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화 음악회 (2)
(192)
다음날 강시혁은 피아노를 옮겼다. 전문 운반업체에 의뢰하여 옮겼다.
물론 피아노 조율사도 와서 조율을 해주고 갔다.
그런데 피아노 조율사는 상당히 나이가 많은 사람이 왔다.
운반업체에서 추천하기를 국내에서 피아노 조율로는 베테랑이라고 했다. 흰머리에 주름이 있어 60대로 보였다. 그래서 그런지 차분하게 작업했다.
조율을 끝내고 테스트를 할 때 강시혁이 옆에서 물었다.
“좋은 기술을 가지고 계시네요. 돈 잘 버시겠는데요?”
“전에는 잘 벌었죠. 삼방그룹의 간부들 봉급이 부럽지 않았죠. 그런데 지금은 일감이 많이 줄었습니다.”
“왜 줄어요?”
“요즘은 전자 악기도 많이 나오고 또 피아노를 치면 아파트 층간 소음문제로 다투게 되어 전보다는 많이 줄었습니다.”
듣고 보니 일리가 있는 말 같기도 했다.
조율사가 테스를 한 후 만족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이렇게 넓은 데서 피아노를 치면 좋죠. 시끄럽다고 이웃에서 항의하는 일도 없겠죠.”
“그런데 음악은 누구나 좋아하잖아요. 피아노 소리를 왜 듣기 싫다고 하죠?”
“옛날 뽕짝 노래를 좋아하는 시골 어르신들에게 클래식을 들려줘 봐요. 공해로 여기지.”
“그렇겠네요.”
“그런데 이집은 내가 15년 전에도 온 것 같은데 많이 변했네요. 지금은 살림집이 아닌 것 같네요.”
“아, 전에도 오셨어요? 지금은 회사의 영빈관으로 쓰고 있습니다.”
“그때 왔을 때 아주 예쁜 여학생이 피아노를 쳤었는데 잘 있나 모르겠네요. 지금은 어른이 되었을 것 같네요. 눈이 초롱초롱해서 정말 예쁘고 똑똑하게 생긴 여학생이었는데.”
강시혁은 속으로 뜨끔했다.
[이영진 상무를 말하는구나!]
“지금은 대기업의 임원으로 있답니다.”
“곱게 자란 것 같네요. 그때 여기 계셨던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그 여학생이 공부도 잘한다고 자랑을 많이 했는데.... 그분들은 이제 돌아가셨겠지요?”
“예, 두 분은 돌아가셨습니다, 할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셨고 할머니는 작년에 돌아가셨습니다. 이 집에서 돌아가셨습니다.”
“흠. 그래서 영빈관으로 쓰는 것 같군.”
강시혁은 늙은 조율사가 이영진 상무를 칭찬해서 괜히 기분이 좋았다.
그래서 일당을 좀 더 후하게 쳐주었다.
강시혁은 조율사가 가고난 후 이영진 상무에게 카톡을 보냈다.
[피아노는 1층 접견실로 옮겼습니다. 피아노는 전문 업체에 의뢰해서 옮겼고 방금 조율사가 와서 조율도 하고 갔습니다.]
[수고하셨네요.]
[그런데 조율사가 나이 많은 분이었는데 15년 전에도 창업 회장님이 생존해 계실 때 와서 피아노 조율을 하고 갔답니다. 그리고 그분은 상무님의 학생시절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오, 그래요? 나는 전혀 기억이 없네요.]
[똑똑하게 생긴 귀여운 학생이었는데 지금은 뭐하냐고 물어보았습니다.]
조율사가 말한 눈이 초롱초롱하고 예쁘게 생긴 여학생이었다는 말은 차마 하지 못했다.
[호호. 그렇게 물어보았나요? 학생 시절에 피아노 조율은 몇 번 받아보았는데 조율사 얼굴은 전혀 기억이 없네요.]
이영진 상무의 웃는 모습이 그대로 눈에 들어왔다.
말투로 보아 이영진 상무도 기분이 그리 나쁘지는 않은 것 같기도 했다.
[우리가 일요일 낮에 만나서 호흡을 맞추어 보기로 했으니까 토요일쯤 해서 지하실에 있는 영남이 드럼세트도 1층 접견실로 옮겨주세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영남이한테 이야기해서 첼로와 전자기타와 음향장비를 대여해 놓으라고 하세요. 아니 그건 제가 영남이한테 전화하죠.]
[운반하는건 제가 하겠습니다.]
[운반도 대여업체에서 다 해줍니다. 그리고 강 대리님 지금 골프 연습은 잘 하고 계시죠?]
[예, 열심히 배우고 있습니다. 그런데 쉽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호호. 그럴 거예요. 그리고 기타 반주 연습도 좀 해 놓으세요. 가족음악회 하는 날에 곡에 따라서는 기타 반주가 필요할지 모르니까요.]
[아이고, 기타는 전 완전 초보입니다.]
[반주하는 것 알려드리죠. 쉬운 걸로 할 거니까요.]
강시혁은 하마터면 전 가족이 아닌데요. 라고 말할 뻔했다. 그날 서빙업무나 하면 되는데 기타 반주를 하라니 곤혹스럽기까지 했다.
서빙업무도 시작 전에나 좀 하고 가족들끼리 잘 놀으시라고 하고 자기는 자리를 피해주려고 했었다.
그런데 실력도 없는 자기에게 기타반주라니 얼떨떨했다. 그날 회장님과 사모님이 오실 텐데 잘못하면 개망신 당하는 것이 아닌 가 했다.
오후 4시쯤 펀드담당 김진석의 전화가 왔다.
김진석은 우렁찬 목소리로 말했다.
“형님! 장명건설은 매집 다 끝났습니다.”
“어, 그래?”
역시 이놈은 주식거래를 많이 해본 놈이라 단 이틀 만에 7억 원 어치를 몽땅 사들인 것이다. 증권사 계좌 두 개를 가지고 했으니 빠르긴 했을 것이다.
강시혁은 오늘 주식거래를 많이 못했다. 피아노를 운반하고 조율사가 조율하는 것을 보느라 적극적 거래를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도 거래를 안한 것은 아니었다. 일부 ‘사자’ 주문에 받쳐놓고 일을 보았기 때문에 걸린 것도 있었다.
이럴 때는 꼭 낚시하는 기분도 들었다.
오늘 강시혁이 체결한 금액은 1억 5천만 원 밖에 안 되었다.
김진석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형님! 오늘 매입 평균단가는 13,750원입니다. 총 누계 매입단가는 13,600원입니다.”
“나쁘진 않네. 수고했어.”
“이제 연말까지 일이 없어 월급 타먹기도 민망할 것 같습니다.”
“계속 장명건설 공시나 뉴스 같은 거나 잘 보고 있어. 그리고 배동수 일도 좀 도와주고.”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저녁에 이영남도 전화를 했다.
이영남은 약간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다.
"형! 차 찾았어!“
“그래? 다행이네.”
“그런데 내가 실수를 안했나 몰라.”
“실수라니?”
“김재두가 자꾸 형에 대해서 물었어. 뭐하는 사람이냐고 말이야.”
“그놈이 그랬나?“
“이야기를 안 하면 한 대 칠 것 같아서 내가 엉겁결에 그만 형이 삼방그룹 경호원이라고 말했어. 미안해 형.”
“난 또 뭐라고. 그런 건 괜찮아.”
“그놈이 혹시 형을 깔보지 않을까? 삼방그룹 경호원이면 별것 아니네 그럴 것 같아.“
“별 것 아니라니! 대 재벌 경호요원이 아무나 할 수 있는 자리는 아니야. 그놈이 존경하면 했지 절대 깔보진 않을 거야. 그런 건 염려하지 마.”
“그, 그래?”
“그건 그렇고 혹시 영진 누나에게서 전화 안 갔나? 악기대여를 해달라고?”
“아, 전화 왔었어. 내가 드럼 세트를 산 곳에서 악기 대여도 다 해줘. 그건 내가 알아서 할게. 일요일 리허설을 하기로 했으니 토요일까지 갖다 놓도록 할게.“
“내가 안 도와줘도 돼?”
“아, 그건 대여점에서 다 알아서 운반해줘. 형은 그날 문만 열어주면 돼.”
"하하, 그래? 그럼 알았어. 그런데 인수 받은 차는 어디 흠집 난 데는 없지?“
“점검해보니 그건 없는 것 같았어.”
“다행이네. 그럼 오늘 저녁은 푹 쉬어. 그리고 내일은 사무실 나오면 돼.”
“형!”
“왜?”
“고마워.....”
“싱거운 소리를 하고 앉았네. 푹 쉬어.”
그러면서 강시혁은 전화를 끊었다.
강시혁은 조폭 두목 조태춘에게 차를 잘 받았다고 전화는 해줘야 할 것 같았다.
그래야 조폭들과도 좋은 인간관계를 가질 수 있을 것으로 보았다. 자기는 상관없지만 이영남을 위해서 그렇게 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시혁이 전화를 걸었다.
쇳소리 비슷한 음성이 들렸다.
“여보세요?”
“형님! 접니다. 강시혁입니다.”
“강시혁이?”
조태춘은 강시혁이라고 하니까 얼른 못 알아듣는 것 같았다.
“어제 들렸던 삼방그룹 VIP경호원 강시혁 반장입니다.”
“아, 아. 강시혁이!”
그제야 강시혁을 알아보는 것 같았다.
“차는 잘 받았습니다. 고맙습니다.”
“우리 애들한테 돌려주라고 했는데 잘 전달한 모양이군.”
“언제 한번 인사를 드리러 가겠습니다.”
“아아. 그럴 필요 없어요. 그 대신 우리 애들을 삼방그룹에 어디 심을 데가 없을까?”
“저희는 그룹사다보니 요구하는 스펙이 있습니다.... 그리고 VIP경호원은 한사람 외에는 다른 경비원은 뽑지 않습니다. 그건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하긴 그 동네는 영어도 할 줄 알고 컴퓨터도 잘 다루어야 한다니 안되겠지. 앞으로 젊은 조직원이 들어오면 우리도 그 스펙이라는 걸 좀 봐야겠어. 시대가 변하니 말이야.”
“형님 부하들에게 워드와 엑셀을 배워두라고 하십시오. 그러면 삼방 아니더라도 필요한데가 있을 겁니다.”
“돌대가리들이라 안 돼. 아무튼 차를 찾았다니 다행이네.”
“차를 흠집 없이 잘 돌려줘서 고맙습니다.”
“차를 공짜로 잘 썼으니 우리가 고마워해야겠지. 혹시 삼방에서 나중에라도 우리 손이 필요하면 이야기 해. 도와줄 테니까.”
“감사합니다. 형님.”
강시혁은 전화하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조태춘은 벌써 자기 이름을 기억하고 있지 않았다. 이제 전화를 해 주었으니 자기 이름을 잊어버리진 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조폭들과 알고 지내는 것은 나중에 얻은 것 보다고 잃는 것이 많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이영남을 지키기 위해선 친하진 않더라도 알고 지내는 것이 나쁘지 않을 것으로 보았다.
강시혁은 다음날 아침에도 골프를 열심히 쳤다.
이영진 상무가 잘 배워두라는 말도 있어 열심히 쳤다. 코치가 와서 웃으며 말했다.
“이제 필드에 나가도 되겠는데요?”
“헤, 아직은.....”
“그런데 머리 얹어줄 사람은 있죠?”
강시혁은 이영진 상무의 해맑은 얼굴이 떠올랐다.
최초에 그린에 나가서 치는 머리 얹는 날은 이영진 상무에게 부탁하고 싶었다.
[이영진 상무가 내 머리를 얹어 준다면?]
그러면 자기도 이영진 상무를 오래 기억할 것이고 이영진 상무도 자기를 오래 기억해줄 것 같았다.
오후에 점심을 먹고 K&B파트너스 사무실을 나갔다.
사카모토 씨가 와서 변상철과 이영남이 상담실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배동수는 자기 방에서 열심히 만화 콘티를 짜고 있었고 김진석은 장명건설 재무제표 분석을 하고 있었다.
강시혁이 나타나자 이들은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했다.
확실히 강시혁은 이 사무실에서 사장 위의 회장 대우를 받고 있었다.
사카모토 씨가 웃으며 말했다.
“일요일 리허설을 위해서 영빈관에 있는 피아노를 1층으로 옮겼다면서요?”
“그랬죠. 오늘 저녁엔 리틀 브라운과 함께 드럼세트도 옮겨놓을 예정입니다.”
“첼로와 전자기타도 대여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럼 그날 피아노는 히메사마(공주님)께서 치시고 나는 다른 악기를 사용하면 되겠군요.”
사카모토는 웃으며 말했는데 미소 짓는 입은 털 때문에 잘 안보이고 눈웃음 짓는 것만 보였다.
“가족 음악회라 다른 분은 참석 안하고 회장님 부부만 참석합니다. 관중이 적어 흥이 안 나겠지만 실력발휘를 해보세요.”
“관중이 없어도 재벌 회장님 앞에서 하는 연주라면 더 떨립니다. 그런데 음악은 회장님 연배에 맞는 음악을 위주로 해야 되겠네요.”
“그러면 좋죠.”
“그렇다면 그날은 걸그룹 노래나 아이돌 음악은 피하고 7080음악으로 가야겠네요.”
“하하. 사카모토 씨가 7080을 다 아시네요.“
“허허. 저도 한국에 나오니까 라이브 카페 간판에 7080음악이란 것이 있어서 알게 되었습니다.”
7080은 아줌마나 아저씨들이 좋아하는 70년대, 80년대 음악을 말한다.
강시혁이 웃으며 말했다.
“사카모토 씨의 스승이신 에디 히긴스의 음악도 좋습니다.”
“에디 히긴스의 음악도 좋지요. 레너드 코헨이나 밥 딜런, 빌 에반스의 곡도 좋습니다. 그럼 우선 에디 히긴스의 Autumn Leaves 라도 연주 할까요? 일본에서도 중장년층에 인기가 아주 많은 음악입니다.”
“대 찬성입니다.”
“Autumn Leaves는 피아노와 드럼과 베이스와의 인터플레이도 좋습니다.”
“그건 사카모토 씨가 알아서 하세요. 저는 음악에 대하여는 잘 모릅니다.”
“그날 피아노는 히메사마가 치시고 드럼은 리틀 브라운이 하고 나는 베이스를 잡으면 되겠군요.”
“예, 알아서 하십시오.”
“아, 그리고 내일 혹시 시간이 있으십니까?”
“내일요? 무슨 일이 있습니까?”
“내일이 바로 교바시 보디가드의 사장님이 한국에 오는 날입니다.”
“아아, 이제 기억나네요. 교바시 보디가드의 이이다 유키 사장님이 범죄예방 심포지움 때문에 한국에 오신다고 했죠? 깜빡 잊고 있었네요.”
“숙박과 공항 픽업은 초청자 측에서 한다니까 우리는 여의도 호텔에 가서 인사만 하면 됩니다.”
“여의도에 있는 호텔에 묵는군요.”
“여의도 콘래드 호텔입니다.
“인사가 아니라 식사라도 대접해 드려야겠네요.”
“그러면 좋지요.”
사카모토 씨가 가고 나서 배동수 씨와 김진석 씨가 상담실로 들어왔다.
“영빈관에서 가족 음악회를 합니까?”
“그럴 거야.“
“그러면 정말 삼방그룹 회장님이 오십니까?”
“오시지. 사모님도 함께 오시고 이영진 상무님도 오시지.”
“그럼 형님은 그날 바쁘시겠네요.”
“좀 바쁘겠지.“
배동수와 김진석은 부러운 표정으로 강시혁을 쳐다보았다.
재벌회장 옆에서 알짱대는 신분이야말로 아무나 갈 수 없는 선망의 자리이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