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녀의 두 번째 남편-199화 (199/199)

199화 음악회 (9)

(199)

강시혁은 밥을 빨리 먹는 편이다.

알바와 투잡 인생을 살다보니 습관이 되어서 그런 것 같았다.

밥을 금방 먹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저는 가보겠습니다. 모셔야할 분이 계시기 때문에 여기서 일어나겠습니다.”

조태춘이 말했다.

“응, 가봐야겠지. 중요한 일을 맡은 사람인데.”

강시혁이 구미쵸에게도 간다고 인사를 했다.

구미쵸가 명함이 있으면 한 장 달라고 하면서 자기 명함을 주었다. 무슨 부동산회사 회장으로 된 명함이었다.

강시혁은 삼방 문화재단 경비반장 명함을 주었다. 비서실 명함을 주지 않았다. 비서실 명함은 대리라고 되어 있어 경호원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구미쵸가 강시혁의 명함을 보며 말했다.

“한쵸(반장)? 일본서는 책임자를 구미쵸(조장)라고 하는데 한국은 한쵸를 즐겨 쓰는 것 같군. 강상! 우리 인연 있으면 또 봅시다.”

그러면서 구미쵸가 두꺼운 손을 내밀었다.

강시혁은 두 오야붕에게 정중히 인사를 하고 물러나왔다.

강시혁은 오늘 기분이 그런대로 좋았다.

야쿠자 두목 구미쵸를 만난 것도 좋았고 조태춘을 만나서 자기를 확실히 인식시켜준 것도 좋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김재두를 만난 것도 잘된 일이라 생각했다.

[내가 오늘 여기에 온 것도 실은 이영남에게 도움이 될까 해서 온 거지. 그런데 김재두한테 형님 소리를 듣게 생겼으니 앞으로 이태원에서 이영남을 괴롭힐 놈들은 없을 것 같네.]

호텔 밖으로 나오니 경찰들은 아직도 있는 것 같았다.

[경찰들이 경찰 본연의 일을 못하고 여기에 이렇게 나와 있으니 세금 낭비네. 확실히 조폭들은 사회의 암적 존재들이야.]

그러면서 강시혁은 지하철역으로 갔다.

영빈관에 도착했더니 드럼소리가 났다.

이영남이 와 있는 것 같았다. 이영남이 드럼을 치는데 궁상맞게 또 돈데보이를 치고 있었다. 죽은 자기 엄마가 좋아했다는 곡이다.

“형 왔어?”

“엄마가 좋아했다는 곡을 치는구나.”

“형, 나는 솔직히 말해서 이번 가족음악회 때 이 곡을 한번 연주해보고 싶어. 죽은 엄마에 대한 헌사로 이 노래를 부르고 싶어.”

“이미 선곡은 했잖아? 12곡을 선정해서 하기로 했잖아? 영진 누나나 사카모토 씨도 그렇게 알고 있는데!”

“그래도........”

“크리스마스 날이니까 캐롤송과 좀 밝은 노래가 좋겠지. 죽은 엄마만 생각하면 길러주신 큰엄마가 섭섭해 여기지 않겠어?”

이 말에 이영남은 고개만 숙이고 말이 없었다.

한참 후 고개를 들며 말했다.

“오늘 결혼식장에서..... 신부 예뻤어?“

강시혁은 오늘 식장에 들어가지 않고 피로연만 참석해 신부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른다.

“응? 예, 예뻤어.”

“우리 엄마도 예뻤어.”

그러면서 이영남은 스마트폰에 담긴 돌아가신 생모의 얼굴을 보여주었다. 하와이 와이키키 해변에서 비키니 차림으로 어린 이영남을 안고 있는 사진이었다.

역시 미인이었다. 미인이니까 재벌이 접근했을 것이 아니겠는가?

“아휴, 돌아가신 엄마가 아주 미인이시네.”

강시혁은 이영남의 생모가 미인이지만 일찍 죽은 것이 안타깝기는 하였다.

왜 죽었는지는 물어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다. 여러가지 추측은 해볼 수 있었다.

강시혁은 이영남을 길러준 큰엄마도 참 대단한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남편이 바람피워서 난 자식을 데려와 기를 때 심정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재벌가의 맏며느리로 운명으로 받아들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돈 많은 이건용 회장이 이영남의 엄마만 좋아했겠나?

여러 여자를 건드렸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리틀 브라운! 큰엄마한테도 잘해드려. 리틀 브라운을 길러주신 분이잖아.”

아마 이영남의 큰엄마는 이영남의 생모를 찾아가 이영남을 길러줄 테니 새 출발하라고 했을지도 모른다. 젊은 여자가 재벌의 첩이 되지 말고 좋은 남자 만나서 정식 결혼을 하라고 했을지도 모른다. 이영남은 새 출발하는데 혹이 될지 모르니 자기가 맡아서 길러주겠다고 했을 것 같다.

이영남의 엄마는 노래를 부르는 여자였다고 했었다.

그렇다면 이영남을 본부인에게 주고 자기는 연예인 생활을 계속했을 것이다. 그리고 외로움에 못 이겨 약물 복용을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약물 중독은 생명을 단축시키는 지름길이기 때문이었다.

강시혁이 몸을 낮춰 이영남의 눈동자를 보며 말했다.

“리틀 브라운, 혹시 엄마처럼 아름답게 생긴 여친 없어?”

“없어!”

“이제 좋은 여자 있으면 사귀어봐. 리틀 브라운은 인물도 좋고 집안도 좋잖아? 그리고 미국 유명대학을 다녔으니 학벌도 좋아 마음만 먹으면 좋은 여자 금방 사귈 수 있을 것 같은데?”

“난, 결혼 안할 거야.”

이영남은 엄마의 죽음에 트라우마를 갖고 있는 듯 했다.

그래서 자기가 엄마가 되어 강한 남자를 찾고 있는 것이 아닌 가 했다. 그래서 예쁜 여자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김재두 같은 건달과 어울리고 또 자기를 좋아하는 것이 아닌 가 했다. 기회만 있으면 자기 가슴을 만지려고 하는 버릇도 다 이런데서 나온 것이 아닌 가 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이영남이 짠해 보이기도 했다.

이건용 회장은 이영남이 남자답지 못하고 여자처럼 행동하며 음악만 좋아하는 것을 못마땅해 하고 있다. 이것도 연민의 정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김재두란 녀석이 이영남에게 무리한 금품을 요구하고 차를 빼앗아 가고 폭행을 한다면 문제가 있다. 그건 강시혁이 막아줘야 할 것 같았다.

삼방그룹 오너 가족을 보호하는 경호원의 신분이라면 마땅히 그렇게 해야 될 것 같았다.

강시혁은 오늘 예식장에서 김재두 만난 것을 이야기할까 하다가 그만 두었다. 그러면 또 김재두는 왜 거기를 갔으며 신랑 신부가 뭣을 하는 사람이냐고 꼬치꼬치 물을 것 같아서였다.

강시혁은 옷을 갈아입고 기타반주 연습을 하였다.

이영남이 반주하는 법을 알려주다가 가족음악회 날 한국 가요는 혼자 기타를 쳐보라고 하였다.

한국 가요 선곡한 두곡 중 '어머님 마음' 은 하지 말고 ‘봄날은 간다’ 를 혼자 쳐보라고 하였다.

“이모님들이 좋아한다는 이 곡을 혼자 치라고? 한국 뽕짝 가요라 혼자는 칠 수 있을 것 같은데 왜 그러지? 다른 악기도 함께 연주하면 좋잖아.”

“혼자하면 부모님이나 이모님들은 형이 아주 기타를 잘 치는 사람으로 알거야.”

“그, 그게 그렇게 되나?”

“이 곡은 이모님들이 좋아하는 곡이기도 하지만 돌아가신 할머니의 애창곡이기도 했어. 그래서 한국 가요는 이것으로 선정한 거야.”

“그래?”

“이 노래는 가사가 처음에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하는 거잖아. 할머니가 시집올 때 정말 연분홍 치마를 입고 시집을 왔다나봐.”

“하하. 그래?”

“형이 반주만 하지 말고 이건 꼭 한번 해봐.”

“알겠어. 그럼 혼자 해보지.”

“우리가 음향장비 가져오면서 분위기 살리려고 노래방 미러볼 조명세트도 가져왔잖아?”

“그랬지. 나이트 조명도 있고”

“그러니 그날 형이 봄날은 간다를 칠 때는 모두 소등을 하고 형에게만 나이트 조명을 쏘면 분위기 죽일 거야. 모르긴 몰라도 이모님들은 형을 보고 멋있다고 소리라도 칠걸?”

“서, 설마.”

그래서 강시혁은 봄날은 간다 기타 연습을 열심히 했다.

강시혁은 이 곡을 치면서 대전에 가서 부모님에게도 이 노래를 들려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한참 기타연습을 하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홍보실 여직원 송혜영 씨였다.

“홍보실 송혜영입니다.”

“예, 안녕하십니까?”

“내일 일신홀 임원음악회에 저는 1시간 전에 미리 나가려고 합니다. 강 대리님도 그때 나오실 수 있죠?”

“예, 나가겠습니다.”

“음악회 안내 팜프렛도 나눠주고 기념품도 나누어줘야 하니까 홍보실 남자직원 한분도 나갈 겁니다. 하지만 오시는 임원들 얼굴을 강 대리님이 잘 아시니까 안내는 강 대리님에게 부탁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기념품은 피아노 키링 세트 하고 사모님들도 오시니까 타올을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오기 때문에 찹쌀떡과 팩에든 음료수도 준비했습니다.”

“여러 가지 신경 쓰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사카모토 씨하고는 통화했습니다.”

“사카모토 씨도 일찍 온다고 했죠?”

“네, 그렇게 약속했습니다. 그리고 사카모토 씨는 연주가 끝나고 임원 가족들이 함께 사진을 찍자고 요청이 들어올지 모른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예, 잘하셨습니다.”

송혜영 씨와 통화를 끝내고 기타연습을 하는데 또 전화가 왔다.

이번엔 비서실 최 이사였다.

"강 대리? 나네.“

“넵. 이사님.”

“내일 일신홀에서 임원초청 음악회를 한다는데 자네도 나올 건가?”

“조금 전에 홍보실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기념품도 나눠줘야 하니까 와서 도와 달라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기념품이야 양주나 한 병씩 주면 좋을 텐데 그런 건 아니겠지.”

“하하. 그건 아닙니다.”

“사카모토인가 나카모토인가 하는 연주자는 자네도 본적이 있나?”

“그럼요. 한국에 들어올 때 제가 공항에서 픽업까지 했는데요.”

“팜프렛 보니까 수염이 완전히 칼 마르크스 동생처럼 생겼더구먼.”

“하하. 그건 그렇습니다.”

“그럼 이 작자 좌빨 아닌가?”

“음악인인데 이념 같은 것엔 크게 관심을 안 갖겠죠. 내일 이사님도 오실 거죠?”

“가긴 가야겠지. 내일 동창들과 골프 약속이 있긴 한데 취소했네. 내 와이프가 음악을 좋아하니 같이 갈 예정이네.”

“이 기회에 사모님이랑 음악회 참석하시고 이태원에 오셔서 놀다가세요. 부부가 함께 클럽 같은데 가서 놀다 가면 사모님이랑 사이도 더 좋아지겠죠.”

“알겠네. 내일보세. 비서실 유길준 대리도 내일 갈 거네.”

“예? 유 대리님도요?”

“어느 임원이 오셨나 비서실에서 명단 체크는 해야 되겠지.”

다음날이 되었다.

임원초청 음악회는 저녁 6시에 있기 때문에 모처럼 K&B파트너스 사무실에 나가보았다.

변상철과 김진석이 반겼다. 변상철이 의자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형, 오래간만이네.”

“응, 일이 좀 있어서. 어제는 결혼식이 있었고 오늘은 또 저녁에 임원초청 음악회 안내를 봐야 돼.”

“비서실 따까리 일이 많은 것 같네.”

김진석이 말했다.

“장명건설 액면분할에 대한 다른 정보는 없습니까?”

“아직....... 주가가 크게 떨어지지 않는다면 기다려봐야지.”

“제가 어제 10만 명 회원이 가입된 주식동호회 카페에 글을 올려봤습니다.”

“무슨 글을 올렸는데?”

“장명건설은 액면분할 같은 거 안 하나? 하는 글입니다.”

“이런 잡주가 무슨 이유로 액면분할 하냐고 했겠지.”

“하하. 그렇습니다. 장명건설은 원래 삼방에서 인수하기 전에는 시장에서 잡주로 분류된 종목이었습니다. 삼방그룹 인수로 큰 공사를 맡을 수 있겠다는 기대감은 있지만 현재는 그런 소식도 없는 상태입니다. 그런데 내가 뜬금없이 액면분할 이야기를 올리니 무슨 개소리냐 하는 답변만 달립니다.”

“하하 그렇겠지.“

옆에서 변상철이 말했다.

“그런데 액변분할하면 올라가는 건 맞나? 떨어지는 주식도 있는 것 같던데.”

김진석이 말했다.

“단기적으로 호재인건 맞습니다. 하지만 기업 멘탈에 따라 다시 내려옵니다. 장명건설은 회사가 잘되어 이익이 많이 발생하거나 주가가 너무 높아서 액면 분할하는 것도 아니라서 잠깐 반짝하다가 내려올 가능성이 많습니다.”

“얼마나 반짝할 것으로 보나? 탐조등 서치라이트 정도면 좋겠는데.”

“글쎄요. 30%보면 많이 보는 거겠지요. 그래도 30%면 투자가 성공한 겁니다.”

“액면분할 하려면 주주총회 결의도 거쳐야 하는 것 아닌가?”

“그렇습니다. 정관 변경을 해야 하니까 반드시 주총 결의를 거쳐야합니다. 하지만 사전에 주주들에게 서면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그럼 우리도 장명건설 주식을 사놓았으니 주주총회 서면통지는 오겠군.”

“그렇습니다. D-15일에 임시 주주총회 소집 통보가 옵니다. 하지만 액면분할은 회사에서 한다는 결정이 나오면 언론이 먼저 알고 보도가 됩니다. 찌라시가 돌죠.”

그러면서 김진석은 강시혁의 얼굴을 쳐다보고 빙긋 웃었다.

강시혁은 펀드매니저 출신인 김진석을 잘 채용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식투자에 대하여는 이놈이 박사인 것 같아서였다.

이때 전화가 왔다.

또 홍보실 송혜영이었다.

“저 죄송하지만 오늘 사카모토 씨가 일신홀에 오는 픽업은 강 대리님에게 부탁드려도 될까요?”

“뭐, 그러죠.”

“일신홀이 이태원에서 멀지 않아 걸어 오시겠다는데 연주자를 그렇게 모시는 것도 예의가 아니라서 그렇습니다. 홍보실장님 말을 들으니 영빈관에 차가 있다는 말을 들어서요.”

“알겠습니다. 모셔드리죠.“

전화를 끊고 나니 김진석이 물었다.

“누굽니까? 목소리가 아주 예쁜데요?”

“삼방그룹 홍보실에서 제일 예쁜 사람이야. 왜? 소개해 줄까?”

“헤헤. 얼굴도 모르는데요. 그리고 대그룹의 홍보실 직원이라면 눈도 높을 텐데요.“

옆에서 변상철이 말했다.

“형! 나도 소개해 줘. 삼방그룹 비서실에 좋은 여자 많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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