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녀의 두 번째 남편-152화 (152/199)

152화 노사분규 중재 (2)

(152)

변상철은 K&B컨설팅이라고 하니까 잘 못 알아듣는 것 같았다.

그래서 강시혁은 설명을 좀 해주기로 했다.

“너 K&B가 무슨 뜻인지 모르지?”

“몰라. 무슨 이니셜 같은데?”

“강시혁의 '강' 과 변상철의 '변' 을 따서 K&B 라고 한 거야.”

“헤헤. 그런가?”

“상호명이 그럴듯하잖아?”

“그러긴 한데 사업자 등록증이라도 받아놓았나?”

“아직은 사무실 안 차려서 사업자등록은 안 해놨어. 그러니 명함은 가짜로 파는 거야.”

“명함에 주소가 들어가야 하는데 그런 건 어떻게 하고?”

“영빈관으로 할 수는 없고 윤진형이가 있는 클럽 주소로 할 거야.”

“진형이 클럽? 거기는 술집이 아닌가!”

"한번 쓰고 버릴 명함인데 뭐 어때. 나중에 내가 돈 벌어 사무실 차리면 그때 사무실 주소 옮겼다고 하면 되는 거지.“

“형, 이제 보니 참 대단해!”

“대단하긴! 아쉬우니까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내는 거지.”

“아냐. 형은 가끔가다가 사람을 깜짝 놀라게 할 일을 하고 있어. 그래서 오늘날 형이 공채 직원도 아니면서 대 그룹인 삼방그룹의 비서실 대리를 하는지도 몰라.”

“그러냐?”

“그런데 대리가 문제가 아니야. 형은 내 느낌으로는 삼방에서 팍팍 클 것 같아. 더군다나 오너 따님의 경호원이라면 문고리 핵심 실세가 아닌가? 나중에 잘되면 나 좀 키워줘.”

“키워줄 테니 노사 분규현장에 한번 같이 가자니까! 그런 거 배워둬야 네가 대기업 사장이 되었을 때 도움이 될 것 아냐?”

“알았어. 갈게.”

“그럼 모레 12시까지 와라. 점심 같이 먹자. 기왕이면 컨설팅회사 간부처럼 정장하고 와라. 넥타이는 안하고 와도 된다.”

“정장에 넥타이를 안 하다니?”

“이번에 중국에서 귀국할 때 면세점에서 산 실크 넥타이 있어. 너 하나 줄게.”

“헤헤. 형은 참 기특한 데가 있어.”

“뭐라고? 이 자식이 형한테 하는 말버릇이!”

“헤헤. 그럼 모레 봐.”

강시혁은 바로 명함 만드는 집으로 갔다.

기타리스트 윤진형이 일하는 클럽을 주소로 해서 (주)K&B 컨설팅 사장 명함과 부사장 명함을 부탁했다. 인쇄소 사장이 내일까지 만들 수 없다고 했지만 급행료를 주고 특별히 만들어 달라고 했다.

역시 돈이 들어가면 일이 부드럽게 잘 풀렸다.

영빈관에 돌아와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스마트폰에 뜬 발신자 이름을 보니까 뜻밖에도 금산 아줌마였다.

[이크! 금산 아줌마네! 이번에 중국 가서 선물 안 사가지고 왔는데 어쩌지? 로지스틱스 해외사업 팀장이 선물로 준 동호 녹차라도 줄까?]

“아! 이모님! 그렇지 않아도 집에 한번 들릴까 했습니다.”

“영진 상무에게 들었어. 이번에도 중국 가서 크게 활약했다며? 그 비싼 명품 가방을 채트려가려는 좀도둑을 순식간에 잡아서 팔을 꺾었다며?”

“헤헤. 그놈이 좀 약해서 그렇게 되었습니다.”

“역시 삼촌이야! 참, 이제 삼촌이라고 부르면 안 되겠지. 엄연한 회사 대리님인데.”

“하하. 이모님까지 왜 이러세요?”

“시간 있으면 오늘 우리 집에 와. 김치도 떨어졌지?”

“제가 중국에서 이모님 드리려고 사온 차도 있습니다. 중국 명차인데 다이어트에 효과적이랍니다.”

“호호. 내 몸이 면적이 좀 넓어서 빼긴 해야 되겠지. 그런데 삼촌이 거기까지 날 생각할 줄은 몰랐네.”

“이모님을 잊다니요! 이모님은 저의 은인이나 마찬가지인데!”

“지금 올수 있으면 지금이라도 와. 나 혼자 있으니!”

강시혁은 이영진 상무 집까지 걸어갈까 하다가 김치를 가져와야하므로 벤츠를 끌고 갔다.

물론 중국 주재 팀장이 준 무한의 동호에서 난다는 운무차(雲霧茶)를 가지고 갔다.

[운무차 담은 포장지를 아직 안 뜯어봐서 다행이네.]

강시혁이 이영진 상무 집으로 갔다.

그런데 금산 아줌마는 허리가 아픈지 약간 허리가 굽어 있었다.

“이모님! 무거운 것 들 때는 저를 부르세요. 이모님 연세에 무리하시면 안 됩니다.”

“호호. 아직은 괜찮아. 그런데 이 차는 어떻게 먹는 건가?”

“그냥 뜨거운 물에 타서 드시면 된데요. 운무차라고 중국 명차랍니다.”

금산 아줌마는 상표가 신기한 듯 운무차가 든 통을 이리저리 만져보았다.

그러면서 플라스틱 통에 든 김치를 가져왔다.

금산 아줌마가 사과를 깎아주었다.

그런데 칼이 잘 안 들었다.

“다이소에서 사온 칼갈이는 좀 약해. 칼은 숫돌에 갈아야 하는데.”

“여기 숫돌 있죠? 제가 온 김에 칼이나 갈아드리고 가죠.”

“회사 대리님에게 그런 부탁을 할 수 있나?”

“이모님! 대리는 벼슬도 아녜요. 칼 있는 대로 다 줘요. 숫돌도 주시고.”

“그렇지 않아도 칼을 갈긴 갈아야 하는데....... ”

그래서 강시혁은 칼을 세 자루나 갈아주었다. 금산 아줌마가 굉장히 좋아했다.

아마 김 기사에게 칼을 갈아달라고 부탁을 했으면 식모 년이 일 시킨다고 반발했을 것이다. 하지만 강시혁은 아랑곳하지 않고 갈아주었다.

[나는 지금 칼을 갈고 있는 것이 아니고 나 자신을 예쁘게 갈고 있는 중이야.]

칼을 갈고 나니 소변이 마려웠다.

그런데 화장실이 약간 지저분한 것 같았다. 아마 금산 아줌마가 허리가 아파서 청소를 제대로 못한 것 같았다.

“이모님! 제가 온 김에 화장실 청소 해드리고 갈게요.”

“아이고, 그건 놔둬. 내가 요즘 허리가 아파서 제대로 청소를 못했는데 거기까지 삼촌한테 부탁할 수 있나!”

“아닙니다. 제가 해드리죠.”

“그러면 영진 상무 방에 있는 화장실이나 치워주고 가.”

“무슨 소리! 이 집 화장실 다해드리고 가죠. 여기 화장실이 세 개죠?”

“세 개 다하면 힘들 텐데.”

“아까 보니까 화장실에 왁스하고 솔은 다 있던 것 같던데요?”

“미안해서 어쩌나.”

“혹시 스크럽 스펀지 같은 것 있으면 그거나 주세요. 제가 영빈관 닦던 솜씨가 있잖아요.”

이 소리를 듣고 금산 아줌마는 좋아서 입이 벌어졌다.

이영진 상무가 쓰는 화장실은 이영진 상무가 쓰는 방 안에 있었다.

강시혁은 이영진 상무의 방을 들어갔다. 역시 방은 넓었다. 그리고 정갈했다.

벽에 정물 그림 액자가 있었고 음악을 듣는 앰프시설과 난초 화분이 있었다.

경영학 관련 영어 원서 책도 많았다. 창문 너머로 바라다 보이는 뷰가 정말 좋았다.

[으와, 한강이 보이네!]

정말 신선이 사는 집 같았다.

강시혁은 이영진 상무가 쓰던 화장실에 들어가 열심히 정성으로 닦았다. 윤이 번쩍번쩍 나도록 닦았다.

[닦아야 운이 열린다!]

그리고 금산 아줌마가 쓰는 화장실도 닦았고 현재 사용하지 않는 화장실까지 다 닦아 주었다. 금산 아줌마는 강시혁이 자기 일을 대신해주자 좋아서 입을 헤 벌렸다.

그러든 아줌마가 갑자기 입을 오므린 채 엄숙한 표정으로 말했다.

“삼촌! 미안하지만 영진 상무 방에 들어가 화장실을 닦았다고 어디 가서 말하지 마.”

“그런 걸 왜 어디 가서 말합니까?”

“영진 상무 허락도 없이 외간 남자가 자기 방에 들어왔다고 화를 낼 수도 있어!”

“염려마세요. 그런 이야기는 안합니다.”

“칼은 갈아주고 갔다고 영진 상무에게 이야기 할게.”

“아이고, 그런 이야기도 하지 마세요. 잘못하면 역효과 나요.”

“그런가? 그럼 상황 봐서 하지. 그런데 오늘 삼촌은 밑지는 장사한 것 같은데? 칼도 갈고 화장실 세 개나 청소하고 아무 보상도 없으니 말이야.”

“김치 얻었잖아요! 저는 이모님이 담근 김치를 제일 좋아해요.”

“호호. 내가 대추차나 한통 더 주지.”

강시혁은 저녁때가 되어서야 영빈관엘 돌아왔다.

칼을 세 개나 갈고 화장실 세 개를 박박 문지르고 나서 그런 가 어깨도 아프고 팔도 아팠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기분은 좋았다.

[삼방그룹 수 만명 종업원 중에서 이영진 상무의 방에 들어가 본 사람은 아마 나밖에 없을 걸?]

저녁을 먹고 TV뉴스를 보고 있는데 이영남이 왔다.

이영남은 누굴 만나고 오는지 얼굴에 약간 취기가 있는 상태로 왔다.

이영남은 강시혁을 보자 와락 껴 앉았다.

[얘는 징글맞게 왜 이러나!]

“형이 오니까 영빈관이 살아났잖아! 영빈관이란 거대한 드레곤이 이제야 브레스를 뿜어내는 것 같아!”

“브레스를 뿜어내는 건 좋은데 낮에 영빈관 청소를 했더니 어깨와 팔만 아파. 그리고 이젠 저녁까지 먹고 나니까 잠의 정령인 샌드맨까지 몰려오는 것 같아.”

“하하. 그래서 오늘은 나도 형하고 술 같이 안 먹기로 했어. 캔 맥주 하나씩만 하기로 했어.”

그러면서 이영남은 백팩에서 캔 맥주 두 개와 오징어포 같은 것을 꺼냈다.

“저녁은 먹었지?”

“친구 만나서 먹었어. 형도 먹었지?”

“먹었어.”

“그럼 맥주 한잔하고 쉬어. 나는 드럼 좀 치다가 갈 테니까.”

그래서 둘이 캔 맥주 하나씩을 까먹었다.

이영남은 드럼을 치고 강시혁은 관리실 컴퓨터에서 미국영화를 다운받아 보고 있었다.

한참 보고 있는데 카톡이 울렸다. 이영진 상무가 보낸 것이다.

[낮에 우리 집 다녀가셨는가요?]

[예, 금산 아줌마가 김치를 준다고 해서....]

[그랬군요.....]

강시혁은 좀 걸리는 데가 있었다.

이영진 상무 방에 있는 화장실을 청소할 때였다. 천정부근 벽에 있는 얼룩을 지워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강시혁이 스크럽 스폰지로 말끔히 닦아주고 온 사실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곳은 금산 아줌마의 키로는 닦을 수 없는 위치였다.

의자를 놓고 닦아야 하는데 현재 금산 아줌마는 허리가 아파서 그건 무리일 것으로 보았다.

이영진 상무의 입장으로서는 누군가가 금산 아줌마를 도와주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김 기사의 도움을 받았을 거란 짐작을 했었다. 그런데 금산 아줌마가 오늘 강 대리가 와서 고맙게도 칼을 갈아주고 갔다고 해서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현명한 이영진 상무는 강시혁에게 직접 물어보지는 않았다.

오늘 자기 집에 왔었냐는 질문만 한 것이다.

이영진 상무는 자기 방에 강 대리가 왔다갔다고 생각하니 괜히 얼굴이 빨개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더구나 자기만 쓰고 있는 화장실을 윤이 나도록 닦아놓았으니 부끄러운 생각도 들었다.

이영진 상무는 잠시 강시혁의 얼굴을 떠올려보았다.

열 손가락이 잘려지는 한이 있더라도 자기를 보호해 주겠다는 남자, 그리고 언제나 미소를 잃지 않는 건강미 넘치고 잘생긴 남자의 얼굴이 떠올랐다.

이영진 상무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

강시혁은 자기가 노사분규 현장에 가려면 이영진 상무에게 보고는 해야 될 것 같았다.

그래서 카톡으로 대화하는 김에 이것도 보고하기로 했다.

[모레 오후에는 제가 자리를 비워야 할 것 같습니다.]

[무슨 일이 있는가요?]

[장명건설 노사분규가 너무 오래 지속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중재를 위해 분규현장에 가서 노조 간부들을 만나볼까 합니다.]

[비서실장이나 최 이사 지시인가요?]

[아닙니다. 단독 면담입니다.]

[가지마세요. 회사 비서실에서 왔다고 하면 농성자들이 더 많은 요구를 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회사가 아닌 컨설팅 회사 직원 자격으로 가볼까 합니다.]

[컨설팅요?]

[위장회사죠. 지금 장명건설이 장기 노사분규로 주가가 낮아져 다른 기업에서 M&A를 검토해보려고 한다고 하면 그들도 꼬리를 내릴 가능성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성공한다고 해도 강 대리님에겐 아무 보상도 없을 겁니다.]

[저는 지금 이미 과분한 보상을 받고 있는 중입니다. 비공채 직원이 비서실 대리가 되었으니 특혜를 받는 입장입니다. 보상을 받고 있으니 그 값은 해야 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잠시 이영진 상무의 답신이 없었다. 아마 호흡을 고르고 있지 않나 하였다.

잠시 후 다시 답신이 왔다.

[알겠습니다. 그럼 다녀오시고 나중에 결과를 조용히 알려주세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이영진 상무로부터 잘 주무시라는 이모티콘이 왔다. 이걸 보고 강시혁은 눈을 크게 뜨고 깜놀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자기도 이모티콘을 보냈다. 편안함 밤이 되라는 아기 곰이 잠자는 모습의 이모티콘이었다.

강시혁은 기분이 좋았다.

일단은 노사분규 현장엘 가는 것에 대하여 이영진 상무가 긍정의 신호를 보내주었기 때문이었다.

강시혁은 이번 일은 자기가 투자한 회사의 주가를 올리기 위한 작전이지만 회사에 누가 되는 일은 없도록 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기분이 좋은 일은 더 있었다.

그것은 이영진 상무가 말은 안했지만 자기방 청소를 해준 것에 대하여 눈치를 챈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금산 아줌마 말대로 외간 남자가 자기 방에 들어와 청소를 해주었다면 하나의 사건임에는 분명했다. 그런데 이에 대한 책망 같은 것은 없었다.

더군다나 카톡 대화 끝에 이모티콘까지 보내주었으니 자기에게 호감을 갖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오너의 따님께서 호감을 갖고 있다면 분명 살 떨림의 일인 것이다.

[아아, 이런 분을 위해 내가 충성을 바치지 않는다면 누구에게 바치랴!]

강시혁은 갑자기 술을 마시고 싶었다. 이영남은 아직도 쿵쾅거리며 드럼을 치고 있었다.

강시혁은 조용히 밖으로 나가 캔 맥주 네 개를 샀다. 안주도 여러 가지를 샀다.

그리고 영빈관으로 돌아와 이영남이 드럼을 치고 있는 방문을 노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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