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6화 법인 설립 (4)
(166)
강시혁은 배동수와 통화가 끝나자 100만원을 엄마에게 송금했다.
생활비 조로 보낸 것이다.
강시혁은 대전 집의 수입을 다 알고 있었다.
아버지가 받는 100만원도 못되는 국민연금이 다일 것으로 짐작했다. 그러면 아파트 관리비와 전화비 같은 것을 내고 생활비는 항상 모자랄 것으로 보았다.
그래서 가끔 아버지가 공공 취로사업에도 나가곤 했는데 이제 이 마저도 끊기는 것 같았다. 엄마도 젊었을 땐 공장도 다니고 보모일 같은 것을 하며 생활비도 보탰다.
두 분이 이렇게 쉬지 않고 벌어 강시혁의 서울 고시원비도 대주곤 했었는데 이제 늙어서 일을 하기가 어려웠다.
불러주는데도 없었고 취업하러 가면 나이 때문에 받아주지를 않았다.
이럴 때 강시혁이 보내준 생활비 100만원은 단비가 될 것이 틀림없었다.
돈을 보내놓고 나니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다.
저녁에 바벨운동을 하고 지하실 침대에 들어 누었다.
알기 쉬운 경영학 원론이라는 책을 보고 있는데 어디서 고양이 울음소리 같은 게 나는 것이 들렸다.
[어디서 고양이가 들어왔지?]
강시혁은 이곳엔 고가의 미술품이 있어서 쥐나 고양이나 날벌레에 특히 조심했다.
그래서 자주 살충제도 뿌리고 틈새가 없도록 하였다. 그래서 쥐나 고양이가 들어온 적이 없는데 고양이 울음소리가 나니 이상했다.
울음소리는 보일러실 뒤편에서 나는 것 같았다.
강시혁은 플래시를 들고 보일러 실로 갔다. 사방은 고요했다.
강시혁이 보일러실에 다가가 벽에 붙은 전등 스위치를 올렸다. 보일러실 옆 창고 구석에 웅크리고 앉은 검은 고양이가 보였다.
[이놈이 어떻게 들어왔지?]
고양이는 잘못 들어왔다가 문이 잠겨 탈출을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보일러실은 가끔 점검하지만 그 옆의 작은 창고는 거의 열어보지 않는다. 인테리어 공사를 하고 남은 폐자재가 조금 있을 뿐이었다. 먼지만 가득한 곳이었다.
강시혁이 문을 열고 빗자루로 고양이를 쫓자 그때서야 고양이가 후다닥하고 밖으로 달아났다.
[이놈이 여기서 새끼를 쳤나?]
그래서 강시혁은 보일러실과 창고의 구석구석을 살폈다. 먼지가 많아 마스크를 쓰고 살폈다. 새끼를 친 흔적은 없었다. 그러다가 천장에 달린 창문이 살짝 열려진걸 보았다.
[고양이란 놈이 저기로 들어왔다가 못나간 것 같군.]
사람의 손이 닿을 수 없는 높이 달린 작은 창문은 통풍구실을 하는 창문이었다.
사다리를 놓고 닫아야 할 것 같았다.
이곳 영빈관에는 사다리가 두 개나 있었다. 접이식 발판 3단 사다리가 있었고 마당 정원수 손질을 할 때 쓰는 발판 없는 7단 사다리가 있었다.
강시혁은 3단 사다리를 가져와 창문을 닫았다. 그러다가 선반을 보았다.
벽에 선반이 있는데 폐자재가 올려 있었다. 그런데 선반에 있는 물건은 폐자재가 아니라 무슨 그림 액자 같은 것이었다. 밑에서 보면 그냥 널빤지 같은 폐자재로 보였지만 사다리를 타고 위에서보니까 그림이었다.
[돌아가신 창업회장님이 사논 그림인가?]
강시혁이 그림을 꺼냈다. 먼지가 풀풀 날렸다.
액자는 동양화 세 점이고 글씨 액자가 한 점이었다.
그림 한 점은 유치원생이 그린 듯한 산수화인데 이상하게 예술적 분위기가 풍기는 그림이었다. 나머지 두 그림은 옛날 산수화인 것 같았다.
액자의 글씨는 ‘의인막용 용인물의 (疑人莫用 用人勿疑)’ 라고 쓴 것 같은데 강시혁으로서는 그 뜻을 알 수가 없었다.
[내일 문화재단에 연락해야겠는데?]
그러다가 강시혁은 이 그림들은 문화재단에서 수집한 그림이 아니고 돌아가신 창업회장님이 수집한 그림으로 알았다.
이영진 상무에게 알리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림 네 점을 모두 사진촬영을 했다.
강시혁은 그림 사진을 이영진 상무에게 카톡으로 보냈다.
아울러 문자도 보냈다.
[오늘 보일러실 점검을 하다가 창고 폐자재 속에 있는 액자를 발견했습니다. 혹시 창업회장님이 수집하셨던 그림들이 아닌가 하여 상무님께 보고해 드립니다.]
답신이 왔다.
[산수화 한 점은 운보(雲甫) 선생 그림 같은데 나머지는 모르겠군요.]
강시혁은 운보가 누구인지 모른다.
그냥 유명한 화가인가보다 하였다.
이영진 상무가 다시 문자를 보냈다.
[내일 오전에 문화재단 관장님과 함께 영빈관엘 들리겠습니다.]
“에구! 여길 온다고 하네. 그렇다면 내일 아침에 대청소를 해야겠네. 그분이 오시는데 좋은 이미지를 줘야하지 않겠나!”
다음날 아침 강시혁은 골프를 치러가지 않고 영빈관 대청소를 했다.
마당을 쓸고 접견실을 물수건으로 닦고 지하실을 청소했다.
심지어 먼지투성이인 보일러실과 보일러실 옆의 창고도 청소했다. 어제 창고에서 꺼낸 액자도 깨끗하게 다 닦았다.
그런데 그림은 오래되어서 그런지 가장자리가 곰팡이 슨 것이 보였다.
이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강시혁은 창고 청소를 해서 그런지 몸에 먼지가 많이 묻은 것 같았다.
비누질로 샅샅이 샤워를 했다. 그리고 몸에 남성용 향수도 뿌리고 정장을 하고 이영진 상무를 기다렸다.
그런데 오전 10시가 되도록 이영진 상무가 나타나지 않았다.
[회사에 출근했다가 오느라고 늦는 것 같군.]
강시혁은 영빈관 문을 열어놓고 차 소리가 나는 가 귀를 기울였다.
11시쯤 차 소리가 났다. 강시혁이 총알같이 뛰어나갔다.
그런데 번쩍이는 외제차가 두 대나 왔다.
김 기사가 차에서 내려와 뒷문을 열었다. 이영진 상무가 내렸다.
그런데 뒤에 있는 고급 리무진 외제 차에서는 회장이 내렸다. 회장도 같이 온 것이다.
그리고 그 뒤로 신종화 차가 왔고 신종화와 관장이 내리는 모습이 보였다.
강시혁이 얼른 회장에게 달려가 허리를 크게 굽히며 인사하였다.
“안녕하십니까!”
회장이 큰 손을 내밀어 강시혁에게 악수를 해주었다.
“흠, 강 대리인가? 수고 많지?”
그러면서 강시혁의 어깨를 툭툭 쳐주었다.
이어 강시혁은 이영진 상무에게 인사했다.
이영진 상무는 검정색 투피스에 속엔 흰 블라우스를 입었다. 이영진 상무의 흰 피부와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영진 상무가 미소를 지으며 답례를 해주었다.
관장에게도 인사를 했다.
관장이 호들갑을 떨었다.
“어머! 어머! 강 대리는 점점 미남이 되어가네! 비서실 여직원들한테 인기가 많겠는데? 아휴, 이 가슴 좀 봐!”
그러면서 눈웃음을 쳤다.
회장은 마당으로 들어서면서 주위를 한번 둘러보았다.
깨끗이 청소가 되어있고 나무 손질이 잘되어 있는 것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강시혁이 회장 일행을 1층 접견실로 안내했다.
접견실에 들어선 회장은 지난번에 가져다 논 창업회장의 흉상을 보았다. 흉상 앞에 가서 잠시 묵념을 하는 듯 했다.
접견실 테이블 위에는 흰 보자기위에 놓여 진 액자 네 점이 있었다.
이 보자기는 전에 관장이 강시혁의 숙소에 있는 옷들이 지저분하게 걸렸다고 덮으라고 해서 샀던 것이다. 이 보자기가 이럴 때 써먹을 줄은 몰랐다.
회장이 그림을 보았다.
“운보 선생의 그림이군. 나머지 두 점은 오래된 것 같은데?
관장이 말했다.
“남종화 화풍인 것으로 보아 조선 후기의 작품인 것 같습니다. 이 두 점은 그림을 그린 작가를 저도 잘 몰라 감정을 의뢰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관장이 가져가서 감정의뢰를 해봐요.”
“알겠습니다. 회장님.”
다음에 회장은 액자 글씨를 보았다.
“이 액자가 어디 갔나 했더니 여기에 있었군.”
관장이 글씨를 쓴 작가의 이름과 낙관을 자세히 보고나서 말했다.
“소전(素荃)선생의 글씨군요.”
“그렇소. 작고하신 아버님이 살아생전에 소전 선생에게 받은 글씨요.”
“돌아가신 소전 선생은 추사 이래로 우리나라 서예가의 일인자로 꼽혔던 분이죠.”
관장은 역시 뭔가를 많이 아는 듯 했다. 나머지 사람들은 회장과 관장의 대화에 끼어들 실력들이 아니었다.
회장이 눈을 가늘게 뜨며 잠시 추억에 잠기는 듯 했다.
“내가 어렸을 때 작고하신 아버님이 내 손을 잡고 이 액자의 글씨를 설명해주었던 기억이 나는군요.”
“좋은 글귀입니다.”
“이 글은 명심보감에도 있는 글인데 삼성그룹 이병철 회장도 좋아했던 글이죠. 영진아, 너 이 글의 뜻을 알겠냐?”
“잘 모르겠는데요?”
“강 대리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신종화는 자기도 회장이 물을까봐 고개를 푹 수그리고 있었다.
회장은 신종화까지는 질문하지 않았다.
회장은 이영진 상무의 얼굴을 쳐다보며 말했다.
“이 액자에 써진 ‘의인막용 용인물의’ 라는 말은 의심이 가는 사람은 쓰지 말고 이미 쓴 사람에게는 의심을 하지 말라는 말이다. 알겠냐?”
“알겠습니다.”
“그러니 너는 이미 삼방그룹에 채용된 사람은 의심하지 말고 적재적소에 잘 배치하여 회사를 위해 일하는 사람이 되게끔 해야 한다.”
“알겠습니다.”
이영진 상무는 평소에 회장이 물으면 ‘알겠어요’ 라고 대답을 했는데 오늘은 주위에 여러 사람이 있어서 그런지 ‘알겠습니다’ 라고 대답했다.
강시혁은 얼른 볼펜을 꺼내 액자의 글씨를 다이어리에 적었다.
평상시에는 중요한 말을 들으면 잊어버리지 않게 스마트폰에 저장했지만 오늘은 회장 앞이라 그런지 다이어리에 적는 척을 하였다.
이영진 상무나 신종화는 적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회장이 미소를 지으며 강시혁에게 말했다.
“강 대리도 이제 이 뜻을 잘 알았나?”
“예, 잘 알았습니다.”
회장이 관장을 돌아보며 말했다.
“이 액자들은 많이 더러워졌으니 표구를 다시 하도록 하세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리고 저 글씨 액자는 저기에 있는 창업회장님 흉상위에 걸도록 하세요. 그래야 흉상과 글씨가 잘 어울릴 거요.”
“정말 잘 어울릴 것 같습니다.”
관장은 이럴 때 호호 하고 웃는데 오늘은 회장 앞이라 그런지 웃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나머지 그림 세 점은 표구가 되면 문화재단에서 관리하도록 하세요.”
“알겠습니다. 회장님.”
“온 김에 2층을 좀 보고 갈까?“
회장은 미술품이 보관된 2층으로 성큼 성큼 올라갔다.
강시혁이 뒤를 따라가는데 전화가 왔다. 비서실장 전화였다.
“강 대리? 혹시 회장님 거기 가시지 않았나?”
강시혁이 목소리를 작게 하여 말했다.
“지금 옆에 계십니다.”
“그, 그래? 알겠네.”
그러면서 실장은 급히 전화를 끊었다.
또 전화가 울렸다. 이번엔 최 이사 전화였다.
“강 대리? 지금 회장님이 영빈관으로 가셨다는 말이 있는데 무슨 일 때문인지 자네 알고 있나?”
또 목소리를 작게 하여 말했다.
“회장님 바로 옆에 계십니다.“
“그, 그래? 아, 알겠네!”
그러면서 최 이사도 얼른 전화를 끊었다.
역시 회장이 옆에 있다고 하니까 모두 긴말하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
회장은 2층을 대충 둘러보더니 바로 아래로 내려왔다.
회장이 마당으로 나왔다.
다시 한 번 어렸을 때 추억이 있는 집을 쳐다보더니 강시혁에게 손을 내밀었다.
“수고했네.”
강시혁은 황송해서 두 손으로 악수하며 허리를 굽혔다.
회장은 이영진 상무를 돌아보며 말했다.
“강 대리가 귀한 물건을 발견했으니 비서실장에게 말해서 상이라도 주도록 해라.”
“알겠습니다.”
이영진 상무도 기분이 좋은지 활짝 웃었다.
영빈관 문 앞에는 벌써 회장 차 기사와 이영진 상무 차 기사가 뒷문을 열고 기다리고 있었다.
회장과 이영진 상무가 문 앞에 세워진 벤츠 리무진 위로 올라갔다.
강시혁은 돌아가는 회장 차와 이영진 차의 꽁무니를 향해 허리를 꺾고 공손히 인사를 했다.
관장이 금테 안경을 위로 올리며 말했다.
“우리도 가야지. 강 대리! 미안하지만 테이블 위에 있는 그림 네 점을 신종화씨 차에 실어줘요. 트렁크에 싣지 말고 뒷좌석에 실어줘요. 내가 안고 갈 테니까.”
“알겠습니다.”
“그리고 표구가 되면 우선 그림 세 점은 우리 갤러리에 전시를 하고 액자는 회장님 말씀대로 영빈관으로 보내 주죠. 창업회장님 흉상위에 거는 거 알죠?”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신종화! 그럼 우리 갈까?”
신종화가 뒷문을 열고 얼른 관장을 뒷좌석에 태웠다.
강시혁이 그림을 가지러 영빈관 접견실로 가자 신종화가 따라왔다.
“나 혼자 실어도 되는데!”
“저, 그게 아니고 배동수씨 말에요. 엔터테인먼트 회사 사장을 한다는 말이 무슨 말에요?”
“아, 그건 우리가 설립한 펀드사에서 출자하여 엔터테인먼트사를 하나 꾸미기로 했습니다.”
“우리가 돈 들어가는 건 없죠?”
“없습니다. 배동수 씨는 몸만 와서 근무하면 됩니다.”
“정말 사장으로 가는 것 맞나요?”
“맞습니다. 배동수 씨는 엔터테인먼트사 대표이사가 되는 겁니다. 하지만 월급은 매출이 발생하기 전까지는 최저임금만 지불합니다.”
“그럼 사무실도 있는 겁니까?”
“이미 사무실 계약해놨어요. 지금 인테리어 공사 중이에요. 이태원역 부근에 있어요. 회사 설립 이야기는 다른데 이야기 하면 절대 안 됩니다.”
“강 대리님. 정말 고맙습니다.”
“고마울 게 뭐 있나요? 좋은 인재를 얻었으니 우리가 고맙지.”
신종화가 눈물을 글썽거리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