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5화 법인 설립 (3)
(165)
변상철이 커피 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액면 분할한다는 기업은 사전에 정보를 알고 투자하는 건가?”
“당연하지. 정보 없이 뛰어드는 건 아니지.”
“혹시 삼방그룹 계열사 정보를 알아내서 투자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겠지?”
“그건 나중에 말해줄게.”
“그런데 K&B파트너스는 주주가 삼방그룹 오너 아들이고 또 한사람은 삼방그룹 비서실 대리인데 괜찮을까? 내부자 정보를 이용하여 투자한다면 법에 걸리는 것 아냐?”
“모르게 조금씩 하는데 문제가 있겠어? 또 나는 삼방의 내부 정보를 알 수 있는 위치도 아니잖아.”
“아무튼 알겠어. 누가 특별히 찌르지만 않으면 문제는 없겠지. 이영남이 말하는 엔터테인먼트 사업은 뭐지?”
“이영남이 초청하려고하는 일본의 재즈음악가 사카모토 쯔요시 씨를 너도 알지?”
“초청한다는 이야기는 들었어. 그 사람을 이용해서 뭘 하자는 건가?”
“그 사람이 길러낸 가수들 중에서 유명한 아이돌 그룹이 있나봐. 이 그룹을 초청하는 콘서트를 열자는 거지.”
“사모펀드사가 그런 사업을 직접 한다면 좀 이상하지 않을까?”
“그래서 K&B파트너스가 출자하는 엔터테인먼트 회사를 하나 만들려고 하는 중이야.”
“뭐라고? 그러면 법인을 두 개 설립한다는 건가?”
“그렇지.”
“그럼 엔터테인먼트사 대표는 누가 하는 건가? 음악에 대하여 잘 아는 이영남이 한다는 건가? 재벌 아들이 그런 걸 한다면 좀 안 어울릴 것 같은데.”
“재벌 아들이라도 할 수는 있겠지. 하지만 아들이 음악하는 걸 싫어하는 이건용 회장이 알면 벼락이 떨어지겠지. 그래서 엔터테인먼트사는 사장을 따로 영입하려고 해.”
“올 사람은 있나?”
“배동수를 데려오기로 했어.”
“배동수? 걔는 애니메이션 전문가가 아닌가? 지난번에 술 마실 때 언더그라운드 밴드활동을 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들었지만 왜?”
“콘서트 같은걸 해보진 않았잖아? 경험이 부족하다는 거지.”
“주변에 밴드 활동한 친구들이 있다면 자문 좀 받겠지. 그리고 음악에 미친 이영남도 있잖아.”
“K-pob이 유명하지만 J-pob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기는 한데 기획을 잘 해야 될 거야.”
"언젠가 일본의 아이돌 그룹인 아라시가 서울 올림픽 공원 펜싱 경기장에서 공연했다며? 그리고 일본 4인조 그룹인 세카이노 오와리는 벌써 여러 번 내한 공연을 했다며?“
이 소리에 변상철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하하. 형도 많이 알고 있네. 그런 것도 알고. 대리 뛰면서 음악 많이 들은 것 같네.”
“이영남한테 들은 이야기야. 내가 먹고살기 바빴던 놈이 그런걸 알 턱이 있겠냐? 한국 가수들 이름도 모르는데 일본 가수들까지 어찌 알겠냐?”
“아무튼 알겠어. K&B파트너스가 출자하는 엔터테인먼트사를 설립하고 바지사장으로 배동수를 앉힌다는 것은 나도 찬성해. 배동수도 실력이 있고 야심도 있는 놈이라 잘할 거야.”
“너 K&B파트너스 부사장 하면서 동시에 신설 엔터테인먼트사 감사 할래?”
“내가 재무 전문가도 아닌데 감사는 무슨.....”
“야, 재무 전문가는 회계사나 세무사 이용하면 되지 뭘 걱정이냐? 넌 감시역할이나 하라 그 말이야.”
“히히. 그럼 두개 회사에서 월급 타먹겠네.”
“회사가 잘되면 그럴 수도 있지!”
“그럼 난 금방 부자 되겠는데?“
[금방 부자? 꿈 깨! 이 자식아! 월급 가지고는 절대 부자가 못돼! 내가 이번에 해보니까 자산 소득이 있어야 해. 자산을 부동산이나 증권에 투자해야 부자가 되지 근로소득으론 어림도 없어! 대한민국 사회를 네가 몰라서 하는 말이다!]
강시혁이 시계를 보았다.
점심시간이 훨씬 지나고 있었다.
“익! 시간이 많이 됐네. 점심이나 먹으로 가자.”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나?”
“뭘 먹을래?”
“아무거나 먹지. 그런데 여기 오다보니까 알트에이란 식당이 있는 것 같은데 거기에선 뭘 팔지?”
“응, 거긴 비건 식당이야. 식물성이 들어간 짬뽕이나 자장면 같은 것도 팔아.”
그래서 둘은 알트에이로 갔다.
여기서 둘은 매운 버섯 짬뽕을 먹었다. 짬뽕을 먹으면서 변상철이 말했다.
“형, 이제 결혼 안 해?”
“천천히 하지. 여자한테 워낙 덴 놈이 되어놔서.....”
“나야 백수나 다름없지만 형은 삼방그룹 비서실 대리 아냐? 대기업 대리면 결혼시장에서 상품가치가 있을 텐데?”
“야, 결혼이 무슨 상품이냐?”
그러다가 강시혁은 심은혜와 이영진 상무의 얼굴이 번갈아 떠올랐다.
“어른들이 그러잖아. 결혼해야 사람은 안정이 된다고.”
강시혁은 피식 웃었다.
심은혜와 살던 결혼생활은 안정은커녕 날마다 돈 문제로 싸웠으니 결코 행복했었노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강시혁이 짬뽕 국물을 마시고나서 말했다.
“바쁘지 않으면 내일부터라도 가끔 사무실 들려라. 인테리어 공사하는 것도 좀 봐야 하잖아?”
“그렇게 하지. 그리고 명함도 새로운 상호로 다시 맡겨야 하겠지?”
“맡겨야지. 네가 맡겨라.”
“알았어. 그런데 로고가 있으면 좋겠는데.... 로고는 형이 한번 배동수한테 부탁해 볼래? 배동수는 형을 좀 무서워하는 것 같으니 형 말이라면 들을 거야.“
“알았어. 그렇지 않아도 배동수는 만나보려는 중이었어.”
“그럼 잘 됐네.”
“아, 그리고 참 명함 집에 가게 되면 법인도장도 하나 파라. 상호 집어넣고 파면되겠지.”
“알았어. 법인도장은 우리 아버지 침대공장에서 쓰는 회사 도장처럼 만들면 되겠지.”
변상철은 점심을 먹고 내일 다시 온다고 하면서 가버렸다.
강시혁은 영빈관 관리사무실로 돌아왔다.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이영진 상무로부터 카톡이 왔다.
[골프는 배우시나요?]
[예, 숙대 입구에 인도어 골프장이 있어 등록했고 열심히 배우고 있습니다.]
[열심히 배우세요.]
[감사합니다. 상무님.]
강시혁은 이영진 상무가 자기에게 이렇게 관심을 가져주니 그저 고맙기만 했다.
이영진 상무가 같은 비서실 대리인 유길준 대리나 건설담당 오남수 대리에게 이런 문자를 보내겠나?
아마 이영진 상무는 유길준 대리나 오남수 대리의 이름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비서실 대리를 하더라도 이렇게 문고리 비서를 해야 오너 가족과 친해질 수 있는 것이다.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엄마의 전화를 받고 이제껏 자기도 바빠서 전화를 못해드렸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아도 이번에 돈을 벌었기 때문에 집을 사거나 매월 생활비를 부쳐드려야겠다고 마음은 먹고 있었다. 그러다가 법인설립 때문에 정신이 없어 미처 전화를 못했었다.
“왜, 전화도 한번 없니?”
“아, 바빴어요. 잘 계시죠?”
“맞선 한번 보지 않겠니? 초등학교 교사라는데 집안도 괜찮은 것 같다.”
“맞선은 아직 생각이 없어요. 더 자리를 잡아야죠.”
“네가 삼방그룹 대리라고 하니까 선이 제법 들어온다. 또 너는 호적상으로는 총각 아니냐? 그리고 서울에서 대학도 나왔다니까 여자 측에서도 바짝 대드는 것 같다. 이번 주말에 한번 내려올래?”
“아아, 이번 주에 시간 내기가 어려워요. 아버지는 잘 계시죠?“
강시혁은 맞선 이야기가 나오자 얼른 말을 돌렸다.
“아버지는 이번에 취로사업 그만두고 다른 일자리 알아보는데 잘 안 된다. 나이가 있으니 그럴 수밖에 없지. 공공 취로사업은 한번 한 사람은 재취업이 잘 안 되나봐. 그것도 하려는 사람이 많으니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거겠지.”
“지금 우리가 사는 집이 몇 평이죠?”
“24평이야.”
“그 아파트 얼마나 하죠?”
“그건 왜? 3억 5천만 원 한다는데 지금은 아파트 값이 조금 내렸다고 하니까 얼마나 하는지 모르겠다.”
“엄마가 전에 30평짜리 사는 사람들 부러워했죠? 30평짜리는 화장실이 두 개라고 하면서.”
“그때는 너도 있을 때라 화장실 가기가 힘들었지. 하지만 지금은 너도 없어서 화장실 하나로도 만족해.”
“30평짜리는 얼마나 하죠?”
“글쎄. 30평짜리는 4억5천만 원 할까?”
“엄마는 늘 학선이 엄마를 부러워했죠?”
“그 여자가 항상 자기네 집은 화장실이 두 개라고 뻐기고 다녀서 그렇지.”
“내 초등학교 동창인 학선이네는 아직도 거기 사나요?”
“살어.”
강시혁은 학선이라는 동창과 별로 친하지는 않았다. 그는 공부는 잘하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다. 대학진학은 못하고 대전서 고등학교만 나온 것으로 알고 있는데 만난 지 오래되어 길에서 만나도 잘 못 알아 볼 것 같았다.
강시혁이 목소리 톤을 약간 높여 호기롭게 말했다.
“집 하나 사세요. 4억 5천만 원 보내드리죠.”
“뭐라고?”
“이번에 주식투자로 큰돈을 벌었어요. 샘머리 아파트 30평짜리 사세요.”
“너.... 혹시 회사에서 나쁜 짓 한건 아니겠지?”
“아아, 그런 일 없어요.”
“됐다. 그럴 필요 없어. 돈을 벌었다면 너나 서울에 전셋집이라도 하나 얻어. 돈 때문에 심은혜와 함께 살면서 얼마나 분란이 많았었니? 여기는 잘 살고 있으니까 너나 아파트 얻을 생각 해라.”
“아녜요. 정말 보내준다니까요. 지금 전셋집이잖아요.”
“전세기한 많이 남았어. 더구나 임대차보호법이 있으니 연장도 가능해.”
“그럼 생활비라도 조금 보내드리죠.”
“그런 소리 마라. 네가 은혜와 함께 살 때 30만원 부모님 용돈 드린다고 대판 싸웠다며? 네가 말 안 해도 내가 다 알아. 30만원 때문에 은혜가 나한테 대든 생각을 하면 나도 지금까지 몸이 떨린다.”
“다 제 불찰에요. 미안해요. 엄마.”
“아냐. 은혜 입장을 내가 이해 못하는 것 아니야. 부모가 전셋집이라도 얻어주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렇게 하지 못했으니 은혜가 그렇게 나온 것도 무리는 아니지. 다 자기들 살겠다고 하는 건데 누가 뭐라고 하겠니.”
“아버지는 이제 쉬시라고 하세요. 매월 생활비 100만원 보내드리죠. 그러면 아버지 국민연금하고 두 분이 살수는 있죠?”
“그러면 충분하지. 하지만 너도 살아야하니까 적금이나 들어라.“
“그럼 100만원 부쳐드리고 우선 전세기간까지만 사세요. 내가 더 잘되면 나중에 서울 강남에 집을 한 채 사드리죠.”
“하하. 말이라도 고맙다. 돈을 벌었다니 다른 생각 말고 맞선봐라.”
“아직 생각 없어요.”
“여자 아버지도 초등학교 교장 출신이라 집안도 점잖은 것 같더라. 주말에 꼭 와라.”
“알겠어요. 봐서 내려가든지 말든지 할게요. 그런데 맞선은 안 봐요. 전화 이제 끊어요,”
“아니, 얘가!”
엄마는 언젠가 유성 연구단지에 있는 대학교수 집에서 아기 보는 일을 했었다.
부부가 서울서 내려온 대학교수였는데 집엘 가보고 기절할 듯이 놀랐다고 했었다. 70평짜리 집인데 화장실이 3개나 있다고 하면서 대한민국에 그렇게 큰집이 있는지는 몰랐었다고 하였었다.
그래서 엄마는 한동안 그런 집에서 일 하는 것을 자랑스러워하기도 했다.
그래봤자 아기 봐주는 보모였는데도 말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집은 대전 DCC컨벤션센타 부근에 있는 주상복합아파트였다. 20억 정도 했었다. 지금 강시혁이 번 돈으로 충분히 살 수 있는 집이다.
[걱정 마세요. 엄마! 내가 서울 강남에 40억짜리 아파트 사드리죠.]
강시혁이 이번엔 배동수에게 전화를 했다.
“배동수씨? 나 강시혁이요.”
“아, 강 대리님!”
배동수는 강시혁 앞에서 얼굴도 함부로 들지 못했다.
강시혁에게 순식간에 잡혀 팔을 꺾였고 대작 그림반출을 용서해준 사람이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또, 보아하니 삼방그룹 비서실 대리이지만 그냥 대리도 아니고 오너의 경호원이라니까 조심스럽게 대했다. 나이도 강시혁이 몇 살 많았다.
“지금 뭐하십니까?”
“만화 그립니다.”
“내일 시간 있어요?”
“무슨 일 있습니까?”
“이태원에 와서 점심이나 같이 합시다.”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혹시 이영남 씨에게서 무슨 말 못 들었습니까?”
“엔터테인먼트 회사를 만든다는 소리는 들었는데 구체적으로 뭘 어떻게 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지금 K&B파트너스 라는 사모펀드사를 설립합니다. 엔터테인먼트사는 K&B파트너스에서 출자하여 만드는 회사가 됩니다. 당신이 엔터테인먼트사의 대표가 되는 것입니다.”
“엔터테인먼트는 저도 관심분야이기는 한데......생각 좀 해봐야겠네요.”
“생각을 하다니?“
“회사를 설립하면 기반을 잡을 때까지는 시간이 걸립니다. 더구나 저는 관심은 있는 분야이지만 경험은 없습니다. 당장 돈이 들어오는 것은 아니잖습니까?”
“모든 신설법인이 자리를 잡기까지는 다 시간이 필요하지요.”
“그런데 좀 창피한 이야기지만......”
“뭐가 창피하다는 거요?”
“당장 생활비가 필요합니다. 오피스텔 임대료도 내야하고......”
이 말을 듣고 강시혁은 불현 듯 자기의 수유리 원룸 시절이 생각났다.
강시혁 역시 대리운전 일을 못하면 원름 임대료를 밀려야 했기 때문이었다.
“자리를 잡기 전까지는 월급이 안 나오니까 힘들겠다 이거군요.”
“죄송합니다.”
“그건 걱정하지마세요. 자리 잡기전이라도 월급은 드려야지요. 월급 없이 어떻게 일합니까? 자본금에서 월급 책정하면 됩니다.”
“정말입니까?“
“단, 수익발생이 없는 동안이니까 많이는 못줍니다. 최저 기본임금만 책정하고 이후 수익발생하면 다른 엔터테인먼트사 대표들과 마찬가지로 급여를 맞춰 드리도록 하죠.”
“정말입니까?”
“나는 거짓말 하는 사람을 싫어합니다.”
이 말에 배동수는 찔끔하였다.
자기 애인인 신종화가 강시혁에게 거짓말을 하고 그림을 반출했던 사실이 있기 때문이었다.
배동수가 생기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내일 이태원으로 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