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화 싹트는 감정 (4)
(178)
다음날 펀드매니저 김진석 씨가 금융위원회를 다녀왔다.
김진석 씨는 금융투자업 등록신청 확인서를 들고 왔다. 등록완료까지는 시간이 걸리는지 등록신청 확인서였다.
[이제 이것 가지고 세무서에 가면 되는 건가?]
강시혁은 법인 등기서류와 인감증명, 그리고 금융투자업 등록 신청서류 등을 들고 용산 세무서를 갔다.
용산 세무서에서는 창구 직원이 사업자 등록이 나오려면 이틀 정도 기간이 걸린다고 하였다.
[건대 앞에서 분식집 사업자등록을 낼 땐 당일에 내어주었는데 법인은 바로 안 되는 것 같네.]
이틀 후에 사업자등록증이 나왔다.
강시혁은 이걸 들고 기업은행을 갔다. 자기 통장을 내밀며 법인전환을 신청했다.
“개인통장을 법인통장 전환하는 건 복잡합니다. 차라리 통장을 새로 만들죠?”
은행 창구 직원이 이렇게 말했다.
그래서 강시혁은 법인통장을 새로 만들고 OTP카드가 아닌 OTP단말기를 받았다.
강시혁은 법인설립을 위해 만들었던 개인통장의 잔액을 모두 법인통장으로 이체시켰다.
10억의 자본금중에서 사무실 임대보증금과 집기구입비 등 그동안 쓴 돈을 제외한 나머지 금액을 모두 이체했다.
그리고 여기서 다시 2억을 YN엔터테인먼트로 보내고 YN엔터테인먼트 설립시 빌려주었던 2억원은 되돌려 받았다.
이렇게 해서 법인설립에 따른 모든 행정절차가 마무리되었다. 이 소식을 듣고 변상철과 배동수, 그리고 새로 들어온 김진석 등이 모두 좋아했다.
이영남에게도 알려주었다.
이영남은 요즘 경찰서를 다녀온 후로는 말이 없어졌다. 자기 방에서 나오지도 않고 해드폰을 끼고 음악만 들었다.
강시혁이 사모펀드사나 엔터테인먼트사가 모두 법인등록과 사업자등록을 마치고 법인통장도 다 만들었다고 했다. 이영남은 빙긋 웃기만 하고 별다른 반응은 보이지 않았다.
강시혁은 첫 번째로 전체 회의를 소집했다.
이영남과 변상철, 배동수와 김진석이 상담실로 모였다.
“사모펀드사와 엔터테인먼트사의 법인설립과 사업자등록증이 만들어졌습니다. 법인통장도 만들어졌습니다. 이제부터 사업을 해나가면 됩니다.”
모두 상기된 표정으로 강시혁의 얼굴만 쳐다보았다.
“먼저 K&B파트너스는 주식투자를 해야 되니까 증권사 법인계좌를 만들도록 합시다.”
이 말에 김진석이 말했다.
“법인 증권계좌는 비대면 발급이 안 됩니다. 사장님이 한번 증권사를 다녀오셔야 할 것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법인계좌를 트는데 필요한 서류는 김진석 씨가 챙겨 주세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증권사에 직접 문의해 보겠습니다.”
“현재 K&B파트너스의 자본금은 10억인데 YN엔터테인먼트 출자금 2억 원과 사무실 임대보증금 5천만 원과 그동안 사무실 집기와 경비를 쓴 것이 있어서 우리가 활용할 수 있는 자금은 7억 정도 될 겁니다.”
“그렇습니다. 사무실 운영비도 남겨놔야 하기 때문에 가용자금은 7억 원으로 봐야합니다.“
“증권사 법인계좌가 만들어지면 투자처를 말씀해 드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YN엔터테인먼트는 사카모토 쯔요시 씨가 연주할 곳을 알아보았습니까?”
배동수가 말을 하려고 하는데 변상철이 먼저 말했다.
“윤진형이가 있는 클럽에서는 벌써부터 포스터까지 제작하여 홍보하고 있습니다.”
배동수도 말했다.
“저는 홍대 앞 클럽 한군데를 교섭했습니다. 그리고 방송국도 알아보려고 어제는 여의도 KBS방송국 본관 5층 복도에서 하루 종일 기다리기도 했습니다.”
“아니 왜 복도에서 하루 종일 기다려요?”
“전에 애니메이션 제작하면서 알게 된 방송국 PD가 있습니다. 이분 만나려고 방송국엘 갔었습니다. 본관 5층 복도에 가니까 가수들과 기획사 매니저들로 바글바글했습니다.”
“홍보 때문에 그런가요?”
“그렇죠. 신곡이 나오면 CD 만들어 방송국부터 돌려야 하니까요. 방송국에서 틀어주지 않으면 아무리 노래를 잘 불러도 안 뜨는 세상 아닙니까.”
“본관 5층이 음악담당 PD들이 근무하는 곳인 모양이군요.”
“예. KBS 본관 5층 복도는 KBS의 제2 FM과 제2 라디오 사무실로 통하는 복도라 그렇습니다.”
“하긴 방송국에서 노래를 틀어줘야 콘서트는 물론 밤무대라도 뛸 수 있을 테니까.”
“그렇습니다.”
“그리고 사카모토 쯔요시 씨가 와서 일본 아이돌 가수를 초청하려면 많은 예산이 들어갈 겁니다. 그건 여기 계신 이영남 씨가 추가 투자를 해줄 겁니다. 내가 엔터테인먼트사를 YN엔터테인먼트로 상호를 정한 것은 이영남 씨의 추가 투자를 유도하기위해 그렇게 했던 것입니다.”
모두 이영남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이영남이 빙긋 웃었다.
회의가 끝나고 강시혁은 바로 영빈관으로 돌아왔다.
자기의 본업은 어디까지나 삼방그룹 비서실 대리라 오래 자리를 비워둘 수는 없었다.
그래도 여기에 돌아오면 편했다. 자기의 살림집이 여기 지하실에 있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지하실이고 오두막집이라도 이 세상에 자기 집보다 편한 곳이 어디에 있겠는가.
이영남의 전화가 왔다.
“형! 영진 누나한테 내 이야기 안했지?”
“무슨 이야기?”
“축제에 참석하고 경찰서 갔었다는 이야기 안했지?”
“아, 그거? 안 했어. 그런 이야길 왜 해.”
“그런데 갑자기 일신홀 음악회에 가자고 하네.”
“거긴 클래식만 한다며? 영진 상무가 클래식을 좋아하니 그런가보네. 동생이 좋아서 그렇겠지. 나도 함께 가기로 했어.“
“형도?”
“경호해야 하잖아.”
“그럼 우리 셋이 음악회 참석하는 거네.”
“그런 셈이네. 하하.”
“정말 형이 우리 친형이면 좋겠다. 그럼 가족들끼리 보러가는 건데.”
“하하. 친형 못지않게 역할을 다해줄게.”
강시혁은 이영남에겐 확실히 점수를 땄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점수가 경호원으로서의 점수라면 상관이 없겠지만 다른 마음으로 자기를 좋아한다면 그건 받아들일 수가 없는 것이다.
이놈을 어떻게 남자답게 만들 수 없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사무실에 마초같은 변상철이 있으니까 변상철과 같이 지내다보면 좀 더 씩씩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형! 그리고 사카모토 쯔요시 씨가 오면 같이 공항엘 갈래?”
“시간이 있으면 가지.”
“그런데 내차보다는 영빈관 벤츠를 이용하면 안 될까?”
“벤츠 이용은 회사 공식 행사여야 하는데..... 왜? 람보르기니로 가면 더 좋잖아?”
“그 차는.....”
“왜? 운전하기 싫어서? 운전은 내가 해주지. 나야 비서실 대리지만 경호요원 외에 의전도 담당하는 사람이니까 운전도 잘하잖아......”
“그 차는......”
“고장 났나?“
“친구가 빌려갔어.”
“뭐라고? 친구가 빌려가? 그 비싼 차를 함부로 빌려주면 어떻게 하나? 원래 마누라하고 차는 남한테 빌려주는 게 아니라고 하잖아.”
“벤츠 차를 쓴다고 내가 영진 누나한테 말할게.”
그러면서 이영남은 전화를 끊었다.
잠시 후 김진석에게서 전화가 왔다.
“사장님. 김진석입니다. 증권사 갈 서류는 다 챙겼습니다.”
“그래요? 그럼 내가 가지러 가지요.”
“증권사 가실 때는 사장님 신분증도 가지고 가셔야 합니다.”
“알았어요. 신분증은 항상 가지고 다녀요.”
강시혁은 김진석에게 서류를 받았다. 서류가 제법 많았다.
법인 인감증명은 물론 주주명부 같은 것도 있었다.
서류를 가지고 나오다가 이영남 방을 열어보니 이영남은 자리에 없었다.
강시혁은 증권사에 가서 K&B파트너스의 계좌를 만들었다. 지점장하고 인사도 하였다.
증권사 통장과 OTP카드를 김진석에게 전달해주려고 사무실에 들렀다.
“통장 만들었으니 보관은 김진석 씨가 하세요.”
“알겠습니다. 그러면 바로 내일, 아니 내일은 토요일이니까 안 되고 월요일부터 증권거래 해도 되겠습니까?”
“천천히 해도 됩니다. 일단은 장명건설 주가를 잘 살펴보세요.“
“장명건설요? 거긴 세력들이 한번 해먹고 빠지고 있는 것 같던데요?”
“원래의 가격이었던 12,000원대에 내려오면 나에게 알려주세요. 문자로요.”
“무슨 정보가 있습니까?”
“정보는 불확실한데 확실해지면 알려드리죠.”
"세력이 한번 해먹은건 손대지 않는 법인데.....“
“재반등 가능성은 있습니다. 그렇게 알고 주가 움직임만 살피세요.”
"알겠습니다. 사장님. 그런데 저.....”
“하실 말 있어요?”
“이영남씨 아버지가 뭐하시는 분입니까? 상당한 재력가 집안 아들인 것 같던데요?”
“그렇게 보여요?”
“옷 입은 것 도 그렇고 미국서 학교도 다니고 아무튼 그렇게 보여서요.”
“차츰 알게 되겠죠.”
“자금 중 일부를 꺼내 코스피 200종목을 담가볼까요?”
“하지마세요. 정보 없이 함부로 들어가진 마세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쓰는 컴퓨터는 다중 모니터를 하나 사면 안 되겠습니까? 아무래도 창을 몇 개 띄우고 거래해야 하니까요.“
“그렇게 하세요. 내기 변상철 부사장에게 사주라고 말 하죠.”
“감사합니다. 사장님.”
말을 하고 있는데 이영남이 사무실에 들어왔다.
“어? 형 와 있었네.”
“어디 갔다 왔나?”
“이야기 끝나고 갈 때 내 방에 잠간 들려줘.“
“아니, 이야기 다 끝났어.“
그러면서 강시혁이 이영남의 방으로 갔다.
“형! 월요일 공항에 가는 건 영진 누나에게 말했어. 벤츠를 써도 된다고 했어.”
“그래?”
“누나는 사카모토 쯔요시 씨가 오면 회사 차원에서 일신홀 연주도 주선하겠다고 했어. 그리고 그룹사 임원들을 참석하라고 권한다고 했어. 회사 경비로 진행하겠다고 하던데?”
“오, 그래?“
“회사 임원들이 주말이면 잠을 자거나 골프나 치지 음악회나 미술품 전람회 같은 덴 잘 참석을 안 한데. 그래서 예술적 안목을 키워주기 위해 행사를 갖는다고 했어.”
“사카모토 쯔요시 씨는 재즈 음악가가 아닌가?”
“모르는 소리! 원래 사카모토 씨는 정규 음악대학을 나온 사람이야. 그의 스승 에디 히긴스도 시카고의 노스웨스턴 대학교 음악대학에서 전문적으로 음악을 배운 사람이고.”
“흠. 그럼 클래식과 재즈를 다 잘한다는 이야기네.”
“원래 잘하는 사람들은 경계가 없어.”
“나도 한번 사카모토 씨를 만나보고 싶네.”
“아, 그리고 영진 누나하고 일신홀 가는 건 내일인 것 잊지 마.”
“알고 있어. 영진 상무와 리틀 브라운이 음악 감상을 잘 하도록 철저히 경호를 해줄 테니까.”
강시혁이 나가다보니까 변상철이 책상에서 무언가 일을 하고 있었다.
“변 부사장! 김진석 씨한테 다중 모니터 한 대 사줘.”
“다중 모니터? 김진석 씨한테는 그런 게 필요하겠지. 알았어. 사줄게.”
토요일이 되었다.
오늘 저녁엔 일신홀에 가는 날이었다. 일신홀이 정확히 어디에 있는 가 검색해보았다.
정말 나인원아파트 출입구 쪽에 있었다.
[한남동 주민과 강남 주민들 많이 오겠는데? 이태원 바로 옆에 이런 홀이 있는지 몰랐네.]
그런데 이 일신홀은 일신방직의 회장이 만든 것으로 일신 문화재단에서 운영하는 것으로 나와 있었다.
[삼방 문화재단에서는 미술품에 관심을 두느라 음악홀은 만들지 못한 것 같군.]
강시혁은 재벌 회장들이 이런 문화사업에 관심을 두는 것은 잘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척박한 예술계에 재벌들이 관심을 갖는다면 예술 문화발전에도 도움은 되리라고 보았다.
강시혁은 저녁을 먹었다.
공연이 오후 7시 30분이면 끝나면 늦은 시간이 된다. 그래서 이영진 상무나 이영남도 저녁을 먹고 오리라고 보았다.
강시혁은 커피까지 마시고 치아를 닦은 후 양복을 입었다.
넥타이를 좀 밝은 것으로 매고 가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지난번에 신종화가 선물로 준 넥타이를 매었다.
거울에 자기 모습을 비추어 보았다.
[폼 나는데?]
선그라스도 끼고 갔으면 좋겠는데 음악회가 밤에 열려 아쉬웠다.
밤에 선그라스를 낄 수는 없기 때문이었다.
강시혁은 벤츠를 몰고 이영진 상무 집으로 갔다.
이영진 상무가 검정색 코트를 입고 집을 나왔다. 강시혁이 얼른 뒷문을 열어주었다.
“영남이는 바로 일신홀로 온다고 했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나인원 한남 아파트의 바로 앞에 있는 곳이라 그렇군요.”
그런데 이영진 상무가 차를 타다말고 강시혁이 맨 넥타이를 유심히 쳐다보았다.
“넥타이가 좋군요. 누가 선물이라도 한 것 같군요.”
“예. 선물 받은 것 맞습니다.”
“누가 눈썰미 있게 잘 고른 것 같군요. 혹시 여자가 골라주지 않았나요?”
“예. 맞습니다.”
이 말에 지금까지 웃는 표정이었던 이영진 상무의 얼굴이 갑자기 굳어졌다.
그러더니 다시 웃는 얼굴로 말했다.
“좋아하는 여친이 생기신 것 같군요.”
“그건 아니고요. 문화재단의 큐레이터 신종화 씨가 선물한 겁니다.”
“신종화 씨 가요?”
다시 한 번 이영진 상무의 얼굴이 굳어지는 듯 했다.
혹시 강시혁과 신종화가 둘이 서로 좋아하는 사이인가 하고 의심하는 것 같았다.
“예. 신종화 씨가 미술을 전공한 큐레이터라 확실히 감각이 다른 것 같았습니다.”
“혹시..... 신종화 씨를 좋아하시나요?“
이 영진 상무는 굳어진 표정으로 입술까지 깨물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