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화 일본 재즈 음악가 (4)
(184)
아침이 되었다.
모텔에 투숙했던 삼방 로지스틱스 간부들은 해장국 집으로 몰려갔다.
강시혁도 김종래 사장을 따라 해장국 집으로 갔다.
밥을 먹으며 부장 한 사람이 말했다.
“어제 당직자들 전화가 없는 것으로 보아 현장은 지금 그대로인 것 같습니다.”
김종래 사장이 말했다.
“내가 새벽 4시에 현장에 가봤네. 내가 원래 새벽에 조깅을 하는 사람인데 현장이 궁금해서 가봤네. 자네 말대로 그대로 있더군.”
간부들은 조용히 밥만 먹었다. 개종래가 새벽부터 극성이었군 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강시혁은 관리자라면 그렇게 해야 된다고 보았다. 이런 것은 현장 사무소 소장이 먼저 했어야 할 일이었다고 생각했다.
밥을 먹던 차장 한 사람이 전화를 받았다.
“옛. 제가 소장입니다.”
소장이라고 하는 것을 보니 아마 이 사람이 화물터미널에 파견된 현장 소장 같았다.
“예? 트럭들을 치워달라고요? 그건 H물류 애들이 먼저 우리 상, 하차장을 점거해서 그렇게 된 겁니다. 원인 제공은 H물류입니다. 이사님!”
김종래 사장이 고개를 들고 물었다.
“누구 전화야?”
현장 소장이 스마트폰을 손바닥으로 덮고 말했다.
“터미널 회사 이사입니다. 트럭들이 수 십대 엉겨있어 현장이 난리랍니다. 차량 진출입이 원활하지 못하고 또 보기도 흉하니 빨리 치워달랍니다.”
“그렇게는 못하겠다고 해.”
“그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원인 제공은 H물류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견인차 불러 모두 끌어내겠답니다.”
“그러면 H물류 차량도 끌어내라고 해!”
소장이 다시 전화를 했다.
“이사님! 그러면 H물류 차량도 모두 견인해야 됩니다. 알았어요. 내가 지금 밥 먹고 있으니 빨라 나갈게요.”
김종래 사장이 다시 말했다.
“터미널 회사에서 H물류에게도 이야기 했겠지. 자, 다 먹었으면 커피는 현장 사무실에 가서 먹세.”
현장 사무실로 갔다. 현장 사무실엔 터미널회사 이사가 나와 있었다.
“서로 이렇게 양보 없이 싸우면 어떻게 합니까?”
“우리는 터미널 회사 측에서 배정한대로 했을 뿐이요.”
“저희 사장님이 H물류 사장님께 직접 전화를 거셨습니다. 이따가 10시쯤에 저희 터미널 회사 회의실에서 같이 협상을 해보시죠. 덩치 큰 두 회사가 이러니 우리도 골치 아픕니다.”
“알겠소. 그렇게 하지요.”
“회의실엔 여러 사람이 몰려오지 말고 사장님하고 소장님만 오세요.”
“그렇게 하지요.”
강시혁이 현장에 가보았다.
대형 트럭들이 엉겨있어 정말 개판인 것 같았다.
옹기종기 앉아있던 H물류 직원들이 강시혁을 보고 흠칫 하는 것 같았다. 어제 자기들 회사의 상무 멱살을 잡은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못 본 척 하였다. 아무리 보아도 강시혁이 용역회사 깡패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10시가 되었다. 사장은 강시혁도 같이 가자고 하였다.
그래서 강시혁은 김종래 사장을 따라 현장 소장과 함께 터미널회사 회의실로 갔다.
회의실엔 아직 아무도 없고 터미널 회사 이사만 있었다.
“H물류 사장님도 곧 오실 겁니다. 현장을 둘러보고 온다고 방금 전화가 왔습니다.”
얼마 후 회의실로 H물류 사장이 왔다. 머리가 온통 하얀 60대였다.
어제 강시혁에게 멱살을 잡혔던 상무도 같이 왔다. 상무는 강시혁을 보고 움찔 하는 것 같았다.
이때 금테 안경을 낀 50대 후반의 신사가 들어오자 터미널 이사가 벌떡 일어났다.
“양측 회사 사장님 두 분이 다 오셨습니다. 사장님.”
강시혁은 이 신사가 터미널 회사 사장임을 짐작했다.
터미널 사장이 H물류 사장을 보고 말했다.
“오래간만입니다. 사장님. 혈색 좋습니다.”
“오래간만이요.”
둘이 악수를 하였다. 터미널 사장은 H물류 사장과 잘 아는 사이인 것 같았다.
터미널 사장이 이번엔 김종래 사장을 쳐다보며 말했다.
“자네는 이제 공무원 냄새가 안 나고 재벌회사 사장 틀이 나는데?”
“옛날이나 지금도 똑같이 김종래지. 내가 어디 가나?”
김종래 사장도 터미널 회사 사장을 잘 아는 것 같았다. 반말을 서로 주고받는 것 보니 터미널 사장은 김종래 사장을 옛날부터 알고 있는 사이인 듯 했다. 역시 하이 소사이어티들끼리는 교류가 있는 듯 했다.
터미널 사장이 웃으며 말했다.
“두 분 협상 잘 해봐요. 현장이 보기 흉하니 우선 트럭들부터 치웁시다. 아무튼 난 나가있을 테니까 서로 조금씩 양보해서 잘 해봐요.”
그러면서 터미널 사장은 밖으로 나갔다.
김종래 사장과 H물류 사장이 마주 앉았다.
초반의 두 사람 대화는 아주 점잖았다. H물류 사장은 삼방그룹 이건용 회장의 건강이 어떠냐고 물었다. 김종래 사장 역시 H그룹 회장님이 해외에 나가셨다는데 돌아오셨냐고 물었다. 수천 명의 종업원들을 거느리고 있는 수장들이라 그런지 말들은 아주 점잖았다.
강시혁의 주머니 속에서 스마트폰의 벨이 울렸다. 회의에 들어가기 때문에 진동으로 해놓아서 다행히 전화벨 소리는 크게 울리지 않았다.
슬쩍 스마트 폰을 보니 이영남의 전화였다. 강시혁이 얼른 벽 쪽으로 가서 모기만한 소리로 말했다.
“어, 리틀 브라운! 지금 사장님들 협상중이야. 내가 나중에 전화 해줄게.”
그러면서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이놈이 왜 전화를 했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장들은 본론으로 들어가자 한 치의 양보도 없었다. 영업과 직결된 문제라 그런 것 같았다. 나중엔 감정들이 상한지 목소리도 높아졌다. 처음에 만났을 때의 점잖은 모습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사장 해먹기도 쉬운 게 아니네. 협상 잘못하면 회사에 돌아가 쪼다 소리 들으니까 저렇게들 적극적이네.]
H물류 사장이 강시혁을 힐긋 쳐다보고 나서 말했다.
“이보쇼, 김종래 사장! 그렇다고 해서 용역 깡패를 데려와 삼촌뻘 되는 상무의 멱살을 잡고 행패를 부리면 되겠소?”
“깡패 아닙니다. 우리 직원입니다.”
“몸에 문신도 있고 머리도 깍두기 머리라며?”
“그거야 요즘 젊은 애들 취향이 아닙니까?”
상무가 말했다.
“그렇다면 직원이라는 증거를 대보세요.”
강시혁이 제복 잠바를 풀어헤치며 목에 걸고 있던 사원증을 풀었다. 그리고 상무의 눈앞에 사원증을 바싹대고 말했다.
“깡패는 나를 두고 자꾸 그러는 모양인데 내가 왜 깡패요? 이 사원증 안 보여요? 자꾸 깡패라고 하면 명예훼손으로 고발할 겁니다.”
이 말에 모두 조용해졌다. 더구나 명백한 사원증도 있기 때문이었다.
강시혁이 계속 말했다.
“그리고 지금은 우리가 트럭 보유 대수가 적지만 곧 차량이 늘어나기 때문에 H물류에서 모두 상, 하차장을 독점하는 건 말이 안 됩니다.”
H물류 사장이 말했다.
“이보게. 젊은이! 젊은이는 협상 주체가 아니네.“
“왜요? 저도 우리 사장님을 보좌하러 나온 사람입니다. 앞에 게신 H물류 상무님도 사장님을 보좌하러 나온 사람이 아닙니까? 그러니까 H물류 상무님이 우리 사장님에게 당신, 당신 하면서 대드는 것이 아닙니까?”
상무가 발끈했다.
“내가 언제 당신 사장에게 당신, 당신 했어? 말 지어내지 마!”
“당신이 그랬잖아. 내가 당신 사장님에게 당신, 당신 그러면 좋겠어요?”
H물류 사장이 자기네 회사 상무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네가 정말 그랬냐? 하고 묻는 것 같았다.
점잖은 사장들은 예의를 중시하는 사람들이라 이런 모습은 좋아하지 않았다.
상무가 자기 가슴을 치며 말했다.
“하, 이 사람이 생사람 잡네!”
“회사 직원인 날 보고 깡패라고 하지를 않나, 우리 사장님에게 당신, 당신 하지를 않나, 아무리 기름밥 먹는 운송회사 임원이지만 그러면 되겠어요?”
“뭐가 어째?”
“더 심한 소리 한 것 몰라요? 한번 들어볼래요? 당신이 어제 우리 사장님에게 말하는 소리입니다.”
그러면서 강시혁이 스마트폰을 꺼내 어제 녹음했던 것을 재생시켜 주었다.
H물류 상무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차관이나 지냈다는 사람이 삼방그룹에서 월급 몇 푼 받는다고 더러운 짓은 도맡아 놓고 하네. 에이 더러워. 퉤!”
“뭐? 뭐라고?”
여기까지 틀어주고 강시혁은 녹음을 껐다. H물류 사장의 얼굴이 삽시간에 굳어졌다. 상무는 당혹스런 표정을 지었다.
삼방 로지스틱스가 H물류보다 작은 회사이지만 종업원 천여 명이나 근무하는 회사였다. 여기 사장에게 이렇게 험한 말을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더구나 삼방 로지스틱스의 사장 김종래는 행정고시 출신으로 차관까지 지낸 사람이었다. 아직은 관계에 인맥이 있는 사람이다.
H물류 사장이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미안하게 되었소. 김종래 사장.”
“민간업체로 오니까 험한 말도 이렇게 듣습니다. 허허.”
“이번 다툼은 터미널 회사 원안대로 합시다. 삼방 로지스틱스도 증차를 한다니 상, 하차장 에리어는 양분해서 하는 방향으로 합시다.”
“고맙습니다. 사장님.”
H물류 사장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자기네 회사 상무를 무서운 얼굴로 쏘아보며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 말하는 건 아니네, 이 사람아!”
상무는 어쩔 줄 모르는 표정을 지었다.
회의가 끝난 것을 알고 터미널 회사 사장이 들어왔다.
“빨리 끝났네요. 두 분 사장님 오셨으니 점심은 제가 사지요. 같이 가시죠.”
H물류 사장이 말했다.
“아니, 가겠소. 본사에 가볼 일이 있어요. 또 오늘 점심 먹을 기분도 안 나네요. 그리고 협상은 터미널 안대로 양분해서 하기로 했으니 그렇게 아십쇼.”
“아, 그런가요? 잘 하셨습니다. 협상이 되었다니 다행입니다. 오늘 점심 같이 못하시면 다음에 골프나 같이 치러 가시죠? 사장님!”
“예, 그럽시다.”
김종래 사장이 현장 소장에게 말했다.
“우리 트럭들 이제 다 치우도록 하게. 그리고 상하차장 콩코스(concourse)에는 배차 받은 차들만 집어놓도록 하게.”
“알겠습니다. 사장님.”
김종래 사장이 강시혁에게 악수를 청했다.
“자네, 언제 그렇게 녹음 했었나? 싸움만 잘 하는 줄 알았더니 그런 일도 했었네!”
“그놈이 하도 건방져서 그랬습니다. 사장님께 막말을 할 때는 정말로 쫓아가서 배때기를 걷어차려고 했습니다.”
“정말 우리 직원들 중에서 자네 같은 사람이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놈들은 자기 사장이 험한 욕을 먹어도 눈만 껌벅거리고 있으니 내가 속이 타네!”
“잘 끝났으니 그럼 저는 가보겠습니다.”
“왜? 점심이나 먹고 가지 그래? 내가 맛있는 것 사주지.”
“아닙니다. 가봐야 됩니다. 문화재단에서 영빈관으로 미술품을 가지러 올 수도 있습니다.”
“그냥 보내서 내가 섭한데?“
“아니 되었습니다.”
강시혁은 또 김종래 사장에게 칼같이 허리 숙여 인사를 해주었다.
이렇게 하는 것은 나중에 다 복이 되어 돌아오기 때문이었다.
강시혁이 나오면서 상, 하차장 현장을 보았다.
어느 틈에 트럭들은 말끔히 치워졌다. 그리고 삼방 로지스틱스 4.5톤 트럭 두 대와 H물류 4.5톤 트럭 두 대가 나란히 상하차 작업 준비를 하고 있었다.
강시혁은 분쟁이 오래 갈 줄 알았는데 일찍 끝나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H물류 사장이 까탈을 부릴 줄 알았는데 쉽게 협의해 주었으니 말이다. 자기네 상무가 막말을 한 것에 대한 미안한 감도 있었겠지만 증차를 한다는 말도 먹혀 들어갔으리라고 보았다.
삼방 로지스틱스는 증차(增車)의 가능성이 많은 회사이기는 했다.
돈 많은 그룹사니까 물류회사 하나 M&A를 하면 바로 증차가 되기 때문이었다.
강시혁이 영빈관으로 돌아왔다.
영빈관에서 점심을 먹고 나니 이상하게 졸렸다. 그래서 잠시 낮잠을 잤다가 세수를 하고 K&B파트너스 사무실로 나가보았다.
펀드매니저 김진석 씨가 벌떡 일어나 인사를 해주었다.
상담실에서 무슨 말소리가 들렸다.
“상담실에 누가 있습니까?”
“강남의 클럽에서 사카모토 쯔요시 씨의 출연 교섭이 있는 것 같습니다. 변상철 부사장님이 통역 해주러 들어가셨습니다.“
강시혁은 배동수가 영어가 약하니 그런가보다 하였다.
그런데 상담실에서 여자 목소리도 들렸다. 가만히 들어보니 문화재단 신종화의 목소리였다.
강시혁이 이영남의 방문을 열어보았다.
이영남은 자리에 없었다. 김진석 씨에게 물었다.
“이영남 씨는 오늘 안 나왔습니까?”
“오전에 계셨는데 오후엔 안 보이는데요?”
“그래요?”
“사장님, 그리고 장명건설은 지금 13,000원대에서 횡보하는데 어떻게 할까요? 당분간 12,000원 대로 내려오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지지대가 형성이 된 것 같습니다.”
“하루, 이틀 더 기다려보죠.”
상담실 문이 열렸다.
상담하러 온 사람하고 사카모토 씨가 악수를 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강시혁은 사카모토 씨가 한국에 와서 잘 팔리는 것은 실력도 있지만 저 수염 때문이 아닐까 했다.
사카모토 씨는 칼 마르크스 형님이라고 해도 곧이들을 만큼 탐스러운 수염을 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