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4화 법인 설립 (2)
(164)
다음날이 되었다.
이 날은 어제 술을 마시지 않아 기분은 상쾌했다.
강시혁은 가벼운 옷차림을 하고 조깅삼아 이태원역까지 뛰어갔다. 그리고 지하철을 타고 숙명여대 근방에 있는 골프 연습장으로 갔다.
여기서 7번 아이언을 가지고 땀을 흘리도록 연습을 했다.
코치가 와서 칭찬을 해주었다.
“이제 자세가 잡혀가는 것 같습니다.”
“헤헤, 그렇습니까?”
“어드레스 하실 때는 양어깨와 양허리, 그리고 양발이 일치해야 합니다. 그리고 턱을 좀 앞으로 당기세요.”
“이렇게 말입니까?”
“굳! 그렇게 하시면 됩니다.”
강시혁은 코치가 가고 나서도 열심히 쳤다.
학창시절에 돈이 들어가는 운동은 못했지만 이제 사회에 나와서 배우는 운동이나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언젠가 이영진 상무와 함께 그린을 밟는 상상을 하면서 열심히 연습을 하였다.
확실히 운동을 하니 밥을 많이 먹었다.
언젠가 이영남이 삼각지역 근방에 국밥집 잘하는 집이 있다고 해서 거기 가서 먹었다.
강시혁은 영빈관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요즘 같으면 살맛이 난다고 생각했다.
비서실 최 이사에게서 전화가 왔다.
“강 대리? 나요. 최 이사요.”
“넵, 강시혁입니다. 이사님.”
하마터면 좀생이라고 부를 뻔하였다.
비서실 직원들이 최 이사를 지칭할 때는 항상 좀생이라고 부르기 때문이었다.
“영빈관에 숙박시설이 있나?”
영빈관의 숙박시설이야 지하실에 있는 강시혁의 잠자는 방 밖에 없었다.
“숙박시설은 없습니다.”
“아니, 옛날에 거기 창업회장님이 살림하던 집이 아닌가? 나도 언젠가 창업회장님 살아계실 때 거기 한번 가봤네. 창업회장님 사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장례식 때도 가보았고. 그런데 숙박시설이 없다니 말이 되는가?”
“1층은 전부 터서 접견실로 쓰고 있습니다. 그리고 2층은 문화재단에서 보관한 미술품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자넨 거기서 상주한다며? 자네는 어디서 잠을 자나?”
“아, 저는 지하실 숙직실에서 잡니다. 지하에 있는 영빈관 관리사무실 옆에 있습니다.”
“흠. 그런가? 내가 가까운 시일 내에 한번 들려보겠네.”
[여기 온다고? 새로 법인 설립하느라 바빠 죽겠는데 이 인간이 오면 귀찮게 생겼네. 그렇지만 내색이야 할 수가 없겠지.]]
“예, 한번 오십쇼. 제가 모시겠습니다.”
“내가 숙박시설을 물은 건 다름이 아니고 영국 청소년들 때문이네.”
“예? 영국 청소년요?”
“유럽 10개국 청소년을 정부의 모 기관에서 초청한 행사가 있는데 각 기업에서 한 나라씩 맡아 지원해 주기로 했네. 우리는 영국 학생들 15명을 맡기로 했지.”
“아, 그런 행사가 있습니까?”
“오늘 인천공항으로 들어와서 코엑스 행사에 참여하고 각 기업에서 숙박을 지원해주기로 했는데 영빈관이 안 되면 다른 데로 해야겠네.”
“예, 여기 영빈관은 안 됩니다. 더구나 15명 수용은 안 됩니다.”
“청소년들이니까 호텔로 데려가긴 그렇고..... 양재동에 있는 교육문화회관으로 데려가는 게 좋겠군.”
“제가 예약을 할까요?”
“3일 정도 있어야하니까 그렇게 해야겠네. 코엑스 행사가 오후 5시에 끝나니까 자네가 그 학생들을 인계받아 교육문화회관으로 데려다 주게. 내가 법인카드도 줘야 하니까 점심 먹고 오후에 여기로 오게.”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대답은 이렇게 했지만 오늘 참 바쁘게 생겼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시혁은 일단 사무실 임대보증금 잔금을 건물주에게 모두 보내주었다. 잔금을 보내주어야 인테리어 공사를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강시혁은 사무실을 소개한 부동산 사장에게 전화를 했다.
“어제 사무실 계약한 사람입니다. 보증금 5천에 400짜리 사무실 말입니다.”
“아, 강 사장님이십니까?”
부동산 사장은 자기한테 오는 손님은 무조건 사장이라고 부르는 것 같았다.
“예, 맞습니다. 조금 전에 건물주한테 임대보증금 잔액 모두 지불했습니다.”
“잘 하셨습니다. 그만한 사무실 얻기도 힘듭니다. 그런데 인테리어 공사하기로 안했습니까?”
“예, 오늘부터 하려고요.”
“그러면 내가 인테리어 업자 한분 소개할까요? 이태원 일대 인테리어는 그 사람이 다합니다.”
강시혁은 잘되었다고 생각했다.
자기가 인테리어 업자를 구하려면 또 인터넷을 뒤져야 하기 때문이었다.
“소개해 주시면 좋죠.”
“그럼 한 시간 후에 부동산 사무실로 오라고 할까요?”
“예, 그렇게 하세요.”
한 시간 후면 인터넷이나 하다가 가면 되었다.
그러다가 자기가 아직 빚을 갚지 않은 것이 생각났다. 약 8천만 원 정도 남은 빚은 한꺼번에 갚기로 했다. 이 8천만 원이 자기를 그동안 옥죄었던 사슬이었던 것이다.
언젠가 어떤 변호사가 TV프로그램에 나와서 한 말이 생각났다.
“서민들은 1억의 빚이 있다면 대부분 갚지 못하고 삽니다.“
이 말은 맞을 것도 같았다.
자기도 투잡을 뛰어서 1억의 빚을 8천만 원으로 줄이기는 했지만 이것도 2년이란 세월이 흐르고 나서야 가능했다. 만약에 강시혁이 자녀가 있다면 생활비가 많이 들어가 빚을 갚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또, 지금은 젊지만 나이가 50대가 넘어 건강에 이상이라도 있다면 투잡도 못하게 된다, 그러면 이 빚을 계속 갚지 못하는 결과가 나온다.
결국 빚의 늪에 빠져 평생을 허덕이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강시혁은 지금 20억이 넘는 자기 돈을 가지고 있다. K&B파트너스 출자금 5억을 냈어도 20억 이상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한꺼번에 갚기로 한 것이다. 그래야 신용카드도 만들 수가 있는 것이다. 강시혁은 지금 신용불량자가 되어 체크카드만 가지고 있는 중이었다.
강시혁이 신용회복위원회에 전화를 걸었다.
“변제금 일시 전액상환도 가능합니까?”
“채무조정 확정자죠?”
“그렇습니다.“
“채무조정이 확정된 채무자는 채무액 전부 우선변제가 가능합니다. 이 경우 기간에 따라 채무 잔액 추가 감면도 가능합니다.”
“오늘 전부 갚겠습니다.”
“성함과 주민등록번호를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강시혁은 이날 신용회복위원회 직원의 안내에 따라 빚을 몽땅 갚았다.
[으하하하하. 이제 나는 빚이 없다!]
강시혁은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다.
그동안 이놈의 빚 때문에 얼마나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나,
이제 빚이 없으니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용카드는 신용등급을 좀 더 올려 논 후에 받기로 했다.
강시혁이 부동산 사무실에서 인테리어 업자를 만났다.
인테리어 업자와 함께 임대한 사무실로 갔다. 사무실을 둘러본 인테리어 업자가 말했다.
“인테리어는 천차만별입니다. 사진을 보여줄 테니 한번 골라보세요.“
그러면서 인테리어 업자는 자기가 가져온 파일을 보여주었다. 사진엔 멋있는 사무실들이 많았다. 강시혁이 그중 가장 고급스러워 보이는 사진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 정도 하려면 얼마가 들어갑니까?”
“평당 100만원은 가져야 됩니다.”
“예? 평당 100만 원요? 그럼 이 사무실이 30평이니까 3천만 원이 들어간단 말입니까?”
“아이고, 사장님! 평당 120만 원 짜리도 있습니다.”
“내 건물도 아닌 임대 사무실에 그렇게 돈을 많이 들이기가.....”
“평당 30만 원짜리도 있고 50만 원짜리도 있습니다. 저희는 고객에 요구에 따라 조절해서 공사합니다.”
“30만 원짜리 사진도 있어요?”
“이게 우리가 30만원에 한 겁니다.“
사무실이 후져보였다.
꼭 지난번에 방범대장 사무실에 갔을 때의 사무실 같았다.
“이건 얼마짜리입니까?”
“그게 50만 원짜리입니다.”
50만 원짜리도 좋아보였다.
그래도 30평이니까 1,500만원이나 돈이 들어간다.
“50만 원짜리도 바닥공사, 조명공사, 화이트 모던스타일 벽이 가능하지요?”
“그럼요. 방음시설까지는 몰라도 다른 건 다 됩니다. 50만 원짜리도 아주 고급스러워 보입니다. 우리가 깔끔하게 해드리죠.”
“룸은 3개, 사무실로 쓰는 홀 1개, 탕비실 하나, 이런 구조로 해주세요.”
“보통 그렇게들 많이 하십니다. 아마 공사가 끝나면 사장님도 크게 만족하실 겁니다. 완전히 감각적 이미지로 탈바꿈 하니까요.”
“좋습니다. 당장 합시다.”
“계약서 작성하시고 착수금을 이 계좌로 보내주세요. 그래야 우리가 자재 구입을 할 수 있습니다. 공사 기일은 일주일 잡으셔야 합니다.”
계약서를 작성하는데 변상철의 전화가 왔다.
“나 지금 영빈관으로 가고 있어.”
“지금 어디냐? 난 지금 인테리어 때문에 임대 사무실에 나와 있어.”
“융자는 받았으니까 형 통장으로 바로 보내줄게. 그리고 인감증명서하고 주민등록등본은 지금 가지고 갈게.”
“알았어. 빨리 와.“
인테리어 공사계약을 끝내고 일어서는데 비서실 최 이사 전화가 또 왔다.
[혹시 지금 들어오라고 하는 건 아닌가?]
“강 대리? 오늘 코엑스 안가도 되겠네.”
“예?”
“영국 학생들을 교육문화회관으로 데려가지 않기로 했네.”
“그럼 다른 호텔로 가기로 한 겁니까?“
“그게 아니고 중, 고등학교 자녀가 있는 임원들 집으로 데려가 숙박을 시키기로 했네.”
“아, 그런가요?”
“그런 줄 알고 법인카드 받으러 여기 올 필요 없네.”
“알겠습니다. 이사님.”
강시혁은 참 잘되었다고 생각했다.
인테리어 업자에게 착수금까지 지불하고 이태원역 쪽으로 가는데 전화가 왔다.
이번엔 비서실 유길준 대리 전화였다.
“유길준입니다.”
“네, 유 대리님!”
“최 이사가 영국 학생들 숙박시키라고 안했나요?”
“예, 그런데 취소되었다고 하던데요?”
“킥킥킥. 그것 때문에 좀생이가 회장님한테 박살이 났습니다.”
“박살이 나다니요?”
“국제 교류를 위해 학생들이 왔으면 임원들 가정으로 초청해서 자녀들과 교류를 시켜야지 그게 뭐냐고 회장님이 호통 친 모양입니다.”
“회장님이 어떻게 아신 것 같네요.”
“이 일은 모 기관에서 직접 회장님께 전화를 해서 부탁을 한 일입니다. 임원 자녀들과 교류도 시키고 기업 이미지도 올라가는 일이니까요.”
“임원들은 대개 중, 고등학교 다니는 자녀가 있는 나이들이니까 정말 가정으로 초청하면 좋을 것 같네요. 서로 영어로 소통하고 자기들 문화를 소개하면 그게 바로 국제교류니까요.”
“그런데 그 학생들을 호텔에 투숙을 시키자고 하니까 회장님이 화를 냈지요. 기업은 역시 돈으로만 해결하고 문화교류의 본질을 모르는 사람들이라고 손가락질 할 것 아니냐며 화를 낸 거죠.”
[회장이 화를 낼만도 하군.]
“듣고 보니 회장님이 화를 낼만 하네요.”
“그래서 지금 저는 백화점에 가고 있습니다. 회장님이 영국 학생들을 가정으로 불러들이는 임원 사모님들에게 최고급 주방세트를 선물해주라고 해서요.”
“최 이사님도 자녀가 있을 것 아닙니까?”
“있죠. 고등학교 다니는 아들이 있죠.”
강시혁은 최 이사가 혹시 가정적으로 남에게 뭔가 보이기 싫은 것이 있어서 그러지 않았나 했다.
[부인과 다투어 혹시 냉각기간인가?]
강시혁은 결혼이야말로 역시 마음에 맞는 여성을 맞이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외형적 모습만보고 결혼했다가 후회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자기도 심은혜와 함께 살 때 변상철이 놀러온 적이 있었다. 돈 문제로 심하게 다투고 난 다음날이었다.
그때 심은혜는 변상철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냉정하게 대했던 것이다.
변상철은 지금까지 말은 안하고 있지만 심은혜에 대한 인상이 좋지 않을 거란 생각을 했다.
이영진 상무 역시 뽕쟁이 남편이 이상한 짓을 하고 있을 때 누가 가정방문을 한다고 했으면 어땠을까?
차분하고 이지적인 이영진 상무도 무척 당황해 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결혼이란 함께 손을 잡고 머나먼 길을 가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서로 마음이 맞아야 하는 것이다. 옛날 어른들은 이것을 궁합이라고 했던가?
강시혁은 변상철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금 어디쯤 오고 있지?”
“약수동이야.”
“그럼 내가 이태원역 3번 홈 앞에 있는 스타벅스에서 기다릴게. 사무실 들려 인테리어 업자 만나고 지금 영빈관 들어가는 길이야. 같이 법무사 사무실에 가자.”
강시혁은 변상철을 만났다.
강시혁은 영빈관 관리사무실에 놓아둔 자기의 서류와 이영남의 서류를 가지고 함께 법무사 사무실로 갔다.
사무장 아줌마가 서류를 점검해보고 말했다.
“서류는 됐고요. 여기 위임장에 도장이나 찍어줘요.”
도장을 찍고 나서 강시혁이 말했다.
“법인등기까지 얼마나 걸립니까?”
“한 일주일 걸려요. 최대한 빨리 하도록 하죠.”
“나중에 법인 등기서류가 나오면 연락주세요.”
“법인 등기서류가 나오면 바로 사업자 등록하셔야 합니다. 그래야 사업자 등록증에 상호가 주식회사 K&B파트너스로 나옵니다.”
“알겠습니다.”
강시혁은 변상철과 함께 법무사 사무실을 나와 영빈관으로 왔다.
영빈관 지하에서 차를 마시며 변상철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이제 일주일 후면 법인등기도 나오고 사무실 인테리어도 완성될 텐데 걱정이 많이 드네.”
“왜? 수익모델 때문에?”
“난 아무래도 막연한 생각이 들어.”
“그렇지 않아도 난 이 문제에 대하여 이영남과 이야기 했어. 나는 액면 분할하는 기업에 투자하기로 하고 이영남은 엔터테인먼트 회사에 투자하기로 했어.”
“뭐라고?”
변상철이 약간 어리벙벙한 표정으로 강시혁을 쳐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