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녀의 두 번째 남편-180화 (180/199)

180화 싹트는 감정 (6)

(180)

강시혁이나 이영진 상무는 오늘 음악회 때문에 저녁을 일찍 먹었었다.

그러다보니 밤 12시가 넘자 배가 고팠다.

더군다나 남산 N타워에선 걷기까지 하여 운동량이 있어서인지 더 배가 고팠다.

그래서 둘은 정신없이 라면을 먹은 것이다.

강시혁이 라면을 먹다가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이영진 상무도 고개를 들었다.

둘의 눈동자가 마주쳤다.

강시혁이 씩 웃자 이영진 상무도 미소를 지었다.

강시혁은 아무래도 이 순간이 어색했다. 괜히 말을 걸었다.

“냉장고에 캔 맥주가 있는데 하나 갖다드릴까요? 안주는 단무지 밖에 없습니다.”

이영진 상무는 피곤한데 잘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한 개만 마시겠다고 하였다.

그래서 강시혁은 얼른 지하에 내려가 캔 맥주와 종이컵과 단무지를 가져왔다.

“드세요!”

“강 대리님은요?”

“저는 안하겠습니다. 상무님을 댁까지 모셔다 드려야죠.”

“혼자 마시기 미안한데요?”

“냉장고에 한통 더 있습니다. 저는 상무님을 모셔다드리고 다시 와서 마시겠습니다. 브람스의 바이올린 협주곡과 피아노 소나타 곡을 들으면서 마시겠습니다.”

“호호. 강 대리님은 참 멋쟁이세요.”

“혼자 있으니 그렇게 해야죠. 달이 있고 내 그림자가 있고 음악이 있으면 되는 것이 아닙니까?“

“정말 멋쟁이세요. 그래서 강 대리님은 비서실 여직원들 사이에 인기가 좋은 것 같아요.”

“예? 비서실 여직원들은 떨어져 근무하기 때문에 접촉이 없는데요?”

“얼마 전 그룹 홍보 화보를 찍는 계획이 있었습니다. 거기 표지 모델로 남자사원과 여자사원을 넣기로 했었습니다. 그래서 비서실 직원들을 대상으로 누구를 선발할까 앙케트 조사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 게 있었군요.”

“거기서 남자사원은 누가 제일 많은 표를 얻은 지 아세요? 강 대리님을 적어낸 사람들이 제일 많았습니다.”

“예? 제가요? 세상에! 저는 대졸 공채직원도 아닙니다. 저 같은 외인부대가 표지모델로 들어가는 건 말도 안 됩니다. 다른 분이 해야 합니다.”

[정말 영양가도 없이 화보에 얼굴이 들어가는 것은 싫어! 괜히 쪽만 팔리는 일이지. 모델료라도 듬뿍 준다면 모르지만!]

“그래서 제가 강 대리님이 표지 모델로 들어가는 건 빼라고 했습니다. 강 대리님은 비선조직에서 남모르게 일하는 경호요원이라 밖으로 얼굴이 알려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습니다.”

“아이고, 고맙습니다. 잘 하셨습니다.”

“여자사원은 앙케트 조사에서 누가 가장 많은 추천을 받은 지 아세요?”

“여기서 근무하니 저는 알 수가 없죠.”

“삼방전자 비서실의 최하나였습니다. 강 대리님도 최하나 씨는 잘 알죠?”

“잘 알지는 못해도 안면은 있습니다. 비서실 직원들 회식할 때 한번 보았습니다. 예쁘더군요.”

강시혁은 최하나가 예쁘기는 하지만 너무 인형같이 생겨서 마음이 가진 않았다. 그리고 너무 화장이 요란했다.

진짜 강시혁이 좋아하는 스타일은 바로 앞에 앉아있는 이영진 상무같은 타입이었다.

하지만 이영진 상무는 자기와 다른 신분이라 마음만 있을 뿐이지 현실에서는 불가능하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영진 상무가 앞에 있어도 어차피 이루어질 것도 아니라서 그런지 살떨림 같은 것은 없었다.

이영진 상무가 종이컵에 든 맥주를 쭉 마시고 말했다.

“‘혼자 마시니 미안한데요.“

“마음껏 드세요. 여기서는 누가 참견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그리고 인사불성이 되어도 무사히 댁에까지 모셔다드리는 제가 있지 않습니까?”

“호호. 고맙네요. 하지만 한 개만 마실게요. 저는 술은 많이 못해요.“

지금 이 고요한 영빈관에는 강시혁과 이영진 상무밖에 없다.

이곳은 방도 많은 곳이고 여기서 소리쳐도 이웃에서 들을 사람도 없다. 강시혁이 나쁜 마음을 먹고 강제로 이영진 상무를 추행해도 누가 말릴 사람도 없었다.

하지만 강시혁은 자세 하나 흐트러지지 않고 이영진 상무를 모셨다.

[이영진 상무가 나를 믿어주니까 나도 신뢰감을 주어야 하겠지. 우선 자세부터 흐트러지지 않도록 하자.]

이영진 상무가 일어났다.

가려고 그러는 줄 알았는데 자기가 먹었던 라면그릇을 씻으러 주방으로 가고 있었다.

“아! 상무님! 설거지는 제가 하겠습니다. 그냥 앉아계세요. 상무님은 현재 손님이십니다.”

“그래도.... 내가 먹은 건데.“

“아니 되었습니다. 영빈관에 오신 분들은 누가되었든지 마셨던 찻잔과 과일 접시는 제가 치웁니다. 그래서 제가 파견 나와 있는 것이 아닙니까?”

“그럼 미안한데요.”

“미안해하실 것 없습니다.”

강시혁은 어느 날 이영진 상무가 쓰는 방의 화장실도 청소를 해주고 온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이영진 상무가 먹었던 라면 그릇 하나 닦아주지 못하겠나!

“그럼 싱크대에 담가만 놓을게요.”

그러면서 이영진 상무는 라면 그릇을 싱크대에 올려놓고 다시 테이블 쪽으로 왔다.

이영진 상무가 웃으며 말했다.

“강 대리님은 결혼하면 좋은 남편이 될 것 같아요.”

“고맙습니다.”

강시혁은 무언가 말을 하려고 했다. 상무님도 결혼하면 좋은 부인이 될 것입니다. 라고 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런 대화는 주인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았다. 그래서 더 이상 말은 하지 않고 고맙습니다 라는 말과 함께 조용한 미소만 보내주었다.

강시혁은 일정한 선은 넘지 않고 있었다.

이영진 상무가 강시혁을 좋게 보는 것도 아마 이런 강시혁의 태도 때문일 것이다..

이영진 상무가 라면을 먹을 때 벗었던 코트를 다시 집었다.

강시혁은 마음 같아서는 그 코트를 입혀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고 손을 앞으로 모은 채 로봇처럼 서있기만 했다.

이영진 상무는 옷을 다 입자 가겠다고 했다.

“강 대리님 피곤하실 텐데 이만 가볼게요. 오늘 라면은 정말 백만 불짜리 식사였습니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마당을 나오다가 이영진 상무가 말했다.

“정말 밤엔 혼자 무섭고 외롭겠어요. 강아지라도 한 마리 갖다놓지 그러세요?”

“그러면 좋은데 강아지는 털이 날리고 오물을 발생시키고 미술품을 훼손할 염려가 있습니다. 그래서 마음은 있지만 갖다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정말 그런 점이 있겠네요.”

강시혁은 아직 벤츠를 차고에 넣지 않았었다.

이영진 상무를 다시 태워야 하기 때문에 문 앞에 세워 두었었다.

강시혁이 얼른 벤츠의 뒷문을 열어주었다.

“강 대리님! 아무도 없을 때는 문 안 열어 주셔도 돼요.”

“그러면 안 됩니다. 모셔야 할 분은 아무도 보지 않더라도 잘 모셔야 한다는 것이 제 신념입니다.”

가까운 거리라 이영진 상무 집에 금방 왔다.

강시혁은 또 벤츠 뒷문을 열어주었다.

이영진 상무는 오늘도 강시혁에게 손을 흔들어주며 말했다.

“어두운 밤길 조심해 가세요.”

“넵, 상무님도 편히 주무십시오. 그리고 언제라도 오셔서 피아노를 치고 가세요. 날마다 윤이 나도록 닦아놓겠습니다.”

“그러면 또 라면 끓여주실 거죠?”

”물론이죠. 떡국도 끓여드리죠.“

“저는 가까운 곳에 강 대리님이 계셔서 참 마음이 든든해요.”

그러면서 이영진 상무가 방긋 웃었다.

[저도 상무님이 가까운 곳에 계셔서 행복합니다.]

강시혁은 이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차마 하지 못하고 웃으며 손만 흔들어주었다. 말은 하지 않더라도 내 마음속의 말은 이심전심으로 전해졌을 것이란 생각을 가지며 오랫동안 손을 흔들어주었다.

이제 두 사람 사이의 관계가 아직 초보적이긴 하지만 인티미트(intimate)의 정을 느끼는 친구 사이로 어느덧 발전해 가고 있었다.

월요일이 되었다.

이 날은 일본의 재즈음악가 사카모토 쯔요시 씨가 입국하는 날이었다.

강시혁이 삼방그룹 전산망에 들어가 공지사항을 읽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이영남의 전화였다.

“형! 나야. 오늘 사카모토 쯔요시 씨가 들어오는 날인줄 알지?”

“알고 있어. 아직 시간이 있으니 내가 30분후에 출발할게. 지금 사무실에 있지?”

“사무실로 오지 말고 집으로 와줄래?”

“그러지 뭐. 차고에 도착하면 전화할게 내려와.”

“알겠어.”

강시혁은 넥타이는 매지 않고 양복 속에 버버리 티셔츠를 입었다. 그리고 선그라스를 끼었다.

거울을 보았다. 넥타이를 맬 때보다는 역시 스포티해 보였다.

강시혁이 벤츠를 끌고 나인원 한남 아파트로 갔다.

전화로 이영남을 불러냈다. 그런데 이영남은 눈 위에 반창고를 붙이고 나타났다.

[어디서 다쳤나?]

“눈 위에 웬 반창고지?”

“넘어졌어.”

“조심해야지.”

이영남이 운전대 옆의 조수석에 앉았다.

강시혁이 이영남을 쳐다보며 안전벨트를 매라고 하였다. 이 순간 강시혁은 이영남의 왼쪽 목에 긁혀있는 자국을 보았다.

[어디서 넘어졌기에 목까지 긁혀? 누구하고 싸웠나?]

강시혁은 더 이상 물어보지는 않았다.

강시혁은 인천공항을 향하여 출발을 하였다.

올림픽 도로를 달리며 물었다.

“사카모토 씨 숙박은 어디서 할 건가?”

“아, 그건 배동수 씨가 해밀톤 호텔로 정했어. 예약까지 다 했을 걸?”

“가까운데 잘 정했네.”

“호텔비와 식대는 K&B파트너스에서 YN엔터테인먼트사에 출자금 명목으로 보내준 2억 원에서 쓰기로 했어.”

“다 투자니까 써도 괜찮겠지. 사카모토 씨가 오면 잘해 주도록 해야겠지. 그런데 사카모토 씨는 미국에서 만났다고 했었나?”

“내가 사카모토 씨를 처음 만난 건 시카고의 디어본 스트리트 뒷골목에서 만났어. 그때 그 사람은 클럽에서 일하고 있었어.”

“참, 리틀 브라운이 시카고에 있는 유명한 음악대학인 콜롬비아 칼리지 시카고를 나왔다고 했지?”

“우리는 학생이었고 사카모토 씨는 이미 유명했던 사람이었어. 그 후 뉴욕에서도 만나고 그랬는데 악기는 못 다루는 게 없는 사람이야. 생활방식이 좀 무질서해서 그렇지.”

“진짜 예술가인 모양이네.”

공항에 도착하였다.

강시혁은 사카모토 씨를 잘 모른다. 얼굴을 아는 사람은 이영남 뿐이었다.

마침내 입국하는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다. 강시혁은 사카모토씨를 잘 모르지만 여행용 캐리어를 끌고 오는 수염 난 남자가 사카모토 씨라는 것을 바로 알았다. 다른 사람들에 비해 유별나게 티가 나기 때문이었다.

이영남이 좋아서 두 손을 들고 소리쳤다.

“사카모토 상!”

“오, 이영남! 반갑스무니다.”

두 사람은 서로 포옹을 했다.

강시혁이 옆에서 보니 사카모토 씨의 수염은 정말 굉장했다. 자본론이란 책을 쓴 독일의 철학자 칼 마르크스 같았다.

이영남은 사카모토 씨에게 몇 마디 인사를 나누고 강시혁을 소개했다. 영어로 소개했다.

“같이 사모펀드사를 설립해 운영하는 사람입니다. 서로 인사하시죠.”

강시혁이 웃으며 손을 내밀어주었다.

“반갑습니다. 강시혁입니다.”

“오, 강시혁 선생! 교바시 보디가드사의 이이다 유키 사장에게는 말씀 잘 들었습니다. 일본 야쿠자 일곱 명을 혼자서 때려 눕혔다지요? 역시 체격이 아주 좋습니다.”

“하하, 싸우긴 했어도 때려눕힌 건 아닙니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저는 일본의 클럽에서 일하면서 야쿠자들에게 무척 시달렸습니다. 그놈들은 인간쓰레기 같은 놈들입니다. 한국엔 그런 놈들이 없죠?”

이영남이 호들갑을 떨며 말했다.

“사카모토 상! 한국에도 조폭들은 있습니다. 하지만 사카모토 상이 계실 이태원 관광특구에서는 성가시게 하는 놈들은 없을 겁니다. 그 거리는 이 형님이 꽉 잡고 있으니까요.”

“오, 그렇스무니까?”

그러면서 사카모토 씨는 강시혁의 얼굴을 다시 한 번 쳐다보았다.

이영남은 신이 나는지 한마디 더했다.

“이 형님은 용산 경찰서의 방범위원이기도 합니다.“

“오우. 제가 한국생활을 편하게 할 수 있을 것 같네요. 감사하무니다.”

강시혁과 이영남은 사카모토 씨를 주차장으로 안내했다.

사카모토 씨가 벤츠를 보고 소리쳤다.

“오우, 구루마가 요이! (차 좋습니다).“

강시혁이 운전을 하며 올림픽 도로를 달렸다.

사카모토 씨는 강변의 아파트 숲을 바라보며 말했다.

“한국은 발전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약동하는 기운이 느껴집니다.”

“일인당 소득은 이제 일본을 넘어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아시아의 축복입니다. 참, 그런데 교바시 보디가드 사장님이 강 선생을 만나면 안부 전해주라는 말을 했습니다.”

“고맙군요. 교바시 보디가드 사장님도 잘 게시죠?”

“잘 계십니다. 다음 달에 한일 범죄예방 심포지움이 있어 한국에 오신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오, 그래요? 한국에 오시면 한번 만나봐야겠군요.“

강시혁과 이영남은 사카모토 씨를 해밀톤 호텔로 안내했다.

그리고 방을 배정받고 키를 받은 후 K&B파트너스 사무실로 안내하였다.

“오, 이런 훌륭한 사무실도 갖추고 대단하십니다!”

강시혁은 변상철과 배동수를 불러 소개를 시켜주었다.

“이분은 K&B파트너스의 부사장입니다. 사카모토 선생이 이태원 클럽에서 일하게 된 것은 이분이 주선을 했습니다.”

“오, 고맙스무니다. 변 선생!”

“그리고 이 분은 K&B파트너스에서 출자하여 만든 YN엔터테인먼트의 사장입니다. 애니메이터입니다.”

“오, 그러세요? 앞으로 미야자키 하야오 같은 세계적 애니메이터가 되시기 바랍니다.”

배동수도 웃으며 서투른 영어로 한마디 했다.

“그러기 위해선 사카모토 선생이 히사이시 조가 되어주실 수는 없겠습니까?”

미야자키 하야오는 미래소년 코난이란 만화영화를 만든 세계적 애니메이션 감독이다.

그리고 히사이시 조는 미야자키 하야오를 도와 많은 애니메이션 음악을 작곡한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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