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녀의 두 번째 남편-154화 (154/199)

154화 노사분규 중재 (4)

(154)

약간 젊은 40대 노조원이 말했다.

“현재 노조위원장은 이분이 맞습니다. 당신들이 알고 온 노조위원장은 전임위원장입니다.”

“오, 그런가요? 그런데 여기 노조는 둘로 갈라진 게 맞나요?”

노조위원장이란 사람이 발끈했다.

“둘로 갈라지다니! 이 사람들이 뭘 잘못 먹었나? 어디서 헛소리야! 내가 노조원들 투표에서 당당히 당선된 사람인데!”

“그러십니까? 그럼 지금 말씀하신 분이 대표성이 있겠네요. 잠깐 몇 마디 말씀 나누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당신 기자는 아니지? 보수 신문 기자는 아니지?”

“기자라니요? 분명히 컨설팅 회사에서 왔다고 했잖습니까!”

그러면서 강시혁이 명함을 주었다. 변상철도 명함을 주었다.

“K&B컨설팅이라..... 정말로 회사에서 M&A(기업 인수와 합병)를 추진한다는 말이 있는 거요?”

“일단 안으로 들어가서 말씀 드리죠. 위원장님 명함 있으면 한 장 주세요.”

노조위원장이 명함을 강시혁과 변상철에게 주면서 말했다.

“보수 일간지 기레기 놈들은 우리에게 우호적이지 않아요. 자기들 마음대로 기사를 낸다니까! 여기까지 와본 놈들이 그 지랄들이요.”

“진보 언론은 호의적인 것 같네요.”

“진보언론이 우리의 사정을 제대로 반영해요. 그 이외는 모두 나쁜 놈들이에요. 가진 자들 편만 들어서 쓰겠소? 안 그래요? 젊은 양반들!”

“저희는 아직 분위기 파악을 못해서....... 일단 사무실로 가서 몇 가지만 물어보고 가겠습니다.”

“들어 오슈.”

그래서 노조위원장을 따라 현장 사무실로 들어갔다.

현장 사무실은 샌드위치 판넬로 만든 가건물이었다. 안에는 회의하는 플라스틱 테이블과 의자가 있었다.

노조 위원장이 가운데 앉고 그 옆으로 또 두 명의 남자들이 앉았다. 노조의 간부들인 것 같았다.

그때였다. 얼굴에 주름살이 많은 50대 남자가 들어왔다.

“나를 찾는다는 사람이 누구요?”

팔짱을 끼고 의자에 앉았던 노조위원장이 인상을 찌푸렸다.

심통 사나운 얼굴을 하고 퉁명스럽게 말했다.

“형님은 여기 왜 온 거요?”

“나를 찾는 사람이 있다기에 왔지.”

강시혁은 이 사람이 전임 노조위원장인 것을 즉각 알았다.

“혹시 조명진 선생님이십니까?”

“맞소. 당신들은 누구요?”

“컨설팅 회사에서 왔습니다.”

그러면서 강시혁이 명함을 주었다.

“K&B컨설팅이 뭐하는 회사요?”

“기업 컨설팅도 하고 펀드 투자도 하는 회사입니다. 주로 고객 이익을 위해 M&A 같은 것을 많이 하는 회사입니다. 다시 말해 기업을 사들이기도 하고 팔기도 하고 아니면 매매 알선도 하고 그러는 회사입니다.”

변상철은 강시혁의 구라가 좋은 것을 알고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전임 노조위원장은 강시혁의 얼굴과 명함을 번갈아 보고나서 말했다.

“그래요?“

그러면서 전임 노조위원장도 의자에 앉았다.

여전히 팔짱을 끼고 심통 사나운 얼굴을 하고 있는 신임 노조위원장이 말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내가 장명건설 노조의 위원장이요. 대표성은 내가 있다는 말이요.”

“예. 두 분 다 계시니까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저희는 최근에 장명건설의 주가가 많이 떨어져 M&A를 한번 해볼까 해서 방문했습니다.”

“그렇다면 회사에서 정말 M&A 의사가 있다는 거요?”

“회사의 누군가가 전화는 왔었습니다. 아직 정식 의뢰를 받은 건 아닙니다.”

전임 노조위원장이 말했다.

“그런데 M&A 같은 건 회사 경영진하고 이야기해야지 왜 우리하고 이야기 하는 거요?”

“회사도 중요하지만 종업원의 동향도 중요합니다. 그래서 직접 노조원들의 의견을 청취해보고 싶어서 왔습니다.”

“뭘 청취해 보겠다는 거요?”

“현재 임금인상안 16%는 절대 물러설 수 없는 선인지 확인해보고 싶습니다.”

“그렇게 받아야 삼방건설 애들이 받는 것과 비슷해지지 않겠소?”

“우리가 인수한다면 그렇게 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렇게 급여를 줘야 한다면 여기 종업원들을 많아 털어내고 가야 합니다.”

“털어 내다니!”

“여기 종업원이 현재 몇 명입니까?”

“320명이요.”

“그렇다면 100명 정도는 털어 내야합니다. 정년이 넘어서 촉탁으로 근무하시는 분들은 권고사직을 시킬 수밖에 없습니다.”

“흥! 누구 맘대로!”

“노조원들이 쟁의를 할 권리가 있듯이 사용자도 경영이 어려우면 조직을 축소시킬 권한은 있는 것입니다.”

신임 노조위원장이 이를 부드득 가는 소리가 들렸다.

강시혁이 눈웃음치면서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장명건설은 주가가 폭락해 시가총액이 540억 밖에 되지 않습니다. 저는 삼방그룹의 계열사인 삼방건설이 이 회사의 30%주식을 가지고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162억만 가지면 이 회사를 인수할 수 있다는 말이 됩니다.”

“젊은 양반들이 돈도 많네.”

“하하. 제 돈은 아니죠. 펀드 회사니까 고객들 돈이죠.”

“그런데 정말 삼방건설에서 보유주식을 당신들한테 넘기겠다는 말이 나온 건 확실해요?”

“아직 그런 말은 없습니다. 삼방건설의 누군가가 전화를 해서 K&B컨설팅이 M&A업무도 취급하느냐 하는 전화는 받은 적이 있습니다.”

“어떤 개자식이 그런 전화를 한 거야! 우리한테 의논도 없이!“

“내가 알기로는 급여 16% 인상은 무리입니다. 지금도 영업이익을 못 내고 있는 회사가 아닙니까?”

“지금 인상이 안 되면 우리는 영원히 급여가 못 올라가요. 영업이익이야 삼방건설에서 수주한 것 몇 개만 장명건설에 흘려줘도 단숨에 만회는 합니다.”

“서로의 생각이 거리가 먼 것 같군요. 일단 우리가 인수하는데 여러분들이 도와주신다면 여기 계신 분들에 대한 대우는 별도로 고려는 해보겠습니다.”

이 말에 또 변상철이 빙긋 웃었다.

전임 노조위원장이 신임 노조위원장에게 말했다.

“그래서 이번 농성은 내가 무리라고 하지 않았나? 강성파들 주장만 수용하면 되나? 또, 상급단체가 주장하는 것에 너무 끌려 다니면 안되네.”

“형님은 좀 빠지세요. 내가 뭘 끌려 다닌다고 그래요? 내가 나 혼자 잘 먹자고 이런 겁니까? 다 노조원들 잘 살자고 하는 거지!”

강시혁이 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마 우리가 내일이라도 삼방건설에 들어가 M&A를 제시하면 좋다고 할 겁니다. 장기 노사분규로 이제는 삼방건설 경영진들도 지쳐있을 테니 말입니다.”

“누가 M&A한다는 거요? 우리는 결사반대요!”

“여기 계신 분들이 농성을 풀고 도와주신다면 우리가 M&A를 빨리 진행시킬 수가 있습니다. 그 은혜는 잊지 않겠습니다.”

이때까지 조용하던 변상철이 말했다.

“우리가 M&A를 한다면 건설 자재 같은 것 재고 조사도 해야 되고, 건설현장의 공사 진척 현황도 현장에 나와서 확인해야 합니다. 노조에서 업무 협조를 해주신다면 지금 여기 계신 분들은 특별대우를 해드리겠습니다."

“이 사람들이 정말 큰일 날 소리를 하네! 이 기업의 주인은 삼방건설이지만 우리 또한 주인이요. 이 문제는 우리끼리 의논할 테니 당신들은 이제 그만 가 보슈.”

강시혁이 일어서며 말했다.

“명함을 드렸으니 언제라도 연락주세요. 회사에서 제시하는 조건이 마음에 안 들면 언제라도 연락주세요. 우리와 일하면 아마 좋은 일이 많이 있을 겁니다.”

“자, 이야기 끝났으면 이제 가 봐요!”

그러면서 신임 노조위원장은 어서 빨리 가라고 문을 활짝 열었다.

강시혁과 변상철은 신임 노조위원장과 전임 노조위원장에게 정중히 인사를 하고 돌아왔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변상철이 배꼽을 잡고 웃었다.

“와, 형 정말 능청스럽게 말 잘하네! 정말 나 놀랐어.”

“히히. 나 잘했지? 저놈들 두고 봐라. 앞으로 사흘 이내에 회사 안 대로 합의하고 농성 풀 거다. 우리가 무슨 M&A냐? 그냥 공갈용이지.”

“회사 팔리는 것보다는 삼방그룹의 품에 있는 걸 원하겠지.”

“우리가 간 것은 농성을 풀 명분을 주자는데 목적이 있었던 거지. 이런 자극이라도 줘야 저놈들이 농성을 풀 것이 아닌가!”

“진짜 오늘 나 형한테 많이 배웠어. 실상 강경 노조도 별건 아니네. 나는 혹시 강경 노조원들한테 봉변이나 당하는 것 아닌가 했는데 이 정도로 끝났으니 잘 되었네.”

“이태원에 가서 차 갖다놓고 삼겹살이나 먹으로 가자.”

“좋지!”

강시혁은 자기가 아쉬울 때 늘 함께 해주는 변상철이 고마웠다.

그래서 푸짐한 저녁을 사주고 봉투까지 주었다.

하지만 변상철은 화를 내면서 봉투는 받지 않고 가버렸다.

변상철은 가끔 가다가 말을 거칠게 하지만 참 좋은 녀석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강시혁은 저녁에 잠들기 전 이영진 상무에게 카톡을 보냈다.

오늘 건설현장에 다녀온 결과를 보고하기 위해서였다.

[장명건설 농성현장엔 다녀왔습니다. 현 노조위원장과 전임 노조위원장을 만났습니다. 컨설팅 회사에서 M&A를 검토하기 위해서 왔다고 했습니다.]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던가요? M&A는 노조와 협의사항이 아닌데요.]

[물론 M&A는 경영진과의 협의사항이지만 현장 건설자재에 대한 재고 조사나 건설현장의 공사 진척 확인을 위해선 노조의 협조를 받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노조위원장 면담을 하는 거라고 했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그런데 강 대리님이 회사직원인 것은 눈치 채지 못했겠죠?]

[전혀 모릅니다. K&B컨설팅 회사 이름이 박힌 제 명함도 주고 왔습니다. 그런데 장명건설은 노노간 갈등이 있는 것 같았습니다. 신임 노조위원장이 강경파인 것 같은데 이번에 외부 충격을 주었으니 농성을 끝낼 가능성도 있어 보였습니다.]

[농성 철회에 대한 구실거리를 주었다는 말이네요.]

[그렇습니다. 노조위원장도 많은 노조원을 거느리고 있으니 명분이 없다면 농성을 절대 풀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주가폭락으로 M&A가 들어올지도 모른다는 구실을 주었으니 스스로 자체회의를 하고 지속적 농성은 실익이 없을 거란 판단을 할 것입니다.]

[잘 되었으면 좋겠네요. 농성이 계속되면 기업 이미지가 나빠지니까요.]

[아마 제 생각엔 회사의 마지노선인 8% 인상 안은 수용할 것도 같습니다. 그렇지만 노조원들에게 사탕은 하나 줘야 할 것 같습니다.]

[사탕이라면?]

[영업이익이 흑자로 돌아서면 단계적으로 삼방건설 급여수준으로 맞추어준다는 사탕 말입니다.]

[그건 우리도 고려하고 있는 사항입니다. 이익이 많이 나면 종업원들과 파이를 나누는 건 당연하죠.]

[상무님은 역시 훌륭한 경영자이십니다.]

[그리고 농성을 풀면 우선 건설공사 하나도 장명건설에게 밀어줄 생각도 있습니다.]

이건 듣던 중 반가운 소리다.

건설공사 계약을 따면 큰 건은 공시를 하게되어있다. 통상 매출액의 10%를 넘는 수주계약은 공시를 하게되어있다. 이것도 주가 상승에 호재로 작용할 수 있는 것이다.

강시혁은 이번 자기 투자가 성공할 가능성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장명건설도 정상화될 가능성이 많을 것입니다.]

[수고했습니다. 그럼 편안한 밤 되세요.]

{예, 상무님도 편안한 밤 보내세요.]

이번에도 둘은 또 이모티콘을 보냈다.

그런데 한참 있다가 이영진 상무의 카톡이 왔다.

장명건설에 대하여 뭔가 또 지시사항이 있나 하였다.

[아직 안 주무시죠?]

[예. 영어 공부 겸 해서 미국 드라마를 보고 있습니다.]

[토요일 시간을 비워둬야 할 것 같아서 카톡 드렸습니다.]

[알겠습니다. 비워두도록 하겠습니다.]

이영진 상무가 비워두라고 하면?

다른 약속이 있다고 하더라도 취소할 마음을 강시혁은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토요일 새벽에 경기도 광주시를 가야할 것 같습니다.]

[경기도 광주요?]

[광주시 곤지암에 있는 이스트밸리 칸트리 클럽을 가야할 일이 있습니다. 그날 운전과 경호를 부탁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제 업무가 원래 상무님 외출 시 운전 지원과 경호활동입니다. 지시만 하시면 언제든지 출동 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새벽 출발이라 좀 미안하네요.]

[상관없습니다. 저는 24시간 대기를 하는 업무라 부담 가지실 필요 없습니다.]

[이번 골프 모임은 제 사적인 모임입니다. 다른 곳에 이야기 하시면 안 됩니다.]

[경호원의 제일 수칙은 경호를 하는 분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것입니다.]

[언제나 강 대리님한테는 미안해요.]

[금요일 날 세차는 해 놓겠습니다.]

[누굴 접대하는 건 아닙니다. 그냥 대학동창들과 오래간만에 만나 친선게임이나 하려고 합니다.]

[좋은 일입니다. 가끔 친구들과 만나 그렇게 어울리는 것도 좋습니다.]

[고마워요. 강 대리님.]

[아닙니다. 편안한 밤 되시기 바랍니다.]

이번에도 서로 이모티콘을 날려주었다.

카톡을 마치고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날은 젊은이들만 모일 것 같았다.

대학 동창이라면 아마 미국 하버드대학 동창들인 것 같은데 이영진 상무 또래가 아닐까 하였다.

그런데 강시혁은 골프장을 제대로 구경을 못했었다. 멀리서는 본적이 있었다.

대리운전을 할 때도 골프장 가자는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번에 말로만 듣던 골프장 구경을 제대로 하게 생겼으니 눈요기는 톡톡히 하고 오게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