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8화 골프 치는 사람들 (4)
(158)
강시혁은 이영진 상무의 말에 음악으로 화답을 하였다.
우리는 친구라고 한 말에 감격하여 우정에 관한 노래 가사가 있는 노래를 들려준 것이다.
이영진 상무는 재벌의 딸이다.
재벌의 딸이다 보니 평소부터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주목을 받았다. 그래서 이영진 상무는 외출할 때 늘 조심이 갔다.
이러한 이유 때문인지 이영진 상무는 회사 출근 이외에는 외부 활동을 자제해 왔다. 이상한 또라이 같은 사람들을 만나면 봉변을 당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강시혁과 함께 다니면 든든했다.
그는 늘 상냥하면서도 다부진 체격에 운동신경도 좋아 자기를 충분히 보호해 줄 수 있는 사람으로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자기나 강시혁이나 이혼의 아픔이 있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무언가 정서적 공감대가 있고 서로의 사정을 이해할 것으로 보았다.
사실 회사에는 회장이나 사장 차를 운전하는 기사들이 많았지만 이들은 뒤를 돌아서서는 자기의 이혼을 비웃을 지도 몰랐다. 그러나 강시혁 만큼은 그런 비웃음이 없을 것 같았다.
또, 강시혁은 체격이나 인물이 좋았다. 자기의 동창들이나 홍 사장보다는 월등히 좋았다.
그는 마약에 찌들지도 않았고 음주 운전을 일삼는 사람도 아니었다. 룸살롱 같은데서 일하는 종업원을 무시하여 폭행하는 일도 없었다. 언제나 건강미 넘치는 남성이었다.
자기들이 조사한 바에 의하면 강시혁은 어르신 주간보호센터에서 박봉에 송영 업무를 한 사람이었다. 그 일은 봉사정신이 없으면 힘든 일이다. 그래서 이건용 회장도 강시혁의 이런 경력은 높이 평가를 해주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강시혁은 남을 배려할 줄도 알고 금수저들처럼 교만하지도 않았다.
이런 사람과 함께 골프장에서 라운딩을 한다면?
편하기도 할뿐더러 자기도 업무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날려 버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영진 상무는 강시혁에게 골프연습을 권했던 것이다.
차가 이태원에 도착하였다.
강시혁은 조수석 위에 있던 법인카드를 이영진 상무에게 돌려주며 말했다.
“아무래도 저 같은 사람이 법인 카드를 쓰기가......”
“어서 주머니에 넣으세요. 안 그러면 저 화낼 거예요.”
강시혁은 우물쭈물하다가 마지못해 카드를 주머니에 넣었다.
뒤 트렁크를 열었다.
일단은 꽃무늬가 있는 이영진 상무의 골프백을 꺼내 옮겨주었다. 트렁크 안에는 밤색 골프백이 그대로 있었다. 이영진 상무가 말했다.
“수고하셨어요. 이제 돌아가 쉬세요.”
“그럼.......”
“골프 연습 부지런히 하세요. 우선 7번 아이언으로 부지런히 연습하세요.“
강시혁은 이영진 상무에게 정중히 인사를 하고 영빈관으로 돌아왔다.
일단은 밤색 골프백을 차에서 꺼냈다.
영빈관의 지하에 있는 관리사무실로 들어와 골프 가방을 열어보았다. 골프채가 14개가 크기별로 나란히 들어있었다.
[이게 7번 아이언인가?]
가운데 있는 중간크기의 쇠로 된 골프채였다. 한번 휘둘러보았다.
이번엔 거울 앞에서 휘둘러보았다. 버버리 티셔츠를 입고 휘둘러보니 오늘 골프장에서 본 골퍼들과 폼이 다르지 않았다.
자기는 오늘 본 귀공자들보다 체격이 좋으니 공이 더 멀리 날아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시혁은 자기 방 침대에 누워 골프관련 유튜브 동영상을 보았다.
그런데 카톡이 울렸다. 이영진 상무가 보낸 카톡이었다.
[골프 연습장은 등록비 외에 코치 레슨비용이 들어갈 거예요. 레슨비용이나 콜프 장갑, 신발 등도 법인 카드로 정리하시면 됩니다. 돈 아끼지 마시고 지불하시면 됩니다.]
강시혁도 답신을 보냈다,
[배려 감사합니다. 열심히 연습하도록 하겠습니다.그리고 법인카드는 월요일 제가 금산 아줌마한테 맡겨 놓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당분간 가지고 계셔도 됩니다. 그럼 편안한 밤 되세요.]
[고맙습니다. 상무님.]
이날 밤 강시혁은 이영진 상무와 함께 그린 위에서 골프를 치는 꿈을 꾸었다.
뭉게구름이 두둥실 떠있는 하늘을 향해 강시혁이 공을 날리자 이영진 상무가 나이스를 외치며 손뼉을 쳐주는 꿈이었다.
꿈이지만 이런 꿈은 좋았다. 정말 그런 날이 현실에서 올 수 있을까 하였다.
다음날은 일요일이었다.
강시혁은 이태원 주변에 골프 연습장이 있나 찾아보았다.
스크린 골프장은 많은데 그물망이 쳐진 야외 연습장은 없는 것 같았다. 한참 찾아보니 청파동 숙명여대 근방에 하나 있는 것이 검색되었다. 지하철역에서도 멀지 않은 것 같았다.
강시혁은 이곳을 찾아가 등록했다. 생각보다는 이용료는 비싸지 않은 것 같았다.
그런데 연습장 이용료보다는 코치 레슨비가 따로 들어갔다. 강시혁은 아무것도 모르는 초보자라 프로 코치 레슨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레슨비도 3개월 치를 지불해주었다. 골프화와 장갑 같은 것도 법인카드를 주고 샀다.
강시혁은 골프 연습은 낮에는 회사일 때문에 안 될 것 같았다. 그래서 아침 출근 전 6시에 나와서 연습하기로 하였다.
골프 연습장에서 프로 코치를 소개 받았다. 강시혁보다도 젊은 사람이었다.
코치가 말했다.
“골프 쳐본 경험 있으세요?”
“없습니다. 초보입니다.”
“연세가 있으신 것 같은데 왜 아직 안 배우셨어요?”
[먹고 살기 바쁜데 골프 칠 여력이 없었다오. 투잡 뛰느라 그동안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오.]
이 말을 하고 싶었지만 꾹 참고 둘러댔다.
“직장이 멀고 일이 많아서 못 배웠죠.”
“골프채는 있습니까?”
“새로 샀습니다.”
“그럼 우선 아이언 7번만 가져와서 연습하세요.”
그러면서 코치는 강시혁이 입고 있는 버버리 티셔츠를 유심히 쳐다보았다.
쩐이 있는 사람처럼 보여서 그런 것 같았다.
강시혁은 이제 바쁘게 생겼다.
아침에 일어나면 영빈관 청소도 해야 하고 바벨운동도 해야 하고 골프 연습장에 가서 골프연습도 해야 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저녁에는 어학연습도 해야 하고 경영학관련 책도 좀 봐야하기 때문이었다.
강시혁은 자기가 골프를 배우기로 했다는 것을 변상철에게 자랑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골프 실력이 어느 정도 붙은 다음에 깜짝 놀라게 해주고 싶기도 했다. 그래서 전화번호를 누르다가 말았다.
월요일이 되었다. 강시혁은 동틀 무렵 새벽에 일어났다.
청소와 바벨운동을 하고 지하철역으로 달려갔다. 골프 연습장으로 가기위함이었다.
지하철은 아직 출근시간이 아니라서 붐비지는 않았다.
벤츠를 타고가도 되겠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골프는 조용히 배우고 싶었던 것이다.
골프 연습장이 있는 청파동까지는 3정거장 밖에 되지 않지만 삼각지역에서 한번 갈아타야했다.
강시혁은 지하철 의자에 앉아서 팔짱을 끼고 이번 주는 참 중요한 한주가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장명건설의 노사분규도 이번 주에 타결되고 어쩌면 홍 사장의 장명건설 주식 가압류도 이번 주에 철회가 될지 몰라. 그러면 장명건설 주가가 요동을 칠거야. 그렇다면 나도 이미 매집한 장명건설 주식의 매도 타임을 잘 잡아야지.]
프로코치는 강시혁에게 그립 잡는 법에서부터 임팩트하는 법등을 알려주었다.
몇 번 해보니까 잘 될 것 같았다. 코치가 웃으며 말했다.
“사장님은 운동신경이 아주 좋으신 것 같네요.”
[사장님? 이놈아 난 대리다. 대리! 야간 운전대리가 아니고 삼방그룹 비서실 대리다!]
강시혁은 코치에게 자기 명함을 줄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그런데 사장이라고 불러도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었다. 자기는 이미 K&B컨설팅의 가짜 사장 명함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강시혁은 등에 땀이 나도록 연습을 했다.
확실히 이렇게 운동을 하고 아침밥을 먹으니 밥맛도 났다.
골프란 것이 금수저들의 놀음이라 자기와는 상관이 없는 먼 동네 스포츠로만 알았다. 그런데 한번 해보니 할 만 하였다.
오늘 연습장에서 보니까 아줌마들도 많이 와 있었다. 나이든 아줌마들도 잘 치는데 젊은 자기가 못하랴 싶었다.
영빈관에서 낮엔 특별히 할 일도 없었다.
그래서 장명건설 주가만 살폈는데 아직도 반응이 없었다. 그대로 거래량 없이 박스권에서 움직이기만 했다. 임금협상이 타결되었다는 소식도 들리지 않았다.
[설마 임금협상 16차 회의가 결렬이 된 건 아니겠지.]
그런데 비서실 최 이사가 전화를 했다.
“강 대리? 요즘은 이영진 상무님 수행하는 일 없지?”
“토요일까지는 있었는데 지금은 없습니다.”
“그런데 오후에 자리 비우지 말게. 본사 로비에 있던 돌아가신 창업 회장님 흉상을 영빈관으로 옮기네. 회장님 지시사항이네.”
“그렇습니까? 그럼 제가 흉상을 가지러 가야합니까?”
“이 사람아. 그건 전문가들이 옮겨야 하네. 전문 업체에서 잘 포장해서 영빈관으로 가져갈 테니 자네는 받아주기만 하면 되네. 잘 보관했다가 본사 로비 인테리어 공사 끝나면 다시 가져 오던가 할 거네.”
“알겠습니다. 꼼짝 않고 여기서 대기하겠습니다.”
오후에 정말 회장님 흉상을 실은 이삿짐 차가 도착했다.
강시혁은 흉상을 지하 창고에 보관을 시킬까 하다가 그렇게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창업 회장님 흉상을 지하에 처박아 둔다면 내가 괘씸죄에 걸리겠지?]
그래서 흉상을 1층 접견실 한쪽에 두도록 하였다.
그리고 수송을 한 업체 직원이 돌아간 후 강시혁은 흉상의 포장지를 벗겨내고 잘 닦았다.
동으로 만든 흉상이므로 마른 수건으로 닦을수록 윤이 났다.
강시혁은 다 닦고 나서 창업회장님 흉상에 두 손 모아 절을 하며 소원을 빌었다.
[창업 회장님! 이번에 당신의 손자로부터 빌린 돈 20억으로 장명건설 주식을 매집했습니다. 부디 이 투자금이 팝콘처럼 튀겨져 30억, 40억으로 변하도록 하여주십시오.]
강시혁이 시계를 보았다. 오후 5시였다.
강시혁은 장명건설의 오늘 종가가 궁금했다. 컴퓨터를 켜고 주식거래 사이트에 들어갔다.
“어? 이게 웬일이지? 장 종료를 앞두고 7%나 올라갔네?”
강시혁은 순간적으로 임금협상이 타결되었거나 아니면 무슨 호재가 있는 것 아닌가 했다.
시간외 거래에서도 거래량이 많지 않았지만 상한가를 기록하고 있었다.
7% 상승이면 강시혁은 20억을 투자했으니까 순식간에 1억 4천만 원을 번 것이 된다.
내일 아침에도 현재 주가가 꺼지지만 않는다면 이번 투자가 실패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주 토론게시판에 들어가 보았다.
“막판에 어떤 놈이 땡겼네.”
“거래량 나온 건 아니다. 트릭이니까 그런 줄만 알아.”
“내가 힌트 하나 줄게. 호재 만발하니까 아직은 꼭 붙들고 있어.”
“이 형은 장 막판에 5% 먹고 간다. 꺼~억.”
임금협상 타결에 대한 소식은 없었다.
역시 개미들은 이런 정보도 없이 감으로 주식투자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강시혁은 지난번에 노조위원장 명함을 받았던 것이 기억이 났다.
그래서 전화를 걸어보았다.
“노조위원장님이시죠?”
“어디시죠?”
“지난번에 방문했던 K&B 건설팅의 강 사장입니다. 혹시 임금협상이 끝났는지요?”
“다 끝났어요. 이제 당신들이 M&A니 뭐니 하는 것은 물 건너갔으니 그런 줄 아세요!”
“그러면 임금 협상이 타결이 되었다는 말입니까?”
“당신들 기업 사냥꾼이지? 멀쩡한 회사 쿡쿡 찔러보아 간이나 보러 다니면 쓰것소? 젊은 사람들이 우리처럼 피땀 흘려 일할 생각은 안하고 일확천금이나 바라면 쓰것소?”
신임 노조위원장은 아직도 말투가 건방져 보였다.
쐐기는 한번 박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갈 좀 쳐주기로 했다.
“무엇을 일확천금을 바란다는 말입니까? 지금 노조위원장님 어디 아프십니까?"
"뭐, 뭐라고?“
“이봐요! 말 그렇게 함부로 하는 게 아닙니다. 노조위원장이 무슨 대단한 벼슬인지 아는 모양이네!”
“아아, 내가 말을 좀 심하게 한지는 모르지만 M&A 의사도 없는 회사에 와서 들쑤시고 다니지 말란 말이요. 임금 협상은 타결되었으니 말이요.“
“그래요?“
“그런 줄 아슈!”
강시혁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됐구나. 그래서 정보를 먼저 안 놈들이 주식을 사들였구나! 그러니 막판에 7%나 올라가지!]
“솔직한 이야기지만 그 회사는 임금 16% 올리면 거덜 나게 생겼던데.....”
“8%로 타결 되었어요. 화사와 함께 근로자들도 아픔을 함께 해야지. 안 그렇소? 아무튼 장명건설은 잘 돌아가고 있으니 당신들은 이제 딴 동네나 가보라 이 말씀이요.”
강시혁은 또 한 번 씩 웃었다.
그리고 이영진 상무에게 카톡을 보냈다.
[장명건설 노조위원장과 통화를 했습니다. 임금 협상안은 8%에 매듭을 지은 것 같습니다.]
[저도 방금 임단협 사측 협상대표인 장명건설 사장으로부터 타결 보고를 받았습니다. 강 대리님의 물밑 활동이 결정적 역할을 한 것 같네요. 수고 많으셨습니다.]
[아마 조만간 일본 가와라 흥업의 가압류 들어온 것도 해제가 될 것으로 봅니다.]
[저는 앞으로 장명건설의 상호도 바꾸고 장명건설의 홍 사장 지분이나 전임 사장인 김장명 사장의 지분도 모두 사들일 계획입니다.]
[아, 그러십니까?]
[그리고 장명건설 임직원들의 급여를 삼방 계열사 수준으로 끌어올릴 계획입니다.]
강시혁은 이영진 상무가 가냘픈 여성으로만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고 생각했다.
의지가 상당히 강한 사람으로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