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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녀의 두 번째 남편-176화 (176/199)

176화 싹트는 감정 (2)

(176)

변상철이 김진석에게 책상을 배정해 주었다.

책상은 파티션으로 칸막이를 한 변상철의 책상 바로 앞이었다. 김진석을 부르고 싶으면 목을 빼고 칸막이 너머에서 부르면 되었다.

김진석은 책상과 컴퓨터가 모두 새것이라 좋아했다.

또, 사무실 공간이 넓지는 않지만 인테리어가 잘 되어있어 만족해하는 눈치였다.

강시혁이 이영남의 방을 두드렸지만 대답이 없었다.

문을 열어보니 이영남은 외출을 했는지 자리에 없었다.

배동수는 오늘 자리에 있는 것 같았다. 배동수는 강시혁의 얼굴을 보자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셨습니까?”

“뭐해요?”

“그림 그리는 프로그램 하나 컴퓨터에 깔고 있습니다.”

“법인등기는 언제나 된다고 합니까?”

“조금 전에 법무사 사무장하고 이야기 했는데 한 이틀정도 있으면 나온다고 합니다.”

“오늘부터 출근하기 시작한 펀드매니저는 대학교 때 J-pop펜클럽에서 활동했답니다.”

“오, 그래요? 이따가 한번 만나봐야 되겠네요.”

강시혁이 변상철에게 말했다.

“난 영빈관에 일이 있어 먼저 갈게. 네가 김진석과 배동수를 데리고 점심 식사나 해라.”

“알겠어. 그렇게 하지.”

강시혁이 사무실을 나오는데 변상철도 쪼르르 따라 나왔다.

강시혁이 엘리베이터 앞에서 물었다.

“왜 나왔어? 나한테 할 말 있어?”

“저.... 이영남이 어디간줄 모르지?”

“몰라. 어디 갔는데?”

“퀴어 축제한다고 행사장에 나간 것 같아.”

“뭐라고? 퀴어 축제?”

“평소부터 이영남이 좀 이상하긴 했지만 그쪽 사람인줄은 처음 알았네. 형은 알고 있었지?”

“몰랐는데? 넌 그런데 어떻게 알았니?”

“우연히 전화하는 걸 들었어.”

“그래? 그렇다고 성소수자라고 단정할 수는 없겠지. 좀 더 지켜보자.”

강시혁도 이영남의 성향이 이상하긴 했지만 정체성이 그런 줄은 몰랐다.

이영남이 그렇다면 회장도 참 걱정이 많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룹 후계자는 아들인 이영남을 제쳐놓고 이영진 상무를 택했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영남이 아무리 혼외 자식이라고는 해도 아들은 아들이었다.

경영일선에 전진 배치를 하지 않은 것도 혹시 이런 이유 때문인가 하였다.

[이건용 회장도 가정적으로는 불행한 사람이네. 사위는 뽕쟁이였고 아들은 성소수자니 말이야. 양성인 부모의 입장에선 아들이 그렇다면 근심을 많이 하겠지.]

강시혁이 영빈관에 돌아와 서류를 정리하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조금 전에 만났던 펀드매니저 김진석이었다.

“사장님. 저 새로 입사한 김진석입니다."

”예, 무슨 일 있습니까?“

“혹시 통화 가능하겠습니까?”

“예, 말해보세요.”

“금융위원회에 등록을 하러가는데 아무래도 사장님 경력증명서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흠, 그래요?“

“한통 보내주실 수 있겠습니까?”

“예. 그, 그러지요.”

경력증명서라면 아무거나 내면 안 될 것이다.

문화재단이나 자기가 처음 직장생활을 했던 아영테크나 노원구에 있는 어르신 주간보호센터 같은데 경력은 안 될 것이다.

삼방그룹 비서실에서 금융 업무를 했다는 정도가 되어야 전문성을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좀 당황스럽지만 그걸 요구하니 주지 않을 수도 없었다.

김진석의 목소리가 계속 들렸다.

“이영남 감사님께도 제가 경력증명서가 필요하다고 전화로 말씀드렸습니다. 미국 투자은행에서 근무했던 경력증명서를 받아놓은 것이 이미 있으니 복사해서 주겠다고 했습니다.”

[이영남은 그런 것을 미리 준비했을 수가 있겠네. 삼방그룹의 계열사 사외이사나 또 다른 자리에 취임하는 경우가 간혹 있었을테니까.]

강시혁은 경력증명서를 어떻게 뗄까 고민했다.

그래서 일단 유길준 대리에게 상의하기로 했다. 전화를 걸었다.

“유 대리님? 강시혁입니다.”

“예, 유길준입니다.”

“전화통화 가능하죠?”

“예, 가능합니다. 참 지난번에 만났던 송진우 대리가 영빈관엘 한번 놀러가겠다고 했습니다.”

“예. 아무 때고 오면 됩니다. 전화 미리 주시고 오면 더욱 고맙고요.”

“송진우 대리는 강 대리님이 카리스마가 넘치는 사람이라고 하면서 앞으로 크게 될 것 같고 하던데요?”

“하하. 제가 커봐야 얼마나 크겠습니까? 그런데 저, 문의드릴 것이 있어서 전화 드렸습니다.”

“뭔데요?”

“경력증면서가 필요한데 발급 받을 수 없을까요? 이 지역 방범위원을 하다보니까 경찰서에 제출해야 된답니다.”

“그렇다면 재직증명서를 달라고 하지 왜 경력증명서를 달라고 하죠? 경찰 놈들도 이상한 놈들이네요.”

“그것까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 서류 발급은 총무 쪽에 이야기해야 되는가요?”

“아뇨. 그럴 필요 없습니다. 그룹 전산망에 사원번호 입력 후 들어가시면 됩니다.”

“아, 그렇습니까?”

“경력증명서 발급 란에 용도를 경찰서 제출용이라고 하고 출력시키면 됩니다.”

“아, 그렇습니까?”

“그런데 용도를 정확히 기재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발급이 거부될 수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강시혁이 그룹 전산망에 들어가 보니 과연 경력증명서를 발급 받을 수가 있었다.

다행히 증명서에는 비서실 근무로 되어있는데 담당업무에 대하여는 구체적으로 나오지 않았다.

혹시 VIP경호업무로 나오면 어쩌나 했는데 그런 것은 없었다. VIP경호업무라면 금융경력 인정이 안 되기 때문이었다.

출력된 증명서는 붉은색의 회사 대표이사 직인도 찍혀있었다.

강진석은 이것을 김진석에게 갖다 줘야지 하면서 봉투에 넣다가 흠칫 했다.

[설마 회사에서 경찰서에 전화는 하지 않겠지? 경력증명서를 요구했는지 전화는 안하겠지? 그런데 금융위원회에서 회사에 조회를 한다면?]

그러면 그것도 걱정이었다.

금융위원회에 왜 경력증명서를 제출했냐고 하면 K&B파트너스 등록 때문에 그랬다고도 할 수 없었다. 근무는 안하고 투잡 한다고 모가지가 날아갈지도 모를 일이었다.

[역시 삼방그룹에 근무하면서 몰래 회사 하나 꾸미기도 힘드네.]

강시혁은 금융위원회에서 경력조회는 안할 것으로 보았다.

서류가 가짜라면 조회할 수도 있겠지만 자기가 제출하는 서류들은 모두 이상이 없는 서류들이기 때문이었다.

출력한 서류를 다시 K&B파트너스 사무실에 있는 김진석에게 갖다 주려고 일어서는데 신종화에게서 전화가 왔다.

“안녕하세요? 문화재단의 신종화입니다. 오후에 영빈관 들리겠습니다. 이번 전시회 끝나고 처분이 안 된 그림 5점을 영빈관에 보관시키려고 합니다.”

“아, 그래요?”

“관장님 서명이 들어간 입고증은 가지고 갈게요. 오후에 어디 안가시죠?”

“안갑니다. 그런데 점심시간에 오시지 그랬어요? 지난번에 면접자 안내지원도 해줘서 점심한번 사려고 했는데.....”

“아니, 됐습니다. 그럼 오후에 봬요. 대리님!”

강시혁이 다시 K&B파트너스 사무실에 들렀다.

김진석은 변상철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업무 이야기인지 사담인지는 몰라도 열심히 이야기 하고 있었다.

“김진석 씨! 경력증명서 가져왔어요.”

“금방 가져오셨네요?”

김진석은 강시혁의 경력증명서를 보자 고개를 끄덕였다. 삼방그룹 마크가 찍혀있는 용지에 삼방그룹 대표이사의 직인이 선명히 찍혀있기 때문이었다.

변상철이 부러운 눈으로 이 경력증명서를 쳐다보았다. 자기는 이런 증명서가 없기 때문이었다. 자기는 잘 해야 침대공장의 경력증명서를 받는 정도에 불과했다.

[침대공장의 경력증명서를 가지고 금융위원회에 제출하면 너 어디 아프냐고 하겠지?]

변상철이 같이 점심이나 먹자고 했지만 강시혁은 사양했다.

미술품 가지러 문화재단에서 누가 오기로 했다고 둘러댔다. 사실은 혼자 있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또 영빈관 지하에 가면 반찬이야 부실하지만 편하게 식사를 할 수 있어 좋았다.

오후에 신종화가 왓다.

자기 차에 납작 단프라 박스 포장을 한 그림 5점을 싣고 왔다. 소품들이었다.

강시혁은 입고 확인서에 서명을 해주었다.

지난번 대작 유출사건 이후로 강시혁은 그림 입출고를 에프엠대로 명확하게 했다. 또 신종화 스스로도 지은 죄가 있어서인지 이렇게 했다.

“습기 안차고 곰팡이 설지 않게 잘 보관해 드리겠습니다. 큐레이터님!”

“고맙습니다. 강 대리님. 그리고 요즘 배동수 씨의 얼굴이 밝아져 고맙습니다.”

“좋은 현상이네요.”

“배동수 씨는 출근할 사무실이 있고 고정급여가 나온다고 좋아했어요. 또 지금 YN엔터테인먼트 대표이사라니까 친구들이 모두 취업시켜 달라고 한답니다.”

“하하. 그래요?”

그러면서 신종화는 자기 가방에서 포장된 뭘 꺼냈다.

“저.... 이거.”

“이게 뭡니까?”

“백화점에서 넥타이 하나 샀어요. 배동수 씨를 챙겨줘서 너무 고마워요.”

“아니, 뭘 이런걸.”

“그럼 여기 놓고 갈게요. 오늘 고맙습니다.”

그러면서 신종화는 영빈관 마당을 가로질러 밖으로 뛰어나갔다.

“헹, 넥타이를 선물로 다주네.”

포장을 뜯어보았다.

색깔이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큐레이터의 감각으로 골랐으니 심미안의 안목으로 잘 골랐으리라고 보았다.

강시혁은 대문을 잠그려고 마당을 걸어가는데 전화가 왔다.

모르는 사람의 전화였다.

“강시혁 씨입니까?”

굵은 남성 목소리였다.

[이크! 웬 굵은 남성 목소리네! 혹시 금융위원회에서 시원파악하려고 전화 한 건가?]

“예, 제가 강시혁입니다.”

“여기는 종로경찰서 조사계입니다.”

“예? 종로경찰서요?”

“혹시 이영남 씨를 아십니까?”

“예? 자, 잘 압니다. 무슨 일이 있습니까?”

“실례지만 이영남 씨와 어떤 사이입니까?”

“예? 지, 집안 형님뻘 되는데요.”

“이영남 씨가 지금 전경 폭행혐의로 유치장에 들어와 있습니다. 저는 조사계 박XX 형사입니”다.”

“전경을 폭행해요? 걔는 그럴 애가 아닌데요?“

“그럴 애인지 아닌지는 와서 보세요. 오실 때는 신분증 가지고 오셔야 합니다.”

그러면서 형사는 전화를 끊었다.

[이놈이 퀴어 축제에 가서 전경들과 충돌했구나! 그렇다고 폭행을 할 체질도 아닌데 무슨 폭행을 했나? 그런데 집에 알리면 삼방그룹의 아들이라 금방 풀려날 듯도 한데 내 이름을 댄걸 보니 집에 알리고 싶지 않았던 것 같네. 하긴 퀴어 축제에 갔다가 그런 일이 생겼다면 회장이 노발대발하겠지.]

강시혁은 얼른 주변을 정리하고 잠바를 걸쳤다.

그리고 현금도 좀 챙겼다. 유치장에 들어갔다면 사식이라도 넣어줘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전경이 다치기라도 했다면 문제는 복잡할 것 같았다.

그리고 이영남의 경력증명서도 받아야 김진석이 등록업무를 볼 텐데 그 일도 지연되게 생겼다.

[이 자식은 왜 이렇게 속을 썩여?]

강시혁은 벤츠를 끌고 종로경찰서를 갈까하다가 지하철로 가기로 했다.

택시도 잘 안 잡힌다면 지하철이 나을 것 같았다.

종로경찰서로 갔다.

조사계 사무실은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그런데 하필이면 박XX란 형사가 자리에 없었다. 옆에서 키보드를 치고 있는 다른 형사에게 물었다.

“박XX 형사님 어디 가셨습니까?”

“금방 있었는데? 곧 올 겁니다.”

그런데 이놈의 형사가 어디를 갔는지 한 시간이나 되어도 오지를 않았다.

그래서 유치장에 있는 이영남이나 만서 안심이나 시켜주려고 했다. 그런데 유치장 앞에 있던 경찰관이 면회가 안 된다고 했다.

“담당형사 만나셨어요?”

“어디 갔는지 들어오질 않네요.”

“담당형사부터 만나고 오세요.”

벌써 창밖은 어두워지고 있었다. 변상철의 전화가 왔다.

“리틀 브라운이 아직 안 들어오네. 경력증면서 받아서 김진석에게 줘야하는데.”

“오늘은 어려울 것 같으니 그냥 퇴근들 해라.”

“리틀 브라운에게 무슨 일이 있나?”

‘아냐. 일은 없어. 집안 행사가 있으니 그렇게 알고 퇴근들 해.“

“알았어. 그럼.”

담당형사가 들어왔다.

“오늘 들어온 이영남 씨 보호자 되는데요?”

“아, 이영남이!”

“폭행이라니! 개는 그럴 애가 아닌데요.”

“여기 들어온 사람들은 누구나 그렇게 이야기하죠. 하지만 얌전한 사람도 흥분하면 일을 저지르는 법입니다. 전경은 물론 경찰관 팔을 물었습니다.”

“팔을 물어요?”

“공무집행 방해와 폭행으로 들어왔으니 그렇게 아세요. 일단은 과장님께 조서 작성한 것 결재 올렸으니 그렇게 아세요. 이영남이 면회는 했나요?”

“담당 형사님부터 만나라고 해서 못했습니다.”

“내 이야기하고 만나보세요.”

강시혁이 이영남을 만났다.

“어떻게 된 거야?”

“경찰이 내 친구를 폭행해서 내가 말렸더니 나도 끌고 가려고 했어.”

“팔을 물었다며?”

“두 사람이 멱살을 잡고 끌고 가는데 같이 내가 안 가려고 하다가 그렇게 되었어. 아마 다치지도 않았을 거야. 이건 경찰이 과잉대응을 한 것 같아.”

“두 사람이나 다쳤다고 하네.”

“형! 내가 폭행 같은 건 전혀 모르는 사람인 걸 형도 알지? 흑흑.“

이영남은 역시 심약했다.

유치장에 한번 들어왔다고 펑펑 우는걸 보니 심약한 사람임에는 틀림없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 풀려나겠지. 밥은 먹었나?

“먹고 싶은 생각도 없어. 형, 나 이제 어떻게 되는 거지?”

“상해 부위가 심하다면 문제가 되겠지. 일단은 변호사를 만나서 의논을 해봐야지.”

“아버지가 알면 안 될 텐데. 흑흑.“

“아버지는 모르게 해야겠지. 영진 누나도 모르게 해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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