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내일부터 사무실에 이사님이 없다고 생각하니 너무 슬프고 쓸쓸해요. 계속 다니시면 안 되나요?”
두 눈이 촉촉해져 간절히 말하는 크리스티나를 바라보며 엷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우리가 함께했던 시간이 10년인가?”
“네. 제가 입사한 지 10년이 되었으니 맞아요.”
크리스티나가 면접 왔을 때가 생각나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중요한 면접자리에 늦게 왔고 더구나 자다 일어난 것처럼 헝클어진 옷차림으로 온 그녀를 보고 3명의 면접관 전부 고개를 저었다.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개인주의가 만연한 미국이었지만 나 또한 기본이 안 되었다고 생각했다.
시작이 이러니 제대로 된 면접이 이루어지지 않았고 형식적인 질문만 몇 번 하다가 면접을 끝냈지만, 나중에 내가 구제해주었다.
비록 경력이 1년 정도 단절되었지만, 그녀가 전 직장에서 진행했던 프로젝트에서 가능성을 보았고 나의 강력한 주장에 합격을 시켰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녀는 28살의 싱글맘으로 참다 참다가 한 달 전에 개차반인 남편과 이혼하고 다시 일하고자 우리 회사에 지원하였고 어린 두 자녀를 키우느라 면접에 급하게 온 거였다.
남자든 여자든 자고로 배우자를 잘 만나는 것도 복이다. 그런 면에서 난 배우자를 잘 만나는 복은 타고 태어난 것 같았다.
비록 부모 복은 지지리도 없었지만.
“지금 웃음이 나오세요?”
“크리스티나 면접 때가 생각나서.”
“그 이야기는 왜 꺼내세요? 벌써 10년이나 지났는데요.”
숨기고 싶은 과거라도 되는지 쌍심지를 켜며 더는 말하지 말라는 무언의 압박을 가했다. 그리 숨길만 한 것도 아닌데.
여자의 입장은 다른가?
“미안!”
“그만두시고 뭐하실 거예요?”
“일하느라 자지 못한 잠도 실컷 자고 책도 보고 산책도 하고 영화도 보고 여행도 다니고 그동안 하지 못했던 거 다할 거야.”
“회사 다니면서도 충분히 할 수 있잖아요? 이사님 안 계시면 저는 어떡해요?”
“내가 없어도 크리스티나는 충분히 잘 할 거야. 지금까지 잘해줘서 고마워.”
“그거야 이사님이 많이 가르쳐 주신 덕분이죠. 그 점은 항상 이사님에게 감사한 마음이에요.”
“더 이상 가르칠 게 없어. 나도 이제 남은 인생 즐기면서 살아야지.”
“남이 들으면 이사님이 8~90살 된 줄 알겠어요? 이제 겨우 60이잖아요. 아직 한창때예요.”
“그러니까 더 늦기 전에 인생을 즐기고 싶은 거야. 몸을 움직일 수 있을 때 하고 싶은 거 많이 해야지.
움직이지 못하면 하고 싶은 것도 못해.”
“이사님이 진정으로 바라는 소원은 뭐예요?”
소원이라? 이 나이에 소원이 있나?
둘 있는 자식들도 잘 성장하여 결혼해 잘살고 있고 부인도 건강하니 지금 이 나이에 특별히 바랄만한 소원은 없었다.
한가지 있다면 내 인생에서 가장 아쉬웠던 그때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불가능한 일이었다.
“한가지 있는데 불가능한 일이야.”
“뭔데요? 제가 그 소원 이루어지라고 간절히 기도할게요.”
“말이라도 고마워.”
크리스티나가 목에 찬 목걸이를 꺼내 보여주었다.
25센트 크기의 푸른색의 불투명한 돌 같은 같이 박혀 있었고 보기에도 꽤 오래된 목걸이였다.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에요.
이 목걸이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저한테 물려준 목걸이인데 나중에 도움을 많이 받은 은인이 있다면 그 은인의 소원을 한번은 들어주는 신비한 목걸이라고 했어요.
실제 소원을 들어주는 것은 아니겠지만 이사님의 소원을 꼭 들어주고 싶은 제 마음이에요.”
“고마워.”
오랫동안 같이 했던 회사 사람들과 한명 한명 아쉬운 작별 인사를 나누고 회사를 나왔다.
인생이나 회사나 입사할 때도 빈손으로 왔듯이 나갈 때도 빈손이었다.
주차장에 주차한 차에 올라탔다.
25년간 일하면서 미운 정 고운 정 다 들은 회사인데 그만두니 시원하면서도 섭섭한 마음이 들었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처음 입사한 곳이 마이크로 소프트였고 7년 동안 일하다가 구골에 입사하여 25년간 일을 하였다.
열심히 했고 열심히 한 만큼 인정받아 소프트 개발 이사까지 올랐다. 회사에서는 더 다니기를 원했지만 나도 남은 인생을 즐기고 싶었다.
시동을 걸으려는데 갑자기 졸음이 몰려왔다.
긴장이 풀어져서 그런가?
급할 것도 없는데 무리하게 운전하기보다는 잠깐 눈 좀 붙이고 출발하자.
창문을 조금 열고 의자를 뒤로하고 누웠다.
*
눈을 떴다.
오랜만에 푹 잔 것 같이 몸이 개운하고 가벼웠다.
이런 기분 얼마 만이지? 그동안 일에 치여 긴장하면 치열하게 살다 보니 여유가 없었던 것 같았다.
회사를 그만두니 도망갔던 여유가 다시 돌아왔다.
어라! 이상하여 벌떡 일어났다. 난 분명 회사에서 나와 차에서 잠깐 잔 거였는데 차 안이 아닌 어떤 방 안이었다.
근데 방 안이 낯설지가 않았다. 방안을 둘러보다가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으악.’
이 방은 내가 고등학교 다닐 때의 내 방인데. 어떻게 된 거지?
크리스티나가 내 소원을 물었을 때 내 인생에서 가장 아쉬웠던 때로 돌아가고 싶다고 생각해서 꿈을 꾸고 있는 건가?
그런데 꿈이 아닌 생생한 이 느낌은 뭐지?
벽에 걸린 교복이 보여 일어나 교복 앞으로 갔다.
명찰에 진민재라고 되어 있었다. 내 이름이었다. 그렇다면 지금 고등학교 3학년이라는 건데.
얼른 거울 앞으로 가 내 얼굴을 보고서는 또다시 비명을 질렀다.
‘으악!’
거울 속에는 60살의 얼굴이 아닌 앳된 얼굴이 놀란 표정을 하고 있었다. 이게 뭐지? 어떻게 된 거지?
볼을 꼬집어 보았다.
아팠다.
꿈이 아니었다.
현실이었다.
헐! 내가 고3 때인 1991년도로 돌아왔다고?
정말?
이게 가능해?
순간 머릿속을 스치는 것이 있었다. 정말 크리스티나의 목걸이 때문에 과거로 온 건가?
말도 안 되는 말이지만 그게 아니라면 말도 안 되는 이 상황을 설명할 수가 없었다.
어떻게 왔든 간에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과거로 왔다는 것이 더 중요하였다.
수십 년 동안 항상 마음속에 남아 있던 아쉬움을 깨끗이 털어낼 기회가 나에게 다시 주어졌다.
그때는 아무것도 몰라 당했지만, 지금은 다를 것이다. 그때의 내가 아니니까 호락호락 당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방문을 조심스레 열고 나왔다.
집안이 절간 같이 조용하였다.
이는 이 집의 주인인 작은 엄마의 신경이 예민하고 날카로워 집안에서 항상 조용해야만 했기 때문이었다.
집안일을 도와주시는 아줌마들도 작은 엄마의 신경을 거슬리지 않도록 항상 조심하였다.
우리 집안은 어디 가서 방귀깨나 뀌는 소위 재벌이었다.
그렇다고 대기업 재벌은 아니고 건설, 섬유, 리조트 등 7개의 계열사가 있는 재계 순위 90위 정도 되는 그룹이었다.
하지만 내 가정사는 참 기구하였다.
엄마와 아빠는 할아버지의 반대로 결혼하지 못한 채 같이 살다가 나를 낳았고 내가 2살 때 아빠가 엄마와 헤어지고 할아버지 집으로 들어오면서 나도 따라 들어갔다.
엄마는 나를 보내고 그 이후로는 나를 한 번도 찾지 않았고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좋은 남자를 만나 결혼하여 아들, 딸 낳고 잘살고 있었다.
난 엄마의 얼굴을 사진으로만 기억하고 있었다. 참 곱고 예쁜 엄마였다.
할아버지가 아빠와 엄마의 결혼을 반대한 이유는 엄마가 평범한 집안의 여식인 점도 있었지만, 아빠가 할아버지의 기대와는 다르게 다른 길을 걸었기 때문에 괘씸죄가 적용된 것 같았다.
아빠는 어렸을 때부터 천재라는 소리를 들어 할아버지의 기대를 한몸에 받았고 회사를 물려받아 그 능력으로 회사를 성장시키기를 바랐지만, 아빠는 자신이 하고픈 과학자의 길을 걸었다.
내가 13살 때 아빠는 사고를 당해 갑자기 돌아가시고 그 이후 난 작은 아버지 집에 들어와 눈총받으며 더부살이를 하고 있었다.
불쌍한 내 신세이지만 그래도 난 엄마 아빠의 우월한 유전자만을 받아 키도 크고 잘생긴 외모와 아빠처럼 천재는 아니지만, 수재 정도 되는 머리를 가지고 태어나는 축복을 받았다.
거실로 내려가자 작은 엄마가 소파에 앉아 음악을 들으며 차를 마시고 있었다.
“학교 안 가?”
이 집의 실질적인 주인이자 나의 모든 것을 빼앗고 미국으로 쫓아버린 원흉이었다.
대학 졸업을 바로 앞둔 1996년 1월에 할아버지가 쓰러지자 나의 장래를 생각해 좁은 한국보다는 미국에서 계속 공부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며 나를 강제로 미국으로 유학 보낸 장본인이었다.
나의 장래를 생각해서가 아니라 할아버지 사후에 있을 유산 상속 때문에 나를 미국으로 보내 버린 것이다.
97년까지는 적은 생활비라도 보내주었는데 97년 12월에 한국이 IMF를 맞게 되면서 환율이 치솟자 그나마 보내주던 것도 끊겼다.
다행히도 유학 올 때 가져온 돈도 있었고 98년 여름에 대학원을 졸업하여 바로 회사에 취직할 수가 있었다.
그 이후 계속 미국에서 살았다.
“갈 거예요.”
다시 내방으로 올라와 학교에 가기 위해 교복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수십 년 만에 입어보는 교복이라 그런지 무척이나 반가우면서 기분이 좋았다. 사실 교복을 입는 것보다는 이 시기로 돌아왔다는 것이 좋았다.
버스 정류장에 있는 가판대에서 판매하는 신문을 보니 오늘이 91년 3월 25일 월요일이었다.
‘지금이 91년 3월이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