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화 노사분규 중재 (1)
(151)
강시혁이 중국에서 돌아왔다.
그동안 불이 꺼져있던 삼방그룹 영빈관에는 불이 다시 켜졌다. 역시 영빈관은 강시혁이라는 관리인이 있어야 생기를 찾는 것 같았다.
강시혁은 오자마자 컴퓨터를 켰다. 그리고 장명건설 주가의 움직임을 보았다.
시세 변동은 없는 것 같았다. 단지 거래량이 확 줄어들어 꼭 죽어있는 주식처럼 보였다.
강시혁은 일단 여기까지만 확인하고 관리실에 있는 CCTV를 보았다. 중국 출장기간 동안 외부 침입자가 없었나 확인 하는 것이었다.
다행히 침입자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강시혁은 1층과 2층을 올라가 점검을 해보았다. 이상은 없었다.
강시혁은 이영진 상무가 준 버버리 티셔츠를 풀어 보았다.
색깔은 강시혁이 현재 입고 있는 티셔츠와 같은 색깔이었다.
[공항 면세점에서 산 티셔츠니까 진품은 맞겠지.]
한번 입어보았다. 그리고 거울에 자기 모습을 비추어 보았다.
확실히 싸구려 옷을 입었을 때보다 부티가 나는 것 같았다.
요즘 강시혁은 잘 먹고 다녀 얼굴도 좋아졌는데 비싼 옷을 입으니 더 인물이 살아난 것이다.
“이 티셔츠는 얼마나 갈까? 한 30만원 할까?”
인터넷 조회를 해보니 40만원이 훨씬 넘는 티셔츠였다.
옷장에 넣어두고 애인이 생기면 데이트 하러갈 때나 입을 까 하였다.
[그러면 안 되겠지. 이영진 상무가 보고선 자기가 사준 옷은 안 입고 낡은 옷을 입고 있다면 싫어하겠지. 웬만하면 입고 있어야지.]
강시혁은 이영남과 변상철에게 문자를 보냈다. 자기가 방금 귀국했다고 보냈다.
두 사람에게 바로 답신이 왔다.
이영남이 보낸 답신을 읽어보았다.
[형이 없으니까 내가 바로 멘붕 현상이 왔어. 역시 이태원은 형이 있어야 돼. 내일 저녁에 내가 영빈관엘 갈게.]
변상철이 보낸 답신도 읽어보았다.
[형이 없으니까 내가 무얼 상의하려고 해도 할 사람이 없네. 이번에 중국에 가서 또 무용담 같은 것은 없었어? 이영진 상무 모시고 다니면서 점수 좀 땄겠지?]
다음날 아침이 되었다.
강시혁은 아침에 일어나 바벨 운동을 했다. 경호원 노릇을 제대로 하려면 근육을 키워야 하기 때문이었다.
[이 나이에 태권도나 유도나 주짓수 같은 것을 배울 수는 없겠지. 그렇다면 근육이라도 키워놔야지. 그래야 유사시 몸싸움이라도 있다면 힘에서 밀리지 않을 것 아닌가!]
강시혁은 오래간만에 집밥을 먹고 싶었다. 쌀을 씻어 밥통에 안치었다.
그리고 나서 오래간만에 영빈관 대청소를 했다. 청소도 운동의 일환이라 생각하고 열심히 했다. 이어폰을 귀에 꽂고 음악을 들어가면서 했다.
청소 후에 먹는 밥은 그대로 꿀맛이었다.
김치 한 가지만 가지고 먹어도 꿀맛이었다. 이번에 무한에 가서 만찬회장에서 먹었던 기름진 산해진미보다도 맛이 있었다.
[양자강의 뷰가 멋있는 그 전통 음식점 이름이 뭐였더라? 맞아. 임강대도(臨江大道) 변에 있다는 자양루(紫陽樓)라는 전통 음식점이었어. 거기 음식보다 한국 사람은 이렇게 갓 지은 밥에 김치가 최고지.]
강시혁은 식사 후 느긋하게 커피를 마시며 컴퓨터를 켰다.
그리고 의자에 기대어 주식거래 창을 띄웠다.
역시 장명건설은 오늘도 거래량이 거의 죽어있는 상태였다. 그런데 거래는 없어도 주식 토론방은 시끄러웠다.
“장명건설 주가 부양 안하냐?”
“킥킥. 공매도 잔고 줄어드는 것 봐라.”
“그런데 왜 이렇게 주가가 거래도 없고 죽어 있는 거야? 누가 좀 만져 줘라. 발딱 일어서게!”
강시혁이 미소를 지으며 공매도 잔고 현황을 보았다.
확실히 공매도 잔고는 줄어들고 있었다.
강시혁은 잠시 주식거래 창을 닫고 비서실에 보낼 주간 업무보고를 썼다. 이번에 중국 다녀온 이야기를 주로 썼다. 계약 서명식에 누가 왔으며 만찬장에 누가 왔었는가를 대략 설명해 주었다.
강시혁은 다 쓴 주간 업무보고를 읽어보았다. 그리고 유길준 대리에게 보내주었다.
전에 문화재단에 있을 땐 설운동 대리에게 일일 업무보고를 보냈었다. 주간이 아닌 일일 업무보고라 매일 써서 보냈다. 나중엔 쓸 이야기도 별로 없었다. 그래도 일일 업무보고를 안보내면 바로 설운동 대리에게서 전화가 왔다.
설운동 대리는 자기가 상사라고 생각하고 자주 업무보고에 대한 트집을 잡았었다. 철자법이라도 하나 틀리면 무슨 큰 잘못이라도 지은 것처럼 몰아 붙였다.
그러나 비서실 유길준 대리는 그런 것은 없었다. 업무보고도 날마다 안보내도 되었다. 일주일에 한번만 보내면 되었다. 또, 철자법 틀린 것에 대하여 트집을 잡지 않았다.
그동안 설운동 대리가 강시혁에게 까다롭게 군것은 아마도 자격지심 같은 것 때문에 그런 것 아닌가 했다.
설운동 대리는 추천으로 들어온 지잡대 출신이고 유길준 대리는 스카이 대학을 나온 공채 직원 출신이라 그런 것인지도 몰랐다.
유길준 대리는 업무보고는 그 내용이 중요한 것이지 철자법이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또 유길준 대리는 강시혁과 같은 대리라 자기가 상관이다 라는 생각은 갖고 있지 않았다.
강시혁은 유길준 대리에게 전화를 걸었다.
“영빈관의 강시혁입니다.”
“아, 강 대리!”
“중국은 잘 다녀왔습니다. 어제 밤에 귀국했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중국에서 있었던 일은 업무일지에 반영을 했습니다. 업무일지는 방금 유 대리님 이메일로 보내드렸습니다.”
“빠르기도 하네요. 보냈다니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그리고 비서실에서 계열사 관리를 할 때는 담당자가 별도로 있지요?”
“꼭 그런 건 아니지만 그 계열사에 근무하다가 비서실로 왔다면 담당 비숫하게 일은 합니다. 예를 들어 나는 삼방전자에서 비서실로 온 사람이니까 위에서 삼방전자 관련된 일을 시킬 때는 나한테 많이 시킵니다.”
“그렇군요.”
“그런데 계열사를 거치지 않고 바로 비서실에 들어온 사람들도 있습니다. 해외 MBA 출신들 중에서 그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또, 영어 잘하는 임창영 과장이나 현재 중국에 파견 나가있는 안용석 과장 같은 사람들도 바로 비서실로 들어온 사람들입니다.”
[어학 특기자라 그런가?]
“그러면 건설 담당은 누가 합니까?”
“삼방건설은 오남수 대리가 담당합니다. 지난번에 회식할 때 이태원에 갔던 사람입니다.”
“아아, 기억납니다. 집이 은평구에 산다고 일찍 집에 들어갔던 사람 아닙니까?”
“맞아요. 그 친구 건설 총무과에 있다가 비서실로 온 사람입니다. 그런데 왜요? 건설에 무슨 일이 있습니까?”
“아닙니다. 그냥 건설용어에 대해서 물어보려고요.”
“그런 건 인터넷에 다 나와 있을 텐데?”
“혹시 오남수 대리 전화번호 알 수 있을까요? 그때 여기 왔을 때 내가 명함을 받아놓은 게 없어서요.”
“그럼 내가 아주 비서실 직원들 전체 전화번호가 적힌 비상 연락망을 보내드릴게요. 이메일로 보내드릴게요.”
“고맙습니다. 유 대리님.”
“별 말씀 다합니다.”
[오남수 대리라고 했지? 이 친구한테 물어보면 장명건설의 움직임에 대해서도 알 테지. 장명건설은 삼방건설에서 투자한 관계사가 아닌가?]
강시혁은 장명건설의 노사분규가 어떻게 돌아가는가 알고 싶었다.
지금 자기는 장명건설에 20억이나 투자를 한 상태라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실제로는 여기에 목숨을 걸다시피 한 상태였기 때문이기도 하였다.
강시혁이 영빈관 2층으로 올라갔다.
오래간만에 미술품 목록표와 보관된 미술품을 대조해보았다. 가끔 이렇게 체크해두는 것은 좋았다. 강시혁은 그동안 날짜를 정해 정기 체크와 부정기 체크를 했었다.
강시혁이 대조작업을 마친 후 목록표에 점검일자를 기록했다. 그리고 다시 지하 관리실로 내려왔다.
이메일을 확인해 보았다. 유길준 대리가 비상 연락망을 파일로 보내주었다.
파일을 열어보았다.
비서실 직원 전체의 이름과 직급, 그리고 현주소와 전화번호가 나와 있었다.
강시혁은 오남수 대리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 대리님이시죠?”
“실례지만 어디십니까?”
“영빈관에 파견 나와있는 강시혁입니다.”
“아! 강 대리님! 지난번 이태원에 가서 신세를 많이 졌습니다.”
“아닙니다. 이태원까지 오셨는데 대접이 소홀했던 것 같아 제가 오히려 미안합니다.”
“그날 저도 화끈하게 놀았습니다. 집이 멀어서 중간에 나왔지만 정말 아쉬움이 많이 남는 자리였습니다.”
“하하, 그랬던가요? 그리고 뭐 하나 물어보겠습니다. 지금 오 대리님이 건설 담당을 하시죠?”
“담당은 아니지만 건설에 있었기 때문에 그쪽 일을 많이 봅니다. 그런데 비서실 일이라는 게 딴게 있나요? 연락병 노릇이나 하는 거지요.”
“그럼 장명건설에 대해서도 잘 알겠네요.”
“장명건설요? 삼방건설이 대주주이긴 한데 그 회사 때문에 지금 골치 아픕니다.”
“노사분규 보도가 있던데 잘 마무리 안 되나요?”
“서로의 갭이 너무 큽니다. 노조에서 이야기하는 16%에 급여를 맞추면 영업이익이 바로 마이너스로 갑니다. 걔들 현타 의식이 없는 것 같습니다.”
“노조도 그런걸 알 텐데 왜 그렇게 강경하죠?”
“삼방의 품으로 왔으니 삼방 계열사 급여 수준에 맞추어 달라는 거죠. 자기들도 이번에 관철시키지 못하면 영원히 차별적 대우를 받는다는 생각을 가졌기 때문이죠.”
“회사에서는 어느 정도를 제시하고 있나요? 실은 다른 게 아니고 제 친척 중에 장명건설 주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어서 물어봅니다.”
강시혁은 슬쩍 친척 핑계를 댔다.
“회사에서 제시한건 6%입니다. 그러니 갭이 크죠. 회사가 제시할 수 있는 마지노선은 8%입니다. 이것 넘으면 회사 바로 적자입니다.”
“건설 사장님이나 임원들이 걱정이 많겠네요.”
“그렇지 않아도 조금 전에 장명건설 주담(주식업무 담당자)과 통화를 했는데 소액 주주들 항의가 빗발친답니다. 사실 지금 수준이면 매도시기를 놓친 건 맞죠.”
“시민단체는 아직도 분규 현장에 진을 치고 있나요?”
“걔들도 처음엔 확성기 틀어놓고 날마다 쇼를 하더니 지금은 주말에만 옵니다. 자기들도 생업이 있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주가가 살아나는 건 당분간 어렵겠네요.”
“주담 이야기로는 지금 52주 최저점이라 더 이상 빠지지는 않을 것 같다고 했습니다.”
“친척한테 그냥 들고 있으라고 말해야겠군요.”
“자기 돈으로 투자했다면 모를까 빚 얻어 했다면 곤란하겠죠. 가지고 있을수록 이자부담이 있을 테니까요.”
[맞아. 난 건대 앞 분식점 처분하고 빚을 갚지 않고 주식투자했다가 망했지. 정말 빚을 내서 장명건설에 투자한 소액주주들은 지금 속이 시커멓게 타들어 갔겠네.]
“바쁘신데 여러 가지 물어봐서 미안합니다.”
“아닙니다. 제가 조언을 해드릴 수 있는 것이 없어서 미안합니다.”
강시혁은 일단 미소를 지었다.
[시민단체가 주말에나 온다니 다행이네. 이놈들은 정말 노동자의 권익 때문에 온 건지, 아니면 홍 사장 측의 음모인지 알 수가 없네.]
강시혁은 분규현장을 찾아가 볼까 하였다. 노조원들이 그렇게 막무가내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비서실 직원이 왔다고 하면 자기들 요구사항만 맹렬히 주장할 것 같았다.
오히려 비서실장이나 회장이 알면 네가 건방지게 거기를 왜 갔느냐고 야단을 칠 것만 같았다.
[비서실 직원이 왔다면 노조에서 날 만나는 주겠지. 그리고 자기들 하소연을 하겠지. 그런데 일반인 자격으로 간다면? 아마 만나주지도 않겠지. 그렇다면 기자를 사칭하고 가볼까? 중국에서도 공안을 사칭했더니 좀도둑도 놀라서 도망을 가지 않았던가!]
그런데 기자의 신분으로 가면 노조원들의 하소연을 듣는 수준이지 해결을 하게 되는 것은 아니었다.
강시혁은 의자에 기댄 채 팔짱을 끼고 이 궁리 저 궁리를 해보았다. 그러다가 퍼뜩 떠오른 아이디어가 있었다.
[지난번에 이영남이 요구대로 돈 벌면 사무실을 차린다고 했지? 그때 사무실을 차린다면 변상철도 합류하게 될지 몰라 상호를 K&B 컨설팅으로 하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했었어. 농담 삼아 말했지만 상호가 그럴듯해. 이 명함을 만들어 분규 현장을 가볼까?]
강시혁은 일단 부딪쳐보기로 했다.
회사직원이 아닌 K&B컨설팅 대표 자격으로 간다면 실패하더라도 크게 문제가 될 것은 없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지금 악에 받쳐있는 분규현장에 혼자 잘못 들어가면 봉변을 당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변상철과 함께 가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바로 변상철에게 전화를 걸었다.
“상철이냐? 나다.”
“어, 형! 중국 잘 갔다 왔다는 문자는 어제 받았지.”
“너 이삼일 후에 시간 낼 수 있지?”
“나야 침대공장에서 프리랜서로 일하니까 내가 조정하면 돼. 그런데 무슨 일 있어?”
“노동 분규 현장에 가서 중재 역할 한번 해보자?”
“뭐라고? 그런데는 끼어드는 게 아냐. 우리가 노동법에 대하여 잘 알지도 못하잖아.”
“너 이다음에 돈 잘 버는 사장이 되고 싶다고 했지? 그러면 이런 일도 해보는 게 좋아.”
“잘못하면 강성 노조 애들한테 얻어터지는 거 아냐?”
“매끄러운 대화로 해결해야지.”
“웃기네. 형이 말을 잘 하는 것도 아니잖아?”
“야, 형이 말하는데 토 달지 말고 모레 만나자. 내가 그동안 명함 하나 파 놓을게. K&B컨설팅 부사장 변상철 명함을 파놓을게.”
“뭐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