

한국보다는 외국에 나가야 돈을 벌 수 있고 나중에 돈을 벌고 한국에 들어오면 되는 거잖아?

그렇다면 작은 엄마와 유학을 놓고 거래를 할까? 하지만 유학 간다고 목돈을 주지는 않을 것 같은데.

뭔가 부족해. 미끼를 물을만한 것이 있어야 하는데. 앞일은 모르는 법 일단은 떡밥을 깔아두자.

“갈 수 있다면 가고 싶어. 모든 것을 다 잊고 한국을 떠나고 싶어. 외국에서 새롭게 시작하고 싶은데 현실은 그럴 만한 상황이 아니야.”

“가고 싶으면 가는 거지 뭐가 상황이 아니라는 거야?”

“유학이 옆 동네 놀러 가는 거냐? 생각해봐. 아는 사람 아무도 없는 외국 나가는 건데 학비며 생활비 등 돈이 많이 필요해.

나에게 그럴 만한 능력이 안 되니까 문제지.”

“작은 엄마한테 달라고 하면 되지 않아? 능력이 안 되는 것도 아니고.”

놈은 내가 어떤 집안 자식이고 더부살이를 하고 있다는 것을 다 알고 있었다. 내 처지를 잘 아니까 더 괘씸한 거다.

“글쎄? 한두 푼 들어가는 것도 아니라서 말하기가 힘들어.”

“그래도 한번 말해봐. 안되면 안되는 거고 말한다고 손해 보는 건 아니잖아. 혹시 알아 흔쾌히 부탁을 들어줄지.”

말투를 보니 놈은 당연히 들어줄 거로 생각하고 있었다.

작은 엄마가 나를 유학 가도록 옆에서 바람 넣으라고 시켰으니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생각해 볼게.”

“유학 가면 어디로 갈 거야? 미국? 일본?”

“생각해 보지 않았어.”

“잘 생각해봐. 한국에서 서울 대학 다닌다 해도 외국에서 대학 다니는 데 더 좋을 거야.”

그래! 결정했다. 대학은 한국에서 갈 필요는 없으니 외국으로 나가자.

굳이 대학 학위가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이 시대에 외국에 나가 생활하려면 유학뿐이었다.

이민도 있겠지만 내 나이에 이민은 불가능하니까.

“알았어. 먼저 유학 가는 거 알아보고 결정할게.”

놈의 얼굴에 기쁜 표정이 가득하였다.

내가 유학 가면 보너스를 받기로 했나? 설마 내가 유학 가면 이놈도 따라오지는 않겠지? 아니야. 능력도 자격도 안 되니 못 올 거야.

*

독서실에서 집에 돌아왔으나 나를 맞이하는 것은 썰렁함과 집에서 숙식하며 일하는 아줌마였다.

이 집 식구들은 집에서 얼굴 보기가 힘들었다.

나야 안 보면 더 좋기는 하지만 집에 들어올 때마다 조용한 절간 같은 기분이라 기분이 이상하였다.

집이 넓은 이유도 있지만, 식사 시간 또는 특별한 일이 없으면 다들 자기 방에 있어 집에 있는지 없는지 알 수도 없었다.

나야 그렇다 쳐도 같은 식구들끼리도 얼굴 보기가 힘들고 대화도 없으니 그게 가족이라고 할 수 있을까?

가족 간의 정이 있을까? 없으니 나중에 서로들 싸우고 그랬겠지. 어떻게 보면 참 불쌍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참! 남 걱정할 때가 아닌데.

“저녁 먹었어?”

“네. 사 먹고 왔어요.”

“자꾸 밖에서 사 먹는 거 안 좋은데, 저녁 것까지 도시락 싸줄까?”

아줌마 눈에는 더부살이하면서 환영받지 못하는 내가 불쌍하게 보였을 것이다. 그러니 차마 집에서 먹으라는 소리는 하지 못하였다.

아줌마도 작은 엄마 눈치를 보느라 누가 있을 때는 나에게 무관심하지만 없을 때는 나를 챙겨주려고 하는 모습이 고마웠다.

“괜찮아요. 저 올라갈게요.”

“그래. 도시락 주고.”

“네.”

가방에서 도시락 꺼내 주고 내 방으로 올라왔다.

씻고 옷을 갈아입고 침대에 누워 생각에 잠겼다.

대학을 외국으로 가면 어디로 갈까? 또 미국으로? 하긴 미국만 한 곳이 없지. 그래 미국으로 가자.

이전 생에서도 갔던 스탠퍼드 대학으로 가는 게 좋겠지.

낯설지도 않고 익숙한 곳이니까.

가만! 아니지. 투자하여 큰돈을 벌려면 지금은 미국에 가면 안 된다.

*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다음 날 학교 끝나자마자 강남에 있는 대형 유학원에 왔다. 물론 거머리도 같이.

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정부에서 유학 자격시험을 보는 등 유학을 강하게 규제하였지만, 국민들의 유학 자유화 요구에 따라 자격시험을 폐지하고 유학 문호를 개방하였다.

이에 80년대 중반부터 유학생이 서서히 증가하다가 80년대 말부터 유학 가는 학생들이 급속히 많아졌다.

안으로 들어가자 20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예쁜 직원이 우리를 맞아 주었다.

“안녕하세요?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유학 상담 좀 하려고 왔는데요.”

“지금 상담 선생님들이 다 상담 중이니 저쪽에 잠시만 앉아서 기다려 주세요. 상담이 끝나면 알려 드릴게요.”

“네. 감사합니다.”

소파에 앉았다.

“민재야! 저 누나 예쁘지 않냐? 딱 내 스타일인데.”

유니폼을 입고 있는 모습이 예쁘기는 하였다. 그럼 뭐해? 그림의 떡인데.

“예쁘면 꼬시게?”

“한번 해볼까?”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어야 해볼 만하지 괜히 망신만 당한다.”

“내가 5살만 더 나이 먹었으면 꼬셔볼 텐데.”

5살 더 먹었어도 넌 안 돼. 저 누나도 눈과 취향이라는 게 있는데 어디에다 비비려고?

오면서 산 신문을 보고 있는데 녀석이 심심한지 말을 걸었다. 귀찮게.

“진짜 유학 가기로 마음먹은 거야?”

“응. 갈 수 있다면 답답한 한국을 떠나 외국에서 새 출발 하고 싶어. 한국은 너무 숨이 막혀서 자유롭게 살고 싶어.

고등학교 졸업하면 나도 성인이잖아.”

이렇게 말하면 작은 엄마에게 그대로 보고하겠지.

“유학 가려면 영어 잘해야 하지 않아?”

“당연하지.”

“하긴 넌 공부를 잘하니까 문제없겠지. 근데 유학 가려는 사람들이 많은가 보네.”

유학원 안에 대학생으로 보이는 형, 누나들도 좀 있고 아줌마들도 많았다.

“그러게. 많네.”

“유학 가려면 돈 많이 들지 않나? 부자들이 많은가 봐.”

유학 가는 것을 뭐라고 할 수는 없지만 내가 유학 시절 적응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학생들을 많이 보다 보니 유학은 꼭 공부할 만한 학생들만 가야 한다는 생각을 했었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새는 법인데 부모들은 그걸 인정하지 않는다.

한국에서도 공부 안 한 학생이 유학 가서 열심히 공부하기를 바라는 것은 정말 바보 같은 생각이다.

한국에서보다 몇 배나 더 공부해야 겨우 따라가는데.

외화 낭비에다가 시간 낭비할 필요가 있을까?

“그런가 보지.”

한 30분 정도 기다리다가 내 차례가 되어 상담하게 되었다.

“유학 가시려고 온 건가요?”

“네.”

“지금 고등학교 3학년인가요?”

“네.”

“보통은 대학 재학 중에 유학을 많이들 가세요. 한국에서 대학을 가지 못해 유학 갈 생각이라면 포기하시는 것이 더 좋아요.

유학 가도 적응하지 못하고 중간에 돌아오시는 분들이 많거든요.

제 경험으로 말씀드리면 아직 고3이니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 입학 후에 그때 생각해 보시는 것이 좋을 거예요.”

그래도 양심적이네.

보통은 자격이 되지 않더라도 돈을 벌기 위해 무책임하게 일을 할 텐데.

“고3이라도 지금부터 준비해서 유학 갈 수 있잖아요?”

“그렇기는 해요. 여러 가지 자격 조건이 있지만, 그중에서 영어를 잘해야 해요. 토플 시험을 봐서 일정 정도의 점수가 나와야 입학 허가를 받을 수 있어요.”

“제가 토플 시험을 보지는 않았지만, 만점 가까운 점수를 받을 정도의 영어 실력이 있어요.

미국인과 대화하는데도 아무런 문제가 없고요. 대화한 미국인들이 저보고 미국에서 살았냐고 물어볼 정도로 영어 실력과 발음도 완벽하다고 해요.”

김윤석이 옆에서 거들었다. 이럴 땐 기특하네.

“민재 항상 전교 1등이에요. 선생님들이 민재는 무조건 서울대 간다고 하실 정도거든요.”

“그런데 왜 유학을 가시려고 해요? 서울대 가시는 것이 더 좋지 않아요?”

“제가 생각한 꿈이 있거든요. 그래서 가려고 해요.”

“그 정도라면 뭐 자격은 충분하시고 생각한 대학이 있나요?”

“저는 핀란드로 갔으면 해요.”

전혀 예상하지 못했는지 놀라서 되물었다.

“네? 핀란드로 유학 가시겠다고요?”

하긴 나도 주변에서 핀란드로 유학 갔다는 소리를 들어보지 못했으니까 의외이기는 하겠지.

“네.”

“미국이 더 좋지 않아요? 대부분이 미국으로 많이들 가세요. 유럽이 좋으시면 영국이나 프랑스, 독일도 많이 가시고요.

상담사로서 그 나라들을 추천해 드리고 싶네요. 핀란드 대학을 졸업해도 한국에서 인정을 잘 안 해주거든요.

비싼 돈 들여 공부하러 가는 건데 이왕이면 인정받는 대학에 가는 것이 좋아요.”

나도 미국으로 바로 가면 좋은데 내가 핀란드로 가려는 이유는 작은 엄마에게 목돈을 받아 핀란드에 가서 노카아의 주식을 살 계획이라 그렇다.

유학 가는 내년 1992년도 핀란드 노카아는 올 12월에 소련이 붕괴하면서 최대 위기를 맞이하여 주가가 가장 저렴할 때다.

그때 주식을 사놓고 8~9년만 있으면 수천%의 이익을 얻게 된다.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기회이자 가장 많은 돈을 벌 기회라 절대 놓쳐서는 안 된다.

문제는 노카아 주식이 지금은 미국 나스닥에 상장되어 있지 않아 핀란드에 가서 주식을 사야만 한다는 거다.

단순 관광객으로 가서는 금융 거래를 할 수 없기에 유학생 신분으로 가야만 금융 거래를 할 수 있어 노카아 주식을 살 수 있었다.

미국 나스닥에는 94년도에 상장하지만, 그때는 주가가 조금 상승하기에 더 많은 이익을 보려면 내년에 핀란드로 가야 한다.

나스닥에 상장되어 있다면 이렇게 복잡하게 하지 않아도 되는데. 큰돈을 벌 좋은 기회이니 불편해도 어쩔 수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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