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화 엔터테인먼트 회사 (3)
(171)
강시혁은 사무실 입구에 동판으로 된 간판 두 개를 달았다.
문의 오른쪽엔 주식회사 K&B파트너스라는 간판을 달았다. 주식회사 K&B파트너스 라는 글자 밑에 또 작은 글씨로 영문 이름도 표기했다.
문의 왼쪽에는 주식회사 YN엔터테인먼트 라는 간판을 달았다.
이 간판 밑에도 작은 글씨로 영문을 표기했다.
변상철이 말했다.
“새로 간판 달았으니 기념사진 한 장 찍어야지.”
그래서 강시혁과 이영남, 그리고 변상철이 K&B파트너스 간판 아래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사진은 배동수가 찍어주었다.
강시혁이 말했다.
YN엔터테인먼트 간판 밑에 배동수하고 변상철이 서. 내가 사진을 찍어줄게.“
그런데 이영남이 자기도 같이 찍겠다고 하였다.
비록 YN엔터테인먼트 대표이사나 감사는 아니지만 이 회사는 자기가 장악을 하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이영남과 배동수, 그리고 변상철이 같이 찍었다.
강시혁이 변상철에게 말했다.
“오늘 찍은 사진은 현상해서 잘 보관해라. 회사의 역사에 들어갈 귀중한 자료들이다.”
“나도 그 생각을 하고 찍자고 한 거야.”
내일은 오후에 펀드매니저 면접이 있는 날이다.
면접은 강시혁과 변상철이 보기로 하였다. 이영남은 면접관 노릇을 하지 않겠다고 사양했다.
하긴 이영남은 면접관으로는 어울리지 않았다. 정장도 하지 않고 옷을 이상하게 입고 다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 옷이 싸구려 옷은 절대 아니었다. 명품 브랜드의 고가 옷이었다. 평범한 사람들은 함부로 입을 수 없는 옷들이었다.
그래서 이영남에게는 양아치들이 많이 꼬였던 것 같았다.
변상철이 강시혁에게 말했다.
“면접은 내일 오후 3시로 잡았으니 괜찮겠지?”
“좋아. 세 사람이라고 했나?”
“서류심사에서 다 걸러버리고 세 명만 추렸어. 거기서 형이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으면 골라봐.”
“이력서 보니까 모두 경력이 화려하던데? 우리는 말하는 폼과 관상이나 보면 되겠지.”
“옛날에 삼성그룹 이병철 회장이 사원 면접 때 옆에 관상쟁이를 모셔놓고 했다는 말이 맞아?”
“몰라. 나도 그런 말을 듣기는 했지만 설마 정말 그랬을까?”
변상철과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비서실 유길준 대리에게서 전화가 왔다.
“내일 오전 10시까지 비서실 들어오세요. 월례 회의가 있는 줄 알죠?”
“아, 내일인가요? 알겠습니다.”
강시혁은 내일 바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본사 월례회의에 참석하고 거기서 점심이나 먹고 오면 시간이 빠듯할 것 같았다. 3시까지 부지런히 와야 될 것 같았다.
강시혁이 이영남의 방엘 갔다.
“이 감사. 뭐하시나?”
강시혁은 이영남을 이 감사라고 불렀다.
이영남이 K&B파트너스의 감사이기 때문이었다.
이영남이 얼른 귀에 걸은 이어폰을 뺐다.
“이 감사! 난 내일 오전에 여기 못 오겠는데?”
“내일 면접은 어떻게 하고?”
“아, 면접은 오후 3시에 하니까 그 안에 올 거야. 본사 비서실의 월례회의가 있어.”
“그런 게 있었나?”
“한 달에 한번 회의가 있는 날이니 가봐야지.”
“영진 누나도 참석하나?”
“아니, 비서실장이 주재하는 회의야. ”
“그럼 가봐야 되겠네.”
“배동수한테 사카모토 쯔요시 씨가 온다는 말은 했나?”
“한번 한 것 같아.”
“배동수가 J-pop 펜클럽 애들을 안다고 하니까 홍보도 하고 홍대 쪽 클럽 연주도 주선해 달라고 하면 어떨까?”
“내가 지시하긴 그렇고..... 형이 해줄래?”
강시혁이 배동수를 전화로 불렀다.
배동수가 잠시 후 이영남의 방으로 왔다.
“부르셨습니까?”
“의자에 앉아 봐요.”
“네.”
배동수가 의자에 앉았다.
“일본의 재즈음악가 사카모토 쯔요시 씨가 여길 온다는 이야기는 들었죠?”
“예, 이 감사님한테 한번 들은 것 같습니다.”
“사카모토 씨의 초청은 YN엔터테인먼트 회사 초청으로 한 겁니다.”
“아, 그렇습니까? 이 감사님 개인 초청이 아니고요?”
“아니요. YN엔터테인먼트 초청입니다. 그래서 사카모토 씨의 항공료나 호텔 숙박비는 모두 YN엔터테인먼트에서 지불해야 합니다.”
“그, 그렇습니까?”
“그리고 사카모토 씨가 국내활동으로 출연료라도 받으면 YN엔터테인먼트 수입으로 잡으면 됩니다. 현재 윤진형이 나가는 클럽엔 며칠 나가기로 되어있습니다.”
“그런가요?”
“그런데 윤진형의 클럽만 나가면 시간이 많이 남아도니까 홍대 쪽 클럽 같은데도 알아보세요.”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사카모토 씨도 이름이 알려진 분이니까 J-pop동호회에도 사카모토 씨의 방한을 환영할 겁니다. 그리고 방송국에도 한번 알아보겠습니다. 음악프로의 게스트 출연이 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튼 사카모토 씨의 모든 출연료는 YN엔터테인먼트에서 수입 잡고 나중에 에이전트 수수료와 세금 원천징수 후 나머지 금액은 사카모토 씨에게 지불하면 됩니다.”
“하하. 그러면 우리가 연예인 기획사나 매니저 같은 역할을 하는군요.”
“이를테면 그런 셈입니다.”
“매니저 수수료가 얼마인지 알아봐야겠네요.”
그동안 가만히 있던 이영남이 끼어들었다.
“연예인 에이전트 수수료는 대개 10% 떼 갑니다.”
강시혁이 배동수를 쳐다보며 말했다.
“사카모토 씨의 호텔비나 항공료를 감안하면 크게 남지도 않을 겁니다. 하지만 사카모토 씨가 키운 일본 아이돌 그룹 가수들이 있으니 그때는 크게 콘서트라도 해서 돈을 벌수 있는 기회가 올지 모르겠습니다.”
“오, 좋으신 말씀입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일본어 공부도 해둘걸 그랬네요.”
“우리는 사카모토 씨가 오면 영어로 통합니다. 배동수 씨도 영어는 잘 하죠?”
배동수가 뒤통수를 긁으며 쑥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죄송합니다. 영어도 잘 못합니다. 오로지 애니메이션 만화만 그렸습니다.”
“여기 이 감사는 영어 잘하니 협조 받으면 될 겁니다.”
“알겠습니다. 형님.”
“그럼 나가서 일 봐요. 법인설립에 관한 서류는 법무사 사무실에 다 넘겨줬죠?”
“예, 넘겨주었습니다. 법인 등기는 다음 주에 나온다고 했습니다.”
“등기 나오면 바로 사업자등록증 받으세요. 엔터테인먼트는 펀드사와 달라서 관할 부처나 협회 같은데 등록 안 해도 될 겁니다.”
“나오면 형님께 보고하겠습니다.”
그러면서 배동수는 슬쩍 이영남의 눈치를 보았다.
배동수도 이영남이 누구인지를 어렴풋이 알기 때문이었다.
다음날 강시혁은 정장을 하고 본사로 갔다.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비서실은 회장님을 모시는 부서라 회장실 바로 옆에 있었다.
그래서 이곳은 가끔 회장에게 보고하러 들어오는 계열사 사장을 만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데 계열사 사장이 아닌 이영진 상무를 만났다.
이영진 상무는 키가 큰 외국인 두 명과 함께 걸어오고 있었다.
강시혁이 공손히 두 손을 앞으로 모으고 이영진 상무에게 인사하였다. 나이는 몇 살 강시혁이 많지만 직급 차이가 커 이렇게 공손히 인사하였다.
“안녕하셨습니까? 상무님.”
“어머! 강 대리님. 무슨 일 있어요?”
“월례회의가 있어서 왔습니다.”
“오, 그렇군요.”
그러면서 이영진 상무는 강시혁의 아래위를 쳐다보더니 넥타이를 유심히 쳐다보았다.
이영진 상무가 방긋 웃으며 말했다.
“그럼 일 보세요. 강 대리님.”
“넵 상무님.”
강 대리는 또 한 번 정중히 인사를 했다.
외국인 두 사람에게도 가벼운 목례를 해주었다.
회의장에 들어갔더니 모두 반가워했다.
강시혁이야 업무적으로 자기들과 부딪치는 것이 없어서 그런 것 같았다. 더구나 강시혁은 오너 집안일을 보는 문고리 비서라 다들 잘해줬다.
“어서 와요. 강 대리!“
뜻밖에도 중국 무한에서 만났던 안용석 과장을 만났다.
중국말을 잘하던 사람이었다.
“반가워요. 강 대리.”
“이제 완전히 한국으로 들어오신 겁니까?”
“무한엔 조선족 통역이 하나 들어왔어요. 그래서 나는 들어왔죠. 그런데 또 중국 서안으로 가게 될 것 같아요. 거기도 합자사가 생기기 때문에 장기 출장을 가야돼요.”
"바쁘시군요.“
“내가 사주팔자에 역마살이 끼어도 단단히 낀 모양이요.“
비서실장과 최 이사가 들어오자 다들 조용해졌다.
비서실장은 초등학교 교장선생님 같은 말만 하였다.
비서실 직원들도 자기계발을 위하여 한 달에 한 번씩 경영이나 경제관련 도서를 읽어라. 지각하지마라. 자리 이석하지마라. 하는 것들이었다.
그래도 모두 비서실장 말은 하나도 빠트리지 않겠다는 듯 다이어리에 메모들을 했다.
강시혁 역시 여기 보조에 맞추어 메모를 했다.
이어 최 이사도 한마디 했다.
최 이사는 비서실 직원들이 계열사를 방문할 때는 너무 목에 힘을 주지 말라는 말을 했다.
“비서실 직원들은 윗분들을 잘 모시고 계열사의 애로사항을 잘 들어야 유능한 비서실 직원이라고 할 것입니다. 내말 알아듣겠어요?”
“녜~”
모두 염소가 대답을 하듯이 하였다.
강시혁이 듣기에 녜~ 하는 소리가 메~ 하는 소리로 들렸다.
“그리고 일은 위에서 시키지 않더라도 스스로 찾아서 해야 합니다. 강시혁 대리를 보세요.”
강시혁의 이름이 갑자기 나오자 강시혁은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강시혁 대리는 영빈관 파견자이지만 누가 시키지 않아도 일을 찾아서 했습니다. 보일러실이나 영빈관 지하실의 곳곳을 찾아다니며 이번에 숨겨진 고미술품을 찾는데 공을 많이 세웠습니다.”
강시혁은 모든 사람들의 눈동자가 자기를 향한 것 같아 얼굴이 화끈거리는 것 같았다.
“강 대리는 폐자재를 끌어내기 위해 사다리를 타고 올라갔다가 미술품을 발견했답니다. 그리고 미술품을 내리다가 사다리에서 떨어져 다치기도 했습니다.”
강시혁은 정말 얼굴이 뜨거워 미칠 것 같았다.
최 이사라는 사람은 말을 참 잘 만들어내는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미술품은 가격이 수천만 원이나 하는 조선후기 산수화라는 전문가의 감식이 있었습니다. 문화재단에서는 이 미술품을 가지고 조선후기 실경산수화전을 연다고 했습니다. 신문에 기사도 나왔습니다. 그래서 금년도 비서실 모범사원은 강시혁 대리를 추천하도록 했습니다. 그렇게 아시고 여러분들도 주인의식을 가지고 일해 주실 것을 당부 드립니다.”
최 이사는 청산유수로 말을 했다.
코미디언 김제동보다도 말을 더 잘하는 것 같았다.
회의가 끝났다.
강시혁은 모범사원으로 돼봤자 별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표창장 하나에 상금도 보잘 것 없겠지만 그래도 표창장을 준다니 고마웠다.
강시혁은 비서실장과 최 이사에게 인사를 하였다.
비서실장은 강시혁에게 악수를 해주고 등을 한번 쳐준 후 얼른 가버렸다.
최 이사도 악수를 해주며 말했다.
“점심이나 먹고 가. 같이 식사를 했으면 좋겠는데 손님이 와서 난 먼저 나가네.”
강시혁은 유길준 대리를 찾았다.
표창장 받는 공적조서를 유길준 대리가 다듬어줬다니 밥은 한번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왕이면 중국 출장 중 만났던 안용석 과장도 같이 밥을 사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안용석 과장은 벌써 사라지고 없었다.
유길준 대리는 비서실 내에서 총무 역할을 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런지 가지않고 회의장을 정리하고 있었다.
“유 대리님 같이 식사하시죠. 제가 쓴 공적조서가 엉망이라 많이 고쳤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고친 것도 없어요. 몇 자 안돼요.”
“제가 표창장 받는 건 유 대리님 덕입니다.”
“별소릴!”
“가시죠. 맛있는 것 사드리죠.”
유길준 대리가 헤 하며 웃었다.
구내식당 밥 질렸는데 잘되었다는 표정이었다.
“그래요. 나 이거 정리 좀 하고 같이 갑시다.”
그래서 강시혁도 유길준 대리를 도와 회의장 정리를 했다.
정리는 다른 게 아니고 탁자 배열을 다시 하는 정도였다. 그리고 회의 참석자들이 두고 간 물 컵이나 수거하는 정도였다.
“강 대리! 식사하러 가는데 한 사람 더 부르면 안 되겠습니까?”
“예, 그러시죠.”
“비서실 직원은 아니고 경영기획실 대리입니다.”
“예, 좋습니다.”
강시혁은 유길준 대리가 공채 입사동기인 친구를 한사람 부르는구나 하였다.
로비에서 유길준 대리가 엘리베이터에서 방금내린 사람을 불렀다.
그리고 강시혁에게 소개했다.
“경영기획실의 잘나가는 송진우 대리입니다. 대졸 공채 같은 기수입니다.”
강시혁도 인사를 하였다.
송진우는 창백한 피부에 금테 안경을 낀 전형적인 엘리트 사원처럼 생겼다. 나이는 강시혁의 또래였다.
서로 웃으며 악수를 하였다.
강시혁이 유길준 대리에게 물었다.
“같은 대학 출신입니까?“
“아니요. 이 친구는 서울대 출신이요. 경영기획실에서 제일 잘나가는 친구입니다.”
“잘 나가긴!”
그리면서 송진우 라는 사람은 풀어진 넥타이를 다시 조였다.
강시혁은 자기도 삼방그룹에 어쩌다 들어와 이런 엘리트들과 어울리는구나 하였다.
사옥 건물 밖으로 나왔다.
강시혁이 웃으며 말했다.
“식사는 무엇으로 하시겠습니까? 한우 숯불구이라도 드시겠습니까?”
“연기 나는 데는 가지 맙시다. 옷에 배면 여직원들이 싫어해요. 삼계탕이나 먹으러 갑시다. 저기 뒷골목에 삼계탕 유명한 집이 있습니다.“
그래서 강시혁은 두 사람과 함께 삼계탕 집으로 갔다.
삼계탕 집은 만원인 것을 보니 잘하는 집인 것 같았다.
식사를 하면서 강시혁이 경영기획실 대리에게 물었다.
“경영기획실에서는 지금 어떤 업무를 맡고 계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