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화 건설주 대박 (7)
(142)
점심에 입맛도 없어서 맹물에 밥을 말아먹었다. 반찬도 김치 한 가지만 해서 밥을 먹었다.
영빈관의 일이 꿀 보직이긴 해도 지하실에서 혼자 밥을 먹을 땐 좀 궁상맞아 보였다.
정말 좋은 여자가 있으면 결혼을 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어차피 자기는 심은혜와 함께 살았지만 법률적으로는 총각이기 때문이었다.
밥을 먹고 오후에 또 주식거래를 했다.
오늘은 제법 많은 거래를 했다.
장 초반엔 거래량이 없어 제대로 담지를 못했는데 오후가 되어서 많은 손절물량이 나왔다.
특히 저점인줄 알고 신용으로 샀던 사람들의 물량이 많이 나온 것 같았다.
이것을 강시혁이 전부 담았다. 하루 종일 거래해서 5억 정도를 담은 것 같았다.
이제 20억 빌린 돈 중에서 16억을 사용했다.
[다음 주 월요일 하루만 거래하면 20억 빌린 것 모두 투자한 것이 되겠네.]
장명건설은 소형주에 속한다. 그래서 거래 물량도 많지 않아 20억 투자도 이렇게 여러 날에 걸쳐서 사야 했다.
그렇지만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 같은 대형주들은 20억 정도면 순식간에 다 살 수 있는 금액이었다.
컴퓨터를 끄고 커피를 마시며 스마트폰을 보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이번에 온 전화는 문화재단의 설운동 대리였다.
[인사위원회를 열었다고 하던데 무슨 조치가 내려왔나?]
“강 대리님? 설운동입니다.”
“아, 설 대리님.”
“인사위원회 결과가 나왔네요.”
“예? 그래요? 어떻게 나왔는데요?”
“울산 삼방에너지로 전출 발령이 나왔네요.”
“예엣? 그렇게 멀리요?”
“그나마 다행이네요. 모가지 잘리지 않았으니.”
“너무했다. 그림 몇 점 받은 것 가지고 그렇게 멀리 보내다니! 씨팔! 나까지 괜히 열 받네!”
강시혁은 열 받은 것도 없지만 말은 이렇게 했다. 흥분한척 하였다.
설운동 대리가 강시혁의 이런 행동을 좋게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열 받을 필요 없습니다. 나도 문화재단은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문화재단은 전부 여자들 천지라 있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관장도 여자, 사무국장도 여자, 큐레이터도 여자. 모두 여자 천지 아닙니까?”
“계열사로 들어가면 업무 강도가 높다는데.”
“당신도 비서실 일을 하는데 나라고 못할 리는 없겠죠.”
[이 자식은 아직도 말을 삐딱하게 하네.]
“뭐, 당하면 다 하게 되겠죠. 그런데 울산의 삼방에너지로 가게 되면 무슨 일을 하십니까?”
“품질관리부라고 합니다. ISO유지관리 일을 하는 거랍니다.”
“전에 그런 일을 해보셨나요?”
“아니요. 이쪽으로 오는 친구가 거기에 있던 사람이라 업무인계는 잘 해준다고 했습니다. 통화는 했습니다. 그 친구는 집이 서울이라 전출 희망을 했는데 1년 만에 서울로 오게 되었다고 좋아하던데요?”
“그런 일이 있었군요.”
“삼방그룹 전산망에 한번 들어가 보세요. 조금 전에 전출발령 인사 공고가 떴을 겁니다.”
“한번 들어가 봐야겠네요. 하지만 설 대리님은 능력은 있으신 분이니까 서울로 금방 올라올 겁니다.”
“아니요. 울산서 말뚝 박고 싶어요. 거기 가서 고래 고기나 먹고 살지 뭐. 내가 바다낚시 좋아하는 걸 강 대리도 알잖아요.”
강시혁은 자기도 지난번에 삼방에너지의 주총에 참석하고 고래 고기를 먹었었다. 하지만 말은 하지 않았다. 주총꾼으로 참석한 것이 외부로 알려지는 것도 썩 좋은 현상은 아니기 때문이었다.
“한번 저도 울산 놀러가야겠네요. 고래 고기 맛 좀 보게요.”
“하하. 내가 자리를 잡으면 연락할게요. 울산 내려가면 집도 사고 카니발도 새 차 하나 살 겁니다.”
“여유가 있으신 것 같네요. 집도 사고 차도 사니 말입니다.”
“울산은 서울보다 집값이 싸니 여기 전세금 뽑아서 사고, 차는 퇴직금으로 사면됩니다.”
“퇴직금요?”
“몰랐어요? 전출발령 나면 먼저 있던 회사에서 퇴직금 정산하고 가는 걸?”
“그, 그건 나중에 불리하잖아요?”
“정산하는 게 좋아요. 나중에 세상이 어떻게 변할지는 어떻게 알아요. 지금까지 넣은 국민연금도 우리가 은퇴할 때쯤이면 바닥이 난다는데!”
“그, 그건 그렇지만.”
“그동안 여러 가지로 고마웠습니다. 내가 강 대리님은 잊지 않을게요.”
“저도 잊지 않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나서 강시혁은 다리를 꼬았다. 그리고 커피를 마시면서 미소를 지었다.
[이렇게 해서 울산에 내 사람 하나 심어놔도 나쁠 건 없겠지. 설운동이가 썩 좋은 인간은 아니지만 지방에서 일을 하니 삼방그룹에 미치는 영향은 별로 없을 것 아닌가?. 지방에서 목에 힘주며 낚시나 하고 다니면 제 직분에 맞는 걸 찾았는지도 모르지.]
오늘따라 유난히 커피 맛이 좋은 것 같았다.
오후 5시가 넘자 비서실 유길준 대리의 전화가 다시 왔다.
“지금 출발합니다.”
“예, 기다리겠습니다.”
“일단 각자 출발하니까 이태원 역에 있는 커피숍에 모여 이동할겁니다. 최하나 씨도 같이 갈 겁니다.”
“최하나씨요?”
“모르세요? 삼방전자 사장님 비서 말입니다. 비서들 중에서 최고 얼짱입니다.”
[그 인공 미녀를 말하는 거구나.]
“아, 그렇습니까? 오시면 잘 모셔 드리겠습니다.”
“모두 8명이 가니까 그런 줄 아세요.”
“알겠습니다.”
“그런데 모두 영빈관을 구경하고 싶다는데 어떻게 할까요?”
“그건......”
“최 이사님 허락도 받았습니다.”
[최 이사 허락을 받았다는데 내가 안 된다고 할 수가 없겠지.]
“알겠습니다. 하지만 2층에 있는 고가 미술품이 있는 방은 문화재단의 승인이 있어야 합니다.”
“거긴 구경 안 해도 됩니다. 창업 회장님이 사셨던 집이 어떤가 하는 것만 구경하면 됩니다.”
강시혁은 영빈관의 대문을 열어 놓았다.
그리고 벤츠 차가 보이도록 차고의 셔터도 반만 올렸다.
오후 6시가 거의 다될 무렵 밖에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렸다.
8명의 삼방그룹 비서실 직원들이 나타났다. 남자가 세 명이고 여자가 다섯 명이었다. 대부분 검정 양복들을 입었다.
이들은 모두 사원과 대리급들이라 20대 후반에서 30대 중반 나이의 젊은이들이었다.
대기업 공채 직원들이라 월급도 많이 받아서 그런지 때깔들이 모두 좋았다. 강시혁은 자기가 이들과 동급이라는데 흐뭇한 마음을 가졌다.
오늘은 강시혁도 정장을 입었다.
이들과 보조를 맞추기 위함이었다.
“어서 오십시오. 반갑습니다.”
“안녕하세요! 강 대리님!”
마당으로 들어서자 비서실 직원들의 감탄사가 나왔다.
“우와, 마당 넓네! 이게 개인 집인가? 땅값만 해도 이게 얼마야?”
마당의 잔디는 지금은 겨울철 초입이라 초록색이 아니었다. 갈색이지만 곱게 퍼져있어 잔디밭에 뒹굴고 싶을 정도였다.
“이 건물은 손님들이 오면 회의도 할 수 있는 접견실이 있고 2층엔 고가의 미술품이 보관되어 있습니다. 우선 접견실로 가시죠. 그런데 사진 촬영은 안 됩니다.”
접견실로 가자 비서실 직원들은 또 탄성을 질렀다.
삼방그룹 본사에 있는 밋밋한 회의실과 달랐기 때문이었다. 우선 테이블과 의자는 물론 가구들이 고가의 엔틱 가구들이었다.
천정에 달린 알록달록한 등과 커튼, 그리고 벽면의 미술품까지도 고가의 작품을 걸어놓아 품위를 더 했다.
“와, 중세 유럽의 궁전 같네.”
강시혁이 웃으며 말했다.
“의자에 앉아보세요. 회장님과 사장님들이 앉는 의자지만 오늘 오신 분들도 미래에는 사장님들이 되실 분들이니까 앉아보세요.”
모두 재잘거리며 의자에 앉았다.
강시혁이 맨 앞에 앉은 유길준 대리에게 물었다.
“오늘 임창영 과장님 얼굴은 안 보이는 군요.”
“그렇지 않아도 내가 같이 가겠냐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사원, 대리들이 가는데 내가 거기 낄 군번은 아니라고 하면서 사양했습니다.”
“임창영 과장님은 여기 두어 번 오셨었습니다. 회장님이 외국인 접대할 때 통역으로 왔었습니다.”
“이야기 들었습니다. 임 과장이 우리 비서실에서 영어는 제일 잘하니까 큰 행사 때는 자주 차출되죠.”
강시혁이 대추차와 과일 그리고 견과류를 내왔다.
여비서들이 재잘거리며 말했다.
“오, 이것이 회장님이나 사장님들이 마시는 차인가?”
차를 마시고 나자 강시혁이 각 방을 구경시켜주었다.
“방이 몇 개야? 우리는 이런 집 줘도 청소하는 것 때문에 못살겠네.”
“여기서 사는 분들이 직접 청소하나? 다 가정부 두겠지.”
강시혁은 2층도 구경을 시켜주었다.
미술품이 보관된 방의 문은 열지 않았다.
“재벌의 집은 이렇게 생겼구나. 그런데 창업 회장님이 쓰시던 방은 어디야?”
“그 방은 없어졌습니다. 리모델링할 때 거실과 터서 접견실을 만들었습니다.‘
“어쩐지 접견실이 가정집 같지 않게 넓더라니.“
강시혁은 2층 베란다에서 정원을 바라보게 했다.
이곳에선 정원의 나무들과 잔디가 보였다.
“와, 좋네. 아까 이태원역에서 보니까 사람이 많아 복잡했는데 여긴 완전히 별천지네. 사진 한 장 짝고 싶은데 못 찍게 하니까 아쉽네.”
강시혁이 사진을 못 찍게 하는 것은 이유가 있었다.
이곳에 와서 영빈관의 이곳저곳을 사진 찍는 건 좋은데 SNS에 올린다거나 친구들에게 카톡으로 퍼 나르면 그것도 바람직하지 않을 것 같아서였다. 회장님이나 이영진 상무가 안다면 별로 유쾌하게 생각하지 않을 것 같아서였다.
나이 많은 여비서가 말했다.
“강 대리님은 여기서 상근한다고 했죠? 강 대리님 사무실은 어디에 있죠?”
“아, 저는 지하실에 있는 관리사무실에 있습니다. CCTV 같은 것도 다 지하 사무실에 있습니다.”
“지하실도 구경할까요?”
“지하실은 볼 것 없습니다. 그냥 아파트 관리사무소 같이 생겼습니다.”
강시혁은 이들이 지하실에 내려오면 구질구질한 자기 방을 열어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드럼과 기타가 들어있는 방을 구경하게 될지 몰라 지하는 구경을 시켜주지 않았다.
“그럼 강 대리님은 영빈관에서 혼자 근무하는 거죠? 좋겠다. 공기 좋고 조용하고 또 스트레스 주는 상사도 없으니 좋겠다.”
그러자 남자 비서 한명이 말했다.
“강 대리님은 특수 업무를 하고 있잖아요. 듣기로는 이 근처에 이영진 상무님 집과 회장님 집이 있답니다. 그래서 밤에도 무슨 일이 있으면 뛰어나가야 하잖아요.”
“그런가?”
“주차장에 있는 벤츠차 못 봤어요? 그게 다 의전용이라 위에서 부르면 그 차 끌고 달려나가는 거예요.”
강시혁이 웃으며 말했다.
“남들은 여기 혼자 근무한다고 좋아할지 모르지만 사실은 24시간 긴장 속에서 삽니다.”
“에고, 쉬운 게 없네요.”
유길준 대리도 한마디 했다.
“또 강 대리는 우리와 달라서 VIP특수 경호업무도 하잖아요. 위험한 일을 할 때도 있어요. 소문 못 들었어요? 이영진 상무님이 일본 출장 갔을 때 여기 강 대리님이 야쿠자 7명과 싸웠다는 소문 말입니다.”
이렇게 말하지 여비서들은 일제히 강시혁을 존경의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특히 삼방전자 여비서인 최하나의 눈빛이 달랐다.
강시혁이 말했다.
“자, 식사는 어디로 모실가요? 한식으로 할까요? 양식으로 할까요?”
여비서 한명이 말했다.
“아까 오다보니까 길을 잘못 들어 이슬람 사원 쪽으로 가니까 이상한 음식점들이 많던데요? 여기까지 왔으니 기왕이면 색다른 음식을 먹으러 가요.”
“우사단길로 가셨든 것 같네요.”
“그런데 참 도로표지판 보니까 정말 우사단길로 되어있던데요? 사단본부가 있던 곳이라 그런가요?”
“그게 아니고 옛날 기우제 지내는 제단이 있던 곳이라 그런 이름이 붙었답니다. 그럼 터키 요리로 할까요?”
“좋아요. 난 터키음식 한 번도 못 먹어 봤는데 그리로 가요.”
“그런데 이슬람 사원 쪽에 있는 터키, 인도, 파키스탄, 이집트 등의 식당에는 돼지고기와 술을 팔지 않는 곳도 있습니다.”
“술은 2차 가면 되죠.”
그래서 강시혁은 비서실 직원들을 데리고 지하철역 근방에 있는 터키음식점 케라반으로 갔다.
케라반은 실내 분위기부터 달랐다. 손님들은 외국인들도 많았다.
금요일이라 자리가 없을 줄 알았는데 마침 자리가 나서 모두 앉을 수가 있었다,
“무엇으로 주문할까요?”
여비서들이 차림표를 보고 저마다 한마디씩 했다.
“닭고기 케밥 먹을까?”
"양고기 케밥도 있네.“
“그릴 야채 셀러드도 있네.”
“저기 손님이 먹고 있는 빵이 풍선 라비시라는 건가?”
강시혁이 웃으며 말했다.
“그러지 말고 모듬 요리인 케라반 스페셜로 하면 어떻겠습니까? 이거 시키면 골고루 웬만한 건 다 나오는 것 같은데요? 4인용 두 개 시키면 되겠네요.”
“가격이......”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여기까지 오셨으니 제가 식사는 물론 2차, 3차까지 책임지겠습니다.”
여비서들이 박수를 치며 환영했다.
“강 대리님은 정말 멋쟁이셔!”
주변에서 음식을 먹는 사람들이 이쪽을 자꾸 쳐다보았다. 여비서들이라 인물이 출중하기 때문에 그런 것으로 보였다.
음식이 나왔다.
모두 색다른 음식이 나오자 탄성을 지르며 덤벼들었다.
강시혁 역시 오늘은 주식거래를 하느라 제대로 점심을 먹지 못해 열심히 양고기를 뜯었다. 그러다가 이영남이 들어오는 것을 발견했다.
이영남은 밥이라도 먹으러 오는지 윤진형과 함께 들어왔다.
이영남은 강시혁과 같이 온 사람들이 모두 삼방그룹의 배지를 달고 온 것을 보았다.
강시혁에게 눈을 징긋하며 손가락으로 브이 자를 그렸다. 그리고 강시혁에게 카톡을 보냈다.
[형! 2차는 진형이 형이 일하는 클럽으로 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