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화 음악회 (4)
(194)
강시혁이 밤에 잠들 무렵 이영진 상무의 카톡이 왔다.
얼른 확인해 보았다.
[오늘 교바시 보디가드사의 사장님은 잘 모셨습니까?]
[예. 만나서 인사는 드렸습니다. 하지만 식사는 내일 하기로 했습니다. 오늘은 초청 협회의 만찬이 있는 것 같았습니다.]
[범죄관련 심포지움이라면 전, 현직 경찰관들이 많이 나오겠군요.]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교바시 보디가드의 이이다 유키 사장님은 히메사마의 안부도 물었습니다.]
[예? 히메사마요?]
강시혁은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다.
히메사마 라는 말은 사카모토 쯔요시 씨와 이이다 유키 사장이 이영진 사장을 부르는 애칭이다. 그런데 엉겁결에 그 말을 해버린 것이었다.
보낸 문장을 이영진 상무가 이미 읽어버렸기 때문에 삭제할 수도 없었다.
[죄송합니다. 엉겁결에 이 말이 나왔네요. 일본인들이 상무님을 부르는 애칭입니다. 에도 시대의 공주님을 말하는 뜻이랍니다.]
[호호. 제가 공주의 자격이 있는가요? 그냥 사업하는 집안의 딸인데.]
[대 그룹의 따님이라 그렇게 부르는 것 같았니다. 제가 내일 만나면 주의하라고 하겠습니다.]
[이이다 유키 사장님이 다른 말씀은 없었습니까?]
강시혁은 속으로 이영진 상무가 홍 사장의 근황에 대하여 묻고 싶어 하는 것 아닌가 했다.
그런데 그런 것은 자기가 말을 할 수도 없었다.
[그냥 인사만 하고 왔기 때문에 다른 말은 없었습니다. 자세한 것은 내일 식사를 하면서 이야기를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강시혁은 이렇게 얼버무렸다.
내일 정말 홍 사장의 근황에 대하여 물어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알겠습니다. 내일 이이다 유키 사장님을 만나면 좋은데 모시고 가서 잘 대접해주세요.]
[그래서 63빌딩 일식집 슈치쿠로 갈까 합니다.]
[일식집요? 그분들이 원하시면 그렇게 해도 되지만 한정식을 원한다면 한정식 레스토랑으로 모시고 가도 됩니다.]
생각해보니 일본인들이라 일식보다는 오히려 한정식을 찾을지 몰랐다.
[그럼 63빌딩 한정식을 찾아보겠습니다.]
[같은 층에 더치더스카이라는 식당이 있습니다. 한식 예약하면 한식도 나옵니다. 지난번 나도 미국대학 동창들과 거기서 식사를 했습니다.]
[이이다 유키 사장이 한정식을 원하면 거기로 모시고 가겠습니다.]
[그런데 거기는 원래 프렌치 레스토랑이라....... 고급 한식집을 원한다면 성북동 삼청각도 좋고 아니면 아버지가 자주 다니시는 고급 한정식집이 있지만 거기는 아무 손님이나 받지 않는 곳이라.....]
[아무나 갈수 없는 음식점도 있습니까?]
[서민적인 좋은 한정식도 마포에 몇 군데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가야금 음악도 있으니 인터넷 들어가 보면 쉽게 찾을 수 있을 겁니다. 그런 곳도 괜찮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한번 인터넷에서 찾아보겠습니다.]
[그럼 편히 주무세요. 좋은 꿈 꾸시고.]
[감사합니다. 상무님도 좋은 꿈 꾸세요.]
강시혁은 마음속으로 이영진 상무와 함께 노는 꿈이나 꾸었으면 하였다.
인터넷에서 한식집을 찾아보니 마포에도 분위기 좋은 한정식집이 몇 군데 있었다.
물론 63빌딩처럼 멋있는 뷰가 있는 곳은 아니지만 아기자기한 옛 한옥 분위기가 있어 괜찮을 것도 같았다.
특히 예술가인 사카모토 쯔요시 씨는 이런 음식점을 더 좋아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북동 삼청각은 아예 한옥 궁궐 같은 음식점이지만 너무 먼 것이 흠이었다.
강시혁은 다음날도 장명건설 주식을 매집했다. 이제 20억을 거의 매집한 것 같기도 했다.
오늘은 모르지만 내일까지 하면 모두 매집이 끝날 것으로 보았다.
하루 종일 장명건설 주식 매집만 하였다. 눈에 주식 차트만 보이는 것 같기도 하였다.
대전에 계신 엄마의 전화가 왔다.
“이번 일요일 대전에 한번 내려올 수 있지?”
“일요일요? 회사 행사가 있는데요?”
일요일은 영빈관에서 가족음악회 리허설이 있는 날이었다.
“그럼 토요일은 내려올 수 있지?”
“무슨 일인데 그러세요?”
“좋은 신부 감이 나왔어. 직장도 서울이라고 하니 잘 맞을 것 같다.”
“아, 됐어요. 천천히 하죠.“
그런데 갑자기 아버지 목소리가 들렸다.
엄마 전화를 뺏어서 말하는 것 같았다.
“뭘 천천히 해? 너 지금 나이가 몇 살이냐?”
“예? 지금 바빠서 그래요.“
“회사 일도 중요하지만 결혼처럼 중요한 게 어딨어? 너 몽달귀신 될래?”
“지금 결혼할 정황이 아니라 그래요.”
“걔네 부모가 대전에 살아서 선은 대전에서 봐도 좋고 서울에서 봐도 좋다. 은행원이라니 얼마나 좋냐? 중매 들어오는 것도 다 때가 있어.”
“아, 지금은 아니라니까요!“
“결혼을 해야 돈도 모으고 기반도 잡는 거야. 딴소리 말고 이번 일요일 내려와. 인물도 괜찮고 대학도 서울서 다녔다더라.“
“하, 참.”
“네가 만날 대전 내려오면 인서을, 인서울 하면서 서울서 대학 다닌다고 자랑하고 다녔잖아. 그 처녀도 인서울이라더라. 그러니 너하고 딱 맞는다. 인서울 대학 나온 여자하고 인서울에서 살면 좋잖아?”
“나중에 제가 연락할게요.”
“여자 부모도 내가 잘 아는 사람인데 점잖은 사람이야. 네가 삼방그룹 대리라고 하니까 한번 보고 싶다고 한다. 그러니 잔말 말고 내려와.”
“연락하겠다니까요.”
“너 6촌 당숙 아들 종필이 알지? 걔도 너보다 네 살 아래인데 장가갔고 고모 딸도 다음주에 63빌딩 58층에 있는 고급식당에서 맞선본다더라.”
[뭐, 뭐라고? 63빌딩 58층?]
63빌딩 58층 식당이라는 소리에 강시혁은 속으로 뜨끔했다. 하지만 다음 주라니 부딪칠 일은 없을 것 같았다.
고모 딸은 강시혁이 대학 다닐 때 중학생이었는데 벌써 커서 맞선을 본다니 세월 참 빠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수원에 있는 삼성전자에 다닌다는 소리를 들었었다.
“걔가 벌써 시집갈 나이가 되었군요.”
“그러니 너도 가야지. 무조건 이번 일요일 내려와.”
“이번 일요일 어려워요.”
“너 혹시 사귀는 여자가 있냐?”
“없어요.”
“그럼 내려와, 이놈아!”
“정말 연말까지는 도저히 시간 빼기가 어려워요. 나중에 제가 다시 연락을 드릴게요.”
“야! 시혁아! 시혁아!”
아버지의 음성이 들렸지만 전화를 그냥 껐다.
삼방그룹 다닌다니까 확실히 선은 좋은 데가 들어오는 것 같았다. 교사나 은행원 등 무난한 직업을 가진 여자들에게서 선이 들어왔다.
그래도 부모님이 대전의 지역사회에서 오래 살아서 그런지 선이 들어왔다. 더구나 인서울 대학을 나오고 현재 삼방그룹 대리라고 하니까 몸값이 올라간 것 같았다.
전에 중소기업인 아영테크에 들어갔을 때는 선이 잘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러다보니 한 직장에 다니는 심은혜와 사귀게 되어 결혼까지 했던 것이다. 나중에 빚 투성이가 되어 깨졌지만 말이다.
요즘 선이 들어오는 여성들은 강시혁이 보기에도 괜찮은 것 같았다.
취업이 별 따기인 요즘에 교사나 은행원이면 성공한 그룹에 속한다. 이 여성들과 서울에서 맞벌이를 하면서 살면 지금 받는 삼방그룹의 월급으로도 충분히 저축하며 살 것으로 보았다.
또 이것은 다른 사람에게는 이야기 못할 비밀이지만 강시혁은 20억 이상의 장명건설 주식을 가지고 있고 K&B파트너스에도 5억의 지분을 가지고 있다. 잘 하면 서울 강남권에도 아파트를 마련할 실력도 되었다.
그래서 SUV 차나 한 대 사서 부부가 함께 주말이면 손을 잡고 놀러 다닌다면 얼마나 좋은가?
강시혁은 자기도 왜 부모님이 추천하는 선을 보지 않으려고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마음 한구석에 이영진 상무를 사모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모하는 정도가 아니라 마음속으로는 연정(戀情)의 감정이 싹트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날도 사카모토 씨는 강시혁과 같이 여의도로 가기위해 영빈관으로 왔다.
차를 운전하고 가면서 강시혁이 말했다.
“오늘 이이다 유키 사장님을 만나면 일식이 좋을까요? 한식이 좋을까요?”
“저는 다 좋습니다. 이이다 유키 사장님이 좋다고 하는데 가시면 됩니다.”
“좀 고급스러운데 모시고 가야겠죠?”
“너무 비싼 데는 갈 필요 없습니다. 이이다 유키 사장이나 저나 돈을 잘 버는 사람들도 아닌데 비싼데 가 보았자 입니다. 호화스러운데 보다는 개성 있고 분위기 좋은데 가면 됩니다.”
말하는 사이에 어느덧 여의도로 왔다.
콘래드 호텔 로비에서 사카모토 씨가 이이다 유키 사장에게 전화를 했다.
“사카모토입니다. 현재 로비에 도착했습니다.”
“어? 그래? 룸으로 올라오지 말고 로비에서 기다려요. 내가 내려갈 테니.“
로비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오고가는 사람들이 사카모토 씨를 힐긋힐긋 쳐다보았다.
수염이 칼 마르크스처럼 생겼기 때문이었다.
사카모토 씨가 웃으며 말했다.
“사람들이 나를 자꾸 쳐다보네요. 내가 잘 생겨서 그런가?”
“수염이 아름다워서 그런 것 같습니다. 안 그렇습니까? 미염공(美髯公)!”
“미염공이라니요?”
“삼국지에 보면 관우를 미염공이라고 불렀잖습니까? 관우의 수염이 너무 아름다워서 그렇게 불렀답니다. 조조도 적토마를 관우에게 줄 때 미염공이라고 불렀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아, 난 또 뭐라고. 그렇지 않아도 일본서도 나를 비젠고(미염공) 라고 부릅니다.”
“오, 그래요?”
“이 수염이 있기까지 고난이 많았습니다. 우선 돌아가신 우리 아버지 하고 20년을 싸웠습니다. 수염을 안 깎는다고 말입니다.”
“하하. 불효를 하셨네요.”
그러면서 강시혁은 대전에 계신 아버지를 떠올렸다.
아버지는 오늘 강시혁이 장가 안 간다고 화를 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이 수염 덕을 봅니다. 우선 클럽 같은데서 나를 더 잘 불러줍니다. 행사 같은 데도 더 잘 나갑니다.”
“사카모토 씨가 정말 예술가처럼 보여서 그렇겠네요. 수염도 멋있고 또 실제 연주도 멋있게 하니까 인기가 있었던 것 같네요.”
“사실 수염을 기르는 건 내가 게을러 수염 깎는 것이 싫은 원인도 있지만 턱에 흉한 점과 상처가 있어서 그랬습니다.“
“오, 그래요?”
“상처는 젊었을 때 술집에서 야쿠자들에게 산토리 위스키 병에 맞아서 그렇게 된 겁니다.”
“저런! 고생했겠네요.”
“그런데 듣자니 강시혁 씨도 일본 야쿠자들과 싸웠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이다 유키 사장에게 들었습니다.”
“뭐, 그런 일이 있긴 하죠.”
“야쿠자들과 칠대 일로 싸웠다면서요? 완전히 레전드 급입니다. 일본서는 감히 혼자서 야마구찌 구미에게 그렇게 대드는 사람도 없습니다.”
“그 놈들이 먼저 시비를 걸어서 그렇게 된 겁니다.”
“그리고 야마구찌 구미에게 끌려가 손가락도 잘렸다면서요? 그래서 제가 한국에 나왔을 때 강시혁 씨의 왼손을 자세히 보았습니다. 정말 수술자국이 있는 것 같았습니다.”
“목숨을 잃은 것보단 낫겠지요.”
“정말 대단하십니다. 야아구찌구미를 혼자서 일곱 명을 상대했다는 것은 야쿠자 세계에 전설로 남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사카모토 씨는 강시혁을 존경어린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이이다 유키 사장이 내려왔다.
이이다 유키 사장은 오늘은 가벼운 티셔츠 위에 잠바를 걸치고 나왔다.
강시혁이 웃으며 말했다.
“오늘 심포지움은 잘 끝났습니까?”
“잘 끝났어요. 전, 현직 경찰간부들도 많이 만났습니다.”
“반가웠겠네요. 오늘 저녁 식사는 한식이 좋겠습니까? 일식이 좋겠습니까?”
“뭐, 한국에 왔으니 한식이 좋겠지.”
“성북동에 가면 유명한 한정식 집 삼청각이라고 있습니다. 거기로 모시죠.”
“아, 삼청각? 거긴 너무 멀고 비싼 곳이죠. 현직에 있을 때 출장 와서 가본 적이 있습니다. 옛날에 요정이었다는 곳이라 그런지 궁에 들어온 것 같더군요.”
“좋으면 가시죠.”
“그 집이 좋기는 하지만 이 근처 싼 데로 갑시다. 괜히 돈 쓸 필요 없어요.”
”그럼 63빌딩으로 갈까요?“
“싼 데로 가자니까! 밥 한 끼 먹는데 요란할 필요 없어요.”
“그럼 마포에 좋은 데가 있으니 가시죠. 제가 바로 예약을 하겠습니다.”
그래서 강시혁은 마포 대흥역 근방의 한식집으로 예약을 했다.
셋은 주차장으로 내려왔다.
벤츠를 보고 이이다 유키 사장이 눈을 크게 떴다.
“차 좋네! 일본에서는 돈 많은 야쿠자 두목이나 타고 다니는 차네. 그런데 이게 누구 차요? 렌트카요?”
“아니, 히메사마 차입니다.”
“아이고, 히메사마를 만나면 차까지 배려해 줘서 고맙다고 말 전해주세요.”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런데 엔터테인먼트 사업을 하시는 홍 사장님은 아직 일본에 계시죠?”
“일본에 있어요.”
“지금 뭐를 하신 답니까?”
“이따 밥 먹으면서 이야기 합시다.”
사카모토 씨가 이이다 유키 사장에게 물었다.
“홍 사장님이 누구십니까?”
“그런 사람이 있어. 자네는 몰라도 돼.”
차가 대흥역 근방의 조선초가 라는 한정식 집에 도착하였다.
생각보다는 의외로 분위기 있는 집이었다. 가야금 소리도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