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화 중국 출장 (2)
(145)
강시혁은 중국에 같이 가게 될 김종래 사장을 인터넷 검색해 보았다.
까다로운 사람이라니 검색을 안 해볼 수도 없었다.
김종래 사장은 서울대 경영학과 출신으로 행정고시 합격 후 주로 재경분야의 부처에서 근무를 해온 사람이었다.
[정말 엘리트네. 일반 기업체 직원 정도는 우습게 보겠는데? 마음에 안 들면 정말 욕도 서슴없이 하고 서류도 집어던질 만 하겠군. 그럼 이 사람은 공무원 연금도 받고 회사 월급도 받는 사람인가? 정말 하늘의 축복을 받은 사람이군.]
일단은 까다로운 사람이니 조심은 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시혁은 비자 같은 건 빨리 받아놓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시청 뒤에 있는 회사 지정 여행사를 찾아갔다.
“삼방그룹에서 왔습니다. 중국 무한을 가는데 비자를 받으려고 합니다.”
“아, 우한요? 조금 전에 비서실 유길준 대리에게서 전화 받았습니다. 여권주세요. 상용비자죠?”
[흠. 무한을 여기서는 우한이라고 하는군. 무한의 중국 발음이 우한인 것 같네.]
강시혁은 이 여행사 사무실은 몇 평이나 될까 하고 생각해보았다.
자기도 이번에 만약 돈을 벌어 사무실을 낸다면 이 정도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여행사는 크지는 않지만 인테리어를 깔끔하게 해서 보기 좋았다.
강시혁은 영빈관에 돌아와 사무실을 알아보기로 했다.
[40평은 너무 크겠지? 그렇다고 20평을 하면 너무 좁을 것 같고.... 건대 앞에 분식가게 할 때 가게 평수가 20평도 안되어 얼마나 좁았었나. 이영남의 방을 하나 내주고 나머지는 파티션으로 칸을 막아 책상을 배치한다면 한 30평은 가져야겠지?]
[더군다나 애니메이션을 한다는 배동수에게 한쪽 귀퉁이에 책상을 내준다면 적어도 30평은 가져야 할 거야.]
그래서 30평짜리를 알아볼까 하였다.
그러면 손님들이 오면 앉을 소파도 갖다놓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검색을 해보니 30평짜리 사무실이 나온 것이 있었다.
보증금 5천만 원에 월세가 350만원 이었다.
[사무실이 이렇게 비싼가?]
생각보다는 비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가 분식집을 할 때는 1층이었지만 사무실은 사람들의 왕래도 없는 3층이나 5층 같은데 있는데 너무 비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사무실 사진이 나왔는데 보니깐 고급스러워보이지도 않았다. 후져 보였다.
40평짜리가 나온 것이 있었다. 7층 건물에 5층 사무실이었다.
이것도 보증금은 같은 5천만 원인데 월세가 400만원이었다.
[더럽게 비싸네. 그럼 빌딩 주인은 한 달에 돈이 얼마나 들어오는 거야? 건물 전체면 엄청나게 들어오겠는데?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고 하더니 그 말이 맞는 것 같네. 민주공화국이 아닌 자산공화국에서는 역시 자산 많은 사람이 최고지.]
강시혁은 사무실 얻는 건 포기할까 하였다.
하지만 자기에게 20억이나 되는 돈을 산뜻 빌려준 이영남이나 애니메이션 하는 배동수나 후배 변상철까지 사무실 얻는 것을 원하고 있으니 안 빌릴 수도 없었다.
특히 이영남은 재벌 아들이라는 그 존재감 때문에 그의 말을 비토하기는 어려웠다.
[그런데 사무실 보증금은 그렇다고 쳐도 매월 나가는 사무실 임대료를 어떻게 감당하지? 정말 회사에 무언가 납품거리라도 찾아야 하는 것 아닌가!]
강시혁은 사무실 빌리는 문제는 나중에 생각하기로 했다.
지금 돈을 투자만 했지 아직 번 상태는 아니기 때문이었다. 중국을 갔다 와서 생각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다음날 대한항공 회사에서 카톡이 왔다.
인천발 무한행 항공권 예매가 되었다는 알림 톡이었다.
[헹, 비자도 안 나왔는데 벌써 항공권 예매를 해준 모양이네.]
오후에 유길준 대리의 전화가 왔다.
“호텔 예약도 되었다고 연락 받았습니다. 무한 하얏트 호텔이랍니다. 5성급 호텔입니다.”
[나를 위해 5성급 호텔을 잡은 것이 아니겠지. 이영진 상무와 로지스틱스 사장이 가니까 그런 델 잡았겠지. 아무튼 나는 이번에도 고급 호텔에서 잠을 자니 호강은 하겠네. 이 눅눅한 지하실에서 자는 것 보다는 훨씬 좋겠지.]
“그런데 호텔이름이 요상합니다.”
“하얏트 호텔이라면서요?”
“중국에서 부르는 이름이 따로 있는 것 같습니다. 우한(武漢) 구왕구카이위에(光谷凱悅) 호텔이랍니다.”
“구왕구 뭐라고요?”
“구왕구카이위에요. 저도 자세히는 모르지만 구왕구는 지명 이름이고 카이위에가 하얏트라는걸 뜻하는 모양입니다.”
"정말 이름이 이상하네요. 그런데 이영진 상무님과 로지스틱스 사장님이 가시는데 통역은 안 따라 갑니까? 현지에서 누가 나옵니까?“
“아, 거기에 비서실 안용석 과장이 나가있습니다. 중국어 전공하신분인데 무한 프로젝트 태스크포스팀(TFT)에 합류하고 있습니다."
“무한 프로젝트 TF팀이 있었습니까?”
“무한 프로젝트 TFT는 로지스틱스의 해외사업 팀장과 비서실 안 과장 등이 참여하는 TFT입니다. 이 TFT는 6개월 전부터 만들어졌었습니다.”
“오래 되었네요.”
“사실 무한과의 합작사업은 TFT에서 물밑 작업을 다해놓았고 이영진 상무님과 로지스틱스 사장님은 최종 서명만 하러 가시는 겁니다.”
“그렇군요.”
“어떤 회사들인지 일이야 우리들이 다 하죠. 사장님들은 보고만 받고 앉았지만 말입니다.”
“그건 그렇습니다.”
“무한 공항에 도착하면 안 과장이 마중을 나올 겁니다. 중, 고등학교도 중국서 다닌 사람이라 중국어는 환상적으로 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있었군요.”
그렇다면 일본 출장보다는 중국 출장이 편할지 몰랐다.
이미 TFT 요원들이 있다면 도움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TFT의 요원들이 과장이나 팀장이라면 나이들이 40세는 넘을 것으로 봤다. 실무에 대해서도 아주 잘 아는 사람들이 모여 있을 것으로 봤다.
[맞아. TFT에서 합작사업 실무를 추진했고 이제 그것이 마무리되어 양해각서나 본 계약 추진을 하러 가는 거겠지. 회사의 대표는 어디까지나 사장이니까 사장이 가는 거겠지. 그리고 이영진 상무가 따라가는 것은 투자에 대해서는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는 뜻이겠지.]
아무튼 강시혁은 이영진 상무만 뒤에서 경호만 하면 된다. 프로젝트 실무에 대해서는 잘 모르기도 하지만 알 필요도 없다. 이영진 상무 옆에서 선그라스를 낀 채 폼만 잡으면 될 것 같았다.
중국인들도 아마 이영진 상무가 경호원까지 데리고 다닌다고 하면 이영진 상무를 달리 볼 것이다. 대단한 사람으로 볼 것은 틀림없었다.
강시혁은 이영남과 변상철에게 중국 출장을 간다는 카톡을 보냈다.
자기가 없는 동안 이들이 영빈관을 방문하면 안 되기 때문이었다.
또, 문화재단의 큐레이터 신종화 한테도 문자를 보냈다. 출장 기간동안 미술품을 찾으러 영빈관에 오면 안 되기 때문이었다.
[큐레이터님. 강시혁입니다. 월요일부터 2박3일 중국 출장 예정입니다. 이 기간에는 미술품 반출이 어려우니 혹시 필요한 미술품이 있으면 미리 반출해 가시기 바랍니다.]
답신이 왔다.
[당분간 반출할 미술품은 없습니다. 잘 다녀오세요.]
[설운동 대리는 울산 내려갔는가요?]
[예, 내려갔습니다. 새로 오신분도 지금 올라오셔서 근무 중에 있습니다.]
[새로 오신 분은 괜찮죠? 대리급인가요?]
[네, 대리급입니다. 별 말도 없고 차분하신 분입니다. 품질관리 업무를 보신분이라 꼼꼼하고 협조적인 분이라 좋습니다.]
[좋은 분 왔다니 다행이네요.]
강시혁은 안심했다.
문화재단에서 행정업무를 보는 대리와 큐레이터가 싸우지는 않을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이 있었다.
신종화처럼 대가 세고 도도한 사람이 배동수 앞에서는 온순한 양처럼 변하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강시혁이 보기엔 배동수라는 사람은 나이도 한 살 어리고 수염까지 잔뜩 길러 지저분하게 보였는데도 신종화는 아랑곳 하지 않는 것 같았다.
신종화 생각을 하다 보니 갑자기 오래전 돌아가신 할머니가 하셨던 말이 생각났다.
이웃집 수철이 누나가 덩치도 엄청 크고 아주 억세게 보여 동네 아저씨가 할머니 앞에서 이렇게 말했었다.
[쟤는 누구한테 시집을 가려나 모르겠네요. 남자보다도 모가지가 하나 더 크니!]
[모르는 소리 말아요. 짚신짝도 다 짝이 있는 거라오.]
신종화와 배동수는 확실히 궁합이 잘 맞는 짚신짝이었다.
강시혁은 한숨을 푹 쉬었다.
[내게 맞는 짚신짝은 어디에 있을까?]
이때까지만 해도 강시혁은 자기에 맞는 짚신짝이 가까운데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출국하는 날이 되었다.
강시혁은 양복을 입고 작은 여행용 가방을 어깨에 맨 채 영빈관 대문 앞에서 김 기사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영진 상무의 벤츠를 운전하는 김 기사가 이곳을 들린다고 했기 때문이었다.
이영진 상무를 태운 김 기사의 벤츠가 도착했다.
강시혁은 이영진 상무에게 크게 허리 꺾어 인사했다. 이영진 상무보다 자기가 몇 살 나이가 많지만 직급의 차이가 있는지라 언제나 이렇게 인사를 해주었다.
이런 인사는 강시혁뿐만 아니라 모든 삼방그룹 내 직원들이 이렇게 했다.
그래서 그런지 이영진 상무는 당연하다는 듯이 미소 띤 얼굴로 고개만 까닥 해주었다.
이영진 상무는 옅은 핑크색 옷을 입었다.
속에 받쳐 입은 흰 블라우스와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여신이 앉아있는 것만 같았다.
강시혁이 김 기사에게도 목례를 하고 앞좌석에 탔다.
차가 서서히 출발했다.
강시혁은 여전히 부동자세로 앉아 앞만 응시했다. 뒤에서 이영진 상무의 차분한 목소리가 들렸다.
“강 대리님! 차 안에서는 마스크 벗어도 돼요.”
“감사합니다.”
인천 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엔 로지스틱스 사장과 비서실 여직원이 나와 있었다. 여비서는 발권 업무와 환전 업무를 도와주기 위해서 나온 것이다.
여직원이 강시혁을 보자 웃으며 인사했다. 지난번에 이태원에 왔던 여직원이었다.
이영남이 노래를 부를 때 바비 브라운을 외치며 같이 춤을 췄던 여직원이었다.
로지스틱스 사장은 역시 도도하게 생겼다.
강시혁이 크게 허리 굽혀 인사를 하며 말했다.
“이영진 상무님 경호를 위해 함께 가게 된 비서실 강시혁 대리입니다.”
이럴 때 보통사람 같으면 손을 내밀며 오, 그래요? 했을 텐데 로지스틱스 사장은 그런 게 없었다.
그냥 뒷짐을 쥔 채 음, 그래? 하는 정도였다.
[듣던 대로 목에 더럽게 힘을 주내,]
항공권은 모두 1등석이었다.
강시혁은 VIP가 아니지만 경호원이라 이영진 상무가 앉은 1등석 가까운 곳에 자리가 잡혀져 있었다. 아마 비서실에서 항공권 예매를 할 때부터 이영진 상무의 지시를 받고 그렇게 한 것으로 보였다.
역시 이날도 1등석 손님은 별로 없었다.
일반인들은 항공기 탑승 후 몇 시간만 참으면 되는데 쓸데없이 값비싼 1등석을 뭐 하러 이용하느냐 하는 것 같았다.
로지스틱스 사장이 뒤를 돌아보다가 흠칫 했다.
1등석 뒷좌석에 선그라스를 낀 강시혁이 조용히 앉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자네도 1등석을 탔네?”
로지스틱스 사장은 새카만 대리 따위가 일등석을 탄 것이 못마땅한 눈치였다.
강시혁은 대꾸를 하지 않은 채 조용히 부동자세로 앉아만 있었다.
사장은 강시혁이 항공기 안에서도 선그라스를 끼고 있어 강시혁의 표정은 읽을 수 없었다.
“회사가 인심이 좋군.”
사장은 삐딱한 말을 한마디 했다.
회사가 강시혁에게도 1등석 발권을 해준 것에 대한 비평이었다.
인심이 좋다는 말은 아무한테나 개밥 퍼주듯이 퍼주었다는 말일 것이다.
그래도 강시혁은 동요하지 않고 조용히 앉아만 있었다.
함부로 반응하지 않았다.
항공기가 이륙을 완료하고 수평으로 날자 스튜어디스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음료수를 마시며 로지스틱스 사장은 옆자리에 앉은 이영진 상무에게 귓속말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들어보니 무한 프로젝트는 자기의 지시대로 잘 움직이고 있다는 말이었다,
사장은 자기 자랑도 계속했다.
그도 아마 이런 기회에 이영진 상무에게 아부를 하고 싶었을 것이리라.
50대 중반의 이 나라 최고 엘리트 남자가 이제 30세 전후의 여성에게 아부하는 모습은 그리 좋아보이지는 않았다.
이영진 상무는 참을성 있게 들어주며 고개를 끄덕여 주기도 했다.
젊은 그녀도 닳을 대로 닳은 사장들과 임원들을 다루려면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항공기가 중국 호북성 무한 비행장에 도착하였다.
입국장엔 많은 사람들이 마중을 나온 것이 보였다.
여행사 직원인 듯한 사람들은 자기가 찾는 관광객을 찾기 위해 이름을 쓴 팻말을 들고 서 있기도 하였다.
이영진 상무는 앞에서 걸었다. 그 뒤를 로지스틱스 사장이 뒷짐을 쥐고 팔자걸음으로 걸어갔다.
또, 그 뒤로는 이영진 상무의 가방과 로지스틱스 사장의 짐을 든 강시혁이 따라가고 있었다. 마중나온 사람들 틈에서 손을 번쩍 든 사람들이 있었다.
무한 프로젝트 TFT요원들인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