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화 음악회 (8)
(198)
예식장엔 정말 깍두기 머리들로 인산인해였다.
덩치 좋고 몸에 징그러운 문신을 한 놈들로 가득했다. 어림잡아 천 명도 넘는 것 같았다.
이들은 서로 얼굴을 아는 사람을 향해 형님 동생하며 악수도 하고 90도 각도로 허리 굽혀 조폭식 인사도 하였다.
경찰도 엄청 많은 숫자가 깔린 것 같았다.
강시혁은 밖에서 기다릴까 하였다. 식이 끝나고 피로연장엘 들어가려고 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식권이 없으면 피로연장엘 들어갈 수가 없었다. 식권은 축의금을 내야 받을 수 있었다.
[빌어먹을! 식장에 들어가 봐야겠네. 식권 받으려면 축의금을 내야 되니 별수 없네. 그런데 얼마를 내지?]
[피로연에 가서 밥이라도 먹으려면 5만 원 이상 내야겠군. 더구나 여긴 호텔 예식장이 아닌가?]
그런데 북극성파의 두목이라면 5만원 가지고는 안 될 것 같았다. 10만원은 내야 할 것 같았다 호텔 피로연장에서 비싼 밥을 먹으니 10만원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금은 가져온 것이 있었다.
예식장을 가기위해 로비 쪽으로 가는데 신사복을 입은 중년이 다가왔다. 중년 양 옆에는 경찰이 따라붙었다. 중년이 강시혁의 앞에 오더니 거수경례를 붙이며 말했다.
“경찰입니다. 식장에 가시는군요.”
“그렇습니다.”
“죄송하지만 신분증 좀 볼 수 있겠습니까?”
강시혁이 주민등록증을 꺼내 보내주었다.
중년은 사복경찰인 것 같았다. 중년이 강시혁의 주민등록증을 보더니 날카롭게 강시혁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이 놈이 왜 내 얼굴을 쳐다보지?]
중년이 주민등록증을 돌려주며 말했다.
“실례했습니다.”
아마 수배중인 조폭을 찾는 것 아닌가 했다. 수배중인 조폭들이 이 결혼식에 오는 경우도 있어 길목에 지키고 있다가 덮치려고 하는 것이 아닐까 했다. 아니면 결혼식장에 와서 소란을 피울만한 인물을 가려내는 것이 아닐까 했다. 북극성파와 적대적인 조폭도 있을 테니 말이다.
강시혁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5층으로 올라갔다.
여기도 검은 양복을 입은 깍두기들로 만원이었다. 이놈들은 엘리베이터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손님이 내리면 XX형님이시다! OO형님이시다! 하면서 뛰어가 90도 각도로 인사를 하고 식장 쪽으로 안내를 하였다.
조폭들이 강시혁을 보고 저놈은 어디서 온 놈이지? 하는 것 같았다. 강시혁도 검정 양복에 덩치도 있고 깍두기 머리라 자기들과 같은 조폭이라는 것을 인정은 한 것 같았다. 그렇지만 혼자 독고다이로 온 놈이라 고개를 갸우뚱 했다.
손님들에게 인사를 받고 있는 신랑은 분명히 오늘 결혼하는 북극성파의 두목이었다. 얼굴 가득 웃음을 띠우고 오는 사람들과 악수를 하였다.
강시혁이 혼자 중얼거렸다.
[저 사람이 신랑이라고? 난 신랑 아버지인줄 알았네.]
북극성파 두목 이강한은 나이 50세가 넘어서 하는 결혼이니 자연히 늙어 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는 인터넷 기사에서는 콧수염을 기른 사람이었는데 오늘은 수염이 없었다. 결혼식 때문에 밀어버리고 온 것 같았다.
강시혁은 신랑을 피하여 바로 접수대 쪽으로 갔다. 사람이 어떻게나 많은 지 접수대도 길게 줄을 섰다.
강시혁은 접수대에 가서 우선 축의금 봉투 하나를 얻었다. 접수대에 있는 놈들도 조폭같이 생긴 놈이 세 명이나 앉아서 접수를 보았다.
강시혁은 봉투에 5만 원짜리 두 장을 넣었다. 그리고 축의금 봉지 뒷면에 이름을 써야 하는데 뭐라고 쓸까 하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강시혁이라고 쓸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삼방그룹이라고도 쓸 수 없었다.
[옛날 조폭으로 유명한 김두한이나 시라소니라고 쓸까?]
그러다가 시라소니는 이름 같지 않아서 제외하고 김두한이라고 썼다. 강시혁이 줄을 선채 뒤를 돌아보니 줄이 더 늘어 뱀 꼬리처럼 엘리베이터 입구까지 뻗어있었다.
[전국 조폭들이 다 모인 것 같네. 무협지에 나오는 구파일방이 다 모인 것 같네. 그런데 오늘 축의금만 해도 얼마야? 억대는 금방 넘겠는데?]
강시혁이 차례가 왔다. 접수대에 있는 조폭이 인사를 하였다. 프로레슬링 선수처럼 생긴 놈이었다.
[접수대만큼은 조폭 아닌 놈을 앉히지. 어째 이런 험상궂은 놈들을 앉혔나?]
강시혁이 방명록에 서명을 하였다. 김두한이라고 서명을 했다. 그리고 축의금 봉투를 내밀자 프로레슬링 선수처럼 생긴 조폭이 그래도 미소를 지으며 상냥하게 말했다.
“피로연 장소는 바로 아래층에 있습니다.”
그러면서 식권 한 장을 주었다.
결혼식이 시작된다는 방송이 나왔다.
신랑은 식장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식장이 비좁아서 그런지 참석을 안 하고 아래층 피로연 장소로 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바로 아래층이라 그런지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지 않고 층계로 내려갔다. 강시혁도 사람들을 따라서 아래층으로 갔다.
피로연 장소도 벌써 만원이었다.
호텔이라 장소도 상당히 넓은데 검정양복의 깍두기 머리들로 꽉 찼다. 강시혁은 대한민국에 이렇게 깍두기들이 많았나 하였다. 혹시 여기에 일본 야쿠자 구미쵸가 왔는가하여 둘러보았다.
피로연 장소는 10명이 앉을 수 있는 커다란 원형 테이블이 일렬로 놓여있었다. 모두 검정양복 손님 천지였다. 그런데 창가 쪽 원형 테이블엔 흰색 양복과 감색 양복을 입은 사람도 있었다. 나이들도 60대들인 것 같았다. 조폭계의 원로들인 것 같았다.
그래서 그런지 검정양복들이 그 자리에 가서 인사를 하고 오는 모습도 보였다. 혹시 거기에 야마구치구미의 구미쵸가 왔는가하여 가까이 가보았다.
구미쵸가 있었다.
아래위 감색 양복 앞주머니에 흰색 행커치프를 꽂고 앉아있는 사람은 분명히 강시혁이 그날 밤 보았던 구미쵸였다.
그리고 그 옆에는 놀랍게도 조태춘파의 두목 조태춘도 앉아 있었다. 두 사람 모두 콧수염을 기르고 눈빛도 날카롭고 주름살도 많아 꼭 형제처럼 보이기도 했다.
[조폭 두목들은 콧수염을 많이 기르네.]
새로 피로연장에 들어온 사람들은 연이어 구미쵸 옆에 앉은 조태춘에게 인사를 하였다. 조태춘은 역시 조폭계의 두목다웠다. 의자에 기댄 채 인사를 하러온 아우들에게 고개만 까딱 해주었다.
강시혁이 다가가 조태춘과 구미쵸에게 인사를 하였다.
구미쵸는 강시혁을 몰라보는지 어리둥절한 표정이었고 조태춘은 눈을 크게 떴다.
“삼방그룹 VIP경호원 아닌가? 자네가 여기 웬일인가?“
“야마구치구미의 구미쵸 상이 오셨다고 하기에 인사를 하러 왔습니다.”
"뭐라고?“
강시혁이 구미쵸를 쳐다보며 미소를 진채 말했다. 영어로 말했다.
"구미쵸 상 오래간만에 뵙습니다.“
의자에 기대어 앉았던 구미쵸가 자세를 바로하며 말했다.
“다레데스까?(누구신지?)”
역시 구미쵸는 국제적 조직의 보스라 그런지 영어를 알아듣는 것 같았다.
강시혁이 웃으며 말했다.
“잊으셨습니까? 아시야시(芦屋市)에 있는 야마구치구미의 오사카 지부에서 뵈었지요. 삼방그룹의 VIP경호원입니다.”
그래도 구미쵸는 눈을 크게 뜨고 강시혁을 쳐다보았다.
조태춘이 옆에 있는 젊은 사람을 쿡쿡 찌르며 통역을 해달라고 하였다. 이 사람은 조폭 같지는 않았다. 통역을 위해서 알바로 고용한 사람인 것 같았다.
“이 친구가 지금 뭐라고 하는 거야? 정말 재벌 경호원이라 그런지 영어를 유창하게 하네?”
통역은 일본어와 영어를 동시에 아는 사람인 것 같았다. 즉각 대답을 하였다.
“아시야시의 야마구치구미의 오사카 지부에서 구미쵸상을 뵈었다고 합니다.”
“뭐라고? 거기는 비밀장소인데?”
강시혁은 조태춘과 젊은 통역이 이야기하는 것은 듣지 않고 계속 구미쵸를 쳐다보며 말했다. 왼손을 들어 손가락을 펴며 말했다.
“이 손가락 기억나십니까? 바로 구미쵸 상에게 손가락을 잘렸던 한국인입니다. 가운데 손가락의 봉합수술 자국이 보이시죠?”
“아!“
구미쵸가 이제야 강시혁을 알아본 것 같았다.
구미쵸가 벌떡 일어났다. 이와 동시에 맞은편에 있던 두 검정양복도 동시에 일어났다. 이놈들도 일본서 건너온 야쿠자들 같았다. 구미초를 수행하고 온 놈들인 것 같았다.
강시혁이 미소를 진채 말했다.
“앉으십시오. 저는 구미쵸상께서 오셨다고 해서 인사를 드리러 왔을 뿐입니다.”
구미쵸가 다시 자리에 앉았다.
조태춘이 빈자리를 가리키며 강시혁에게 말했다.
“둘이 아는 사람인 것 같은데 저기 앉게.”
마침 빈자리가 있었다. 이 테이블은 오야붕들이 앉는 곳이라 그런지 젊은 조폭들은 자리가 없어도 여기에 와서 감히 앉지를 못했다.
강시혁이 의자에 앉자 구미쵸가 긴장된 얼굴로 말했다.
“나에게 복수를 하러 오셨나?”
“천만에요. 오히려 목숨을 살려주신데 대하여 감사를 드리러 왔습니다.”
그러면서 강시혁이 다시 일어서서 두 손을 앞으로 모은 채 공손히 인사를 해주었다.
“감사합니다. 구미쵸상! 구미초상 덕분에 무사할 수 있었습니다.”
“고생 많았겠소. 미안하오.“
“미안해하실 것 없습니다. 큰 조직을 이끌려면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겠지요.”
“고맙소. 이해해주니. 역시 당신은 오도꼬(남자) 중의 오도꼬요.”
옆에 있던 조태춘이 구미쵸를 쳐다보며 말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요? 손가락은 또 뭐요?”
옆에서 젊은 사람이 얼른 통역을 해주었다. 이번엔 일본어로 통역을 해주었다. 구미쵸가 물을 한 모금 마시며 말했다. 이번엔 일본어로 말했다.
“앞에 있는 사람은 혼자서 우리 조직원 일곱 명을 때려눕힌 사람이요.”
“옛? 뭐라고요?”
“난 그래서 이 사람이 당신 부하가 아니면 북극성파 조직원인줄 알았소. 하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삼방그룹의 VIP경호원이었소. 독고다이로 일곱 명을 때려눕혔다면 그 실력은 우리가 인정을 해야겠지.”
“정말이요?”
“이 사람은 오사카 다다오카조(忠岡町)에 있는 마사키 미술관 앞에서 우리 조직원들과 맞서 물불 안 가리고 싸운 사람이요.“
“그, 그랬습니까?”
“자기가 보호하고 있는 주인을 위해 목숨을 내던지는 사람이니 오래간만에 진정한 사무라이를 보는 것 같았소.”
“허, 야마구찌구미의 야쿠자 7명을 혼자서 상대하다니!“
“나중에 우리 조직원에게 잡혀왔을 때 우리 조직원들이 당한 것만큼 다리 하나를 끊어서 평생 불구자로 만들까 했소. 하지만 그 정신을 높이 사 단지의식만 시행하고 풀어주었던 거요.”
조태춘이 강시혁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이제 보니 아우님 대단한 사람이네!”
강시혁이 테이블 위에 있는 맥주병을 잡으며 말했다.
“두 분 오야붕에게 술 한 잔씩을 올리겠습니다.“
이 말에 구미쵸도 환한 웃음을 지었다.
피로연에서 서빙하는 사람이 강시혁에게도 음식을 가져왔다.
강시혁이 그냥 일어서려고 하는데 조태춘이 앉으라고 했다.
“음식이 나왔는데 어딜 가? 거기서 식사해.”
“이 좌석은 제가 앉을만한 자리가 아닌 것 같아서.....”
“그냥 들어.”
그래서 강시혁이 식사를 하였다.
[10만원 축의금 냈으니 밥은 먹고 가야지.]
밥을 먹고 있는데도 연신 전국의 조폭들이 와서 조태춘과 야쿠자 두목인 구미초에게 인사를 하였다. 이들은 보스들이 앉은 좌석에 왼 젊은 놈이 앉아서 식사를 하는 것을 보고 힐긋힐긋 쳐다보았다.
구미초가 물었다.
“강상(강씨) 손가락은 괜찮아요?”
“봉합수술이 잘되어 접합은 잘되었습니다. 구미쵸께서 잘린 부분을 저에게 주어 신속히 수술 할 수 있었습니다.”
조태춘이 말했다.
“식사하는데 손가락 잘린 이야기는 그만 합시다.”
식사를 마칠 무렵 쯤 되자 피로연에는 더 이상 조폭들이 들어오는 사람이 없었다. 오히려 식사후 빠져나가는 사람들도 나왔다.
조태춘이 자기의 옆자리에 있는 중간 보스인 듯한 사람을 툭 치며 말했다.
“저 끝에서 밥 먹고 있는 놈이 이태원에서 놀고 있는 김재두 아닌가?”
“맞습니다. 형님.”
“이리 오라고 해봐.”
김재두가 조태춘 앞으로 왔다. 얼굴엔 긴장된 표정이 역력했다.
“큰형님 부르셨습니까?”
그러다가 김재두는 물을 마시고 있던 강시혁을 보고 크게 놀랐다. 보스들과 함께 식사를 하다니 믿어지지 않는 듯 했다.
조태춘이 말했다.
“이 분도 이태원에 계신분이니까 인사드려라. 삼방그룹 VIP경호원이시다. 일본 야쿠자를 혼자서 7명을 때려눕힌 분이다.”
“그, 그렇습니까? 기, 김재두라고 합니다.”
김재두가 강시혁에게 꾸벅 인사를 하였다.
강시혁이 웃으며 손을 내밀어주었다.
“나, 강시혁이라고 합니다.”
다시 조태춘이 말했다.
“이분 가운데 손가락을 봐라. 야쿠자 7명을 박살내어 생긴 영광의 상처다. 야마구치구미의 단지의식에 잘렸다가 봉합수술을 받은 분이다. 그러니 너희들도 이분을 만나면 형님으로 모시도록 해라.“
“알겠습니다. 큰형님!”
김재두는 조태춘에게 꾸벅 인사를 하며 물러났다. 물러나면서 강시혁에게도 다시 고개를 숙여주었다.
김재두는 자기 자리로 돌아가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강시혁의 무용담이 진짜일까? 하는 표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