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화 조폭과의 만남 (1)
(187)
이영진 상무가 사카모토 쯔요시 씨에게 말했다.
유창한 영어로 말했다.
“선생님은 잘 모르시겠지만 저는 선생님을 뉴욕에서 뵌 적이 있습니다.”
“오, 그래요? 뉴욕에서 공부하셨습니까?”
“공부는 예일대와 하버드에서 했습니다. 친구가 있는 뉴욕에 자주 놀러갔죠.”
“예일대와 하버드 대학은 뉴욕에서 멀지는 않죠.”
“그때 선생님은 타임스 스퀘어 부근의 클럽에서 일하셨죠? 선생님의 피아노 선율을 보면 마치 에디 히긴스가 환생한 것 같았습니다.”
“에디 히긴스는 저의 스승이었습니다. 일본인들도 에디 히긴스를 좋아합니다. 에디 히긴스 선생님도 일본을 사랑했고요. 그래서 일본 여자와 결혼했지만 말입니다.”
“선생님의 피아노 솜씨를 이곳 한국에서 듣게 되어 감개가 무량합니다.”
“별 말씀을.”
“선생님은 지금 클럽에서 일하신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낮엔 시간을 낼 수도 있겠네요.”
“낮에는 시간이 있습니다. 하지만 저녁 늦게 일이 끝나기 때문에 오전에 좀 늦게 일어나는 편입니다.”
“오후에 선생님을 모시고 연주회를 가지려고 합니다.”
“하하. 오후는 좋습니다.”
“저희 삼방그룹에서는 연말을 맞이해 임원들과 임원들 가족 초청 연주회를 가지려고 합니다.“
“기업체 임원들 가족초청 음악회는 일본에서도 있습니다. 가족이 오면 부인들과 심지어는 아이들도 오기 때문에 재즈음악을 하기는 어렵겠지요. 그래서 많이 알려진 세미클래식을 주로 연주했습니다.”
“세미클래식 좋습니다.”
“자녀들을 많이 데려온다면 쇼팽의 왈츠나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 같은 것이 무난할 겁니다. 그리고 청중들의 요청이라도 받는다면 에디 히긴스 선생의 곡을 연주할 수는 있습니다.”
이번엔 홍보실 직원이 말했다.
“그렇다면 공연을 12월 22일이나 23일 오후 6시경이 어떻겠습니까?“
“좀 앞당길 수 없겠습니까? 아무래도 야간 연주가 많아서.....”
“그럼 5시경이면 괜찮겠습니까?“
“그럼 좋습니다.”
“차라리 연주회는 1부와 2부로 나누어 하면 어떻겠습니까?”
“1부와 2부로요?”
“1부는 임원 자녀들도 있으니까 경쾌한 새미클래식 연주를 하고 2부는 재즈음악을 연주하는 겁니다. 자녀들도 좋지만 그래야 임원들도 좋아할 것입니다.”
“뭐..... 좋습니다만.”
“피아노만 치는 것보다 2부는 인터플레이 연주를 하면 어떻겠습니까?”
“인터플레이? 그러면 드럼과 베이스가 있어야 좋은데.....“
“드럼 주자와 베이스 연주자는 제가 수배하겠습니다. 저도 음악대학을 다녔습니다.”
“오, 그래요? 그럼 좋습니다.”
“계약서를 작성하시죠.”
“저는 YN엔터테인먼트 소속입니다. 계약은 제가 대리로 하더라도 출연료 입금은 YN엔터테인먼트로 하셔야 합니다. 여기 YN엔터테인먼트 사업자등록증 사본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사카모토는 YN엔터테인먼트의 사업자 등록증 사본을 홍보실 직원에게 주었다.
사카모토 씨가 영문 계약서를 읽어보고 서명을 했다.
YN엔터테인먼트 배동수 사장 대리인 자격으로 서명을 했다.
이번엔 이영진 상무가 말했다.
“또, 여기 영빈관에서 가족 음악회도 한번 가지려고 합니다. 가족들이 연주하는 거지만 모두 아마추어들이라 선생님이 특별 출연하셔서 리드를 부탁하려고 합니다.”
“가족이라면 이영남 씨도 참석할 것이 아닙니까? 이영남씨는 아마추어가 아닙니다. 프로의 수준입니다.”
“그래요? 가족음악회는 12월 24일 저녁에 하고 싶습니다.”
“아이고, 12월 24일은 크리스마스 날이라 제가 일하는 클럽 두 군데의 스케줄이 꽉 차있습니다. 일요일인 12월 25일이 어떻겠습니까?”
“사정이 그렇다면 할 수 없죠.”
“그런데 여기 피아노가 있습니까?”
“여기 2층에 있습니다.”
강시혁은 드럼과 기타도 있다고 말 하려다 그만 두었다. 홍보실 직원이 있기 때문이었다. 영빈관에 악기가 많다는 소문이 나는 것도 썩 좋은 현상은 아니라고 보았다.
“가족 음악회는 아무래도 호흡을 맞추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이번 일요일 낮 시간에 여기서 호흡을 한번 맞추어 보면 어떨까요?”
“일요일 낮 시간이면 좋습니다.”
이영진 상무가 강시혁을 쳐다보며 말했다.
“그럼 강 대리님이 사카모토 선생님에게 일진홀 구경을 미리 시켜 주시겠습니까? 저는 가봐야 할 데가 있네요.”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홍보실 직원도 같이 일신홀에 가세요. 일신홀 담당자에게 연주회 날짜가 정해졌다고 말씀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그럼 나는 먼저 갈게요.”
이영진 상무는 먼저 영빈관을 나왔다. 강시혁이 따라 나와 이영진 상무 차의 뒷문을 열어주었다. 그리고 공손히 인사를 하였다.
이 모습을 보고 사카모토 씨와 홍보실 직원도 공손히 인사를 해주었다.
이영진 상무가 가고 나서 강시혁은 차고에서 벤츠를 끌고 나왔다.
그런데 홍보실 직원이 앞좌석에 탈지 뒷좌석에 탈지 망설이는 것 같았다.
사카모토 씨가 말했다.
“제가 앞에 탈 테니 홍보실에서 나오신 분은 뒤에 타세요.”
그러면서 사카모토 씨가 벤츠 뒷문을 열어주었다.
셋이 일신홀을 갔다.
홀을 보고 사카모토 씨는 좋아했다.
“오, 이태원에서 가까운 곳에 이런 훌륭한 홀이 있었군요.”
강시혁이 말했다.
“마음에 드십니까?”
“아주 훌륭한 홀입니다. 공연장 내부도 소리의 울림과 반사 때문에 전부 나무로 했군요. 그리고 객석 의자도 간격이 넓게 했군요. 마음에 듭니다.”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더군다나 그랜드 피아노까지 있군요. 좋은 연주를 해보고 싶습니다.”
오늘은 연주가 없었다.
그래서 사카모토와 강시혁은 객석 의자에 앉아보았다. 그동안에 홍보실에서 온 여직원은 일신홀 담당자와 이아기를 나누고 있었다.
객석의자에 앉아서 사카모토 씨가 말했다.
“히메사마(공주님)는 정말 기품이 있어보였습니다.”
“히메사마라니요?”
“이영진 상무님 말씀입니다. 인물도 정말 좋군요. 내가 10년만 젊었더라도 프로포즈 했을 겁니다.
[당신같이 얼굴에 온통 털이 뒤덮은 사람을 이영진 상무가 좋아할까?]
그러면서 강시혁은 빙그레 웃었다.
이영진 상무는 보수적인 데가 있어서 특이한 사람은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이것을 강시혁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홍보실 여직원이 일을 보고 왔다.
그래서 강시혁은 우선 두 사람을 태우고 이태원으로 왔다. 사카모토 씨를 먼저 해밀톤 호텔 앞에 내려주었다.
여직원이 말했다.
“저도 여기서 내리죠. 회사는 지하철을 타고 가죠.”
“아니,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미안해서.......”
그러면서 여직원은 좋아하는 표정을 지었다.
차가 장충체육관 앞 신호대에 걸렸을 때 여직원이 자기 명함을 주면서 말했다.
“저, 대리님 명함 한 장 얻을 수 있을 까요?”
“네? 그러시죠.”
강시혁이 자기 명함을 주었다.
여직원의 명함을 보았다. 이름이 송혜영이었다.
송혜영이 모기만한 소리로 말했다.
“저.... 대리님은 대학교 다닐 때 전공이 뭐였어요?”
“영문학입니다.”
“어쩐지 영어를 잘 하시더군요. 사카모토 씨와 영어로 주고받는걸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비전공자도 다 저보다 잘합니다. 더구나 난 공채직원도 아니고 특채직원입니다.”
“저.... 강 대리님도 음악 좋아하세요?”
“음악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나요?”
“강 대리님을 저희 그룹 팸플릿 표지 모델로 하려고 했던 것 혹시 아세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그런데 저 그런 것 안 좋아합니다.”
“왜요? 인물도 좋고 체격도 좋잖아요. 좋아하는 여자도 많겠어요.”
“없습니다.”
강시혁이 퉁명스럽게 말하자 잠시 말이 중단되었다.
여직원이 다시 말했다.
“음악회 좋아하시면 제가 표를 보내드릴게요. 영빈관으로 보내면 되죠?”
“시간도 별로 없습니다.”
‘시간이 없다는 것은 거짓말이에요. 음악을 들어보세요. 마음이 가라앉고 스트레스도 줄고 기분도 좋아지잖아요.“
“글쎄요.”
“그래서 회사에서도 임원 음악회를 하는 것 아니겠어요?”
“임원들 음악회 참석률은 그렇게 높지 않을 것 같은데요? 음악회보다는 쉬는 날 골프를 치러가거나 아니면 낮잠 자는걸 더 좋아할 것 같은데요?”
“그래서 회장님은 이번에 음악회 참석하지 않는 임원은 명단을 적어서 내라고 했어요.“
“명단을요?”
“다음번 승진 심사에 무조건 탈락시킨다고 했어요.“
“그러면 좀 참석하겠군요.”
강시혁은 회장이 참 이상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영남이 음악 하는 것은 그렇게 못마땅해 하면서도 임원들 음악회 참석을 강요하고 있으니 이게 무슨 변덕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덧 회사에 도착했다.
강시혁은 홍보실 여직원을 내려주었다. 자기도 온 김에 비서실에 들려 최 이사나 유길준 대리를 만나고 갈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강시혁이 영빈관으로 돌아왔다.
영빈관에 돌아와서 내일 일을 생각하니 또 스트레스가 몰려오는 것 같았다.
[내일 루프트 바에 갔다가 일곱 명이나 여덟 명의 건달이 떼로 덤비면 어떻게 하지? 그놈들은 나보다 나이도 훨씬 젊은 놈들이라 물불 안 가릴 텐데.]
차를 가져간 한 놈만 조용히 불어내어 차를 돌려주라고 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한 놈만 불러내면 나머지 다른 놈들도 우르르 따라 나오면 어떻게 하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강시혁이 이영남에게 전화를 걸었다.
“내일이 금요일이야. 리틀 브라운에게 차를 가져간 놈들이 분명히 루프트 바로 오겠지?”
“올 거야.”
“차를 가져간 놈 이름이 뭐야?”
“그 패거리 중에서 대장 노릇하는 놈인데 이름은 김재두야. 머리 빡빡 깎고 팔뚝에 문신한 놈 찾으면 돼.”
[머리를 백구치고 팔뚝에 문신했다고? 건달은 틀림없는 것 같네.]
“김재두라고? 알았어. 내일 만나볼게.”
“형. 조심해. 그놈은 태권도 5단에 한때 격투기 선수도 한 놈이야.”
[내가 아무래도 내일 임자 만나는 것 같네.]
“알았어. 그런 건 걱정 마. 까불면 내가 걷어버릴 테니까. 그런데 람보르기니는 소유주가 리틀 브라운으로 되어있나?”
“아니. 삼방전자로 되어있어. 세금 많이 나온다고 영진 누나가 삼방전자 명의로 구입해 나에게 준거야.”
[매출이 수십조 원이 되는 삼방전자야 4억 짜리 차를 사는 건 아무것도 아니겠지.]
강시혁은 내일 일이 걱정은 되지만 이영남을 안심시켰다.
“나 혼자 가지 않고 변상철 부사장과 함께 갈게.”
“그쪽이 여덟 명인데 괜찮아? 형 친구들 더 데려가야 하는 것 아냐?”
“그럴 필요 없어. 차를 찾으러 가는 거지 싸우러 가는 건 아니니까.”
“배동수 씨와 새로 들어온 김진석 씨도 같이 가자고 할까?”
“하지 마. 괜히 방해만 돼.”
“차를 찾으면 좋겠는데.”
“찾게 될 거야.”
강시혁은 전화를 끊고 한참 생각에 잠겼다.
[차를 가져간 그 김재두란 놈만 조용히 불러내어 이야기 해보면 안 될까?]
강시혁이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방범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방범대장은 상가 번영회 회장도 하고 있어 루프트 바의 사장을 알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형님! 접니다.”
강시혁은 대뜸 방범대장에게 형님이라고 불러주었다.
“오, 이게 누구야? 삼방그룹 영빈관 강 씨 아니요? 어떻게 요즘은 통 얼굴보기가 힘드네요.”
“예, 바쁜 일이 있어서 그랬습니다.”
“회의 때 한번 나와요. 그러다가 얼굴 잊어버리겠어요.”
“죄송합니다. 한번 나가야지요. 그런데 혹시 씨싸이드 루프트 바 사장님을 알고 계십니까?”
“씨싸이드? 알죠. 같은 회원인데. 거기 놀러간다면 내가 술값 싸게 해달라고 말해 드릴까?”
“내일 거기에 있는 손님 한명을 조용히 불러낼 일이 있습니다. 그래서 거기 사장님께 부탁 좀 드리려고요.”
“누군데? 여자는 아니고?”
“하하, 아닙니다. 일행들과 함께 오신 손님을 한명 불러내어 이야기 할 것이 있습니다.”
“혹시 채무자를 불러내는 건 아니죠?”
“아닙니다. 후배 한사람을 불러내는 겁니다. 거기에 보기 싫은 사람이 섞여있어 한사람만 불러내려고요.”
“그래?”
“형님이 거기 사장님에게 전화 한통 해주세요. 내일 제가 가서 전화하겠다고요.”
“그거야 어렵지 않지. 그런데 한 가지 물어봅시다. 삼방그룹에서 이번에 카렌다 나온 것이 있죠?”
“예? 이, 있을 겁니다.”
“거기 카렌다 10부만 보내주실 수 있겠어요? 내 주변에 나이든 사람들이 있어 아직도 카렌다 찾는 사람들이 있네요.”
“알겠습니다. 바로 연락드리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강시혁이 비서실 유길준 대리에게 전화를 했다.
“강시혁입니다.”
“아, 스타 대리 아니십니까?”
“스타 대리라니요?”
“이번에 로지스틱스 분쟁 현장에 가서 또 한건 했더군요. 강 대리님은 요즘 막 날아오르는 것 같습니다. 혼자만 날아다니면 어떻게 해요. 같이 날아다녀야지.”
“아아, 그건 내가 역할을 한 것도 없습니다. 사장님들께서 협상을 한 겁니다.”
“주간 업무보고 때문에 전화한 겁니까? 메일 잘 들어왔어요.”
“그게 아니고 이번에 삼방그룹에서 카렌다 만들었죠?”
“만들었죠. 그런데 요즘은 카렌다가 옛날과 달라 인기가 별로인 것 같습니다. 영빈관엔 인편이 없어 내가 보내주지 못했네요.”
“여기 관내 파출소나 상가 번영회 등에서 카렌다를 찾는 분들이 계십니다. 한 10부 얻을 수 있을까요?”
“100부라도 가져가세요. 그런데 내가 보내줄 수는 없고 강 대리께서 잠깐 다녀가면 좋겠네요.”
“알겠습니다. 그럼 퇴근시간 전까지 가겠습니다.”
강시혁은 아까 홍보실 직원을 본사 앞에 내려줄 때 카렌다를 가져올 걸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본사를 또 가게 생겼다.
역시 사람은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존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