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녀의 두 번째 남편-156화 (156/199)

156화 골프 치는 사람들 (2)

(156)

강시혁이 차고로 내려갔다.

어제 말끔히 세차해 놓은 벤츠가 형광등 불빛아래 빛을 발하고 있었다.

강시혁은 벤츠를 끌고 서서히 이영진 상무 집으로 갔다.

정확히 새벽 5시 5분전에 도착했다.

그런데 5시가 넘도록 이영진 상무가 나오지 않고 있었다.

[늦잠을 주무셨나?]

이영진 상무의 전화가 왔다.

“미안하지만 집 안으로 들어오시겠어요?”

거대한 집의 정문이 저절로 열렸다. 집 안에서 리모컨 조종을 했기 때문이었다.

강시혁이 현관에 들어서자 이영진 상무도 가벼운 복장으로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골프채를 좀 실어주시겠어요?”

그런데 골프채 세트가 들어있는 골프백이 두 개였다.

하나는 꽃무늬가 있는 것으로 보아 여성용인 것 같았고 하나는 육중한 밤색 골프백이라 남자용인 것 같았다.

[혹시..... 남자 애인이라도 생겨 같이 치러 가는 건가?]

강시혁은 이상하게 다리가 후둘 거리고 떨렸다.

[주인집 공주님께서 남자 애인이 생겼으면 축하해줘야 할 일이 아닌가! 그런데 내 다리가 왜 이렇게 떨려? 내가 이러면 안 되지. 나는 단순한 운전기사 겸 경호원인데!]

강시혁은 골프채를 뒤 트렁크에 싣고 이어서 뒷문을 열고 이영진 상무가 승차할 때까지 기다렸다.

출발 전 주인을 위해서 문을 열어주는 것은 운전기사들의 예의였다. 그래야 다른 사람들이 보면 주인의 체면이 올라가는 것이었다.

이영진 상무는 차에 올라가다가 고개를 들어 강시혁의 티셔츠를 쳐다보았다. 자기가 사준 버버리 티셔츠를 입고 있어서 살짝 미소를 보내주었다.

이영진 상무가 보기에 강시혁은 확실히 지난번 중국 갈 때보다도 인물이 살아난 것 같았다. 신세계몰에서 산 2만 6천 원짜리가 아니고 40만원이 훨씬 넘는 명품 티셔츠를 입어서 그런지 달라보였다. 정말 부잣집 아들처럼 보였다.

강시혁은 이영진 상무가 완전히 탄 것을 알고 문을 조심히 닫았다. 그리고 난 다음에 재빨리 운전석에 앉아 안전벨트를 매었다.

이영진 상무는 이런 강시혁이 늘 편했다. 운전도 잘하고 멋있게 생긴 젊은 남자고 또 완벽한 경호업무도 수행해 주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그는 영어도 할 줄 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호감이 가는 것은 그는 예의바른 청년이기 때문이었다. 그동안 자기에게 이렇게 대해주었던 남자가 있었던가?

강시혁이 앞을 응시한 채 말했다.

“그럼 출발 하겠습니다.”

“네.”

강시혁은 부드럽게 이태원 골목길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한남대로로 들어섰다.

강시혁은 운전할 때 급 브레이크도 밟지 않았다. 뒤에 탄 주인이 흔들거리지 않도록 언제나 조심해서 운전했다.

경부 고속도로로 진입하자 이영진 상무가 말했다.

“장명건설은 협상을 다시 한다고 하네요. 노노간의 대립이 있다더니 온건파의 주장이 힘이 실린 모양이죠?”

“예, 저도 비서실 건설 담당자에게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16차 협상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노조가 협상 테이블로 내려오게 된 것은 강 대리님 덕이예요. 강 대리님이 찾아가서 충격요법을 쓴 것이 주효했던 것 같네요.”

“그것보다는 농성이 장기간 지속되니까 이제 그들도 지칠 때도 되어서 그럴 겁니다. 저는 다만 16% 임금인상은 바로 회사가 적자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말해주었을 뿐입니다.”

“노조 간부들이 K&B컨설팅이 뭐하는 회사냐고 묻지 않던가요?”

“펀드를 모집해서 기업의 인수합병이나 또 알선 같은 업무를 한다고는 했습니다.”

“호호. 정말 K&B컨설팅이라는 회사를 발족해야 할 것 같네요.”

“하하. 법인 만드는 것은 좋은데 수익 모델이 없으면 안 됩니다. 저도 건대 앞에서 분식집할 때 무턱대고 사업자등록만 냈다가 이후 수익이 없으니까 바로 문 닫게 되더군요.”

“자영업은 힘들다고 들었는데 고생 많았겠어요.”

“고생은 했지만 좋은 경험은 했던 것 같습니다.”

“강 대리님은 그 학력에, 그 실력에, 그 외모에, 적합한 일을 못 찾으셨던 것 같아요.”

“지금이야 상무님 덕택으로 제 갈 길을 찾은 것 같습니다. 비공채 직원이 삼방그룹에 대리가 되었다고 제 친구들도 부러워하고 있습니다.”

“호호. 그래요? 강 대리님은 앞으로도 계속 성장하실 겁니다.”

강시혁은 ‘상무님이 좀 밀어 주십시오’ 라는 말을 하고 싶었으나 참았다. 그냥 운전만 했다. 그런데 갑자기 이영진 상무의 말이 없어졌다.

룸미러를 보니 꾸벅꾸벅 조는 것 같았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느라고 잠을 설자서 그런 것 같았다.

차가 판교 IC를 지나 원주로 가는 고속도로로 접어들었다.

이영진 상무가 눈을 떴다.

“여기가 어디죠?”

“아파트가 많은 것을 보니 광주 시내를 지나는 것 같습니다.”

이영진 상무는 차창 문을 내리고 공기를 마시다가 터널이 나오자 창문을 닫았다.

강시혁이 음악을 조그맣게 틀어주었다. ‘토토의 즐거운 하루’ 라는 곡이었다. 예능 TV프로그램 같은 데에 가끔 나오는 곡이었다. 즐거운 하루가 되라는 뜻에서 이 곡을 들려주었다.

이영진 상무가 말했다.

“일본의 여류 피아니스트 시즈코 모리의 곡이군요.”

“예, 저도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영남이가 초청하려고 했던 사카모토 쯔요시 선생은 어떻게 되었나요? 세계적 재즈 음악가인 에디 히긴스의 제자라는 일본인 말입니다.”

“초청장을 보냈는데 좀 늦는답니다. 동거하는 여자가 있어 뭔가를 정리하고 온다는 말이 있었습니다.”

“배우자를 잘 못 만나면 고생들 하죠. 나나 강 대리님처럼 말입니다.”

“다 팔자소관인 것 같습니다.”

“미안해요. 아침부터 이런 말을 해서.”

“아닙니다. 제 사정은 누구보다도 상무님이 잘 아실 것 같아서 괜찮습니다.”

“저도 강 대리님이 제 사정을 아는 것 같아 말했든 겁니다. 이해하시죠?”

“그럼요.”

“우리 힘내요.”

“고맙습니다. 상무님도요.”

강시혁은 룸미러를 보며 미소를 지었고 이영진 상무는 강시혁의 뒤에서 미소를 지었다.

강시혁은 토토의 즐거운 하루 볼륨을 좀 더 크게 올렸다.

음악 소리를 듣고 두 사람의 얼굴은 밝아지는 듯 했다.

차가 동 곤지암 IC를 벗어났다. 그리고 이스트밸리CC로 들어가는 숲길로 접어들었다.

역시 숲속으로 들어오니 안구 정화가 되고 힐링이 되는 것 같았다.

드디어 클럽하우스가 나타났다.

아름답게 펼쳐진 그린을 보고 강시혁은 감탄했다. 수유리의 낡은 원룸에 살 때와 여기를 비교하니 정말 말 그대로 지옥과 극락같이 보였다.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사람들은 많지가 않은 것 같았다.

클럽하우스 입구에서 이영진 상무를 내려주었다. 그리고 뒤 트렁크를 열고 골프가방을 꺼냈다. 두 개 세트를 다 꺼내려고 하니까 이영진 상무는 꽃무늬가 그려진 골프백만 내려달라고 하였다.

[어? 남친하고 같이 치러온 것이 아닌가?]

강시혁이 꽃무늬가 그려진 골프백을 들고 이영진 상무 뒤를 따라갔다.

이영진 상무가 접수를 하고 강시혁을 돌아보았다.

“아침 식사 안하셨죠? 같이 하시죠. 오늘 같이 골프 치는 사람들하고는 아침 식사를 여기서 간단히 하고 라운딩을 하기로 했어요. 같이 가시죠.”

그래서 강시혁은 이영진 상무를 따라 클럽 하우스 안에 있는 식당엘 갔다.

오늘 이영진 상무와 라운딩을 할 사람들은 벌써 와 있었다. 젊은 남자 두 명과 여자가 한 명이었다. 이들은 이영진 상무를 보고 손을 흔들었다.

“영진이 왔구나. 우리도 지금 막 왔어.”

강시혁은 여자는 잘 모르겠는데 남자 친구를 보고 깜짝 놀랐다.

그렇다. 왼쪽에 있는 녀석은 H그룹의 아들로 얼마 전에 유명 아나운서와 결혼을 한 녀석이었다. 언론에도 얼굴이 자주 나오는 사람이었다.

또 한 남자도 얼굴이 익은 것 같았다. 어디서 봤더라 하다가 K그룹의 아들임을 알았다. 대기업인 제과회사 오너 딸과 결혼했다는 망나니였다.

여자는 누구인지 잘 몰랐다. 여자가 이영진 뒤에 있는 강시혁과 이영진 상무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며 조그맣게 말했다.

“누구?”

아마 강시혁이 누구냐고 이영진 상무에게 묻는 것 같았다.

이영진 상무가 웃으며 말했다.

“음. 오늘 날 태우고 오신 분이야. 회사에서 의전업무를 담당하시는 분이야.”

이영진 상무는 경호원이라고 소개하지 않았다. 의전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으로 소개 했다.

여자가 다시 한 번 강시혁을 쳐다보았다. 버버리 티셔츠를 입은 건장한 사내에 상당한 호기심을 갖는 것 같았다.

“난, 새로 생긴 네 애인인줄 알았다. 인물도 그렇지만 체격이 참 좋으시네.”

이 말에 이영진 상무도 듣기가 싫지는 않은 것 같았다.

얼굴에 미소를 띠며 말했다.

“우리 삼방 직원들은 인물이 다 좋아!”

여자가 강시혁에게 웃으며 말했다.

“아침식사 같이 하시죠.”

“감사합니다.”

H그룹과 K그룹의 아들들은 강시혁을 힐끗 쳐다보고 별 말이 없었다.

삼방그룹에서 녹을 먹는 놈이군 하는 정도의 표정을 지었다.

강시혁은 골프를 치러온 이 귀공자들하고 어울릴 수는 없었다.

따로 다른 테이블에 앉았다. 그 옆에는 50대 아저씨가 혼자 만두 국을 먹고 있었다.

강시혁은 골프를 치러온 사람들 중엔 이영진 상무의 애인이 될 만한 사람은 없다는 것을 알았다. 참 다행으로 여겼다.

이영진 상무가 애인이 없다는 것을 왜 다행이라고 여겼는지 자기 마음을 알 수가 없었다.

골프를 치러온 이영진 상무의 미국대학 동창들이 음식을 주문했다.

이들도 아침이라 고기 같은 것은 시키지 않고 무슨 탕 같은 것을 시켰다.

강시혁은 혼자 식사하는 50대가 만두 국을 먹고 있어서 자기도 만두 국을 시켰다.

이영진 상무와 동창들은 오래간만에 만나서 그런지 서로 깔깔거리며 수다를 떨었다.

미국 유학파들이라 그런지 대화 중에 영어를 많이 섞어 말했다. 강시혁은 저들이 바로 이 나라의 금수저중에 금수저구나 하였다.

특히 K그룹의 아들은 언젠가 룸살롱 종업원을 폭행하여 말썽을 일으킨 장본인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런지 H그룹 아들보다는 좀 불량기가 있어 보이기는 하였다.

[동창들이 왜 이영진 상무와 결혼하지 않았을까?]

그것은 재학 중에 이미 보수 언론재벌인 홍 사장과 사귀었기에 그런 것이 아닌 가 했다.

홍 사장 역시 미국에서 유학생활을 했던 사람이므로 이들이 아마 선배님이라고 부르지 않았겠나 하였다.

식사를 끝내고 이영진 상무가 말했다.

“경기가 시작되면 시간이 많이 걸릴 거예요. 오늘 18홀을 돌기로 했으니 4시간이상 걸릴 거예요.”

[그럼 골프치는 걸 4시간 동안 구경하라는 말인가?]

이영진 상무가 미안한 표정으로 계속 말했다.

“강 대리님은 우리 넷이 경기하는 걸 갤러리로 참관하시는 것도 좋고 아니면 가까운 사찰이나 관광지 구경하시고 4시간 후에 만나도 좋습니다.”

강시혁은 골프를 쳐보질 않아서 골프 경기의 룰도 모르고 골프 용어도 모른다.

또 아니꼬운 망나니 같은 K그룹 재벌 아들이나 H그룹 아들들이 골프를 치는데 꽁무니를 따라다니고 싶지도 않았다.

“4시간 후에 다시 여기로 오겠습니다.”

“남자들은 직접 차를 운전하고 왔지만 정 사장하고 나는 운전이 서툴러서.....”

정 사장이라고 하니까 생각났다.

여자 친구는 바로 유명한 백화점 재벌의 딸이었다.

그렇다면 조금 전 식당에서 같이 밥을 먹던 50대는 정 사장을 태우고 온 기사였던 것 같았다.

“골프백은 옮겨주지 않아도 돼요. 캐디가 있습니다.”

강시혁이 정중히 허리 굽혀 인사를 하며 말했다.

“그럼 좋은 시간 보내시기 바랍니다.”

강시혁은 클럽하우스를 나왔다.

그리고 야외 테라스 쪽으로 왔다. 여기서는 언덕 아래로 시원하게 펼쳐진 그린을 볼 수 있었다.

조금 전 식당에서 본 50대 아저씨도 여기에 앉아서 아래 경치를 구경하고 있었다.

50대가 강시혁을 힐끗 쳐다보고 말했다.

“이 골프장이 그래도 다른 골프장보다는 좋습니다.”

강시혁은 미소만 지었다.

자기는 다른 골프장을 가보지 못해 비교를 할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냥 미소만 지었다.

50대가 다시 물었다.

“삼방의 이영진 상무님을 모시고 왔지요?”

“그렇습니다.”

“난 S백화점 정 사장을 모시고 온 사람이요. 앉읍시다. 그런데 오늘은 김 기사가 아니고 다른 분이 왔네요.”

“예, 그렇게 되었습니다.”

“경호원이요? 폼이 경호원 같은데?”

“경호원 맞습니다.”

“태권도나 격투기 유단자라도 되는 것 같군. 그럼 삼방 직원이요? 아니면 보안회사 파견 직원이요?”

“회사 직원입니다.”

“우리 정 사장이야 백화점 하나만 경영하지만 이영진 상무는 계열사만해도 20개가 넘는 대그룹 후계자니까 경호요원이 필요하겠지. 그런데 경호원이 너무 잘생겨서 남들이 보면 이영진 상무의.......”

그러다가 남자는 얼른 자기 입을 가렸다.

주인을 모시고 다니는 기사들은 입 조심을 해야 되기 때문이었다.

그는 얼른 말을 돌렸다.

“난 이 골프장만 오면 좋아요. 이 골프장은 회원권 남발을 안 해서 그런지 복잡하지 않아서 좋습니다.”

“그렇습니까?”

“그리고 이 지역은 지세가 좋은지 아침 새벽에 안개도 잘 안 껴 좋습니다. 골프장 치고는 위치가 좋습니다. 서울에서 멀지도 않고요.”

“참, 여기 골프장 회원권 시세는 얼마나 하나요? 비싸죠?”

“정확히는 모르겠는데 코로나가 한창일 때는 20억이 넘어간다는 말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좀 내렸나 모르겠네요.”

[20억? 변상철이 한 말이 맞는 것 같네. 에효, 20억이면 우린 팔자를 고치는 돈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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