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7화 중국 출장 (4)
(147)
팀장이 강시혁의 얼굴을 쳐다보며 말했다.
“우리는 숙소에 갔다가 다시 오겠어요. 밖에 있는 아우디를 몰고 온 중방 측 기사들도 보내야 하니까.”
“렌트카 아니었나요?”
“렌트카는 아니요. 중방 측 회사의 동사장(이사장)과 총경리(사장)의 전용차입니다. 돌려보내야 합니다.”
“숙소는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는 중방 회사 근처에 있는 3성급 호텔에서 숙박하고 있습니다. 서울에 있는 고급 모텔 정도로 보시면 될 겁니다. 그런데 그 호텔은 비교적 외곽에 있어 저렴하기는 합니다.”
“그럼 업무도 호텔에서 보나요?”
“중방 측 소회의실을 쓰고 있습니다. 내일 계약이 체결되고 계약금 들어오면 중방이 사무실을 제공해 주기로 했습니다. 우리를 꾀려고 그러는지 우리가 사용할 사무실을 말끔히 단장해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하하. 그런가요?”
“그리고 터미널 완공 조감도를 보여주면서 화물회사와 고속버스 회사 만들면 신축터미널에 회사 사무실을 근사하게 꾸며주겠다고 했습니다.”
“그게 다 삼방그룹 돈으로 짓는 건물 아닙니까? 돈은 우리가 내고 생색은 그놈들이 내네요. 옛말에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떼놈들이 번다는 말이 맞네요.”
“땅은 자기들이 제공했다는 거죠. 그래서 절반의 권리는 있다고 항상 그럽니다.”
“흠. 땅은 자기들 거라 이거군요.”
강시혁은 참 많은 공부를 한다고 생각했다.
합작사업은 이런 식으로 움직이는 거구나 했다.
[조금 전에 로지스틱스 사장이 집어던진 서류는 사업계획서나 되는 것 같군. 서류가 상당히 많았던 것 같은데 그건 아마 로지스틱스 팀장이 안 과장과 의논해서 다 만들었겠지. 그런데 TFT라면서 달랑 두 사람만 나와 있나?]
그래서 강시혁이 물어보았다.
“무한 프로젝트의 TFT 인원은 몇 명입니까?”
“5명입니다. 재무전문가도 있고 건설에 대하여 잘 아는 건축 기술사도 있습니다. 그리고 터미널 운용 경력사원도 있습니다.”
“전부 과장급입니까?”
“아니오. 대리급도 있습니다. 그런데 강 대리도 이곳 TFT에 관심이 많은 것 같네요.”
“아니, 그, 그냥 물어보았습니다.“
“하긴 경호업무도 힘들겠지. VIP가 움직이면 늘 긴장해야 하고 자기 시간도 없을 테니까. 그런데 혹시 여기에 자회사가 꾸며지면 많은 인력이 필요하니까 그때 지원해 보려고요?”
“아니, 그 그게 아니라.”
“서울에 있다가 여기 나오면 승진은 빨리 됩니다. 그리고 여기에 와서 급여 많이 받고 폼 잡고 살면 되겠지. 사택도 마련해 줄 테니까요.”
“사택도요?”
“그런 메리트라도 없으면 누가 나와요?”
“하긴 그, 그럴 것 같습니다.”
“강 대리도 장가를 안 갔다면 한번 나와도 괜찮아요. 동남아나 중동보다는 이곳 중국여자들은 우리와 비슷하게 생겨서 연애해도 좋아요. 싸가지 없는 애들이 많아서 그렇지 여기도 찾아보면 예쁜 여자들 많아요.”
강시혁은 그냥 웃고 말았다. 남자라는 동물들은 모두 비슷한 마인드를 갖고 있다고 느껴졌다.
옆에서 킥킥 웃는 안 과장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팀장이 말했다.
“당신은 왜 웃는 거요?”
“우리 비서실 과장 한사람이 인도에 갔다가 사표 쓴 사람이 생각나서 그럽니다.”
“왜 사표를 써? 인도는 수당 많이 붙을 텐데.”
“이 친구는 대리 시절에 중국에서도 근무했던 친구입니다. 그런데 인도에 가면 수당 많다는 소리를 듣고 인도 뉴텔리 지사로 자원해 갔죠. 그런데 그쪽은 얼굴이나 말들이 동북아와 확 틀려 정이 안 붙는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사표 쓰고 지금 다른 그룹사로 갔습니다.”
“용케 다른데 갔군.”
"마침 잡코리아에 경력사원 모집하는 그룹사가 있어서 갔답니다.“
“제기랄! 마흔 살 안 넘으니 그게 가능했겠군. 나 같은 아재를 받아주는데 어디 없나?”
“시간 많이 지났네요. 가죠. 이제. 강 대리도 피곤하겠네요.”
그래서 팀장과 안 과장은 손을 흔들며 가버렸다.
저녁 7시에 다시 온다고 하면서 갔다.
강시혁이 호텔 주위를 돌아보려고 밖으로 나갔다.
멀리 가지는 않고 호텔 주변만 걸어보았다. 역시 중국은 호텔 안은 별천지이지만 호텔 밖 거리는 복잡하고 지저분했다.
더구나 무한은 인구가 많기로 유명한 곳이라 더 복잡했다.
강시혁은 무한에 올 때 코로나 PCR검사를 하면 어쩌나 하고 걱정했었다.
그래서 비자 받은 여권을 찾으러 여행사에 갔을 때 여행사 직원에게 물어보았었다.
여행사 직원은 무한 비행장에 도착할 때 자가 건강 신고서만 제출하면 된다고 해서 안심했었다.
강시혁은 시장 뒷골목도 구경해보고 싶었다. 중국 여행은 처음이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아직도 코로나 바이러스가 떠돌아다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냥 호텔로 돌아왔다.
강시혁은 자기 방으로 들어왔다.
역시 호텔 방은 언제나 깨끗하고 창문으로 바라보는 뷰도 좋았다.
더구나 여기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하얏트 호텔 체인점이 아닌가? 이름도 요상한 중국 이름을 붙인 호텔이지만 그래도 별이 5개인 5성급 호텔이라 럭셔리하기만 했다.
강시혁은 침대에 벌렁 들어 누워 서울에서 가져온 포켓용 중국어 회화 책을 보았다.
자주 쓰는 인사말 같은 것을 연습해 보았다.
“니하오 (안녕하세요).”
“쎼쎼 (고맙습니다).”
“씬쿨라 (수고하십니다).”
“하오츠 (잘 먹었습니다).”
그러다가 눈에 띠는 문장이 있었다.
“랑 카이 (비켜라).”
“워쓰 꽁안 (나는 공안(경찰)입니다).”
이 말은 혹시 써먹을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영진 상무에게 잡상인이 물건 사라고 몰려든다면 뒤에서 자기가 소리치기 좋은 문장이었다.
“랑카이(비켜라)!”
이렇게 자기가 외치면 잡상인들이 물러설 것이고 그래도 안 물러난다면 그때는 점잖게 워쓰 꽁안(나는 경찰이다) 이라고 말하면 잡상인들이 도망을 갈 것으로 보았다.
아까 호텔 밖에 나갔을 때 거리를 보니 잡상인들이 많이 있을 것 같았다.
특히 모레 관광지에 갔을 때 그런 파리 떼가 있을 법도 하였다. 더구나 이영진 상무는 옷도 명품을 입었고 들고 다니는 백도 명품 백이다.
중국도 가짜 명품백이 돌아다닌다는데 진짜 명품 백에 옷도 근사하게 입은 이영진 상무를 보고 잡상인들이 몰려들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럴 때 선그라스를 끼고 깍두기 머리를 한 자기가 옆에서 랑카이를 외친다면? 그래도 안 되면 워쓰 꽁안을 외쳐 쫓아 보낸다면?
아마 자기는 이영진 상무에게 또 점수를 따리라고 보았다.
경호원이 꼭 남들과 몸싸움을 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좋은 말로 쫓아버리면 그게 상책인 것이다.
강시혁은 긴 문장을 외우는 건 포기했다.
암기하기도 어렵고 또 암기를 하였다 하여도 호텔 문밖을 나간다면 당장 잊어버릴 것이 뻔했다.
그래서 지금 외운 짤막한 문장만 계속 외웠다. 그러다가 잠이 솔솔 몰려와 자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안 과장이었다.
“나요. 안 과장이요. 로비로 내려와요.”
“어?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되었나?”
“7시 20분 전인데 미리 내려와요. 높은 사람들보다 미리 와서 대기하는 게 우리 쫄따구들의 아름다운 미덕이니까!”
그래서 강시혁이 로비로 내려갔다.
팀장과 안 과장이 로비에 있었다. 강시혁은 이들이 자기보다 회사 짬밥이 오래되어 역시 높은 사람모시는 감각은 더 있다고 여겨졌다. 이런 걸 몰라주고 있는 그 개종래 라는 사장은 참 나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로지스틱스 사장은 5분전에 내려왔고 이영진 상무는 정확히 7시에 내려왔다.
팀장이 이영진 상무가 아닌 사장의 얼굴을 보고 말했다.
“식당은 어디로 모실까요? 이 호텔엔 한식은 없습니다. 그냥 중식당으로 갈까요?”
“흠. 그럼 일식은 있나?”
“이탈리아 음식점이 있습니다.”
이영진 상무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내일 만찬장에선 틀림없이 기름진 중식으로 할 겁니다. 그러니 오늘은 이탈리아 식당에 가서 간단히 식사 하시죠.”
로지스틱스 사장도 얼굴 가득 미소를 띠우고 말했다.
“저도 방금 그 생각을 했습니다. 이탈리아 음식 좋죠.”
강시혁이 옆에 있다가 코웃음 쳤다.
[방금 그 생각을 해? 일식 음식을 찾고선 속 보이는 말을 하네? 행정고시 합격 후 차관이 될 때까지 20년 이상을 환해(宦海: 관리의 사회)에서 헤엄쳐 다니다보니 임기응변만 늘은 사람이네.]
그래서 모두 무한 하얏트 호텔 2층에 있는 이탈리아 음식점으로 갔다.
강시혁이 뒤따라가며 팀장에게 속삭이듯 귀에 대고 말했다.
“저 사장님 웃기네요. 일식 먹고 싶은 사람이 이영진 상무가 이탈리아 식당으로 가자고 하니까 금방 낯 색 하나 안 변하고 자기도 방금 그 생각을 했다고 하네요.”
“하여간 보통 놈은 아니야.”
“정말 행정고시 합격 후 20여 년간을 환해에서 헤엄쳐 다니다 보니 그런 눈치만 는 것 같네요.”
“환해? 당신은 영문과를 다닌 것으로 아는데 환해를 아는걸 보니 무협지도 많이 읽어본 사람 같군.”
“무협지가 아니고 대체역사 웹소설을 보니까 그런 용어가 나오던데요?”
“흠. 문해력을 기르려면 웹소설이라도 읽어 보는 게 좋지. 요즘 아그들은 문해력이 엉망인 게 문제야.”
이탈리아 식당에 들어갔다.
종업원이 달려 나와 최고로 좋은 자리를 안내해 주었다.
눈썰미 있는 중국 종업원은 이영진 상무가 중국인이 아니란 걸 금방 알은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뒤를 따르는 남자들도 분위가 중국인과는 다름을 느꼈다.
이영진 상무가 종업원에게 영어로 고맙다고 말했다.
“탱큐 유.”
“유아 웰컴!”
이영진 상무가 말했다.
“다들 앉으시죠.”
로지스틱스 사장이 이영진 상무 앞에 앉았다.
그리고 팀장과 안 과장 및 강시혁을 향해 말했다.
“자네들은 저쪽에 가서 앉지.”
세 사람이 이 말을 듣고 비실비실 다른 자리로 가려는데 이영진 상무가 말했다.
“왜요? 다들 같이 앉아서 식사를 하지.”
“됐습니다. 서로 넓게 편하게 앉는 것이 좋습니다.”
고위 공무원 출신인 로지스틱스 사장은 아랫사람들과 섞이는 것을 극히 싫어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팀장은 정말 사장이 보기 싫은지 옆자리가 아니고 저만치 떨어져 앉았다.
그래서 안 과장이나 강시혁도 그쪽에 같이 앉았다.
팀장이 말했다.
“저 인간하고 밥 먹는 게 싫었는데 잘 되었네. 아름답게 생긴 이영진 상무 앞에서 밥 좀 먹으려고 했는데 저 인간 때문에 틀렸네.”
이번엔 안 과장이 말했다.
“그런데 팀장님! 이영진 상무님에 대해선 이상한 소문이 들리던데요?”
[소문이라니?]
이 소리에 강시혁도 눈을 크게 뜨고 안 과장의 말에 귀를 기우렸다.
“무슨 소문인데?”
“신문재벌하고 결혼했었는데 이혼했다는 소문이 들리던데요? 뉴스엔 안 나왔지만 우리 비서실 직원들은 쉬쉬하면서 다 아는 것 같던데요?”
강시혁은 속으로 웃었다.
[난 또 뭐라고! 특별한 소문이 또 있는 줄 알았네. 이미 협의이혼 서류가 법원에 들어가고 판결까지 나왔는데 이 두 양반은 모르는 것 같네. 내가 확 이야기 해버릴까? 아니지. 그러면 내가 비선 경호원 자격이 없지.]
팀장이 강시혁을 보고 말했다.
“그런 건 경호원인 강 대리가 잘 알 것 아닌가? 강 대리! 정말로 이영진 상무님이 이혼 했어요?”
강시혁이 웃으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저는 상무님을 가깝게 모시고 있는 경호원이라 상무님의 사생활에 대해선 말해드릴 수가 없습니다.”
“뭐, 그럴 테지. 질문한 우리가 잘못된 거겠지. 그렇지만 신문사 아들이 왜 이혼을 해? 사진 보니까 이영진 상무가 훨씬 낫던데. 결혼할 때 우리 그룹사 직원들이 모두 그랬잖아? 신부가 아깝다고.”
옆에서 안 과장이 또 웃었다.
“킥킥. 중방 측에서도 내일 만찬에 부시장이 나오기로 했는데 이영진 상무가 왔다니까 시장이 직접 오겠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시 정부 판공실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킥킥.”
“그런데 난 이해가 안 가는 것이 있어.”
“뭐가요?”
“산돼지 같이 생긴 회장님이 어떻게 저렇게 예쁜 딸을 낳았어?”
“모르는 소리입니다. 회장님도 젊었을 때는 미남이었답니다.”
강시혁은 괜히 기분이 좋았다.
이상하게 남들이 이영진 상무가 아름답다니, 예쁘다니 하고 떠들면 자기도 덩달아 기분이 좋은 것이다.
종업원이 메뉴판을 들고 왔다.
강시혁이 제일 젊으니까 메뉴판을 강시혁에게 주었다. 그런데 전부 중국어였다.
모르는 한자투성이라 무슨 말인지도 모르겠다. 영문이 있기는 한데 글씨가 작았고 의미는 알겠는데 어떻게 나오는 요리인지는 잘 모르겠다.
맨 위에 있는 글씨는 알겠다.
이렇게 쓰여 있었다.
[의대리(意大利) 채(菜)]
안 과장에게 물었다.
“의대리 채가 뭡니까?”
“의대리가 중국 발음으로 이따리 입니다. 이탈리아 음식이란 말이죠.”
“그런가요?"
다른 종업원이 메뉴판을 들고 로지스틱스 사장 앞으로 갔다.
이걸 보고 팀장이 말했다.
“이봐! 안 과장! 당신 화장실 가는 척 해. 저 개종래는 메뉴판 보고 똥인지 된장인지 모를 거야. 틀림없이 안 과장을 부를 거요. 애 좀 먹입시다.”
강시혁이 웃으며 말했다.
“영문으로도 쓰여 있으니 이영진 상무님이 알겁니다. 나도 영문은 알아도 먹어보지 못한 음식이라 무슨 요리인지 모르지만 이영진 상무님은 다를 겁니다. 고급식당을 자주 다니신 분이라 알겁니다.“
“저것 봐! 개종래가 메뉴판 받더니 하나도 모르니까 이영진 상무에게 슬쩍 웃으며 넘겨 주네. 교활한 인간 같으니!”
강시혁은 또 이영진 상무가 불쌍해 보였다. 젊은 여자가 50대 후반의 남자와 마주 앉았으니 말이다.
이영진 상무는 아마 우리들과 같이 앉아서 식사를 하고 싶을 것이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