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화 조폭과의 만남 (2)
(188)
강시혁이 시계를 보았다.
본사에 빨리 갔다 오면 퇴근시간 전에는 돌아오리라고 보았다. 아무래도 카렌다는 오늘 가지러 가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벤츠를 끌고 본사엘 갔다.
유길준 대리를 만났다.
비서실 직원들은 강시혁이 오자 스타 대리 왔다고 떠들었다. 팸플릿 표지 모델 후보에 오르고 로지스틱스 분쟁 해결에도 큰 공을 세웠다니 스타 대리라고 떠드는 것이었다.
더구나 사장단 회의에서는 부장이나 차장의 이름이 거론되는 것도 드믄데 거기에서 이름이 나왔다는 것은 스타 소리를 듣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강시혁은 이런 소리가 듣기 거북했다. 그래서 유길준 대리에게 바쁘다고 하면서 카렌다나 빨리 달라고 하였다.
유길준 대리와 함께 창고로 갔다. 여기엔 각종 서류양식이나 이미 사용한 공문서나 전표 같은 것이 쌓여 있었다. 카렌다도 많이 쌓여 있었다.
카렌다를 보니 그림이 그동안 문화재단에서 전시했던 작품을 골라 만든 것이었다. 계절에 맞게끔 작품을 골라 잘 만들었다. 집이나 사무실 등에 걸어놓을 만은 하였다.
유길준 대리가 말했다.
“들고 갈수 있는 만큼 가져가요.”
하지만 50부나 100부는 양이 많아서 자기가 가져가기도 힘들었다.
자기 밑에 부하라도 있다면 같이 들고 가면 되는데 강시혁은 그럴 사람도 없었다. 그래서 30부만 챙겼다.
이 30부도 힘들게 들고 가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끈으로 묶어 낑낑대며 들고 가는데 엘리베이터 입구에서 최 이사를 만났다.
“강 대리 아닌가? 그게 뭔가?”
“카렌다입니다. 이태원 지역 파출소나 상가번영회 등에 나눠줄 것입니다.”
“그런데 뭐가 그렇게 많은가? 자네 이태원에서 국회의원 나오려고 그러나?”
[이 양반아! 카렌다 30부 가져가는데 무슨 국회의원이야?]
강시혁이 웃으며 말했다.
“참, 오늘 홍보실에서 나와 임원 음악회는 결정하고 갔습니다. 연주자는 일본의 유명한 사카모토 쯔요시 씨입니다.”
“한국엔 인물이 없나? 웬 일본인이야?”
“유명한 피아니스트랍니다.”
“그래도 그렇지 웬 일본인이야. 난, 일본인 별로야. 우리 할아버지가 일제시대 때 독립운동 했거든.”
“연주회는 12월 23일 금요일 오후 5시로 정했답니다. 사모님 모시고 한번 오세요.”
“알았네. 카렌다는 잘 들고 가게. 왼쪽으로 흘러내리는 것 같네.”
오는 도중 퇴근시간에 걸려 도로가 꽉 막혔다.
해도 기울어지고 벌써 주변은 깜깜해졌다.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영빈관에 돌아오니 저녁 7시가 넘었다.
[도로 참 엄청나게 막히네. 내가 출퇴근 안하고 사니 그건 좋네.]
카렌다는 내일 방범대장에게 갖다 주기로 했다.
너무 시간이 늦어 방범대장도 퇴근했을 것 같아서였다.
저녁을 먹고는 어김없이 바벨운동을 했다.
강시혁은 요즘 새벽에 하는 골프연습과 저녁에 하는 바벨운동은 빠지지 않고 했다. 경호요원 노릇을 하려면 체력이 좋아야 하기 때문이었다.
다음날이 되었다.
이날도 강시혁은 장명건설 주식을 사들였다. 오전 내내 거래했다.
오후가 되자 카렌다를 들고 방범대장을 찾아갔다. 방범대장은 탁자에 발을 올려놓고 TV를 보고 있었다.
"형님! 저 왔습니다.“
“오, 강씨!”
“카렌다 10부 가져왔습니다.”
“아이고 고마워요. 역시 재벌회사 달력이라 잘도 만들었네.“
그러면서 카렌다 속에 있는 그림을 보았다.
“루푸트 바 사장님께 전화는 했지요?“
“아 참, 내 정신 좀 봐. 깜박했네.”
그러면서 그 자리에서 전화를 했다.
“루푸트 바 사장이요? 나 방범대장이요.”
“아, 잘 계셨어요?”
“요즘 어때요? 코로나 끝나고 손님 좀 나오죠?”
“금요일 하고 주말에만 반짝합니다. 아직은 회복이 잘 안 되고 있어요.”
“오늘은 금요일이라 만원이겠네.”
“오늘은 좀 나오겠죠.”
“우리 회원 중에서 삼방그룹 영빈관에 계신분이 있습니다. 이분이 오늘 저녁에 거기 들려 손님을 만나려고 하는데 사장님이 좀 불러주면 고맙겠습니다.”
“왜 직접 와서 부르지 않고?“
“일행 중에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어서 그런 모양이요. 그러니 전화가 가면 그 사람만 불러줘요.”
“그 사람이 누군데요?”
강시혁이 얼른 신문지 위에 김재두 라는 이름을 썼다.
“김재두 라는 사람이요. 혹시 단골 중에 그런 사람 있어요?”
“아, 재두는 내 친구 후배입니다. 격투기 선수로 이태원에서는 주먹으로 잡고 있는 아이입니다. 회장님도 한번 보셨을 겁니다.”
“주먹으로 잡고 있어? 그럼 건달 아니요?”
“자기들끼리 싸우기는 해도 일반인은 안 건드립니다. 아무튼 주먹으로는 그놈 따라올 사람이 없습니다.”
[주먹으로 따라올 사람이 없어? 정말 이놈하고 부딪치면 쌍코피 터지겠네.]
“아무튼 전화가면 협조해 줘요. 같은 방범위원이니까.”
강시혁은 방범대장에게 고맙다고 크게 인사를 했다.
방범대장은 방범대장 나름대로 좋아했다. 전화 한통 해주고 카렌다 10부를 얻었으니 말이다.
강시혁은 파출소에도 카렌다 5부를 가지고 갔다. 소장을 만났다.
“수고하십니다. 방범위원입니다.”
“혹시 삼방에 계신 분 아니요?”
“그렇습니다. 우리 회사에서 카렌다가 나와서 가져왔습니다.”
“고맙습니다.”
파출소 소장도 카렌다는 뇌물로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다.
고맙다고 하면서 얼른 받았다.
강시혁은 K&B파트너스 사무실에도 카렌다 10부를 갖다 주었다.
변상철이 물었다.
“이게 뭐야?”
“카렌다야. 직원들에게 나눠주고 필요하면 사무실에도 걸어.”
“그림 좋네.”
“아, 그리고 루프트 바 사장에게는 이영남이에게 차를 뺏어간 놈을 불러달라고 했어. 그놈이 혼자 내려오더라도 격투기 선수 출신이라니까 조심해야 할 거야.”
“그놈이 바에서 내려오면 형이 차를 반환해 달라고 이야기해. 나는 그놈이 자기 친구들을 부르러가지 못하게 입구를 막고 있을 테니까.”
“만일을 위해 연장을 가져갈까? 드라이버라도 말이야.”
“그런 거 소지하면 나중에 걸려 들어가도 불리해. 계획적이라고 할 수 있어. 혼자 내려온다면 제 아무리 운동선수라도 우리 둘이서 제압을 할 수 있겠지. 운동과 싸움은 틀리니까.”
“하긴 선방 놓는 놈이 임자지.”
“제일 좋은 건 싸우지 말고 협의하는 게 좋겠지.”
“그놈 이름이 김재두라고 하니까 잘 알아둬라.”
“김재두? 알았어. 삐딱하게 나가면 형하고 이야기 하고 있을 때 내가 그놈 뒷목을 낚아챌게. 대학 다닐 때 우리 한번 청량리 노래방 앞에서 그렇게 해봤잖아.”
강시혁은 이영남에게 오늘 저녁엔 집에서 나오지 못하게 했다.
오늘 루프트 바를 다녀오고 결과는 전화로 알려주겠다고 하였다.
“리틀 브라운 오늘은 집에서 나오지 마. 그놈들하고 나하고 싸움이 붙으면 그놈들은 리틀 브라운에게도 폭력을 휘두를 수가 있으니까.”
이영남은 완전히 겁먹은 얼굴이었다.
그리고 여덟 명을 상대로 강시혁과 변상철 두 명만 간다는 것이 영 불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리틀 브라운은 오늘 일찍 집에 들어가 쉬어. 여기 이태원 바닥에서 모습 보이지 말고 집에 가서 게임이나 하고 있어. 나중에 내가 전화로 결과를 알려줄 테니까.”
“아버지에게 말씀드릴까? 혼은 나겠지만 그래도 그게 안전하지 않을까?”
“하지 마. 그건 나중에 해도 돼. 잘못하면 리틀 브라운은 아버지에게 야단만 맞고 눈밖에 날수가 있어.“
“그럼, 나 지금 집에 들어갈게. 형 정말 몸조심해.”
“알았어. 염려 말고 집에 들어가.”
이영남은 자기 가방을 들고 집으로 갔다.
강시혁은 펀드매니저 김진석을 불렀다.
“장명건설 주식은 12월말 납회일(폐장일)까지 분할해서 사세요. 총알 다 소진해도 좋습니다.”
“알겠습니다. 오늘 보니 조금 거래량이 붙는 것 같기는 합니다.”
강시혁은 저녁 7시까지 사무실에서 동영상이나 보면서 대기했다.
저녁 7시가 되었다. 창밖을 내다보니 이미 날은 어두워졌고 거리에 사람들로 가득했다.
변상철이 문을 노크하고 들어왔다.
“형. 이제 루푸트 바로 슬슬 가볼까?”
“그러자.”
밖으로 나왔다.
내려와서 보니 사무실 창문에서 바라볼 때보다도 더 사람이 많은 것 같았다.
역시 불금의 이태원거리는 오늘도 붐볐다. 불금 값을 톡톡히 하고 있었다.
강시혁과 변상철은 길 건너편 골목에 있는 씨싸이드 루프트 바로 갔다.
바 입구에서 지형지물을 살폈다. 무기로 사용할만한 것이 있는 가 살피고 도주로도 살폈다. 그리고 일단 루푸트 바로 올라가보았다.
유리문 안으로 보니 홀엔 사람들로 만원이었다.
머리 빡빡 깎은 놈이 있나하고 살폈더니 구석진 곳에 앉아서 노가리를 까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강시혁과 변상철은 다시 밖으로 나왔다. 변상철이 말했다.
“머리 백구(배코) 친 놈이 한 놈 앉아있네. 형도 봤지? 그놈이 김재두인지는 몰라도 제법 친구들이 많은 것 같은데? 일단 그놈들이 모두 몰려나오면 우리도 대책이 없을 것 같아.”
“사장에게 전화 할게.”
강시혁이 루푸드 바 사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사장이 바쁜지 빠른 목소리로 말했다.
“여보세요?”
“아, 저는 용산경찰서 방범위원 강시혁이라고 합니다. 사람을 찾는데 혹시 오늘 낮에 방범대장님 전화를 받지 않으셨습니까?”
“아, 아. 받았습니다.”
“김재두란 손님이 와 있는가요?”
“잠깐만요. 아까 보이던 것 같은데..... 그런데 무슨 일로 김재두를 찾습니까?”
“아, 뭣 좀 물어보려고요. 아래층에서 손님이 기다린다고 조용히 말씀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한참 있다가 김재두가 나왔다.
상당히 덩치가 좋은 놈이었다. 빡빡 깍은 머리에 문신까지 있어 한눈에 봐도 양아치 같았다. 놈은 나오자마자 좌우를 살폈다.
다행히 혼자 나온 것 같았다. 강시혁이 다가갔다.
“혹시 김재두 씨입니까?”
“그렇습니다.“
이때 변상철이 입구를 막아섰다.
이 모습을 보고 김재두는 눈을 치켜뜨며 경계하기 시작했다.
신사복을 입은 건장한 두 사람이 앞뒤로 막고 있어 혹시 형사인가 하는 것 같았다.
“어디서 오신 분들입니까?”
“나는 용산경찰서 방범위원입니다.”
“그런데 무슨 일로 저를 찾는 겁니까?”
그러면서 김재두는 뒤에 있는 변상철을 의식하는 듯 했다.
“혹시 이영남 씨 아시죠?”
“아, 리틀 브라운요? 압니다. 그런데 무슨 일로?”
‘나는 이영남 씨의 친척 형입니다. 언젠가 당신을 커피숍에서 한번 본 것 같군요. 람보르기니 차를 가져갔다고요? 바로 내일이라도 돌려줘요. 타인의 점유물건을 편취하면 편취죄가 성립됩니다.“
“그건 제가 이영남의 승인 하에 빌려간 겁니다.”
그러면서 김재두는 강시혁의 아래 위를 훑어보았다.
강시혁 역시 덩치도 있고 가슴도 벌어져 만만한 상대는 아니라고 보았다. 뒤에 있는 사람 또한 건달 같지는 않지만 경찰 나부랭이 정도는 되지 않나 하였다.
강시혁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반말이 튀어나왔다.
“이영남은 3일을 빌려주기로 했는데 지금 보름이 넘었잖아! 좋은 말 할 때 돌려줘!”
“혹시 전직(퇴직 경찰관)이십니까?”
“그런 건 왜 물어?”
“서로 양해 하에 한 약속은 편취에 해당하지 않는데요?”
“이영남이 데려와 대질할까? 주인이 돌려달라면 돌려주지 무슨 이유가 그렇게 많아?”
“그리고 그 차는 지금 제게 없습니다. 지금 우리 큰형님이 쓰고 있습니다.“
“큰형님이라니?”
“조태춘 파의 태춘이 형님이 쓰고 계십니다.”
“뭐라고? 조태춘?”
조태춘은 유명한 조직 강패의 보스다. 몇 년 전 어떤 호텔에 난입하여 회칼로 사람을 크게 다치게 했던 인물로 언론에도 자주 나오는 인물이었다.
김재두가 비웃음을 날리며 말했다.
“못 알아들으셨습니까? 그 차는 태춘이 큰 형님이 쓰고 있다니까요.”
“태춘인지 태촌인지 그 사람 어디 있어?”
“자기 아지트에 있겠죠.”
“차를 처음에 빌려준 당사자는 당신이야. 당신이 찾아올 의무가 있어. 그러니 당장 찾아와!”
“달라고 해도 안주느는데 낸들 어떻게 합니까?”
“그 사람 연락처가 어디야?”
“충무로에 있어요. 연락처는 몰라요.”
“몰라?”
“인터넷 찾아보면 영광 파이넨셜이라고 있어요. 거기에 전화 해봐요.”
“거짓말 하면 너를 바로 고발해 잡아넣도록 할 거야.”
“마음대로 하세요. 그리고 당신들이 나보다 나이가 많은 건 알겠는데 함부로 반말하지 마세요!”
변상철이 뒤에서 뒷덜미를 잡으며 말했다.
“죽고 싶어?”
그래도 김재두는 눈 하나 까닥하지 않았다.
비릿한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뒷덜미 잡은 것 놓으세요. 그렇지 않으면 두 분 개망신 당하는 수가 있습니다.”
강시혁이 말했다.
“뒷덜미 놓아줘라. 차는 다른 사람이 가지고 있는데 잡아봤자 뭐하겠냐. 가서 좃태춘인지 좃태창인지 하는 인간이나 만나보자.”
갑자기 김재두가 웃었다.
“푸하하. 당신들이 태춘이 큰형님이 누구인지 모르는 모양이네.”
강시혁도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알아. 칼잡이 인줄은 나도 알아. 그놈보다는 우리 조직원들이 훨씬 많아.”
이 말에 김재두는 눈을 껌벅이며 다시 한 번 강시혁을 쳐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