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7화 골프 치는 사람들 (3)
(157)
강시혁은 주차장으로 갔다.
주차된 벤츠 운전석에 앉아 스마트 폰을 보았다. 혹시 장명건설과 관련한 중요 기사가 없나 해서 보았다.
특별한건 없었다. 더구나 오늘은 토요일이라 주식 시장이 열리는 날도 아니었다.
[임금협상 타결 소식은 월요일 날 정도에 나오겠군. 그러면 주가가 슬슬 움직이려나?]
정말 주가가 움직여 줘야 자기가 살아날 수 있었다.
강시혁은 음악을 약하게 틀어놓고 또 스마트폰을 보았다. 포털 사이트에 뜬 뉴스를 보고 있는데 고급 외제차 두 대가 올라오고 있었다.
차에서 내리는 사람들은 이영진 상무의 동창들처럼 젊은이들이었다.
강시혁은 세상이 참 공평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이 시각에도 어르신 주간보호센터의 승합차 기사들이나 복지사나 택배기사들은 땀 흘려 일을 한다. 하지만 또 한편에선 이렇게 골프를 치며 세상을 사는 젊은이들도 있는 것이다.
“쟤들도 20억짜리 골프장 회원권이 있어서 치러 왔을까? 아니면 비회원 자격으로 치러왔을까?”
강시혁은 자기 월급을 모은다면 몇 년 후에 이 골프장 회원권을 살 수 있을까 계산해 보았다.
[내가 삼방 문화재단의 경비반장으로 있을 땐 280만원을 받았었지. 그때는 이 돈도 감지덕지 했지. 그리고 일본 가서 손가락 하나 잘리곤 비서실 대리가 되었지. 비서실 대리가 되어 받은 첫 월급은 542만원이었어. 이만하면 내 나이에 대한민국에선 남에게 꿀리는 정도는 아니야. 하지만 근로소득세 세금 내고 4대 보험 공제하면 실 수령액은 460만원이었어.]
[460만원에서 이를 악물고 매월 300만원을 저축한다면 3천 600만원이야. 10년 모으면 3억 6천만 원인가? 그러면 30년이라면? 10억 8천만 원인가? 평생 개같이 모아도 이 골프장 회원권은 절대 못사네. 그럼 다음 생에도 30년 모은다면? 그때나 겨우 사려나? 어쨌든 금생에서는 틀렸네. 외제차에서 내리는 저놈들은 30살도 안된 나이에 회원권이 있겠지만 난 틀렸네.]
이렇게 생각하니 속에서 열불만 났다.
[역시 대한민국은 근로소득 보다는 자산 소득이 있어야 해.]
강시혁은 비로서 근로소득보다는 자산소득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맞아. 이번에 이영남에게 빌린 20억이 좀 튀겨줘야 나는 일어설 수 있어. 그래야 인간답게 살 수 있게 된단 말이다!]
강시혁은 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골프장 그린 저쪽에 있는 앞산을 향해 기도를 했다.
“천지신명이시여. 이번에 투자한 20억이 팝콘처럼 튀겨져 많은 돈을 벌 수 있도록 하여 주시옵소서. 도와주시옵소서.]
강시혁은 오랫동안 서서 앞산을 향해 기도했다.
이번엔 앞배가 톡 튀어나온 아재들이 고급차를 타고 왔다.
어찌나 떠들면서 클럽하우스로 가는지 꼭 갑자기 졸부가 된 장사치들 같았다.
강시혁은 차를 끌고 나왔다.
좀 돌아다니다가 들어가면 시간을 때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참 가다보니까 이천 사기막골 도예촌이 나왔다. 골프장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다.
강시혁은 여기서 각 공방의 도자기 구경을 했다. 그리고 뚜껑 있는 반찬을 담는 사기그릇이 있어 하나 샀다. 사고 싶지 않았지만 그냥 나가면 공방 주인이 섭섭해 생각할까봐 하나 산 것이다.
벤츠를 끌고 온 버버리 티셔츠의 남자가 반찬그릇 하나만 달랑 사간다고 주인은 속으로 욕을 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에도 카페는 있었다. 강시혁은 여기에선 우아하게 앉아 차를 마셨다. 자기도 20억짜리 골프장 회원권을 가지고 골프나 치러다니는 사람처럼 폼을 잡고 커피를 마셨다.
강시혁은 이천시내도 구경할까하다가 그만두었다. 시내에 들어갔다 나오면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아서였다.
시계를 보았다. 아직 시간은 남아 있었지만 골프장 주차장으로 돌아왔다. 그린 위에서 골프를 치는 사람들이 보였다.
[에효. 나보다 어린 사람들이 골프 치는데 나는 이게 뭐람. 내가 생각하기에도 더럽게 한심하네. 아니지. 이런 부정적인 생각을 하면 안 되겠지. 모시고 다니는 나의 공주님께서 즐거우면 나 또한 즐거운 일이 아니겠나!]
이렇게 긍정적인 생각을 하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가벼운 마음으로 음악을 듣고 있는데 이영진 상무에게서 전화가 왔다.
“오래 기다리셨지요? 끝났어요.”
“클럽하우스 앞으로 가겠습니다.”
강시혁은 클럽하우스 앞으로 갔다. 이영진 상무의 골프채를 받아서 트렁크에 실었다.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즐거운 시간 보내셨어요?”
“오늘은 볼이 잘 안 맞네요.”
“제가 상무님이 우승해 달라고 빌었는데!”
“어머 그러셨어요?”
강시혁은 이제 능청스럽게 거짓말도 잘했다.
장명건설에 투자한 20억이 팝콘 튀듯이 튀어 많은 이익을 보게 해달라고 빌었지 이영진 상무 골프 성적 좋게 나와 달라고 빌은 적은 없었다.
“다음번 치실 때는 볼이 잘 맞으실 겁니다.”
“배고프죠? 가다가 점심 먹고 가기로 했어요. 골프장에서 가까운 유명한 한정식 집이에요.”
“알겠습니다. 거기로 모시겠습니다.”
강시혁은 이영진 상무를 태우고 광주시 초월읍에 있는 한정식 집으로 갔다.
식당은 숲속에 있는 깔끔한 집이었다. 외딴곳에 있는 것으로 보아 근처 골프장 손님들을 주로 받는 집 같았다.
이영진 상무가 도착하자 차례대로 H그룹 아들 차와 K그룹 아들 차가 도착했다. 마지막으로 50대 기사가 운전하는 백화점 회장 딸 차량이 도착했다. 모두 고급 외제차였다. 시가 3억이 넘어가는 차들이었다. 오히려 이영진 상무를 태우고 온 벤츠차가 초라해 보이기도 했다.
이영진 상무와 그의 동창들은 룸으로 들어갔고 강시혁은 백화점 사장 차 기사인 50대와 함께 홀에 있는 테이블에 앉았다.
50대 기사가 말했다.
“이 식당 처음 와보죠?”
“예, 처음입니다.”
“이집 반찬이 괜찮습니다. 집밥처럼 나오는데 아주 좋습니다. 나는 우리 사장님을 모시고 올 때마다 여기를 들리면 제일 좋습니다.”
강시혁은 이 아저씨도 밖으로 나오는 것을 즐기는 사람으로 보았다.
비록 자기 조카뻘 되는 나이의 사장을 모시고 와서 4시간 이상 죽치고 기다리는 일을 해도 즐거워하는 것 같았다.
음식이 나왔는데 정말 잘 나왔다. 생선구이, 버섯탕, 간장게장, 더덕구이, 돼지고기 볶음. 돌솥밥 등이 푸짐하게 나왔다. 반찬만 해도 테이블에 그득했다.
이영진 상무가 식사하는 룸으로 맥주가 들어갔다. 아마 맥주도 한 컵씩 마시는 것 같았다.
이영진 상무와 백화점 사장은 기사들이 와서 술을 마셔도 상관이 없다. 남자들이 걱정이 되었다.
H그룹 아들과 K그룹 아들은 기사 없이 직접 운전을 하고 왔기 때문에 술을 마시면 안될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강시혁이 50대 기사와 같이 밥을 먹으며 말했다.
“기사님. 남자 분들은 모두 직접 운전하고 왔는데 술을 마시는 것 같네요.”
“놔둬요. 한잔씩 정도야 무슨 일이 있으려고.”
백화점 사장 차 기사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말했다.
[망할 자식들! 한 잔을 마시더라도 대리기사를 부르면 얼마나 좋을까! 불쌍한 대리기사들도 돈을 벌게 해주면 좋은 일 하는 것 아닌가!]
“기사님은 사장님 모시고 밖에 나오는 것이 좋은 모양입니다.”
“좋죠. 토요일 근무라 특별 수당 붙고 또 이렇게 나오면 잘 얻어먹잖아요.”
“그건 맞는 것 같네요.”
강시혁은 특별 수당이 없다.
왜냐하면 회사의 공식적인 일로 온 것이 아니고 이영진 상무의 사적 일로 나왔기 때문이었다. 따지고 보면 이들도 사적 모임일 텐데 아마 회사에서는 손님 접대한다고 하면서 나왔으리라. 그래서 50대 기사는 특별수당 받는 것이 가능한 것이리라.
이영진 상무도 회사에서 접대 때문에 나왔다고 하면 강시혁에게 휴일 근무수당이 나올 텐데 이것은 이영진 성무의 성격상 불가능하리라고 보았다.
강시혁 또한 이영진 상무를 모시는 일 자체가 즐거운 거지 수당을 바라는 것은 아니었다.
기사가 간장게장을 먹으며 말했다.
“또 좋은 게 하나 있습니다,”
“그게 뭡니까? 맑은 공기 마셔서 좋다는 겁니까?”
“그것도 있지만 마누라 잔소리 안 들어서 좋아요. 여기 나오면 마누라 잔소리 안 듣거든.”
기사와 함께 강시혁은 얼른 식사를 마쳤다.
주인들보다 기사들은 먼저 식사를 마쳐야 하므로 이 50대 기사의 밥 먹는 속도는 무척 빨랐다.
강시혁과 50대 기사는 식사를 마친 후 종이컵에 든 자판키 커피를 마셨다.
그래도 룸에 있는 젊은 주인들은 하하, 호호, 하고 웃으며 나오질 않고 있었다.
세상의 주인은 강시혁과 같은 흙수저가 아니라 이들인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룸에 있는 사람들이 나왔다. 모두 얼굴색들이 발그레 하였다.
이영진 상무도 오래간만에 또래의 동창들을 만나서 그런지 한잔 한 것 같았다. 얼굴이 약간 발그레 하였다. 더구나 이영진 상무는 기사 겸 보디가드로 강시혁이 따라왔기 때문에 마음 놓고 마신 것 같았다.
점심시간이 되어서 그런지 손님들이 많아졌다.
이 식당을 들어올 때는 한가했는데 나갈 때는 복잡했다. 그래서 강시혁은 H그릅 아들과 K그룹 아들 차가 잘 빠져나가도록 차를 유도해 주었다.
H그룹 아들은 운전석 유리문을 내리고 고맙다는 말을 했다.
“기사님! 고마워요.”
[내가 기사님이 되었군.]
K그룹 아들은 고맙다는 말도 없이 그대로 윙 하고 가벼렸다.
[싸가지 없는 자식!]
백화점 사장차를 운전하는 50대 기사는 고맙다고 오른 손을 올려주었다.
뒤에 탄 젊은 백화점 사장이 유리문을 내리고 강시혁을 향해 소리쳤다.
“잘생긴 아저씨! 고마워요!”
[아저씨? 내가 졸지에 아저씨가 되었군.]
차가 모두 빠져나가자 그때서야 강시혁이 벤츠 차 위로 올라왔다.
얼굴을 돌려 뒷좌석에 앉은 이영진 상무를 보며 말했다.
“이태원 자택으로 모시면 되겠지요?”
“예, 그렇게 해주세요.”
강시혁이 서서히 고속도로로 접어들었다.
룸미러를 보니 이영진 상무는 다소 피곤해 보였다. 골프장에서 4시간 이상 18홀을 돌고 점심까지 먹고 맥주를 한잔 마셔서 그런 것 같았다. 꾸벅꾸벅 졸다 말다를 반복하는 것 같았다.
강시혁은 이영진 상무가 과거에 피아노를 쳤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아직도 영빈관에 이영진 상무가 쓰던 피아노도 남아있지 않은가!
강시혁은 피아노 곡을 작게 틀었다.
에디 히긴스가 피아노를 연주하는 Autumn Leaves 를 들려주었다. 가을을 노래한 연주지만 잔잔하게 들리는 드럼 소리와 함께 연주되는 피아노 소리가 좋았다.
이영진 상무는 음악을 듣더니 바로 목이 옆으로 꺾어졌다,
잠이 온 것이다. 강시혁은 이영진 상무의 새근거리는 숨소리를 들으며 고속도로를 달렸다.
차가 톨게이트에서 요금 지불 때문에 잠깐 멈추었다. 그러자 이영진 상무가 잠을 깼다.
이제 발그레한 얼굴빛도 원 위치로 돌아왔다.
이영진 상무는 주위를 한번 보고나서 생수를 마셨다.
“벌써 톨게이트까지 왔네요.”
“그렇습니다. 이제 다 왔습니다. 차만 안 막히면 금방 이태원에 도착할겁니다.”
그런데 토요일 오후라 차는 좀 막혔다.
“강 대리님 피곤하시죠? 오늘 저 때문에 쉬지도 못하고.”
“아닙니다. 저도 오늘 맑은 공기 쏘이고 즐거웠습니다.”
“4시간이나 기다리기가 지루했죠?”
“아닙니다. 골프장에서 멀지않은 곳에 사기막골 도예촌이라는 곳이 있어서 구경 잘하고 왔습니다.”
“호호. 그래요?”
“사기로 된 반찬 그릇도 하나 샀습니다.”
“호호. 살림꾼이네요.”
“혼자 살다보니깐.....”
“강 대리님도 골프는 칠줄 알죠?”
“골프는 배우지 못했습니다. 투잡하느라 정신없어 배우질 못했습니다.”
“골프를 배워보시겠어요?”
“하하. 골프는 그만 두겠습니다. 비용도 많이 들어간다는 이야기도 있어서요.”
“지금 뒤 트렁크에 실린 남자용 골프백은 강 대리님 드리려고 실은 거예요.”
“예?”
“골프를 배워두시면 제가 접대 골프를 칠 때 강 대리님은 혼자서 퍼팅 연습이라도 하면 좋잖아요? 킬링 타임하기엔 퍼팅 연습이 최고죠.”
“그, 그건 그렇지만.”
“비용은 걱정하지 마세요. 이건 법인카드니까 내일이라도 골프연습장 이용권을 끊으세요. 1년 짜리 끊으시면 되겠네요.”
그러면서 이영진 상무는 법인 카드를 봉투에 넣어 앞좌석 조수석 시트위에 올려놓았다.
“제, 제가 법인카드로 골프를요?”
“나중에 강 대리님이 좀 더 성장하시면 골프를 쳐야만 하는 상황이 올지도 몰라요. 또 접대 골프가 아니더라도 저와 영남이와 강 대리님이 같이 치러 갈수도 있잖아요.”
“제, 제가 감히 어떻게.”
“우리는 회사의 상무와 대리를 떠나서 친구잖아요. 벌써 일본과 중국 여행도 같이 갔다 왔잖아요.”
[상무님! 친구라고 하셨습니까? 이 천한 흙수저를 친구라고 하시다니!]
강시혁은 목이 메어 말이 나오질 않았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차가 양재동 쯤 오자 차가 밀렸다. 가다 서다를 반복했다.
강시혁이 팔을 뻗어 조용히 음악을 틀었다. 디온 워릭의 ‘That's what friends are for (친구란 그런 거니까)’ 란 곡이었다.
이 곡의 전주곡이 흘러나오자 이영진 상무가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노래가 흘러나왔다.
“For good times and bad times.
I'll be on your side forever more.
That's what friends are for.“
(좋을 때나 나쁠 때나
나는 영원토록 그대 편에 설게요.
친구란 그런 거니까요.)
이영진 상무와 강시혁은 속으로 이 가사를 따라 부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