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녀의 두 번째 남편-153화 (153/199)

153화 노사분규 중재 (3)

(153)

이영남이 강시혁의 손에 든 물건을 보았다.

물건이 캔 맥주와 안주인 것을 보고 활짝 웃었다.

“형은 참 센스가 있어. 내가 지금 드럼을 치고 나서 목이 마를 시간인 것을 어째 알았지?“

“여기서 마실까? 아니면 관리실에 가서 마실까?”

“아예 1층 접견실에 올라가서 마실까?”

“하하. 거긴 안 돼.”

“그럼 형이 근무하는 관리사무실에 가서 마시지. 여긴 테이블도 없잖아.”

그래서 둘은 강시혁이 근무하는 관리사무실로 왔다.

여기에서 책상위에 신문지를 깔아놓고 그 위에 맥주와 안주를 올려놓았다.

“역시 여기 관리사무실은 지하라 습하고 좁아. 빨리 형이 돈을 벌어서 사무실을 얻어야지.”

“투자는 했는데 잘 될지 모르겠어.”

“잘 되겠지. 형은 대단한 사람이란 소문을 내가 들은 적이 있어.”

“내가? 잘못 들었겠지. 대한민국에 나보다 잘난 인간들이 얼마나 많은데!”

“이번에 중국 가서는 에피소드 없었어? 영진 누나한테 들어볼까 하다가 내가 친구 만나느라고 영진 누나 집을 못 들렸네.”

“없어. 관광지에서 좀도둑 하나가 가방을 채트려 가려고해서 바로 낚아채 팔을 꺾은 건 있지.“

“팔을 꺾어? 그러지 말고 돌려차기로 안면을 강타하지 그랬어.”

“아무리 도둑놈이라고 해도 다치게 하면 안 돼. 나중에 복잡한 일이 발생할 수가 있어.”

“로지스틱스에서 합자회사를 설립한다는데 하기로 한 거야?”

“업무적인 문제는 내가 잘 모르지만 하기로 한 것 같아. 영진 상무가 가서 그런지 중국 측에서도 VIP가 왔다고 환대가 대단 하던데?”

“그래?”

“파트너 회사 사장은 물론 시장까지 나와서 접대를 해주었어. 만찬장에 가니까 산해진미 요리가 다 나왔더군.”

“그러고 보면 영진 누나도 대단해. 50대, 60대인 사장이나 시장들하고 같이 어울려 식사도 하고 대화도 하니까. 난 그런 자리에 가서 눈 내리깔고 똥 폼 잡는 건 못하겠어.”

“그래도 해야지. 리틀 브라운도 나중에 경영참여를 해야 되잖아? 지금이라도 상근하면서 경영수업을 배워보는 건 어때?”

“싫어. 사무적 이기만한 임원들만 보면 난 숨 쉬는 것조차 힘들어. 난 자유롭게 살고 싶어. 난 자유로운 영혼이니까!”

강시혁이 보기에 이영남 이 녀석은 철이 없는 건지, 아니면 정말 멋진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도 이놈이 자기를 따르고 좋아하니 자기가 삼방에서 커나가는 데는 방해가 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았다.

지금도 20억이란 거금을 빌렸으니 덕은 보고 있는 셈이 아닌가!

강시혁은 기왕이면 이영남을 추겨주기로 했다.

“리틀 브라운의 영혼은 정말 맑고 순수한 것 같아. 나도 어느 땐 리틀 브라운 같은 동생을 두게 된 것을 축복이라고 생각하고 있어.”

“나도 형 같은 사람을 만나서 행복해.”

그러면서 이영남은 또 순수한 미소를 지었다.

“그럼 우리 건배 한잔할까?”

“좋아!”

이영남은 캔 맥주 한 모금을 마셨다.

그리고 입가를 손등으로 닦으며 말했다.

“그런데 일본의 재즈 음악가 사카모토 쯔요시는 한국에 금방 못 올 것 같아.”

“왜? 초청장도 보내고 항공권과 체재비도 준다고 했잖아?”

“주변을 정리할 것이 있는 것 같아. 말은 안하지만 눈치가 동거하는 여자가 있는 것 같았어.”

“흠. 그런가? 여자를 책임지지 못한다면 동거하면 안 되겠지."

강시혁은 또 헤어진 와이프 심은혜가 생각났다. 자기도 한 여자를 책임지지 못해 떠나보내야 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 와서는 잘 헤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심은혜와는 문화가 잘 안 맞았기 때문이었다.

“사카모토 쯔요시 씨가 온다면 애니메이션 영화나 한편 만들까 해. 배경 음악은 사카모토 쯔요시 씨가 하고 제작 감독은 배동수씨가 하면 딱 맞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

“제작비가 많이 들어갈 텐데?”

“형한테 빌려준 돈 받으면 거기 투입할거야.”

“내가 빨리 벌어야 되겠네.”

“그렇다고 서두르지는 마. 돈은 쫓는다고 오는 게 아니거든.

[하, 요놈 봐라. 맹랑한 소리를 하네.]

“회장님이 아시면 싫어하시겠지? 경영참여 안하고 아이들 영화나 만든다고 할 것 아닌가?”

“형, 하워드 휴즈 알아?”

“하워드 휴즈?”

“미국의 억만장자지. 이 사람도 자유주이자면서 영화 제작자로도 유명하지. 난 아무래도 하워드 휴즈 스타일인 것 같아.”

이날 둘은 밤 11시까지 맥주를 마셨다.

이영남이 집에 간다고 하였다. 강시혁은 또 이영남을 한남동 나인원아파트 입구까지 캄보이를 해주었다.

다음날 오후에 강시혁은 명함 집에 가서 명함을 찾아왔다.

주식회사 K&B 컨설팅 사장 강시혁과 부사장 변상철의 명함이었다.

그리고 사무실에 와서 비서실의 오남수 대리에게 전화를 했다.

“영빈관 강시혁입니다.”

“아, 강 대리님.”

“하나만 더 묻겠습니다. 장명건설의 지금 노조위원장 이름하고 전임 노조위원장 이름을 알 수 있을까요?”

“지금 노조위원장 이름은 김상봉입니다. 그런데 전임 위원장이 누구더라? 내가 5분 후에 전화를 걸어드리죠.”

“바쁘신데 매번 미안합니다.”

“아닙니다. 이런 거야 뭐 일도 아니죠.”

5분 후에 오남수 대리로부터 전화가 왔다.

“장명건설의 전임 노조위원장은 조명진이라고 합니다.”

“고맙습니다.”

“그런데 노조위원장들한테 무슨 일이 있습니까?”

“아닙니다. 제가 아는 사람이 노조위원장한테 전화를 걸어 빨리 노사분규를 끝내달라고 요청을 하겠답니다.”

“하하. 소액 투자가들 말을 노조위원장이 듣나요? 콧방귀 꿀 겁니다. 현장 가보세요. 붉은 깃발 꽂아놓고 위세가 아주 대단합니다. 지난번에 나도 한번 현장에 가봤더니 우리가 너희 사무직들을 먹여 살린다고 큰 소리 치더군요..”

“거긴 노노간에 갈등이 있다는 말은 맞습니까?”

“글쎄요. 그런 말이 들립니까?”

“얼핏 들은 것 같아서요.”

“와, 우리보다 정보가 빠른 것 같습니다.”

“그냥 들은 이야기입니다.”

다음날 12시에 양복을 쫙 빼입은 변상철이 나타났다,

변상철은 넥타이를 매지 않고 왔다.

“넥타이 안 매니까 더 터프한 것이 매력 있어 보인다.”

“넥타이 주고 싶은 마음이 없어졌나, 왜 이래?”

“오로지 널 위해 사온 실크 넥타이다. 매봐라.”

변상철이 강시혁이 던져준 넥타이를 맸다.

정말 컨설팅 회사의 간부 같았다.

“너는 모델을 할 걸 잘못했어. 스탭 한번 밟아봐라.”

“그런데 노사 분규 현장이 어디야?”

“용인이야.”

“벤츠 차로 날 모실거지?”

“두말하면 잔소리지. 자 명함 받아라. 주식회사 K&B 부사장님 명함이다.”

“이게 내 명함인가? 정말 부사장으로 되어있네. 변상철이 출세했네. 부사장 벼락감투도 쓰고!”

“거기 가면 노노간에 반목이 있다더라. 신임 노조위원장 강경파 하고 전임 노조위원장 온건파가 있다더라.”

“그 동네도 진보와 보수가 있는 건가?”

“일단 가면 조심해서 접근해야 될 거야. 노조간부들이 가방끈은 짧은지 몰라도 사회경험이 풍부한 아재들이니까 우리보다 한수 위일 거야.”

“밥은 먹고 가야 되겠지?”

“어디 가서 먹을래?”

“형이 해주는 밥은 맛이 없어. 안 먹어. 나가서 먹지.”

“그래 뭐 사줄까?”

“간단히 먹어.”

“요 위에 있는 비건 레스토랑에 갈까? 가서 덮밥이나 먹을까?”

“그러지 뭐.”

둘은 비건 레스토랑에 가서 야채 덮밥을 먹고 왔다. 그리고 커피는 영빈관에 와서 마셨다.

커피를 마시면서 강시혁이 변상철에게 말했다.

“우리가 가는 것은 노사분규를 빨리 끝내게 하는 일이야. 현재 노조원들은 장명건설이 대기업에 흡수되었으니까 삼방그룹 직원들 수준에 급여를 맞추어 달라는거야. 16%를 요구한다고 했어.”

“여기 오기 전에 나도 그 회사 재무제표를 봤어. 영업이익도 제대로 안 나오는 회사가 그렇게 올려 달라고 하면 무리지.”

“그리고 회사에서 제시하는 것은 6%야. 마지노선은 8%고.”

“갭이 크네.”

“그래서 협상이 잘 안 되고 있지. 현재 주가는 9천원이야. 1만 2천 원 하던 주식이 장기 분규로 8천 500원까지 내려왔다가 요즘은 9천원에서 놀고 있어.”

“총 발행주식이 얼마나 되는데?”

“600만주야.”

“그럼 시가총액이 540억 밖에 안 되네?”

“그러니까 K&B 컨설팅이라는 회사가 M&A를 검토한다고 해야지.”

“아, 그러니까 주가가 폭락했으니까 싼 가격에 인수를 검토한다는 말이지?”

“그렇지.”

“그러니까 K&B 컨설팅은 펀드회사란 말이군. 고객들 돈을 모집해서 회사를 인수하겠다고 하면 저놈들이 그건 싫어서 농성을 끝낼 수도 있다 이거군. 대충 의도는 알겠네.”

“역시 너는 천재야.”

“잘하면 농성 끝내고 임금협상 테이블로 나오겠는데? 저놈들도 오래 투쟁했으니 이제 지칠 때가 되었잖아.”

“그래서 지금이 시기적으로 좋다는 거지.”

“잘하면 형 과장으로 승진하겠는데?”

“일회성 공을 가지고 바로 승진되는 일은 없어. 또 우리 작전이 지금 성공한 것은 아니잖아?”

강시혁은 이번 일을 꼭 성공시키고 싶었다.

첫째는 20억이나 투자된 회사이고 둘째는 이영진 상무에게 자기가 중재해 본다고 했기 때문이었다.

실패하면 돈도 잃고 이영진 상무 앞에 체면도 구기게 되는 것이었다.

“상철아! 커피 다 마셨냐? 그럼 가자!”

강시혁이 자기 방에 들어가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세탁소에서 새로 찾아온 하얀 와이셔츠와 실크넥타이를 매었다. 이런 모습을 보고 변상철이 빙그레 웃었다.

“역시 형도 정장이 잘 어울려! 이렇게 멋진 남자를 좋아하는 여자가 없다니 말이 안 돼. 주변에 돈만 밝히는 된장녀들만 있어서 그래.”

“헛소리 말고 가자!”

강시혁과 변상철은 벤츠를 타고 이태원을 빠져나왔다.

조수석에 탄 변상철이 웃으며 말했다.

“히히. 우리가 쪽 빼입고 벤츠를 타고 가니 돈 많은 집구석의 아들로 아는 모양이네. 방금 지나간 차 못 봣어? 거기 탄 년들이 우릴 자꾸 쳐다보잖아.”

“그래서 네가 창문을 내렸구나! 난 공기 빠지라고 내린 줄 알았네.”

“저 봐! 지금 엑센트 몰고 간 년도 쳐다보잖아.”

“야, 창문 올려라. 운전하는데 헷갈린다.”

용인의 농성 현장으로 갔다.

아파트 공사는 거의 다된 것 같은데 농성으로 중지된 것 같았다.

건설 현장 입구엔 곳곳에 투쟁이나 쟁취 같은 격렬한 글씨를 쓴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농성 현장에서 자주 보이는 확성기 달린 차도 있었다. 다행히 지금 확성기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확성기 소리가 안 들리네? 마이크 잡은 놈이 화장실 갔나?”

안으로 좀 더 들어가자 타워크레인의 타워마스트(타워크레인 기둥)에도 긴 현수막이 불어 있었다. 노동자의 생존권을 보장하라는 구호가 큼직하게 쓰여 있었다.

천막도 하나가 있었는데 시민단체의 이름이 붙어있었다. 천막 안에는 투쟁이란 붉은 머리띠를 한 두 사람이 스치로폴 위에 앉아서 스마트폰을 보고 있었다.

현장 가건물과 콘테이너 박스 안에서 사람들이 나왔다.

모두 체격이 건장한 50대 아재들이었다.

이들은 농성 현장에 벤츠 차가 들어오니 무슨 일인가 하는 것 같았다.

기자들이나 회사 직원들로 보지는 않은 것 같았다. 차를 보니 가끔 현장에 들리는 노동청 근로감독관의 차도 아니었다. 상급 노조단체의 간부 차도 아니었다.

더구나 차에서 내린 사람들은 양복을 쪽 빼입은 기생오라비 같은 놈들이었다. 이놈들이 누구인가 하는 것 같았다.

체격이 좋은 50대가 앞으로 나왔다.

장명건설 로고가 붙은 회사 잠바를 입은 사내였다.

“어디서 왔습니까?”

“노조 위원장님을 만나러 왔습니다. 조명진 위원장님 계십니까?”

“조명진이? 그 사람은 지금 노조 위원장이 아니요!”

“오, 그래요? 아무튼 그 사람을 좀 불러주시겠습니까? 그분이 노조의 실세라는 이야기가 있어서.....”

“이봐요! 댁들은 뭐하는 사람들이요? 노조위원장은 나요! 나!”

“오, 그래요? 우리는 K&B컨설팅에서 왔습니다.”

“뭐요? 무슨 컨설팅요?”

“K&B컨설팅에서 나왔습니다. M&A를 주로 하는 펀드회사로 보시면 됩니다. 장명건설이 M&A시장에 나온 것 같아서 현황 조사차 왔습니다.”

"M&A라니! 누구 마음대로 그따위 소리 하는 거요?“

“이봐요. 당신은 주주도 아닌 사람 같은데 말을 함부로 하는 것 같습니다.”

“뭐가 어째?”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투쟁이라는 붉은 머리띠를 맨 사람들이 20여명이나 몰려온 것 같았다.

강시혁이 점잖게 말했다.

“당신이야말로 말을 함부로 하는군요. 당신들은 주주가 아니라 권리가 없습니다. 미안하지만 조명진 위원장님을 불러주세요.”

“아니, 이 사람이 정말! 여기서 한번 봉변을 당하고 싶은가? 노조위원장은 나라는데 왜 자꾸 좃명진을 찾는 거야?”

역시 노조위원장은 말이 거칠었다.

강시혁이 부드러운 말로 말했다.

“정말로 선생님이 노조위원장님이십니까?”

노조위워장이 옆에 모인 사람들을 쳐다보며 말했다.

“야, 너희들 누가 이야기 좀 해 줘라. 이 젊은 선생들이 이상하게 좃명진만 찾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