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녀의 두 번째 남편-150화 (150/199)

150화 중국 출장 (7)

(150)

강시혁과 이영진 상무는 서로 말이 없이 식사를 했다.

둘이 나이는 비슷한 세대지만 신분이 차이가 너무 많이 나서 서로 말들은 안했다.

강시혁은 자기가 모시는 사람이라 함부로 할 수 없었고 이영진 상무 또한 레벨이 틀리다보니 할 말도 없었다.

그런데 실상 까놓고 보면 둘이 할 말은 너무도 많을 것이다.

회사 이야기를 빼고 이야기 한다면 아무래도 50대인 회사의 사장들이나 임원들보다도 할 이야기가 더 많을 것이다.

둘은 똑같이 젊은 사람들이다.

영화를 본 이야기도 하고, 음악 이야기도 하고, 철학이나 문학이야기를 한다면 밤이 새도 다 못다 할 것이다.

서로 대화하며 농담도 하고 까르르 웃기도 하련만 신분의 차이는 이렇게 둘을 갈라놓고 있었던 것이다.

이영진 상무가 포크로 샐러드를 찍어먹으며 말을 했다.

역시 말을 붙이는 것은 강시혁보다 직위가 높은 이영진 상무가 먼저 했다.

“로직스틱스 사장님은 어제 술을 많이 드셨나요?”

“정확히는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몸이 좀 안 좋은 것 같아서 중간에 나왔습니다.”

이영진 상무가 눈을 둥그렇게 뜨고 말했다.

“어디 아프세요?”

“아니, 꼭 그런 건 아닙니다만 어제 술이 잘 안 받아서요.”

강시혁이 이렇게 말하자 이영진 상무가 미소를 지었다.

나쁜 장소엔 가지 않았구나 하는 안도의 미소 같기도 하였다.

이영진 상무가 미소를 짓자 강시혁도 미소를 지었다.

이영진 상무도 든든한 이 사내가 옆에 있으면 기분이 좋은 모양이었다. 밝은 표정으로 말했다.

“그럼 많이 드세요.”

“넵.”

“강 대리님은 꼭 로봇 같아요.”

“넵. 죄송합니다.”

“호호. 지금도 꼭 로봇 같잖아요.”

“상무님 앞에 서면 긴장이 되어 그렇습니다.”

“마음 편히 가지세요. 강 대리님이 제 편이듯이 저도 언제나 강 대리님 편이랍니다.”

“감사합니다.”

강시혁은 이영진 상무가 언제나 자기편이라는데 감동을 먹었다.

이런 분을 위해서라면 끝까지 마음을 다해 모시고 싶었다.

이영진 상무가 식사를 했다.

작은 입으로 오물거리며 음식을 먹는 모습이 참 귀엽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영진 상무는 강시혁이 시원스럽게 밥을 먹는걸 보고 정말 건강한 남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홍 사장은 젓가락으로 음식을 깨작깨작 건드려 보는 습관이 있었는데 강시혁은 그렇지 않았다. 아무거나 시원스럽게 잘 먹었다.

이영진 상무는 강시혁의 그런 점이 좋았다.

이영진 상무는 식사를 하면서 강시혁이 입고 있는 티셔츠를 보았다.

강시혁은 지금은 공식적인 자리가 아니라 넥타이를 매지 않았다. 그냥 편하게 티셔츠를 입고 그 위에 양복을 걸쳐 입었다.

[왜 자꾸 내 티셔츠를 보지?]

강시혁은 좀 창피한 생각이 들었다.

이 티셔츠는 명품 브랜드가 아니다. 2년 전에 신세계몰에서 산 2만 6천 원짜리 티셔츠였다. 이렇게 이영진 상무와 가깝게 앉아 식사라도 한다면 새것으로 사서 입고 올 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죄송합니다. 티셔츠를 새로 사서 입고 와야 하는데 급히 오다보니..... 집에서 입던 걸 그대로....”

“아니, 잘 어울립니다. 좀 색이 바랜 것 같지만 강 대리님 인물로 커버하고 있습니다.”

[인물로 커버를 해? 그럼 내가 잘 생겼다는 말인가? 내가 잘 생겼다는 말은 대전에 계신 우리 엄마 외에는 들어보질 못했는데 여기서 듣네! 그냥 듣기 좋으라고 하는 소리겠지. 내가 죽었다 깨도 미남 배우 이민호나 남주혁 같겠어?]

강시혁이 웃으며 말했다.

“인물이라뇨. 저는 항상 인물 콤플렉스가 있는 사람입니다.”

“아닙니다. 이민호나 남주혁 같은 배우들보다도 강 대리님은 야성미가 있습니다. 터프가이한 매력이 있는 분 아닙니까?”

강시혁은 지나친 칭찬인 것 같아 얼굴이 화끈거렸다.

얌전하기만 한 이영진 상무가 이런 말을 할 때가 다 있구나 하였다.

그런데 강시혁은 이영진 상무에 대한 평을 할 수가 없었다.

마음 같아선 ‘당신은 여신 같습니다.’ 라고 말해주고 싶은데 그건 하급자로서 너무 건방진 말 같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강시혁이 민망스러워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침 접시에 있는 음식도 다 먹은 상태였다.

“저는 음식을 더 담아가지고 오겠습니다.”

“예, 많이 드세요.”

강시혁이 접시 두 개를 가져왔다.

접시 하나는 자기가 먹을 음식이 담겨져 있었고 또 다른 접시에는 과일 같은 것이 담겨져 있었다.

여러 가지 과일이 담긴 접시를 이영진 상무 앞에 놓으며 말했다.

“과일 많이 드시면 피부에 좋답니다. 그래서 가져왔습니다.”

이영진 상무가 방긋 웃으며 고맙다고 말했다.

“고마워요. 그렇지 않아도 과일 가지러 일어서든 참이었는데.”

이영진 상무가 과일을 다 먹을 무렵 강시혁은 또 일어나서 매실차와 커피를 가져왔다.

그리고 물수건도 가져다주었다. 이영진 상무가 말을 하기도 전에 미리 알아서 척척 갖다 주었다.

이영진 상무는 강시혁의 이런 점이 좋았다. 커피를 마시면서 말했다.

“강 대리님은 결혼하시면 사모님에게 참 잘하실 것 같아요.”

“이제 대리로 승진했으니 결혼도 해야 하는데..... 아직은 부채가 좀 남아 있어서 발목을 잡네요. 그래서 한 3년 후에 결혼할까 생각중입니다.”

“좋아하는 분은 있어요?”

[있죠. 바로 당신입니다.]

이런 말을 하고 싶기도 했다.

만일 이랬다가는 재벌녀를 능멸한 죄로 뺨이라도 맞을 것이다.

“아직은 없습니다. 하지만 생기겠죠.”

“혹시 사내 결혼하실 생각인가요?“

“그건 어려울 것 같네요. 제가 사내 직원들과 접촉이 많은 보직이 아니라서 힘들 것 같네요.”

“좋아하시는 분이 있으신 것 같던데..... SNS에서 한번 본 것 같습니다.”

“예? SNS에서요?“

[삼방전자 여비서인 그 인공미녀 최하나와 찍은 사진 때문이구나! 이 빌어먹을 것들이 왜 그런 사진을 당사자의 허락도 없이 올렸나!]

“자세히 보지는 않았지만 예쁜 분이었던 것으로 기억이 납니다.”

“아, 그건 지난번 회식 때 비서실 직원들이 장난으로 찍은 것입니다. 이 사람들이 왜 본인 허락도 없이 사진을 찍어 퍼 나르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지금 연애하고 다닐 처지도 아닙니다.”

“호호. 삼방 직원들이 좀 짓궂은 데가 있죠.”

그러면서 이영진 상무는 강시혁의 다친 손가락을 보았다.

“손가락.... 괜찮죠?”

“그럼요. 이렇게 오므렸다 폈다 할 수 있잖아요.”

이영진 상무가 약간 고개를 돌려 강시혁이 손가락을 오므렸다 폈다 하는 걸 쳐다보았다.

강시혁은 이영진 상무의 고개 돌린 옆 모습이 참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오늘 관광을 가지 않고 계속 이영진 상무와 함께 여기에 앉아서 시간을 보내고만 싶었다.

이영진 상무는 로지스틱스 사장과 함께 식사할 때는 잘 웃지 않았다. 그렇지만 오늘은 강시혁과 단 둘이 있어서 그런지 잘 웃었다. 젊은이들끼리 만나서 그런 것 같았다.

이영진 상무가 자리에 일어나면서 말했다.

“팀장과 안 과장이 10시에 온다고 했죠?”

“그렇습니다. 오늘은 동호(東湖) 관광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냥 귀국하고 싶은데......”

“항공 출발 시간이 오후 늦은 시각이라 오전 관광을 안배한 것 같습니다.”

“그럼 숙소에 가서 쉬었다가 10시에 로비로 내려오겠습니다.”

10시에 팀장과 안 과장이 차를 가지고 왔다.

일행들은 동호 풍경구 라는 곳으로 갔다.

바다같이 시원한 호수와 숲길이 이어진 아름다운 곳이었다.

관광 안내는 안 과장이 맡았다. 안 과장이 열심히 설명을 했다.

“여기가 옛날 초나라 굴원(屈原) 이 시를 읊던 곳입니다.”

“그리고 저기는 삼국지에 나오는 유비가 놀던 곳이고 저기는 이태백이 매를 날려 보냈다는 곳입니다.”

경치가 좋은 곳에서 단체 사진을 찍기도 했다.

“여기 앵화원(櫻花園)은 봄에 오셔야 좋습니다. 앵화가 만발하거든요.”

이 말을 듣고 팀장은 또 사장에게 아부했다.

“앵화가 필 무렵 한 번 더 오시죠.”

“자회사가 성립되면 한번 와야겠지. 헛헛허.”

사장은 어제 팀장에게 단단히 향응을 받았는지 얼굴에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다리가 아파 중간에 있는 다관(茶館)에서 차를 마실 때였다.

강시혁이 안 과장에게 다가가 조용히 물었다.

“사장님 기분이 좋은걸 보니 어제 팀장님이 제대로 모신 것 같네요.”

“팀장 어제 돈 많이 썼을 거요. 가라오케 양주에다가......”

“양주 말고 또 돈 쓴 것이 있습니까?”

“저 사장님이 어제 하야트 호텔에서 안 잔 것 알죠?”

“하야트 호텔에서 안 자다니요?”

“가라오케 옆 건물 호텔에서 잤잖아요.”

“예?”

“누구하고 같이 잤겠어요? 더 이상 이야기 맙시다. 아마 내년에 팀장님 승진은 문제없을 겁니다.”

강시혁은 출세하려면 이런 방법도 있구나 하였다. 그런데 어쩐지 추해보이기도 했다. 사장이나 팀장이나 다 똑같은 놈들이란 생각이 들었다.

저 사장이란 사람은 목에 더럽게 힘을 주며 김종래가 아닌 개종래 노릇을 하더니 상당히 엉큼한 데가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행들은 점심까지 먹고 동호 풍경구 안에 있는 서장(西藏) 민족 풍정가 라는 거리로 갔다.

여기에 민속춤 공연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구경을 하였다.

사람이 많을 땐 강시혁은 항상 긴장하였다.

이영진 상무는 사람들 틈 속에서도 상당히 부티가 나게 보여 좀도둑들의 표적이 되기가 쉽기 때문이었다.

이영진 상무는 경치 구경보다는 이런 공연에 더 흥미가 있는 것 같았다.

민속 악기를 다루는 사람들을 쳐다보며 열심히 민속음악을 경청하는 것 같았다. 사장이나 팀장, 그리고 안 과장도 열심히 공연을 구경했다.

하지만 강시혁은 세 발자국 뒤에서 이영진 상무만 감시했다.

두 놈이 두리번거리며 이영진 상무에게 접근하는 것이 보였다.

강시혁은 선그라스를 벗고 마스크를 꼈다.

[두 놈이 같은 패거리 같네.]

강시혁은 이영진 상무에게 조심하라고 사인을 보낼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열심히 관람하고 있는 그녀의 흥을 깨고 싶지는 않았다.

잠시 후 사람이 더 밀려들자 한 놈이 이영진 상무 앞에서 넘어지는 척했다.

“어맛”

이영진 상무가 놀라서 비틀거렸다. 이 순간 이영진 상무 뒤에 있던 다른 놈이 재빨리 이영진 상무의 손목을 쳤다. 그리고 이영진 상무가 들고 있던 명품 가방을 낚아채고 달아났다. 이와 동시에 강시혁도 몸을 날렸다. 강시혁이 달아나던 놈의 목덜미를 낚아채고 팔을 꺾었다.

강시혁은 전에 큐레이터 신종화의 애인인 배동수의 팔을 꺾어 본 경험이 있었다.

그래서 바로 쉽게 꺾었다.

강시혁이 외쳤다.

“워쓰 꽁안 (나는 경찰이다)!”

그러자 팔을 꺾인 놈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가방을 내려놓았다.

이 소란에 사람들이 몰려들고 안 과장과 팀장이 달려왔다. 사장도 달려왔다.

안 과장이 팔을 잡힌 놈에게 말했다.

“이분은 공안이다! 공안국까지 가자!”

강시혁은 이놈을 끌고 가는 것이 목적이 아니었다. 괜히 공안국에 끌고 가봤자 골치만 아프다.

가방을 찾았으니 목덜미 잡은 것을 느슨하게 해주었다. 도망가라는 표시였다. 그 순간 놈은 강시혁의 팔을 치고 달아났다.

안 과장이 쫓아가는 척을 했다.

“잔주(서라)!”

강시혁이 찾은 가방을 이영진 상무의 목에 걸어주었다. 승리의 월계관처럼 걸어주었다.

그리고 빙긋 미소를 지어주었다. 이영진 상무도 강시혁의 얼굴을 올려다보며 미소를 지었다.

안 과장과 팀장, 그리고 사장이 강시혁에게 말했다.

“우리는 전혀 몰랐는데 대단하네. 가방을 퍽치기한 놈을 금방 그렇게 잡아들이네.”

“제가 경호원 아닙니까?”

“그냥 온 게 아니었어. 대단해!”

이후 팀장과 안 과장, 그리고 사장은 강시혁을 달리 보았다.

귀국길에 올랐다.

팀장과 안 과장이 공항까지 따라왔다. 생각지도 않게 중국 파트너인 장운 집단공사의 사장도 배웅을 위해 공항에 나왔다. 그는 판공실 주임인 여성과 함께 왔다. 아무래도 이영진 상무가 비중 있는 인물이라 그런 것 같았다.

사장이 팀장에게 말했다.

“이제 중국 측과 계약을 했으니 회사에서 계약금이 들어갈 거네. 그럼 빨리 법인을 설립하게.”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사장이 몸을 돌려 이번엔 이영진 상무의 얼굴을 쳐다보며 말했다.

“무한에 새로 발족되는 합자사의 대표는 여기 팀장이 해야 될 것 같습니다. 그동안 이 프로젝트를 수행하느라 이 업무에 대해서 잘 알고 또 중국 측과의 관계도 좋은 것 같습니다.”

이영진 상무가 대답은 안했지만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는 것 같았다.

그러면서 한마디 했다.

“로지스틱스의 자회사라 인사는 사장님께서 결정하시면 됩니다.”

이 말에 팀장의 얼굴엔 좋아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팀장은 사장이 무한에 왔을 땐 서류에 얻어맞는 수모를 당했었다.

하지만 눈물 나는 처세로 상황을 역전시켰다.

강시혁도 새로 발족되는 자회사 사장은 낙하산 인사가 아닌 이 업무를 가장 잘 아는 팀장이 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팀장은 강시혁에게도 고맙다고 하면서 녹차를 선물했다.

“동호에서 나오는 운무차(雲霧茶)입니다.”

이영진 상무와 로지스틱스 사장, 그리고 강시혁은 출국장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면세점엘 들렸다.

사장이 면세점에서 중국 명주 수정방을 사고 있을 때 이영진 상무는 티셔츠를 하나 샀다.

강시혁은 이영진 상무가 회장님 드리려고 티셔츠를 사나보다 했다. 하지만 이영진 상무는 티셔츠를 강시혁에게 살며시 주면서 말했다.

“강 대리님이 입고 있는 티셔츠가 낡았어요. 이거 입으세요. 맞는지는 모르겠네요.“

“헉! 이걸!”

상표를 보니 버버리 진품 티셔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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