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화 건설주 대박 (5)
(140)
총장 일행이 돌아가자 영빈관엔 강시혁과 신종화만 남았다.
강시혁이 지하실에 있는 자기 방에 가서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넥타이를 풀고 회사 로고가 찍힌 제복 잠바를 입었다.
“큐레이터님은 쉬세요. 접견실 정리는 내가 하죠.”
“정말로 강 대리님은 멋쟁이시네요. 제가 문화재단에 3년 동안 근무하면서 설운동 대리에게 지금과 같은 말은 들어본 적이 없네요.”
“감정이 있기 때문에 그렇겠지요.”
“그 사람은 다시 태어난다고 해도 똑 같을 거예요.”
강시혁은 뭐라고 한마디 하려다가 그만두었다.
두 사람 사이는 전생에 무슨 원수를 지었는지 물과 기름 같기만 해서 그랬다.
접견실의 찻잔이나 먹다 남은 과일과 견과류를 정리하고 나니까 오후 1시가 다 되었다.
생각 같아서는 신종화를 빨리 보내고 주식 거래를 하고 싶었다. 이제 주식 거래를 할 시간도 2시간 밖에 남지를 않았다.
그런데 신종화를 그냥 보낼 수는 없었다.
어쨌든 오늘 손님 접대하느라고 수고했으니 밥이라도 먹여서 보내야 할 것 같았다. 더구나 오늘은 총장님들 접대가 끝나면 신종화 애인인 배동수와 변상철에게 밥을 사기로 했기 때문이었다.
“식사 시간이 좀 지난 것 같네요. 점심이라도 같이 할까요? 오늘은 손님 접대가 끝나면 신종화씨 남친도 오라고 해서 같이 밥을 먹기로 했는데.....”
“배동수씨는 저녁에나 올 거예요. 그럼 저도 문화재단에 들어갔다가 저녁때 다시 오죠. 후배라는 분도 저녁때 올 것 아닙니까?”
저녁때 다시 온다는 말을 듣고 강시혁은 옳거니 됐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주식 거래를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후배도 저녁에나 올 겁니다.”
“그럼 저도 오후 5시까지 다시 올게요.”
“그러시겠어요? 좋아요. 밥은 점심을 먹는 것보다 저녁 식사를 같이 하는 게 좋겠죠. 그래야 마음 놓고 술도 마실 수가 있으니까요.”
신종화가 영빈관을 나가자 강시혁은 지하실에 있는 관리사무실로 갔다.
컴퓨터를 켜고 주식 거래창을 화면에 띄웠다.
강시혁은 주식거래를 할 때 스마트폰으로 하지는 않는다.
컴퓨터로 해야 안정감도 있고 화면도 크게 잘 보이기 때문에 컴퓨터 거래를 많이 한다. 그래야 실수할 확률도 적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컴퓨터로 하면 일봉이나 분봉 차트, 그리고 틱 차트 창까지 화면에 깔아놓고 수시로 참고하며 거래를 할 수 있어 좋았다.
장명건설 주가는 오늘도 8천 5백 원을 맴돌고 있었다.
사실 주식투자할 때 이렇게 한 종목을 몰빵하는 것은 아주 위험하다.
종목을 분산해야 위험을 방지할 수 있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확실한 믿음이 있어 이영남에게 빌린 돈 20억 원을 지금 몰빵하고 있는 중이었다.
강시혁은 신종화가 가고 나서 오후 3시까지 점심도 굶은 채 공격적 투자를 이어나갔다.
매물이 나오는 대로 빨아들였다.
오늘은 기관이나 외국인도 주식을 많이 던져 그대로 받아먹었다.
잠깐 휴식시간에 증권 토론방에 들어가 보았다.
“오늘은 기관과 외국인이 던지는 걸 어떤 미친 개인이 받아먹네. 이제 바닥이라고 생각해서 들어온 모양이지? 두고 봐라. 주가가 8천원, 7천원으로 떨어지면 곡소리 날거다.”
“기관과 외국인은 우리보다 정보가 많아. 지금 사들이는 건 자살행위야.”
많은 사람들이 사자 주문을 낸 사람을 비웃고 있었다.
그렇지만 강시혁은 내 갈길 내가 간다는 식으로 나온 주식을 거두어 갔다.
주식 시장이 끝나고 오늘 날린 총알을 점검해 보았다.
총알은 2억 원이나 날렸다. 이제 11억 원의 총알을 날렸기 때문에 20억중 남은 돈은 9억이었다. 이렇게 되면 이틀만 거래하면 사들이는 투자는 끝날 것으로 보았다.
[내일이 금요일이니까 금요일과 월요일 거래만 하면 끝나겠네.]
오후 3시30분이 넘어 그때야 강시혁은 라면을 하나 끓여먹었다.
역시 돈을 번다는 것은 쉽지가 않았다.
라면을 먹고 나니 잠이 솔솔 왔다.
오전에 총장님들 접대하느라고 바빴고 오후엔 집중적으로 주식투자를 하느라고 신경을 많이 써서 그런 가 좀 피곤했다. 피곤한 상태에서 라면을 먹었더니 맥이 풀리면서 잠이 왔다.
지하의 관리사무실에서 신나게 자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강 대리님? 신종화에요.”
“어? 신종화씨? 지금 몇 시인가? 어? 오후 5시가 넘었네.”
“호호. 잠드셨나 봐요.”
“지금 어디 계십니까?”
“이태원역 앞에 있는 투썸플레이스 커피숍에 있어요. 배동수씨가 아직 안 왔는데 여기서 만나기로 했어요.”
“아, 그래요? 그럼 영빈관에 올 필요 없습니다. 내가 그쪽으로 나가죠. 어차피 밥은 그쪽에서 먹어야 하니까요.”
강시혁은 변상철에게 카톡을 보내주었다.
영빈관에 오지 말고 이태원 역 앞에 있는 투썸플레이스로 오라고 하였다.
강시혁이 간편복 차림에 농구화를 신고 어슬렁거리며 투썸플레이스 커피숍으로 갔다.
신종화와 배동수가 커피를 마시고 있다가 벌떡 일어났다.
“앉으세요.”
“네.”
배동수는 강시혁을 서먹서먹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오피스텔에서 강시혁에게 팔을 꺾였기 때문에 그런지는 몰랐다. 강시혁이 이런 것을 캐치했는지 웃으며 말했다.
“맘 편히 가지세요. 나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신종화씨 부하였습니다. 지금은 대리로 승진했지만 말입니다.”
신종화가 샐쭉한 표정으로 말했다.
“부하라니요? 무슨 험한 말씀을 그렇게 하세요. 저는 강 대리님을 부하라고 생각해본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나이도 강 대리님이 저보다 몇 살 많잖아요.”
“회사 짬밥은 신종화씨가 나보다 많죠.”
“사회경력은 강 대리님이 저보다 훨씬 많겠죠. 그래서 마음 씀씀이도 다르잖아요.”
“관장님께서 나한테 그랬습니다. 강 반장은 신종화씨 부하니까 신종화씨 지시를 받고 일을 하라고 했었습니다.“
“아휴 관장님도 참. 관장님도 어느 때 보면 철없는 소녀 같아요. 그런데 참 관장님은 오늘 오후에 본사에서 인사위원회가 열린다고 해서 가셨는데요? 인사이동이나 직제개편 같은 것이 있는지 모르겠네요.”
[흠. 인사위원회에 갔다면 설운동 대리 일로 갔구나. 징계는 한사람이 명령으로 하는 것보다 이렇게 인사위원회를 조직하여 한다면 결과에 불복하는 확률이 더 많겠지.]
“글쎄요. 정말로 인사이동이나 직제개편 같은 것 때문에 갔는지도 모르겠네요. 혹시 내가 비서실에서 다시 문화재단으로 복귀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네요.”
“강 대리님은 그렇게 안 될 겁니다.“
“안 되다니요? 왜요?”
“이영진 상무님이 안 놔 줄 겁니다. 상무님이 강 대리님을 바라보는 눈빛이 달랐어요.”
“이영진 상무님이요?”
“그런 게 있어요. 여자들만의 감각입니다.”
“무슨 소리인지 통 모르겠네요.”
“모르고 지내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이때 변상철이 나타났다.
“어, 늦어서 미안!”
그러면서 변상철은 배동수를 보자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지난번에 실례가 많았습니다.”
“별 말씀을요.”
변상철이 의자에 앉더니 강시혁을 쳐다보며 말했다.
“형은 이 이태원거리에서 잘 안 어울리는 것 같아. 아무래도 조폭 같아.”
“내가 왜 조폭이냐?”
“그런데 여기 옆에 앉은 배동수 씨는 콧수염과 턱수염이 그럴듯해 이 거리와 컨셉이 맞는 것 같아. 외국인이나 예술가로 보이니까.”
"흠, 그건 맞는 것 같다.“
배동수는 자기의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조소하는 듯한 표정으로 변상철을 쳐다보았다.
네까짓 게 예술에 대해서 알아? 하는 표정이었다.
강시혁이 커피를 마시면서 배동수에게 물었다.
“배동수씨 하고는 좋지 않은 일로 만났지만 앞으로 서로 좋은 일을 많이 만들어 나갑시다.”
“좋습니다. 저도 지난 사건 은 다 잊었습니다.”
“실례지만 올해 나이가 어떻게 되요? 우리보다는 아래인 것 같은데.”
“신종화씨보다 한 살 어립니다.”
신종화는 턱을 괴고 앉아 이렇게 말하는 배동수를 아주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강시혁은 자기가 심은혜와 살면서 이런 눈빛을 받아보았던 적이 있었나 하였다.
강시혁이 부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그럼 배동수씨는 나보다 네 살 어리군.”
“그렇습니까? 형님이시네요. 앞으로는 형님이라고 부르겠습니다.”
“옆에 있는 변상철 씨는 나보다 두 살 어리고 신종화씨도 세 살 적어요. 두 사람 사이가 아주 좋은 것 같아 부럽네요.”
“고맙습니다. 형님.”
“자, 여기서 차를 마셨으니 우리 그럼 식사를 하러 갈까요. 식사 값은 내가, 아니 회사 돈으로 내죠.”
변상철이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히히. 회사 돈으로 먹으면 고기나 먹어볼까?”
“멀리 가지 말고 요 위에 화로 라고 하는 쪽 갈비 같은 것을 파는 집이 있어. 거기로 가자.”
“화로에 굽는다고 상호가 화로인가?”
“아니야. 꽃길이란 뜻의 화로인 것 같아. 거기 가서 모듬 야끼니꾸에 고추튀김이나 먹자.”
“야끼니꾸?”
“불고기란 말이야. 모듬 고기를 히말라야산 소금에 찍어먹는 것도 좋아.”
그래서 강시혁은 네 사람을 데리고 화로라는 음식점으로 갔다.
가게는 작았다. 이태원의 가게들은 임대료가 비싸 대부분의 가게들이 규모가 작았다.
맥주잔이 두어 번 돌았다.
강시혁이 잔을 신종화에게 부딪치며 말했다.
“신종화 씨! 내가 입사이후 신종화 씨와 함께 술잔을 부딪치는 건 처음이네요.”
“그런 것 같네요.”
신종화도 웃으면서 잔을 부딪쳤다.
사실 사람이 새로 회사에 들어오면 선배들이 환영식이라도 해주면 좋다. 그래야 더 친해질 수 있고 업무효율도 오른다.
그렇지만 문화재단에서는 어느 누구 하나 강시혁과 같이 저녁을 먹자고 한 사람은 없었다. 그것은 강시혁이 공채직원도 아니고 관리사무직이 아닌 잡급직 경비였기 때문이었다.
잡급직 경비와 누가 술을 같이 하겠는가.
선배들이 술을 사지 않더라도 아마 강시혁이 술을 산다고 해도 거절당했을 것이다.
처음 들어왔을 때 설운동이나 신종화에게 술 한 잔 하자고 했으면 경비 주제에 건방진 사람이라고 평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강시혁은 신종화보다 3년이나 학번도 빠르고 신종화가 나온 학교와 비슷한 수준의 학교를 나온 사람이었다.
강시혁이 일시적으로 운이 사나워 대리운전 일을 했고 경비 일도 했지만 능력이나 인격으로 보아도 결코 뒤지는 사람은 아니었다.
강시혁은 늦게나마 이제 슬슬 진가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강시혁은 확실히 사람을 다루는 능력이 있었다.
설운동 대리와 신종화처럼 반목을 하고 지내는 사람도 없었다. 자기에게 스트레스를 주었던 사람들도 모두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는 재주가 있었다.
그래서 지금도 설운동 대리를 자기편으로 만들고 신종화도 자기편으로 만드는 중이었다.
강시혁은 이 방면에 확실히 실력이 있었다.
그건 그동안 강시혁이 알바를 하며 대학을 다녔고 대학 졸업 후에도 결혼에 실패, 자영업의 실패, 대리운전을 하면서 진상고객에게 당하는 수모, 이런 것들이 쌓여 자연히 내공이 축적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강시혁은 언제나 공손했고 상대를 구태여 이기려고 들지도 않았다.
강시혁이 배동수의 빈 잔에 술을 따라주며 말했다.
“나보다 어리니까 내가 반말해도 되죠?”
“그럼요. 나이도 많으신데 말 내리세요.”
“그래 내리지. 자, 내 잔에도 술 한번 따라봐.”
강시혁이 맥주잔을 받으며 말했다.
“자네는 참 좋은 여자 친구를 두었어. 신종화 씨는 누가 뭐래도 우수한 큐레이터인건 사실이야. 오늘도 듀크 대학 총장이 왔을 때 유창한 영어로 그림을 설명하는걸 보면 정말 존경스러워.”
이 말에 배동수도 기분이 좋은지 입을 벌리고 헤 하고 웃었다.
“그리고 오늘 천안의 XX대학교 총장 앞에서 신종화 씨가 뭐라고 한줄 아나?“
“뭐라고 했는데요?”
“내 친구가 애니메이션을 전공한 사람이 있는데 모션그래픽과 일러스트디자인에 뛰어난 사람이라고 하면서 전임교수 자리를 부탁했지.”
이 말에 배동수가 눈을 크게 떴다.
신종화가 강시혁을 팔을 툭 치며 말했다.
“그때 강 대리님이 동수 씨가 여러 가지 상을 받은 사람이라고도 했잖아요.”
배동수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말했다.
“제가 상을 받은 건 딱 두 개인데.....”
“그런데 전임 자리는 지금 꽉 차서 없다고 하면서 정부에서 맡은 애니메이션 제작 프로젝트에 참여는 가능하다고 하더군.”
“정말 그런 말을 했습니까?”
“나는 애니메이션 계통은 잘 모르지만 자네가 한번 해보고 싶다면 총장을 찾아가 보게. 천안 정도면 KTX로 출퇴근도 가능하잖아?”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카톡이 왔다.
이영진 상무의 카톡이었다.
[오늘 낮에 수고 많았습니다.]
[아닙니다. 상무님이 수고 많으셨습니다.]
[그리고 물어볼 말이 있는데..... 큐레이터 신종화 씨 남자친구라는 분은 강 대리님도 본적이 있나요?]
[있습니다.]
의외의 질문이었다.
옆에서 변상철이 짜증을 냈다.
“아, 술 마시다가 무슨 카톡을 그렇게 해?”
“가만 있어봐. 비서실 높은 분 카톡이야.”
다시 카톡이 왔다.
[큐레이터 남자 친구 분 나이는 어떻게 되어보이나요?“
[젊은 사람이었습니다. 신종화 씨보다 한 살 어리다고 들었습니다.]
[축복을 해줘야 하겠군요. 그럼 즐거운 저녁시간 되세요.]
강시혁은 이영진 상무가 왜 신종화 남자친구의 나이를 물었을까 하였다.
[그렇군. 신종화가 XX장관하고 좋아지낸다는 소문이 있어서 그랬던 것 같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