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화 일본 재즈 음악가 (5)
(185)
사카모토 쯔요시 씨가 강시혁을 발견했다.
“오, 사장님 아니십니까?”
그러면서 강시혁에게 다가와 손을 잡고 흔들었다.
사카모토는 처음에 올 때는 얼굴이 많이 긴장했지만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화색까지 돌았다. 날마다 호텔 생활을 하고 밥을 잘 먹어서 그런 것 같았다.
또, 현재 두 군데나 클럽에 나가고 세 번째 클럽과 계약을 하는 단계이므로 기운이 막 나는 사람 같았다.
강남 클럽에서 왔다는 사람도 강시혁을 힐긋 쳐다보았다.
이 사람도 음악 하는 사람처럼 생겼다. 음악을 하다가 클럽을 차린 사람처럼 보이기도 했다.
“손님이 오신 것 같은데 일 보세요.”
강시혁은 웃으면서 그렇게 말하고 자기 방으로 들어왔다.
자기 방 컴퓨터에서 장명건설 주가를 살펴보았다. 장명건설 주가는 펀드매니저 김진석 씨 말처럼 13,000원 대에서 횡보하였다.
희한한 것이 1,3000원이 무너지면 바로 13,000원으로 회복하고 있었다. 복원력이 빨랐다. 그것은 일일별 고가나 저가, 그리고 종가를 살펴보니 그랬다.
[장명건설이 가압류가 풀어지고 체력이 좋아진 것 같군.]
강시혁은 고민이 되었다.
12,000원이 내려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좋은지, 아니면 13,000원대에서 매집에 들어가는 것이 좋은지 고민을 했다.
고민하고 있는데 노크 소리가 들렸다. 신종화와 배동수가 함께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강남 클럽에서 왔다는 사람은 갔습니까?”
“갔어요. 그런데 사카모토씨의 출연을 토, 일요일만 원해서 그냥 보냈습니다. 홍대 클럽과 시간이 겹쳐서 안 될 것 같았습니다.”
“그렇군요. 그런데 홍대 클럽에는 신종화 씨가 사카모토 씨를 수송해 준다고요?”
“예, 투잡 뛰려고요. 젊었을 대 부지런히 벌어 놔야죠. 사장님도 전에 투잡....”
그러다가 신종화는 얼른 자기 입을 가렸다.
신종화는 강시혁이 문화재단에 들어오기 전에 투잡을 뛰었다는 소문을 어디서 들은 것 같았다.
그래서 사장님도 투잡을 뛰었잖아요 라고 말하려다 그만둔 것 같았다.
강시혁이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젊었을 때 부지런히 몸을 움직이는 것은 좋죠. 그런데 배동수 사장에게 얼마를 받기로 하고 투잡을 뛰는 겁니까?”
“제차 K7 렌트비만 주면 된다고 했습니다. 기사 출장비용은 안 받기로 했습니다. YN엔터테인먼트와 정식 계약서도 작성했습니다.”
“배동수 사장이 너무 했네요. 좀 많이 주지 않고. 다른 사람도 아닌 장래를 약속한 사람인데.”
“이 사람 원래 짜요.”
신종화의 이 말에 배동수는 바보스러운 표정으로 웃기만 했다.
변상철이 강시혁 방으로 들어왔다.
“형, 삼방 로지스틱스 일은 잘 되었어? 형이 예상보다 빨리 돌아온걸 보니 잘 해결된 것 같은데? 얼굴 보니 몸싸움 같은 건 안한 것 같군.”
“몸싸움은 가장 하책이야. 상책은 협상이지.”
“그래서 협상으로 마무리 했다는 이야기인가? 형이 이젠 협상의 달인까지 된 모양인데?“
“협상은 사장이 했지. 난 옆에서 폼만 잡았지.”
“용역 깡패라도 부른 줄 알았겠네.“
“그렇지 않아도 H물류 사장이 용역 강패 불렀다고 항의하기에 사원증 보여줬지. 이거 안 가져갔으면 큰일 날 뻔했어.”
옆에서 신종화가 말했다.
“강 대리, 아니 강 사장님은 체격은 좋지만 깡패 인상은 아니죠. 인물이 좋잖아요.”
“첫날 작은 충돌이 있을 때 내가 겁 좀 주느라고 웃통을 벗기는 했지.”
변상철이 킥킥 대며 말했다.
“또 문신 보여주면서 이 새끼들 다 죽여 버리겠다고 했겠네.”
이 말에 신종화와 배동수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어머, 강 대리님 몸에 문신이 있어요?”
변상철이 계속 킥킥대며 말했다.
“문신 뿐인 줄 아세요? 웃통 벗으면 몸에 칼자국 천지에요.”
“어머나! 세상에!”
그러면서 신종화는 눈을 껌벅이며 강시혁을 쳐다보았다.
정말 이 사람이 혹시 말로만 듣던 조폭 출신이 아닌가 하는 표정이었다.
배동수 역시 같은 표정을 지으며 강시혁을 쳐다보았다. 그때 오피스텔에서 자기가 강시혁에게 팔을 꺾였는데 정말 맞섰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강시혁이 웃으며 말했다.
“작은 문신이 하나 있지만 칼자국은 없습니다. 변 부사장이 괜히 하는 소리입니다.”
그래도 신종화와 배동수는 의심이 간다는 표정으로 강시혁을 쳐다보았다.
강시혁은 영빈관으로 돌아왔다.
바벨운동을 하고 저녁에 잠들 무렵이었다. 이영진 상무에게 로지스틱스 일을 보고는 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카톡을 보냈다.
[상무님, 로지스틱스 일은 끝내고 돌아왔습니다. 염려 해주신 덕택으로 큰 충돌 없이 잘 끝났습니다.]
30분 정도 지나서 답신이 왔다.
[수고 많이 하셨네요. 역시 강 대리님이 개입하시니까 일이 잘 풀리는 것 같네요.]
[저 보다는 로지스틱스 사장님 이하 사원들의 노고가 컸습니다.]
[겸손하시군요. 강 대리님은 언제나 자기를 낮추기 때문에 사내에서 인기가 좋은 것 같습니다.]
[헉, 그럴 리가요.]
[일이 끝났으니 내일 사카모토 씨를 만나러 홍보실 직원을 보내겠습니다.]
[아, 일신홀 연주 때문에 그렇군요.]
[그렇습니다. 내일 오후 2시에 사카모토 씨를 만나죠.]
[알겠습니다. 그럼 내일 K&B파트너스 사무실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홍보실 직원에게 K&B파트너스 사무실 노출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영빈관에서 만나도록 하죠. 저도 시간이 있으면 홍보실 직원과 같이 가도록 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영빈관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강시혁은 내일 이영진 상무를 만난다니 기분이 좋아졌다.
이영진 상무는 자기가 감히 넘볼 수 없는 위치의 사람이지만 보기만 해도 좋았다. 자기가 꿈에 그리던 이상적인 여자이기 때문이었다.
강시혁은 잠이 오지 않았다.
불이 켜져 있어 잠이 오지 않은 것 같아 모든 전등을 소등했다. 그리고 침대에 누워 영어 공부를 위해 미국 드라마를 보았다. 그러다가 잠이 들었다.
잠결에 드럼 소리를 들었다. 환청인가 하였다.
그런데 드럼 소리는 더 확실하게 들리는 것 같았다.
이 영빈관은 아무도 들어올 수 없는 장소였다. 그런데 드럼소리가 들리니 이상했다. 그래서 자기 방의 불을 켰다.
[영빈관 주위를 한 번 더 둘러봐야겠는데?]
강시혁이 플래시를 들고 나가보았다.
그런데 이영남이 가끔가다가 와서 드럼을 치는 방에 불빛이 새어나오는 것을 보았다. 강시혁은 머리털이 쭈볏했다.
[이영남이 왔나?]
강시혁은 며칠 전 로지스틱스 분쟁 현장을 가면서 이영남에게 대문 비번을 알려준 사실이 있었다.
그래서 혼자 들어온 것 같았다.
드럼을 치는 방으로 가자 드럼 소리만 들리는 게 아니라 노래 소리도 들려왔다.
분명히 이영남의 목소리였다.
Donde voy, donde voy.
Solo estoy, solo estoy
All alone, as the day I was born
Till your eyes rest in mine, I shall wander
No more darkness I know and know not
Donde voy, donde voy
Solo estoy, solo estoy
난 어디로, 어디로 가야하나요
난 혼자가 되었어요. 혼자가.
태어날 때도 혼자였듯이 지금도 혼자네요.
나는 방황할거예요, 당신의 눈이 내 눈에 머물 때까지.
내가 알고 모르는 어둠이 없어질 때까지.
난 어디로, 어디로 가야하나요
난 혼자가 되었어요. 혼자가.
강시혁이 알기로는 이 곡은 ‘돈데보이’ 라는 곡으로 원곡은 에스파냐어로 부른 노래였다.
하지만 지금 이영남은 대만 가수가 부른 영어 노래로 부르고 있었다. 이민자의 어두운 삶을 노래한 슬픈 노래였다.
그것을 이영남이 어둠 속에서 부르고 있었다.
강시혁이 불을 켰다.
이영남은 울고 있었다. 강시혁이 조용히 다가가 이영남의 어깨에 손을 얹어주었다.
“리틀 브라운! 무슨 괴로운 일이 있었던 모양이구나.”
“형! 흑흑.”
이영남은 강시혁의 허리를 껴안았다. 그리고 흑흑대고 울었다.
강시혁은 이영남의 등을 토닥거려주며 말했다.
“그래, 그래. 괴로운 일이 있으면 이 형한테 말해봐.“
“엄마가 보고 싶어. 흑흑.”
“엄마? 엄마는 돌아가시고 길러준 엄마는 지금 이태원에 계시잖아.”
“지금 부른 노래는 시카고 메모리얼 파크에 계신 엄마가 즐겨 불렀던 노래야.”
“그랬구나. 이제 리틀 브라운도 성인이 되었으니 돌아가신 엄마는 가슴에 묻고 내 길을 가야겠지.”
“흑흑.”
“맥주 한잔 할까? 지난번 리틀 브라운이 사온 맥주가 냉장고에 많이 남았어.”
이영남이 고개를 끄덕였다.
강시혁이 이영남의 손을 잡고 일으켜 세웠다. 이영남의 손은 여자처럼 물컹했다.
강시혁은 캔 맥주 하나를 따서 이영남에게 주며 말했다.
“나를 찾은 건 무슨 일이지? 설마 돌아가신 엄마 찾아달라고 나를 찾은 건 아니겠지?”
“실은.....”
그리고서는 이영남은 말을 멈추었다.
“실은 뭔데?”
“친구가..... 차를 빌려갔는데 안 가져와.”
“뭐라고? 그 4억짜리 람보르기니를 빌려줬다는 이야긴가?”
이영남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달라고 해야지.”
“그놈들이...... 이틀만 쓰겠다고 하고선 보름이 다되도록 안 가져오고 있어. 나도 써야 하는데.”
“어떤 놈이야? 내가 한번 찾아가보지. 지난번에 커피숍에서 봤던 놈들인가?”
또 이영남이 고개를 끄덕였다.
“전화번호 불러줘 봐.”
“전화 안 받아. 전화기도 바꾼 것 같아.”
“그럼 그때 그 커피숍에 가면 그놈들을 만날 수 있나?”
“커피숍은 자주 안와. 어쩌다 한번 와.”
“그럼 집은 알고 있나?”
“서초동 산다고 하는데 잘은 모르겠어.”
“우선 그놈들을 만나야 찾아오든가 말든가 할 것 아닌가? 그놈들을 어디가면 만나지?”
“금요일이면 이태원 씨싸이드 루프트 바에 자주 모이기는 해.”
“알았어. 그러면 내가 금요일 만나지.”
“그런데 걔들은 인원이 많아. 금요일 모였다 하면 칠팔 명은 돼. 형 혼자 힘들 거야.”
“칠팔 명이 아니라 칠팔십 명도 만나면 만나는 거지.”
“그리고 걔들 중 격투기 선수도 있고 유도대학 나온 애도 있어. 또 진짜 조폭과 연계되어 있는 애들도 있어.”
“뭐라고?”
강시혁은 조금 움찔했다.
인원도 칠팔 명이나 되는데다가 진짜 운동을 한 놈들이 있다면 오히려 자기가 몰매 맞을 확률이 많았다.
이거 잘못하다간 개망신 당하는 거 아닌 가 했다. 그동안 운동을 좀 했다고 알려져 삼방그룹 VIP경호도 하는데 이제 뽀록이 날것만 같았다.
하지만 이영남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일 수는 없었다.
“건달 물 먹은 놈들 중에서 운동 안한 놈이 어디 있나? 운동 좀 했다면 난 더 좋아. 반항하면 팔이 아니라 모가지를 비틀어주지.”
이 말에 이영남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입가에 미소까지 번지는 것 같았다.
“리틀 브라운. 아무 걱정하지 말고 사무실에 나와서 음악도 듣고 그래. 참, 내일은 여기서 오후 2시에 사카모토 씨와 삼방그룹 홍보실 직원이 만나기로 했어. 이영진 상무도 시간이 있으면 오겠다고 했어.”
“정말?”
“그러니까 리틀 브라운도 내일 여기로 와. 사무실이 아니고 여기 영빈관에서 만나기로 했으니까. 일신홀 연주회를 의논한다고 했어.”
“일신홀 연주회도 있지만 가족 연주회도 의논할 것 같은데? 누나가 온다면 틀림없이 그 일로 올 거야.”
“언젠가 가족음악회를 여기서 하겠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것 같아. 부모님 모셔다가 여기서 가족 음악회 하면 좋지. 그럼 회장님도 기뻐하시겠는데? 영진 누나는 피아노를 치고 리틀 브라운은 드럼을 친다면 멋있을 것 같아.”
“헤헤. 그러면 아버지가 날 음악활동 계속해도 된다고 하면 좋겠어.”
“멋진 연주를 하면 틀림없이 회장님이 그렇게 하실 거야. 그런데 시간이 많이 지났네. 리틀 브라운도 이제 집에 가서 쉬어야지. 집까지 바래다줄까?”
“그러면 나야 좋지.”
강시혁은 이영남과 함께 영빈관을 나왔다.
이영남이 자꾸 손을 잡으려고 해서 그건 슬그머니 뿌리쳤다.
이영남은 강시혁과 함께 걷는 것이 좋은 모양이었다.
걸어가면서 자주 강시혁을 쳐다보며 웃었다. 강시혁은 이영남을 한남 나인원 아파트 근방에 있는 폭스바겐 매장이 있는 곳까지 바래다주었다.
오면서 시계를 보았다. 밤 12시가 넘은 것 같았다.
이 시간이면 사카모토 씨가 연주를 끝내고 숙소인 해밀톤 호텔로 돌아올 시간이었다.
전화를 걸었다.
“강시혁입니다.”
“아, 강 사장님. 밤늦게 웬일이십니까?”
“오늘 연주는 다 끝났죠?”
“예. 다 끝나고 지금 막 숙소에 왔습니다.”
“내일 오후 2시에 어디 가지 마세요. 영빈관에서 삼방그룹 홍보실 직원과 만나기로 했습니다. 일신홀이라는 클래식 음악홀 연주 때문입니다.”
“오, 그래요? 그런데 영빈관이 어디에 있죠?”
“우리 사무실에서 걸어서 갈만한 곳입니다.”
“그래요? 그런데 왜 거기서 만나죠? 삼방그룹 영빈관인가요?”
“혹시 삼방그룹의 회장님 따님이 나오실지 몰라서 그렇습니다.”
“옛? 뭐, 뭐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