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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녀의 두 번째 남편-172화 (172/199)

172화 엔터테인먼트 회사 (4)

(172)

경영기획실 대리라는 사람은 밥도 얌전히 먹었다.

이 세상에 바쁠 것은 없다는 듯이 말도 천천히 했다.

“경영기획실이야 기업분석과 미래의 먹거리를 위한 사업계획 작성 같은 일을 하죠.”

“미래의 먹거리요? 그럼 삼방그룹은 앞으로 무엇으로 먹고 삽니까?”

“우선 기존사업을 더 발전시켜야겠지요. 삼방그룹에서는 이미 전자, 건설, 화학, 전기, 등 각종 사업을 펼치고 있는데 기술개발과 비즈니스 영역을 더 넓혀야겠죠.”

강시혁은 비서실 업무도 흥미로웠지만 경영기획실 업무도 흥미로웠다.

자기는 대졸 공채로 들어와 사원시절부터 근무한 경력도 없고 또 기업에서 실시하는 각종 교육 같은 것도 받은 사실이 없었다.

그래서 이들이 하는 일에 대하여 많은 관심이 간 것이다.

언젠가 영빈관에도 삼방그룹 회사의 전산망이 깔렸을 때였다.

회사의 공지 란에 들어가 보니까 교육 같은 것도 많이 있음을 보았었다. 대졸 신입사원 4박5일 교육, 신임 대리 연수교육, 이런걸 보면 부럽기도 했었다. 자기는 특채로 들어온 사람이기 때문에 이런 것은 거의 생략하고 지냈기 때문이었다.

옆에 있던 유길준 대리가 닭다리를 발라 먹으며 말했다.

“이 사람은 요즘 경전철 사업계획 세우느라 정신이 없어요.”

“경전철요? 그런 건 돈이 많이 들어가는 사업이 아닙니까?”

얌전히 닭 뼈를 발라먹던 경영기획실 송진우 대리가 말했다.

“모든 사업이 현금을 쌓아놓고 하는 사업은 없죠. 파이낸스를 일으켜야죠.”

“그, 그렇군요. 그런데 경전철을 어디에 놓는다는 겁니까? 그런 것은 코레일 같은데서 하는 사업이 아닙니까?”

“혹시 판교에 가본 적이 있습니까?”

“가봤죠. 좋던데요?”

강시혁은 판교를 가본 적이 있었다.

대리운전을 할 때도 몇 번 가보았지만 문화재단의 미술품 수송을 할 때도 한번 가보았었다.

그때 문화재단에서 새로 산 카니발 튜닝작업을 마치고 처음으로 미술품 수송을 해준 곳이 바로 판교에 있는 삼방전자 소프트웨어 연구소였던 것이다.

“판교의 경전철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뭐, 뭐라고요? 거기는 이미 도시도 완성되었고 고급아파트와 각 기업의 IT연구소가 즐비한데 어디에 경전철을 놓는단 말입니까? 천문학적 돈이 들어가겠네요.”

강시혁은 식사도 제대로 못하고 눈만 껌뻑였다.

“아아, 지상에 경전철 철로를 까는 방식은 아닙니다. 우리는 기둥을 박고 전선줄에 매달려가는 현가식(懸架式) 경전철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강시혁은 침을 꼴깍 삼켰다.

역시 엘리트들은 이런 거창한 사업을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지금 자기가 하고 있는 것은 작은 정보나 이용해서 돈을 벌겠다는 얕은 생각만 가지고 있었다.

정보를 캐치해 삼방그룹 계열사 주식이나 투자하던가, 아니면 일본의 한물 간 재즈음악가나 초청해 클럽 소개하고 커미션이나 챙기는 정도가 아닌가!

“그런데 판교같이 완성된 도시에 기둥을 박으면 됩니까? 나라에서 허가도 안 해주겠네요.”

“판교는 동판교와 서판교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서판교도 아파트 밀집지역이죠. 우리가 기둥을 박는다면 기존도로에 하면 안 되겠지요.”

“그야 그렇겠지요.”

“기둥을 박으면 돈도 많이 들고 미관도 흉하고 당국에서 허가도 안 해줄 겁니다. 우리는 판교에 있는 운중천을 이용할 계획입니다.”

“예? 운중천요? 그럼 개천 옆에 기둥을 박는단 말입니까?”

“맞습니다. 개천 자전거길 옆에 기둥을 박고 동판교에서 서판교로 가는 경전철을 놓는 거죠. 그리고 나중엔 이것을 인덕원까지 연결하는 거죠. 그렇게 되면 평촌에서 판교를 단숨에 가게 됩니다.”

“아.”

강시혁은 감탄만 했다.

옆에서 유길준 대리가 말했다.

“강 대리! 삼계탕 빨리 먹어요. 다 식게 생겼네.“

“아, 예. 먹겠습니다.”

경영기획실 송진우 대리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런데 이건 넘어야할 산들도 많습니다.”

“산이 또 있습니까?”

“환경영향평가나 교통영향평가도 해봐야 하고 당국의 하천 점용허가도 논의해봐야 합니다. 현재는 그냥 시뮬레이션 단계입니다.”

“그럼 꼭 한다는 것은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그런데 다른 나라들은 그렇게 경전철을 놓은 데가 있습니까?”

“있죠. 일본과 독일에도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지난달에 로지스틱스 사장을 모시고 일본에도 다녀왔고 다음 주에는 독일에도 한번 다녀올 예정입니다.”

강시혁은 중국 무한에서 만났던 차관 출신이라는 삼방 로지스틱스 사장이 생각났다.

“그 개종래, 아니 김종래 사장하고 말입니까?”

“예, 맞습니다.”

유길준 대리가 말했다.

“그 개종래가 여기 송 대리한테는 꼼짝 못합니다. 개종래가 유일하게 인정한 사람이 바로 송진우 대리 아닙니까?”

“예..... 그렇군요.”

세 사람은 다시 말없이 밥을 먹었다.

그런데 앞에 앉은 유길준 대리나 송진우 대리는 향후 강시혁의 인생행로에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해주게 되는 사람들이었다.

그것은 훗날 강시혁이 이영진 상무와 결혼을 하고 그룹을 장악했을 때 유길준 대리와 송진우 대리가 많은 역할을 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강시혁을 한나라 유방에 비유하고 유길준 대리를 그의 부하였던 소하에 비유하고 송진우 대리를 장량에게 비유했던 것이다.

그리고 K&B파트너스에 있는 변상철을 대장군 한신에 비유했다.

하지만 지금 강시혁은 일개 대리에 지나지 않았다.

출세를 위해 안간힘을 쓰는 영빈관 파견의 비서실 대리에 지나지 않았다.

강시혁이 삼계탕을 다 먹고 나서 말했다.

“참, 명함을 안 드렸네요.”

그러면서 강시혁이 자기 명함을 주었다.

강시혁이 명함을 주자 경영기획실 송진우 대리도 자기 명함을 주었다.

명함을 보고난 송진우 대리가 말했다.

“영빈관 파견이면 이태원에 계십니까?“

“그렇습니다.”

유길준 대리가 끼어들었다.

“강 대리는 원래 이영진 상무의 보디가드야. 이영진 상무님 댁은 물론 회장님 댁의 집안일도 수행하는 집사나 마찬가지인 사람이야. 실세중의 실세라고 할 수 있지.”

“아, 내가 한번 소문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이영진 상무 수행 중 일본에서 야쿠자 일곱 명을 때려눕혔다는 분이 이분이었구나. 어쩐지 운동하신 분처럼 체격이 좋더라.”

그러면서 송 대리는 강시혁을 다시 한 번 쳐다보았다.

강시혁이 웃으며 말했다.

“아, 일본 야쿠자는 완전히 와전된 이야기입니다. 혼자서 어떻게 일곱 명을 상대합니까?”

다시 유길준 대리가 말했다.

“야, 그뿐 인줄 아냐? 지난번엔 중국엘 갔을 때 중국 소매치기 잡은 소문도 있어. 소매치기가 이영진 상무의 가방을 훔쳐 달아나는데 바로 몸을 던져 소매치기범의 팔을 꺾어버렸다는 것 아니냐.”

“어, 그래?”

“우리는 지하철에서 소매치기범을 본다면 어떻게 할 것 같니? 소매치기한테 보복 당할까봐 그냥 못 본척하겠지?”

“아마 그렇겠지.”

“그런데 강 대리는 경호요원이라 역시 달랐어. 매의 눈으로 바라보고 표범처럼 달려들어 소매치기범의 팔을 순식간에 꺾어버린 거지. 너 같으면 그렇게 하겠냐?”

“못하지.”

“내가 한 말이 구라가 아니다. 못 믿겠으면 로지스틱스 사장인 개종래한테 물어봐라. 그날 개종래도 현장에 있었으니까. 너 다음 주에 개종래와 함께 독일 간다며?”

“저, 정말 물어봐야겠는데!”

강시혁은 사람들 별명을 붙이는 건 유길준 대리의 작품이 아닌 가 했다.

로지스틱스 김종래 사장을 개종래로 부른다거나 비서실 최 이사를 좀생이로 부르는 것은 모두 유길준 대리 작품인 것 같았다.

그러면서 유길준 대리는 묘하게 사람들을 편하게 하고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는 재주가 있었다. 또 상사들을 개종래나 좀생이로 부르지만 막상 부닥치면 꼬리를 살살 흔들며 눈웃음을 치는 것도 유길준 대리였다.

식사를 다하고 밖으로 나왔다.

강시혁은 영빈관을 가야한다며 송진우 대리와 유길준 대리에게 악수를 하였다.

송진우 대리가 가다가 돌아서면서 손을 흔들고 말했다.

“이태원 놀러 가면 연락할게요.“

“그러세요.”

강시혁도 손을 흔들어주었다.

강시혁은 지하철역에서 내리자 바로 K&B파트너스 사무실에 들렀다.

강시혁은 우중충한 영빈관의 지하에 있는 관리사무실보다는 여기가 좋았다. 여기 사무실은 7층 건물의 5층이라 창문 너머로 보이는 뷰도 좋고 밝은 햇빛도 들어와 좋았다.

강시혁이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며 시계를 보았다.

아직 2시밖에 되지 않았지만 문 앞에는 면접장 입구라고 쓴 커다란 종이가 붙어 있었다. 변상철이 컴퓨터로 뽑아 붙여 놓은 것 같았다.

사무실 안으로 들어오자 상담실 문에도 면접장소 라는 글씨가 붙어 있었다.

변상철이 자리에 있다가 일어나며 말했다.

“어! 왔어?”

“오늘 면접은 3명인가?”

“3명이야.”

“모두 응시하러 올까?”

“글쎄. 오겠지. 뭐. 그런데 기분이 좀 묘하네.”

“묘하다니?“

“형도 펀드매니저 지원자들 스펙 봐서 알겠지만 모두 대단하잖아.”

“학력도 좋고 어려운 자격증도 많이 땄고 영문과를 다닌 우리보다도 토플 점수도 좋던데?”

“그런 사람들을 우리가 면접 본다는 게 아무래도 웃겨서.”

“웃기다니?”

“얼마 전까지만 해도 형은 대리운전 하던 사람이고 나는 백수였잖아. 그런데 이런 사람들을 상대로 우리가 면접관이라고 떡하니 앉아있다는 게 웃겨.”

“현실이 그러면 할 수 없는 거지. 내가 대리운전을 하고 싶어서 했냐? 운이 없다보니 그렇게 된 거지.”

“그런데 오늘 면접 보러 온 놈들이 우리의 실체를 알고 합격시켜줘도 안 오면 어쩌지?“

“인연이 안 되면 할 수 없지. 그러면 서류심사에서 떨어진 놈들 중에서 골라보는 수밖에 없겠지.”

“그래도 안 오면?”

“그러면 우리끼리 펀드 운영하는 거지. 아니면 지금 있는 자본금 가지고 소규모 투자나 하는 거지. 나는 회사가 커지기도 전에 그놈들이 와서 근무해도 걱정이다. 리틀 브라운은 방에 있나?”

"아니, 조금 전에 나갔어. 면접 보는 데 자기가 있으면 방해밖에 더 하겠냐며 나갔어.“

“배동수는?”

“배동수도 나갔어. 애니메이션 제작 용역문제 때문에 나갔어. 애니메이션 제작은 어차피 여기서 힘드니까 외주를 준다고 하겠지. 그런데 배동수는 자꾸 스카모토 쯔요시 씨가 언제 오냐고 묻네?”

“다음 주에 온다고 했잖아.”

“애니메이션 주제가를 스카모토 씨에게 부탁하려는 모양인데 주제가가 뜨면 애니메이션도 같이 뜨나봐.”

“그럴 수도 있겠지.“

“그런데 배동수는 3시까지 여길 온다고 했는데 안 오네. 내가 면접시험 보러오는 사람들이 있으니 안내해 달라고 했는데. 사무실에 정말 아무도 없으면 유령회사처럼 보일 텐데.”

그런데 말이 끝나자마자 배동수에게서 전화가 왔다.

변상철의 스마트폰으로 왔다.

“상철이 형? 나요. 배동수요. 본사 회의에 가셨던 큰형님은 돌아오셨나요?”

“예. 방금 왔어요. 옆에 계세요.”

“그런데 3시까지 내가 사무실에 못 가게 될 것 같네요.”

“예? 뭐라고?”

“그래서 문화재단 신종화 한테 부탁했어요. 신종화가 지금쯤 우리 사무실에 도착할 때가 되었을 거예요. 안내는 나보다 여성인 신종화가 낫겠죠?”

“그, 그러면 우리야 좋지. 그런데 좀 미안한데.“

“미안해 할 것 없어요. 신종화는 오히려 형님들에게 미안해하는데요. 그럼 저 전화 끊을게요.”

변상철이 통화를 끝내고 강시혁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배동수는 여기 못 오고 문화재단 신종화가 온다고 하네. 신종화가 면접시험 안내 지원을 해준다고 하네.”

“신종화가 지원해주면 더 좋겠지. 그런데 삼방그룹 소속된 사람들이 이런 일에 매달려 회사에 미안한데?”

“더 열심히 일해주면 되겠지. 누가 또 알아? K&B파트너스가 회사가 커져 삼방 문화재단 갤러리 전시작품이라도 하나 사줄지?”

말하고 있는데 신종화가 들어왔다.

신종화는 난초 화분을 하나 안고 왔다.

“안녕하세요? 아휴, 사무실 깨끗하고 좋네요.”

“무겁게 웬 화분을 들고 다녀요? 이런 건 배달시키지.”

“배달시키면 늦을까봐 들고 왔어요. 사무실에 이런 것 하나쯤 있으면 좋잖아요.”

난초 화분엔 빨간 리본에 ‘축 발전, 삼방 문화재단 큐레이터 신종화’ 라는 글씨가 들어있었다.

그런데 신종화는 오늘 옅은 화장까지 하고 왔다. 세련된 여자가 더 세련되어 보였다. 배동수보다는 신종화가 안내하는 게 더 낫겠다고 생각했다.

신종화는 사무실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면접장소라고 글씨를 써 붙인 상담실에 자기가 들고 온 난초 화분을 갖다놓았다. 면접장 분위기가 더 살아났다. 신종화는 성깔은 있지만 확실히 센스 있는 여자였다.

강시혁이 웃으며 말했다.

“왔으니 사랑하는 애인 배동수 선생님 방도 구경하셔야지.”

“저기네요. SN엔터테인먼트란 표시가 있네요.”

“현재는 책상 두 개밖에 없습니다.“

“앉을 장소만 있어도 되겠죠.”

그러면서 신종화가 SN엔터테인먼트의 방문을 열어보았다.

책상 두 개에 컴퓨터 두 대가 있는 것을 보았다.

그런데 책상과 의자가 상당히 고급이었다.

문화재단에 있는 신종화가 쓰는 책상이나 의자보다 훨씬 고급이었다.

신종화가 의자에 앉아보며 말했다.

“어머! 좋다. 나도 여기 와서 근무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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