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녀의 두 번째 남편-148화 (148/199)

148화 중국 출장 (5)

(148)

다음날 이영진 상무 일행은 아우디를 타고 합작 파트너 회사로 갔다.

학교처럼 지어진 건물로 들어가니 중국 측 직원들이 현관에 나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무한 장운 집단공사(그룹)의 총경리(사장)입니다. 지난번 한국 방문 때 두 분은 뵌 적이 있습니다.”

“저는 부총경리(부사장)입니다.”

"저는 합작사업을 추진하는 실무자 영운경리(營運經理: 운송영업 이사)입니다.“

영운경리 라는 사람이 아마 중국 측 TF팀장인 것 같았다. 한국 측으로 말하자면 로지스틱스 팀장과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인 것 같았다.

여자 간부도 나와 있었다. 키가 헌칠하게 생긴 미인 아줌마였다.

이 여성이 북경 표준어 발음으로 말했다.

“저는 판공실 주임(총무부장) 이에요. 이영진 상무님 만나니 반가워요. 듣던 대로 미인이시네요. 여신 같아요.”

안 과장이 통역하는 소리를 듣고 이영진 상무는 미소만 날렸다.

강시혁은 중국에서도 아름다운 여성을 여신이라고 부르는구나 하였다.

또, 한 대의 고급 승용차가 미끄러져 들어오고 있었다. 비상라이트가 달려있는 차였다.

머리가 약간 벗겨진 뚱뚱한 사람이 내렸다. 그 뒤로 또 50대 두 명이 내렸다.

중방 측 사장이 방금 온 뚱뚱이를 이영진 상무에게 소개했다.

“시장님이십니다.”

시장이 솥뚜껑 같은 손으로 덥석 이영진 상무의 손을 잡았다.

“먼 길 오셨습니다. 한국의 삼방 집단공사의 동사장 따님이시라고 들었습니다. 반갑습니다.”

안 과장이 순차 통역하는 것을 듣고 이영진 상무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저도 반갑습니다.”

“우리들의 합작사업은 인민들의 복무 질을 높이고 선진화의 발걸음을 내디딜 것입니다. 그리고 이윤창출로 투자금을 회수하는데 어려움이 없을 것입니다. 또 우리 정부부분에서도 그렇게 되도록 지원을 해드릴 것입니다.”

“고맙습니다.”

뒤에 따라온 50대도 차례로 인사했다.

한 사람은 교통국장이고 또 한 사람은 비서장이라고 했다.

로지스틱스 사장도 인사를 했다.

“내가 삼방 로지스틱스 사장이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정부의 부부장(차관) 급 인사였소.”

“호, 그러신가요?”

시장은 로지스틱스 사장의 손을 잡고 흔들어주었다. 국장들도 로지스틱스 사장의 손을 잡고 흔들어주었다.

모두 서명식이 열리는 강당으로 들어갔다.

강당 안에는 벌써 기자 같은 사람들이 들어와 있었다. 회사 직원들로 보이는 사람들도 있었다.

강당 앞면 벽에는 ‘중한(中韓) 합작사업 첨약(簽約: 체결)의식’ 이라는 현수막이 붙어 있었다.

그리고 현수막 밑에 테이블이 있고 탁상용 한국 태극기와 중국 오성홍기가 놓여 있었다.

강당 안에 들어와 있던 중국측 직원들이 로지스틱스 팀장과 안 과장에게 인사를 하였다.

팀장이 재빨리 로지스틱스 사장에게 보고했다.

“여기 나와 있는 중국 측 직원들은 합작사가 성립되면 넘어올 직원들입니다.”

“그대로 받지 말고 선별해서 받아야지! 안 그런가? 팀장!”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판공실 주임이라는 미인 아줌마가 로지스틱스 사장과 무한 장운 집단공사의 사장을 의자에 앉으라고 안내 하였다. 합작계약서에 서명은 각자의 회사를 대표하여 이 두 사람이 서명을 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테이블 뒤로 시장과 국장들, 그리고 이영진 상무와 팀장, 그리고 안 과장도 섰다.

강시혁은 자기가 낄 자리가 아니라서 주춤거리고 있는데 판공실 주임이 강시혁의 옷소매를 잡으며 뒤에 서라고 하였다.

안 과장이 강시혁에게 말했다.

“오늘 서명은 두 분 사장님께서 하시고 뒤에 서 계신 시장님이나 이영진 상무님은 입회인입니다. 두 분의 서명을 공식적으로 인정한다는 입회인이 되시는 겁니다.”

두 사람이 서명하는 것을 기자들이 펑펑 거리며 사진을 찍었다.

오늘 저녁 중국 신문과 TV에서는 틀림없이 무한 장운 집단공사가 한국 자본을 끌어들여 최신식 터미널을 건설한다는 기사가 뜰 것으로 보았다. 또 이것을 받아서 한국의 언론에도 보도가 될 것으로 보았다.

서명식이 끝났다. 박수 소리가 강당 안을 메웠다.

간단한 다과회가 있다는 사회자의 마이크 소리가 들렸다. 이것은 서명식에 참석한 회사의 간부들보다는 기자들을 위한 배려인 것 같았다.

서명식이 끝나자 시장과 국장들은 바로 돌아간다고 하였다.

시장이 이영진 상무에게 말했다.

“멀리서 오신 손님을 그냥 보낼 수 없죠. 마침 장운 집단공사 사장이 자리를 마련했다고 하니 다행입니다.”

“저녁에 시장님도 오실 거죠?”

“아름다운 여성이 초청하는데 안 갈 수도 없죠. 허허.”

시장이 이번엔 로지스틱스 사장에게 악수를 청했다.

“양국의 합작은 서로에게 좋은 결과를 낳을 겁니다. 이윤에 대한 과실송금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겁니다.”

로지스틱스 사장과 시장이 대화하는 장면을 팀장이 계속 스마트폰으로 촬영했다. 아마 나중에 이 기록사진을 사장에게 보내려고 그런 것 같았다.

강시혁은 그런 팀장의 행동에 쓴웃음을 지었다.

[자기 상사가 중요인사와 대화하는 모습을 열심히 찍어야겠지. 그래서 잘된 사진을 사장에게 보내준다면 점수는 따겠지. 그러면 사장은 또 자랑스럽게 이 사진들을 자기 트윗트 같은데 올리겠지. 팀장이 사장에게 잘 보이려고 하는 행동이 눈물겹네.]

[그런데 나도 이영진 상무가 시장이나 여기 중국 사장과 악수하는 장면을 찍어둘까? 그리고 나중에 이영진 상무에게 보내준다면? 이영진 상무는 아무래도 그런 건 안 좋아하겠지. 하라는 경호활동은 안하고 다른데 마음을 쓰고 있다고 싫어할지 모르지. 에이, 사진 찍는 건 그만 두자.]

[이영진 상무는 자기를 알리는 것을 오히려 환영하지 않는 성격이야. 왜냐하면 그녀는 재벌이니까. 재벌은 베일에 싸여 생활하는 게 오히려 좋겠지.]

시장과 국장은 저녁때 만찬장에서 보자고 하면서 바로 가버렸다.

중국 측 사장이 이영진 상무와 로지스틱스 사장에게 자기 방에서 차를 한잔하자고 권했다.

이영진 상무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수락했다. 한국에서 서명식을 하기위해 비행기를 타고 날아왔는데 그냥 훌쩍 가는 것도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한 것 같았다.

그런데 기자 한명이 사장실까지 몰려와 사진을 펑펑거리며 찍었다.

사장실 문 앞에 있던 강시혁이 꺼지라고 어제 배운 중국말 랑카이(비켜라)를 외치려고 하였다. 그러다가 그만두었다. 그건 호객행위를 하는 장사꾼들에게나 하는 말이라 점잖치 못한 것 같아서였다.

그래서 강시혁이 기자의 뒷덜미를 잡고 조용히 영어로 말했다.

“Please Leave (나가주세요.)”

그러자 중국인 부사장이 황급히 말리며 말했다.

“이 기자는 신문사나 방송국 기자가 아니고 사내 사보 기자입니다. 회사 홍보물 촬영 때문에 들어왔으니 양해바랍니다.”

강시혁은 그런 게 있었나 하였다.

뒷덜미를 잡혔던 기자가 물러나면서 강시혁을 촬영하려고 하였다. 그러자 강시혁이 발로 찰 동작을 하였다. 이것을 본 기자가 얼른 카메라를 내렸다. 선그라스를 끼고 체격 좋은 강시혁에게 겁을 먹었던 것 같았다.

이영진 상무가 차를 마시고 나오자 중국인 사장이 로지스틱스 사장에게 물었다.

“이 태양경(선그라스)을 쓴 젊은이는 경호원인가요?”

“예, 그렇습니다.”

“호, 역시 재벌의 따님이라 경호원을 두고 다니는군요.”

오다가 양자강 주변과 황학루와 장춘관을 구경했다.

다행히 이곳들은 유명 관광지라 그런지 단속원도 많아 이영진 상무에게 달려드는 잡상인들은 없었다. 더구나 이곳들은 입장료가 있는 곳이었다. 중국인들 입장에서는 부담스러운 돈들이라 잡상인들이 함부로 들어오지는 못했다.

강시혁은 황학루보다는 장춘관에 흥미를 가졌다. 이곳 유적지를 설명하는 안 과장이 장춘관은 전진교 창시자 왕중양의 제자 구처기(丘處機)의 호를 딴 도관이라고 했기 때문이었다.

왕중양과 구처기가 누구인가? 바로 무협지에 많이 나오는 인물이 아닌가!

강시혁도 학교 다닐 때에 무협지를 많이 읽어 보았었기 때문에 이런 부분에 흥미를 가진 것이다.

“아, 구처기의 호가 장춘자(長春子)라 도관 이름이 장춘관이구나!”

옆에 같이 걸어가던 로지스틱스 팀장이 핀잔을 주었다.

“이봐! 강 대리, 뭐해? 이영진 상무님 벌써 저만치 가네.”

“그렇군요.”

“그런데 저 개종래는 아까부터 이영진 상무님 옆에 붙어서 관광지 설명하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네. 지가 가이드인가? 차라리 설명을 하라면 안 과장이 낫지. 안 과장이 점수 딸 기회는 좀처럼 주지 않네.”

강시혁도 눈살을 찌푸렸다.

사실 이영진 상무는 관광지 구경이 시간 때우기일 것이다. 전진교나 왕중양이나 구처기 같은 것은 남자들이나 흥미가 있지 여성들에게는 아무 흥미가 없는 것들 이었다.

그런데 지금 로지스틱스 사장은 이영진 사장 옆에 착 달라붙어 열심히 열변을 토하고 있는 것이었다.

자기의 유식함을 계속 자랑하고 있는 것이었다.

강시혁은 이영진 상무를 모셔도 절대로 묻는 말 이외에는 말을 잘 하지 않는다. 전형적인 호위무사처럼 행동했다.

그래서 이영진 상무가 강시혁을 더 신뢰하고 옆에 두려고 하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저녁때가 되었다.

만찬회장으로 갔다. 양자강 물이 흐르는 임강대도(臨江大道) 변에 있는 자양루(紫陽樓)라는 전통 음식점이었다.

이영진 상무가 나타나자 중방 측 인사들이 일제히 일어나 박수를 쳤다.

그리고 시장이 앉은 옆 좌석의 제일 상석에 앉혔다. 로지스틱스 사장은 무한 장운 집단공사 사장의 옆에 앉혔다.

산해진미의 음식이 나오고 중국 명주가 나왔다.

얼후를 든 악사가 켜는 음악소리를 들으며 음식을 먹었다.

시장이 말했다.

“이곳의 음식은 추차이(楚菜)라고 하는 초나라 음식입니다. 이곳이 옛 초나라 땅이라 그렇습니다.”

이영진 상무는 음식을 많이 먹지 않았다. 술도 입에 대는 정도였다.

로지스틱스 사장은 잘 마시고 잘 먹었다. 초나라에 대하여 아는 척을 하며 자기의 박학함을 들어내기도 하였다.

하지만 시장과 무한 장운 집단공사 사장은 온통 관심이 이영진 상무에게 쏠려있었다. 왜냐하면 이영진 상무는 다른 사업에 대한 투자의 결정권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들도 이영진 상무에 대한 정보를 어느 정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행동이 나왔다.

시장은 또 술병을 들고 술 자랑을 했다.

“이 술은 무한의 명주 지강대곡주(枝江大曲酒)입니다. 200년 역사와 전통을 가지고 있는 명주입니다.”

강시혁이 슬쩍 보니 이영진 상무는 얼굴에 피곤한 기색이 역력해 보였다.

하지만 로지스틱스 사장은 또 열변을 토했다. 무한 10대 명주를 어디서 들었는지 시장 앞에서 줄줄이 늘어놓는 것이었다.

강시혁은 경호 업무를 맡은 사람이라 일체 술을 마시지 않았다. 그렇지만 음식은 먹었다.

대신 안 과장은 통역을 하느라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했다. 그렇지만 술은 좀 마셨다.

강시혁이 보기에 이영진 상무는 빨리 재혼을 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일은 여성보다는 남성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여성도 잘 할 수 있고 협상 자체를 즐기는 여성이 있지만 이영진 상무는 그런 타입이 아니었다.

조용한 스타일의 여자라 이런 어수선한 만찬장에 앉아 있는 것은 어쩐지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찬이 끝나고 하얏트 호텔로 돌아왔다.

강시혁이 이영진 상무의 얼굴을 바라다보았다. 이영진 상무는 술의 거의 안했지만 그래도 시장의 권유에 못 이겨 살짝 반잔만 했었다. 그래서 얼굴이 약간 발그레하였다.

호텔 로비의 불빛과 함께 이영진 상무의 홍조 띤 얼굴은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 순간 강시혁은 눈이 부셔 이영진 상무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로지스틱스 사장이 시계를 보았다.

그러더니 고개를 들고 이영진 상무에게 말했다.

“저는 직원들과 간단히 맥주 한잔 하고 올라가겠습니다. 객지에 나와 있는 직원들에게 위로는 좀 해주고 싶습니다.”

“그렇게 하세요. 보아하니 무한 프로젝트를 추진하느라 팀장님과 안 과장님이 수고를 너무 많이 하신 것 같습니다. 같이 한잔씩들 하세요.”

이 말을 하고 이영진 상무가 몸을 돌려 엘리베이터 쪽으로 갔다.

강시혁이 뒤를 따랐다.

“강 대리님도 수고 많으셨어요. 로지스틱스 사장님을 따라 가셔서 맥주 한잔 하세요.”

“저는 괜찮습니다. 저는 상무님을 경호 해야죠.”

“아니, 오늘 저녁은 괜찮아요. 이미 호텔로 왔으니까요. 그러니 대리님은 TF팀과 같이 어울려 맥주 한잔 하세요.”

“그래도.”

이영진 상무가 미소 띤 얼굴로 말했다.

“저, 안 그러시면 화낼 거예요.”

이 말에 강시혁은 이영진 상무에게 크게 허리 굽혀 인사를 했다.

“그럼 편히 쉬십시오.“

이영진 상무가 엘리베이터 속으로 사라지는가 싶더니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강시혁을 향해 손을 흔들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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