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6화 중국 출장 (3)
(146)
손을 들었던 남자가 이영진 상무 앞으로 달려왔다. 40대 후반으로 보였다.
그 옆에는 또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자도 같이 따라왔다.
40대 후반의 남자가 이영진 상무에게 크게 허리 굽혀 인사를 하며 말했다.
“어서 오십시오. 무한에 나와 있는 로지스틱스 해외사업 팀장입니다.”
40대 초반도 생글거리며 인사했다.
“비서실에서 중국파견 나온 안용석 과장입니다.”
이영진 상무는 해외사업팀장의 이름은 잘 몰라도 얼굴은 안다. 같은 빌딩에서 가끔 엘리베이터 같은데서 마주칠 경우도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위 임원이 아닌 팀장 정도면 낯은 익었어도 그가 어디에 근무하는 누구인지 정확히는 모르는 경우도 있었다.
이영진 상무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수고 많습니다.”
이어서 해외사업팀장은 로지스틱스 사장에게 인사를 하였다.
로지스틱스 사장이 배를 내밀고 말했다.
“차는 가져왔지?”
“예, 가져왔습니다.”
“무슨 차 가져왔나?”
“중방(中方: 중국 측 파트너를 말함) 측에서 아우디 2대를 제공했습니다. 그 차로 모시겠습니다.”
“이 사람아! 나는 괜찮지만 이영진 상무도 오셨는데 아우디가 뭔가? 아우디가! 벤츠 없나?”
“예, 여기 중방측은 국영기업이라 자기 마음대로 차량 구입이 어렵습니다. 정부에서 지정한 배기량 기준이 있습니다. 중방 측 동사장도 현재 아우디를 타고 다닙니다.”
이영진 상무가 웃으며 말했다.
“뭐, 호텔까지 가는데 상관없습니다. 가시죠.”
로지스틱스 사장이 이영진 상무에게 약간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제 직원이 변변치 못해서.”
뒤에 있는 강시혁은 해외사업팀장이란 사람이 사장에게 무척 시달리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상사를 모신다는 것은 피곤한 일이었다. 영빈관에 혼자 파견 근무하는 자기가 얼마나 꿀 보직인가 하였다.
공항 앞에 아우디 두 대가 대기하고 있었다. 그래도 다른 중국차보다는 고급스러워보였다.
중국에서 생산된 차량이 아닌 아우디를 배정한 것을 보니 중국 측에서도 나름대로 신경을 써준 것 같기는 하였다.
해외사업팀장과 중국파트 안 과장은 뒤 따라오는 강시혁을 자주 쳐다보았다.
본사에서 연락이 오길 무한엔 세 사람이 간다고 하였었다. 이영진 상무의 경호원이 따라간다고 하였었다. 그래서 선그라스를 끼고 세 개의 가방을 들고 오는 이 젊은이가 그 사람인 것으로 알았다.
경호요원은 대리라는 통보도 받았었다. 과연 떡 벌어진 어깨에 덩치도 있고 깍두기 머리에 선그라스를 끼고 있어 경호원 같다는 인상은 받았다.
특히 안 과장은 지난번 서울 본사에 들렸을 때 이영진 상무의 비선 경호원이 비서실로 전출 발령이 났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또, 그때 듣기로는 경호원이 이영진 상무를 수행하고 일본에 갔을 때, 일본 야쿠자 7명과 혼자 싸웠다는 무용담도 들은 적이 있었다.
이곳 무한에서는 그런 조폭들을 마주칠 일은 없지만 지나치게 호객을 하는 잡상인이나 물건을 훔쳐가는 좀도둑들은 있을 수 있다. 그 사람들만 조심하면 되었다.
하지만 온 사람이 한국 굴지의 재벌 딸이란 소문이 있다면 중국 건달들도 어떻게 나올지는 몰랐다.
그러나 그런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보았다. 상대는 그냥 놀러온 관광객도 아니고 중국의 정부와 협상을 하러 온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차가 공항을 출발했다.
강시혁이 기사에게 물었다.
“여기서 호텔까지는 얼마나 걸립니까?”
“워 한꿔화 팅부동!(한국말 모릅니다).”
운전기사는 한국말을 못하는 중국인이었다.
그래서 더 이상 질문을 하지 않았다.
차가 시내로 들어왔다.
역시 시내엔 사람도 많고 차도 많았다. 상당히 복잡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강시혁은 거리를 지나면서 큰 건물들을 유심히 보고 거리 표지판을 보았다. 복잡한 한자 글씨는 알아볼 수 없었지만 쉽게 쓴 글씨는 알아보기도 하였다,
지금 본 거리표지판은 광곡대도(光谷大道)라고 쓰여 있었다. 이 글씨는 알아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강시혁이 떠듬거리며 읽어보았다.
“광곡대도?“
옆에 운전하는 기사가 앞만 보고 가더니 강시혁이 발음하는 것을 보고 즉각 반응했다.
“부쓰. 구왕구따다오!”
[흠. 광곡대도가 구왕구따다오란 말인 것 같네. 호텔이름이 구왕구카이유에 라고 했으니 지명이름이 붙은 건 맞는 것 같군.]
호텔은 5성급이라 그런지 웅장했다.
건물 상층에 무한 시민이 잘 볼 수 있도록 영어로 큼직하게 Hyatt Regency 라고 쓴 글씨가 붙어 있었다. 이어서 아래에는 ‘무한 광곡개열(光谷凱悅: 구왕구카이위에) 주점’이라는 간판도 붙어 있었다.
일행들은 호텔 로비에 대기했고 중국담당 안용석 과장이 프런트에 가서 입실 수속을 밟았다. 강시혁이 안 과장에게 다가갔다.
“저는 본사에서 따라온 경호요원입니다. 가급적이면 이영진 상무님과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방 배정을 해주면 고맙겠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본사에서 연락을 받았습니다. 방 키를 받으면 짐을 방에다 갖다놓고 로비로 내려오세요. 담배 한 대 같이 피우죠.”
“담배는 안하지만 바람 쏘이러 내려오겠습니다.”
수속을 마친 안 과장이 방 키로 사용하는 카드를 들고 왔다.
카드를 이영진 상무와 로지스틱스 사장에게 주면서 말했다.
“오늘 저녁엔 쉬시고 내일 아침 10시에 중방 본사에서 합작사업 본 계약 체결에 관한 서명식이 있습니다. 중방 동사장은 물론 시장과 그리고 기자들도 많이 올 것입니다. 그리고 저녁엔 만찬이 있을 예정입니다.”
사장이 말했다.
“알겠네. 내가 왔으니 거기에 걸 맞는 정부 인사들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말해주게.”
“알겠습니다. 그리고 모레는 관광지 구경하시고 다음날 아침 귀국하시면 되는 걸로 이렇게 스케줄을 짰습니다.”
“짜긴 뭘 짜 이 사람아! 내가 그렇게 하라고 지시했잖아!”
“예, 사장님 지시를 받고 그렇게 했습니다.”
이때 안 과장에게 전화가 왔다.
전화를 받는데 정말 유창한 중국어로 받았다. 남들이 들으면 분명히 중국 사람으로 알 것이다.
전화를 끊고 나서 안 과장이 사장에게 말했다.
“중방 측의 판공실 주임인데요. 두 분이 오셨으니 중방 측 사장님이 함께 저녁식사를 하자고 하는데요? 내일 만찬이 공식적으로 있지만 따로 환영 인사를 하고 싶답니다.“
사장이 이영진 상무의 얼굴을 쳐다보며 말했다.
“어떻게 할까요?“
이영진 상무가 조용히 말했다.
“만찬이 내일 공식적으로 있으니 내일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안 과장님이 전화를 중방 측에 다시 전화를 해주세요. 내가 오늘 좀 피로하다고 해주세요.”
이 말에 사장이 큰 소리로 안 과장에게 말했다.
“자네 방금 상무님이 말씀하시는 것 들었지?”
“예, 들었습니다.”
“오늘은 안 된다고 하게.”
강시혁은 피식 웃었다.
세 발자국 떨어져서 서있는 자기도 정확히 잘 들었는데 자네 들었지? 하는 것은 또 무슨 행동인가 했다. 이영진 상무 앞에서 하는 과잉충성의 제스처로만 보였다.
강시혁이 호텔 키 카드를 받고 이영진 상무 방 앞까지 따라갔다.
자기가 대신 들고 온 가방을 이영진 상무에게 주면서 말했다.
“저는 10XX호를 배정받았습니다. 심부름 시킬 일이 있으면 인터폰 연락 주십시오.”
“예, 그렇게 할게요. 강 대리님도 좀 쉬세요.”
“감사합니다. 중국담당 안 과장은 비서실 소속이라 잠간 로비에 내려갔다오겠습니다.”
이영진 상무는 고개만 끄덕하고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강시혁이 로비에 내려가자 로지스틱스 사장이 해외사업 팀장과 안 과장을 혼내고 있었다.
“1차 투자금과 2차 투자금 간격이 왜 이렇게 짧아? 내 돈 아니라고 이따위 식으로 계약서를 작성해?”
그러면서 사장은 서류뭉치를 해외사업 팀장 얼굴에 확 뿌렸다.
정말 소문에 듣던 대로 김종래 사장이 아니고 개종래 사장이었다.
해외사업팀장도 이미 40대 후반이고 중, 고등학교에 다니는 자녀가 있을법한 사람이다.
해외사업팀장은 얼굴이 빨개진 채 아무 대답을 못하고 땅바닥에 흩어진 종이를 주었다.
옆에 있던 안 과장이 오른손으로 안경을 올리며 말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협상이 잘 안됩니다. 여기 터미널 공사는 장마철 이전에 공사를 마쳐야 한답니다.”
“야, 안 과장! 자네는 옛날로 말하면 통역이나 하는 역관이네. 협상의 주체가 아니네. 어딜 자꾸 끼어들려고 해?”
“죄, 죄송합니다.”
역관이란 소리에 안 과장도 자존심이 상했는지 얼굴이 빨개졌다.
엄연히 자기도 북경대학 박사 출신인데 역관이라고 하니까 무시당하는 것 같아 그런 것 같았다.
“자네들이 객지에 나와서 개고생 하는 건 아는데 이따위 식으로 협상이나 하면 되나? 지금 회사가 현금 쌓아놓고 투자하는 건 아니잖은가? 전환사채 발행해서 가져오는데 이러면 되겠어?”
흩어진 종이를 다 주은 해외사업팀장이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인 채 죄송하다는 말을 했다.
“죄송합니다. 공사 공기(工期)는 최대한 앞당겨서 추가 비용은 들어가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자네들은 공직 생활을 안 해봐서 그런데 정부 중앙 부처의 사무관이나 서기관들이 얼마나 열심히 일하는 줄 아나? 걔들은 이따위 식으로 일 안하네.”
사장은 은근히 자기가 차관 출신인 것을 나타내고 있었다.
강시혁이 다가오자 사장이 힐긋 쳐다보았다.
“자네는 몇 층 방을 배정 받았나?”
“10층입니다.”
“물론 스위트룸이겠지?”
“아닙니다. 스텐다드 일반 룸입니다.”
“1등석 타고오신 분이 어째서 일반 룸이셔?”
그러면서 또 삐딱한 소리를 했다.
“제가 감히 어찌.”
“아무튼 나는 일단 내 방으로 올라가니 그렇게들 알게. 식사는 7시쯤 여기서 만나서 하는 걸로 하세.”
“알겠습니다.“
해외사업팀장과 안 과장, 그리고 강시혁 세 사람이 정중히 허리 굽혀 사장에게 인사했다.
지나가던 중국인 세 사람이 이런 모습을 보고 웃었다. 중국에서는 이렇게 허리 굽혀 인사하는 사람들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웃으며 이런 말을 남기고 갔다.
“컨딩스 한꾸어런 (분명히 한국사람 일거야)!”
사장이 엘리베이터 속으로 사라지자 해외사업팀장이 투덜거리며 말했다.
“씨팔! 조옷 같네. 가서 담배나 한 대 피우고 오세. 여기 어디 흡연실 없나?”
강시혁도 웃으며 말했다.
“두분 피우고 오세요. 저는 담배를 안 피우니 여기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안과장이 강시혁에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참, 정식 인사합시다. 나는 비서실 소속 안용석 과장이요.”
“반갑습니다. 강시혁 대리입니다. 저도 비서실 소속이지만 전출 된지가 얼마 안 되어 과장님은 처음 뵙는 것 같습니다.”
“회의 때 한번 봤을 텐데? 서로 기억이 안 나는 것 같군요. 강 대리에 대해선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참 인사하세요. 삼방 로지스틱스 해외사업팀 팀장님이십니다. 이번에 무한 프로젝트를 추진하신 TF팀의 팀장님이시기도 합니다.”
강시혁이 인사하자 팀장도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반갑소. 경호요원이라 그런지 체격이 참 좋군요.”
“정말 객지에 나오셔서 고생이 많으신 것 같습니다.”
“고생이랄 게 뭐 있겠어요? 깨지지만 않으면 다행이지.”
안 과장이 말했다.
“팀장님은 이 강 대리가 누군지 모르죠?”
“나야 소속이 다르니까 알 수 있나? 그대들은 회장님을 가까이 모시는 비서실 직원들이고 나야 변방에서 말 구루마 끄는 부서의 팀장에 지나지 않은데!”
“강 대리는 제가 알기로는 이영진 상무님 경호를 위해서 특채된 사람으로 알고 있습니다. 지난번 이영진 상무님이 일본에 갔을 때 야쿠자 일곱 명을 혼자서 때려눕혔다는 전설이 있는 사람입니다.”
“혼자서 일곱 명? 와, 대단하네. 이제 중국에 오셨으니 중국 강호 무림을 평정하겠는데?”
강시혁이 웃으며 말했다.
“싸우긴 했지만 일곱 명을 때려눕혔다는 것은 과장된 이야기입니다. 어떻게 혼자서 일곱 명을 상대합니까?”
“그런데 체격이 정말 좋소. 같은 남자로 부러운데? 일단 옆에 서 있기만 해도 풍기는 아우라가 있는 것 같아.”
안 과장이 또 말했다.
“강 대리는 태권도가 3단이고 유도가 3단이랍니다. 더 이상 유단자 품증을 따지는 않았지만 실력은 6단 이상이라는 소문도 있습니다.”
강시혁은 자기에 대한 헛소문이 자꾸 재생산되어 퍼져 나가는 것이 걱정되었다.
[태권도 3단도 사기친 건데 이제는 유도 3단도 모자라 태권도 6단까지 올라가네. 내년에는 10단까지 가겠는데? 이러면 안 되는데!]
강시혁이 듣기 민망해 말을 돌렸다.
“그런데 팀장님. 무한 프로젝트는 정확히 무슨 사업을 하는 겁니까?”
“아, 그건 여기에 터미널을 우리 자본으로 지어주고 그 대가로 화물 운송사업과 고속버스 운송사업 면허를 얻는 겁니다.”
“그래서 면허는 받은 겁니까?”
“하기로 계약은 되어있지만 면허는 돈이 들어와야 내줄 겁니다. 중국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데 돈도 안들어온 상태에서 면허를 내주겠습니까?”
“만약에 면허가 나온다면 삼방 로지스틱스 산하에 해외 자회사가 생기는 거군요.”
“맞아요.”
“그러면 종업원도 뽑아야겠네요.”
“종업원이야 중국 사람을 채용해야겠지. 합작계약도 그런 조건인데.”
“사장님이나 간부는 삼방 로지스틱스에서 파견하겠죠?”
“그래야겠지. 그래서 나도 지금 이곳 자회사를 지원할까 하는 중이요. 본사 들어가 봤자. 저 개종래 상판대기 보기 싫으니 말이요.”
“그 마음 이해합니다.”
“지금 삼방 로지스틱스의 팀장 이상 간부들은 모두 해외 나가려고 합니다.”
“예? 왜요?”
“개종래의 사장 임기 동안은 피하려고 하는 거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