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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녀의 두 번째 남편-177화 (177/199)

177화 싹트는 감정 (3)

(177)

강시혁은 다시 담당 형사 앞으로 왔다.

“동생은 만났습니다. 그런데 팔을 물렸다는 경찰관은 괜찮은가요?”

“글쎄요.”

“합의를 하면 안 되겠습니까?“

“물린 경찰이야 합의를 해도 되지만 공무집행을 방해한건 처벌받을 수 있습니다.”

“어떻게 잘 안 되겠습니까?”

“글쎄요.”

옆에서 키보드를 두들기던 다른 형사가 기지개를 피면서 말했다.

“요즘 성소수자들은 기운이 센 모양이야. 경찰관을 물고. 킥킥. 거기 안 물리길 다행이네.”

“다른 덴 몰라도 거기 물리면 안 되겠지.”

“행사 하는 건 좋은데 걔들이 거리로 몰려나오니 그게 지랄이야. 툭하면 시위를 하니 우리 경찰만 고달픈 거지.”

“과장님 들어 왔나?“

“들어왔을걸. 오늘 당직 상활실장이라 들어왔을 거야.”

강시혁이 형사에게 말했다.

“저, 과장님을 제가 만나면 안 되겠습니까?”

“만나서 어떻게 하시려고요?”

“뭐, 선처를 부탁해야죠.”

“만나주지도 않습니다. 대기하고 계세요. 내가 조금 있다가 진술조서 작성한 것 보고하고 올 테니까.”

“물린 것이야 큰 상처가 아닐 테니 우리가 용서를 빌고 어떻게 훈방이 안 될까요?”

“밖에 나가 계세요. 우리가 연락할 테니까요. 혹시 명함 가진 것 있어요?”

강시혁이 삼방그룹 비서실 대리의 명함을 줄까 하다가 K&B파트너스 대표이사 명함을 주었다.

형사가 명함을 쳐다보았다.

“K&B파트너스? 파트너스가 뭐하는 회사입니까?”

“사모펀드사입니다.”

“알겠습니다. 멀리가진 마시고 근처에 계세요.”

그래서 강시혁은 조사계 사무실을 나왔다.

경찰서는 어디 가서 쉴 곳도 마땅치 않았다. 복도에서 왔다 갔다 하면서 스마트폰만 봤다.

기다리는 것처럼 지루한 것은 없었다.

컴퓨터 게임을 하면 한 시간 정도야 금방 가버리지만 경찰서에서 기다리는 건 정말 지루하고 따분했다.

일단 경찰서 밖으로 나왔다.

경찰서 밖으로 나오니 바로 맞은편에 GS25 편의점이 있었다. 여기서 음료수 한통을 샀다.

그런데 물었다는 것은 뼈가 부러진 것도 아니니까 크게 문제가 안 될 것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구나 성소수자는 따지고 보면 불쌍한 아이들일 텐데 잡아넣는다는 것도 능사는 아닐 것으로 보았다.

성소수자를 구치소나 교도소로 넘어가게 하면 오히려 감방생활에서 오는 나쁜 일도 벌어지게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경찰서 과장도 자식을 기르는 사람이라면 이영남 같은 젊은 성소수자를 감방까지 보내게 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았다.

또, 이영남은 무슨 파렴치범이나 강력범도 아니었다.

단지 시위를 요란하게 하여 출동경찰과 충돌한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었다.

전화벨이 울렸다. 형사가 불렀다.

강시혁이 단숨에 달려갔다.

강시혁이 형사 앞에서 눈웃음을 치며 말했다.

“어떻게 잘 됐습니까?”

“토끼 용궁에 갔다 온 줄이나 아세요. 오늘 시위 때문에 걸려온 사람이 많아서 과장님이 훈방조치 하라고 했으니 그런 줄 알아요.”

“아이고, 고맙습니다. 형사님.”

“신병 인수서 쓰고 데려가세요.”

“손목을 물렸다는 경찰관을 만나지 않아도 될까요?”

"퇴근했어요.“

“아이고, 이거 미안해서 어떻게 하나.”

그러면서 강시혁이 편의점에서 사온 음료수 박스를 형사의 책상위에 올려놨다.

“아, 이게 뭡니까. 가져가세요.“

그러면서 형사는 강시혁의 버버리 티셔츠를 유심히 쳐다보았다.

“음료수는 목마를 때 드세요. 그런데 과장님께 인사를 안 드리고 가도 될까요?”

“뭐, 그럴 필요까지야.... 계장님 계시니 계장님에게나 고맙다고 하세요.”

계장은 호리호리하고 완전 대머리인 50대 후반으로 보였다. 경감이었다.

형사가 퀴어 축제 중 소란을 피워 잡혀들어 온 이영남의 보호자라고 강시혁을 소개했다.

강시혁이 허리를 크게 굽혀 인사를 하였다.

“이영남의 형 되는 사람입니다. 훈방으로 조치해줘서 고맙습니다.”

“요즘 젊은 애들은 취향이 이상해 큰일입니다. 동생한테 이상한 행사 같은 데는 다니지 말라고 타이르세요.”

“꼭 그렇게 하겠습니다.”

강시혁은 또 한 번 크게 허리 굽혀 인사를 하였다.

강시혁이 형사와 악수를 하며 말했다.

“저도 동네에서 방범위원을 하고 있습니다.”

“오, 그러세요?“

“경찰관님들이 참 밤낮으로 고생이 많습니다.”

형사는 미소를 지으며 빨리 가라고 손짓을 하였다.

강시혁이 신병인수서를 쓰고 이영남을 데리고 나왔다.

“고생했지?”

“금방 나왔네! 형이 방범위원이라 그런가?”

“경찰서 계장한테 약속을 하고 나왔어. 이상한 행사엔 나가지 않는다는 약속을 했어.”

“그 축제가 이상한 축제인가? 소수자들도 인권과 권리는 있는데! 형은 그렇게 생각 안하지?”

“응? 나, 나는 그......”

강시혁은 말을 얼버무렸다.

퀴어 축제를 이상한 축제라고 해버리면 이영남이 토라져버릴 것 같아서였다.

재벌의 아들인 이영남과 등지고 살 필요는 없었다.

사람들은 삼방그룹 이건용 회장을 ‘건 드레곤’이라고 불렀다. 이영남은 말하자면 건 드레곤의 새끼인 헤즐링인 셈이었다.

강시혁은 미래에 대한 투자를 잘 하려면 이영남에게도 물론 잘 보여야 했다.

그래서 말을 얼버무린 것이었다,

“형! 아버지나 영진 누나에게는 내가 경찰서에 들어왔다고 말 안했지?”

“안했어. 그건 걱정 마.”

“고마워 형!“

그러면서 이영남이 강시혁을 와락 껴안았다.

[얘가 징글맞게 또 이러네!]

“배고프겠다. 밥 안 먹었지?”

“어디 가서 먹고 갈까?”

“경찰서 앞에 설렁탕 집이 있던데 거기로 갈까?”

“좋아.”

그래서 둘은 종로경찰서 앞에 있는 설렁탕 집으로 갔다.

설렁탕을 먹으며 강시혁이 말했다.

“오늘 새로 입사한 김진석이 금융위원회 등록하러 가려다가 못 갔어. 리틀 브라운의 경력증명서가 필요하거든.”

“사무실 책상 서랍에 있는데......”

“내일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김진석에게 줘. 금융위원회 등록을 빨리해야 사업자등록을 내니까.”

“알았어. 그리고.....”

“그리고 뭐?”

“축제 행사에 간 것도 아무한테나 말하지 마.”

“그걸 뭐 자랑이라고 이야기 하나? 안 해. 내 머릿속엔 K&B파트너스를 어떻게 키우나 하는 생각뿐이야.”

“약속하는 거지?”

“약속할게.”

“그럼 새끼손가락 걸어.”

[이놈은 어느 땐 깜짝 놀랄 경영감각을 보이기도 하지만 어느 때는 꼭 철딱서니 없는 초딩 같아.]

강시혁은 웃으면서 자기 오른손의 손가락을 내밀어주었다.

“손가락을 거는 대신 나도 리틀 브라운에게 약속을 받을 것이 하나 있어. 말해도 괜찮지?”

“뭔데?”

“앞으로 그런 행사에 나가 않는다고 이 형하고 약속해줄래?”

이 말에 이영남의 안색이 확 변했다.

“그건......”

“알아. 그건 리틀 브라운의 개인문제고 취향의 문제라 내가 간섭할 것은 못되지만 경영자로서는 불리하기 때문이야. 또 부모님도 아시게 되면 실망이 클 것 아닌가.”

“난 아버지가 일구어놓은 삼방그룹 계열사 경영은 싫어.”

“앞으로는 리틀 브라운도 누나를 도와 일해야지.”

“나는 제조업하고는 맞지 않아.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일구어놓은 삼방그룹의 전자, 화학, 전기 등은 모두 제조업 아니야? 나는 엔터테인먼트 쪽에 관심이 있어.”

“엔터테인먼트 쪽도 좋지. 미래에 각광을 받을 산업이지. 아무튼 열심히 해보고 축제참가 문제는 지혜롭게 대처하면 되겠지. 맥주 한 병 할까?”

“차를 가져왔어.”

“오, 그래?”

강시혁은 여태껏 이영남과 어울려 지냈어도 이영남의 차를 보지 못했다.

이영남은 이태원과 붙어있는 한남동 나인원 아파트에 살기 때문에 항상 걸어왔기 때문이었다.

“형, 오늘은 내가 한잔하고 싶어. 미안하지만 대신 운전 해줄래?”

대리 운전이야 강시혁의 주특기였다.

“해 주지. 리틀 브라운이 오늘 많이 놀라고 피곤했을 테니까 해주지. 그럼 한잔 해. 나는 사이다나 한잔 할 테니까.”

강시혁은 수육 한 접시와 맥주 한 병을 시켜주었다.

이영남은 배가 고팠던 것 같았다. 설렁탕 한 그릇을 다 먹고도 수육을 아주 잘 먹었다.

“맛있는데?”

“이 설렁탕 집은 120년 된 집이야. 식객 허영만 화백의 백반기행에도 나왔던 집이야. 그러니 많이 먹어.”

강시혁은 이영남이 먹는 모습을 보고 재벌이나 일반 평민이나 먹는 것은 똑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식사를 하고 나왔다.

“차는 어디다 두었지? 이 근방인가?”

“아니, 광화문 새문안 교회 뒤편에 있는 유료주차장에 넣어 놓았어.”

“아휴, 그럼 먼데? 아, 행사가 광화문에 있어서 거기다 주차시켰구나. 할 수 없지. 걸어가자.”

강시혁은 평상시 밥도 빨리 먹었지만 걸음도 빨랐다.

대학 다닐 때 알바에 늦게 가면 사장들이 싫어하기 때문에 이렇게 된 것 같았다.

“형! 같이 가!”

그러면서 이영남은 강시혁에게 팔짱을 끼었다.

평상시 같으면 팔짱을 끼어도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런데 오늘은 퀴어 축제에 나간 놈이 팔짱을 끼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팔을 슬며시 뺐다.

새문안 교회 뒤에 있는 주차장에 도착했다.

강시혁은 이영남의 차를 보고 놀랐다. 청색의 람보르기니 우루스였기 때문이었다.

강시혁은 대리 뛸 때도 이 차는 운전해보지 않았었다.

“익! 차 좋은데?”

이렇게 4억대가 넘는 차를 운전하려면 여간 조심이 가는 것이 아니었다.

만약 조금이라도 잘못하여 어디 긁히기라도 하면 낭패를 본다.

이영남은 뒷좌석에 앉지 않고 강시혁이 앉은 운전대 옆에 앉았다.

[이 자식이 이런 차를 몰고 다니니까 양아치들이 따라붙지.]

차는 역시 좋았다.

강시혁은 이 차가 자기 차가 아니지만 람보르기니를 운전하니까 운전의 끝판왕인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달릴 때마다 다른 차 기사들이 강시혁이 운전하는 차를 쳐다보았다.

차가 광화문을 지나 시청 앞에 이르자 이영남은 어느새 졸고 있었다.

길거리 행사에 참여하고 유치장까지 들어갔었으니 피곤했을 것이다. 거기다가 수육에 맥주까지 걸쳤으니 곯아떨어질 만 하였다.

서울역 앞에서 신호에 걸렸다. 강시혁은 슬쩍 이영남을 쳐다보았다.

고개가 꺾인 채 자고 있는 이영남을 쳐다보니 좀 불쌍한 생각이 들었다.

[에효. 저래가지고 람보르기니를 몰고 다니면 뭐하나.]

차가 나인원 한남 아파트에 도착했다.

그제야 이영남은 잠이 깨었다.

나인원 한남의 지하주차장엔 역시 고급 외제 차들이 많았다.

차에서 내렸다.

“리틀 브라운! 오늘 고생했어. 집에 가서 샤워하고 푹 자.”

“형! 고마워. 형이 안 왔으면 난 오늘 유치장에서 밤 샜을 거야.”

그러면서 이영남은 강시혁을 또 껴안았다.

강시혁은 이영남의 등을 두 번 토닥거려주고 몸을 뺐다.

그리고 손을 흔들고 이태원 쪽으로 나가는 출구로 갔다.

강시혁이 영빈관으로 돌아왔다.

벌써 밤 10시가 넘었다. 그래도 운동은 해야 할 것 같았다.

바벨운동을 하고 유튜브 동영상에 나오는 발차기 연습을 하고 침대에 누었다.

침대에 누워 스마트폰을 보고 있는데 이영진 상무의 카톡이 왔다.

“혹시 영남이를 오늘 만난 적이 있습니까?”

강시혁은 정신이 퍼뜩 들었다.

[혹시 축제 행사에 나간 걸 눈치 챘나?]

강시혁은 대답을 회피하고 말을 돌렸다.

“영남이를 만나야 할 일이 있습니까?”

“영남이가 지금 통화가 안 되네요.”

“집에 잘 있을 겁니다. 술 한 잔하고 잠이 들었는지 모르겠습니다.”

“TV뉴스에서 보니까 어떤 행사에서 영남이 같이 생긴 청년이 경찰과 충돌하는 장면이 있더군요. 혹시 영남이가 거기 나갔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죠?”

“잘 모르겠는데요.”

강시혁은 거짓말을 해서 양심에 좀 찔리기는 하였다.

나중에 이영진 상무가 알게 되면 자기에게도 속였다고 서운하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바른대로 이야기 할 수는 없었다.

“영남이가 강 대리님을 많이 따르고 의지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자주 챙겨주시기 바랍니다.”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혹시 내일 영남이를 만나면 누나가 이번 토요일에 일신홀에 같이 가잔다고 말 해주세요. 바이올린 연주회가 있다고 누가 그러네요.”

“일신홀요? 알겠습니다. 그런데 일신홀이 어디에 있습니까?”

“나인원 아파트 앞에 있어요. 클래식 전문 공연장에요.”

“아, 그렇습니까?”

강시혁은 그런 홀이 있다는 것을 듣지 못했다.

“전에는 영남이와 함께 거기 프리즘 콘서트도 참석하곤 했는데 제가 경영에 참여한 이후로는 잘 들리질 못했네요.”

“역시 영남이를 챙겨주시는 분은 상무님 밖에 안 계신 것 같습니다.”

“왜요. 아버님이나 어머님도 영남이에 대해 자주 묻습니다.”

“영남이는 따듯한 가족이 있어 복 받은 사람 같습니다.”

“그날 강 대리님도 함께 가시죠.”

“제가요?”

“아무래도 영남이와 저를 신변보호를 해주시면 좋겠지요. 아버지도 항상 저에게 외출할 때는 경호요원을 동반하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알겠습니다. 모시겠습니다. 그게 제 일이니까요.”

“그날 정장을 하고 오세요.”

“알겠습니다. 넥타이 매고 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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