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녀의 두 번째 남편-137화 (137/199)

137화 건설주 대박 (2)

(137)

강시혁은 컴퓨터를 껐다.

오후에 계속 화면만 보고 주식거래를 해서 그런지 눈도 아프고 피로도 몰려왔다.

좀 쉬고 싶었지만 일이 하나 더 남아있었다. 그것은 설운동 대리를 만나는 일이었다.

바로 문화재단 사무실로 쳐들어가 설운동 대리를 조사할 수 있지만 그렇게 하면 소문이 나게 된다.

관장이 투서 사실을 알게 되면 설운동 대리를 잘라버릴 것이 틀림없었다. 관장은 결벽증 같은 것이 있는 여자이기 때문이었다.

또, 관장은 선민의식이 있어 돈이 없거나 직위가 얕거나 학력이 낮으면 무조건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사람을 내보내면 새로운 사람을 또 뽑으면 그만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하지만 강시혁은 그렇게 야멸치지가 못했다.

일단은 사무실 방문보다는 커피숍으로 불러내기로 하였다.

설운동 대리에게 전화를 걸었다.

“강시혁입니다.”

“아, 강 대리님이세요?”

강 대리님이란 소리를 듣고 강시혁은 세상 참 많이 변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설운동 대리가 전화를 하면 강 반장이요? 하고 말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대리님이라고 불렀다.

“좀 만나 뵙고 할 말이 있는데요.”

“무슨 말인데요? 말씀해 보세요.”

“아니, 직접 만나서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신종화 씨 일입니까? 신종화는 표면상으로는 화해도 했고 또 시말서도 서로 관장님에게 제출한 상태입니다. 관장님은 다시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그때는 중징계를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신종화 씨 일이 아니고요. 다른 일로 몇 가지 물어볼 것이 있습니다.”

“제가 카니발을 사적으로 사용한 것 때문에 그렇습니까?”

“카니발을 사적으로 사용했습니까?”

“천만에요. 와서 주행 키로를 보면 아시겠지만 내가 카니발을 가지고 사적으로 함부로 이용하거나 그러진 않았습니다.”

“하하, 그런 일이 아니고요. 일단 만나서 말씀 드리죠. 내가 지금 종로 쪽으로 출발하겠습니다. 한 시간 후에 인사동 초입에 있는 스타벅스에서 만나시죠.”

“거긴 사람들이 많이 오니까 다른 곳이 어떻겠습니까? 거기서 50미터 정도 올라오다가 보면 우측에 있는 화구 파는 상점 2층에 전통 찻집이 있습니다. 감 익는 마을 이라는 찻집입니다. 거기서 만나죠.”

“뭐, 좋습니다.”

강시혁은 전화를 끊고 종로로 나갈 준비를 하였다.

강시혁은 설운동 대리를 만나면 일단 예우는 해주기로 하였다. 그동안 자기 앞에서 온갖 똥 폼은 다 잡고 가끔 갈구기도 했지만 어쨌든 한때 자기의 상사였기 때문이었다.

한 시간 정도 지나 강시혁이 인사동 감 익는 마을로 갔다.

설운동 대리가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강시혁이 들어서자 설운동 대리가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비굴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비서실 일이 여기보다는 더 바쁘죠?”

“그럭저럭 할만은 합니다.”

“첫 달 급여도 받으셨겠네요. 같은 대리라고 해도 문화재단 대리보다는 그쪽이 급여가 더 세다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우선 차를 시킬까요? 찻값은 첫 달 급여도 받았으니 내가 내죠.”

“아닙니다. 내가 내겠습니다.”

“커피가 된다면 아메리카노..... 아, 여기는 참 전통 찻집이죠? 생강차 한잔 할까요?”

그래서 둘이 뜨거운 생강차를 시켜서 마셨다.

설운동 대리는 강시혁의 눈치를 슬슬 봤다. 이놈이 왜 나를 불러냈지? 하는 표정이었다.

강시혁이 생강차 찻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한 가지 물어보겠습니다. 우리 삼방 갤러리에서 기획 전시회 할 때 작가들에게 그림을 부탁할 때는 주로 어느 분이 하나요?”

“신종화가 주로 하지만 가끔 나도 그림을 받으러 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때로는 사무국장님이 가실 때도 있습니다.”

“일단 작가들은 그림을 삼방 갤러리에서 전시해주고 판매를 해주면 작가들은 좋아하겠네요.”

“당연하지요. 더구나 우리가 적극적으로 홍보를 해줘서 판매가 되었다면 더 좋아하지요.”

“그럼 작가들을 만나서 그림을 가져올 땐 친지들에게 선물하겠다고 소품 정도 하나 쯤은 작가들에게 부탁을 해볼 수도 있겠네요.”

“뭐, 그럴 수도 있지만 왜요? 강 대리님도 혹시 그림을 하나 구입하고 싶어서요? 그런데 이달과 다음 달엔 기획 전시회가 없는데...... 혹시 마음에 드는 작가라도 있으면 말해보세요. 기억해 두었다가 한번 얻어 보도록 하죠.”

“실례지만 설 대리님이 작가들에게 소품을 요구해서 가져온 것이 있습니까?”

“요구하다니요? 그런 건 없습니다. 그러면 삼방의 이미지가 나빠지죠. 또 작가들도 자존심이 강해 함부로 소품을 그려주지 않습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는데 얼마나 소품을 가져왔는지요?”

“예? 그런 것 없다니까요?”

“그런 식으로 답변하면 곤란합니다. 실은 설운동 대리가 작가들에게 소품을 강요한다고 회장님께 투서가 들어왔습니다.”

“예? 뭐라고요?”

“솔직한 말씀을 해주지 않으면 이후 발생하는 모든 책임은 설 대리님이 지셔야 합니다.”

“나 참, 환장하겠네.”

“그럼 한 점도 받은 사실이 없다는 말씀입니까?”

“몇 달 전에 젊은 작가 기획전 할 때 작가가 말도 안했는데 한 점 그려준 건 있습니다.”

강시혁은 설운동 대리의 뺨이라도 한 대 치고 싶었지만 참았다.

“그 외는 정말 없다는 말인가요?”

“저, 정말이라니까요.”

강시혁이 가지고간 대봉투에서 A4 용지 한 장을 꺼냈다.

“그럼 여기에다 진술서 하나만 써주세요. 소품은 한 점만 받았으며 그 외는 받은 사실이 없다고 쓰세요. 그리고 만일 이외 받은 사실이 있는 것이 밝혀진다면 회사를 사직함은 물론 민형사상 책임도 감수하겠다고 쓰세요.”

“예? 뭐, 뭐라고요?”

“나도 내일 본사 비서실에 들어가면 조사했다는 결과는 보고해야 되니까요. 그러면 비서실에서는 투서한 사람이 아무 죄도 없는 설운동 대리를 음해하려고 했다고 오히려 투서한 사람을 무고로 고소하게 해야죠.”

“도, 도대체 투서를 한 사람이 누구랍니까?”

“그건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아, 생각나는 것이 있네요. 작년에 부천 사는 작가에게 한 점 받은 것도 있습니다.”

“그래요?”

“그런데 이번 투서는 누가 했답니까? 혹시 작가 본인이 아니고 신종화 측에서 몰래 투서한 것은 아닙니까? 투서한 사람은 그 앙큼한 것이 틀림없습니다.”

“남을 한번 의심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는 법이죠.”

말은 이렇게 했지만 강시혁은 정말 신종화 측에서 몰래 투서를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신종화가 아니더라도 신종화의 남친 배동수 라는 사람이 할 수도 있었다. 그러다가 머리를 흔들었다.

[삼방그룹의 직원이라면 믿어야지. 자꾸 의심하면 끝이 없어. 그리고 그 배동수라는 사람은 그날 자기의 위조 작품을 모조리 찢는 행동으로 봐서 투서질이나 할 사람 같지는 않았어.]

강시혁이 설운동 대리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설 대리님! 내가 위에서 지시를 받기로는 직접 문화재단 사무실에 들어가 설 대리님을 조사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다른 사람들이 다 쳐다보게 되고 나쁜 소문이 날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설 대리님은 한때 내가 모시고 있었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찻집으로 모신 겁니다.“

설 대리는 입을 굳게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계속해서 강시혁이 말했다.

“소품 한두 점 받았다고 투서가 들어오지는 않았겠지요. 적어도 상습적으로 강요를 했거나 그동안 여러 장을 받았기 때문에 이런 투서가 왔으리라고 봅니다. 제대로 진술을 해주지 않으면 설 대리님이 다칠 수도 있습니다.”

설 대리는 고개만 숙이고 아무 말도 안했다. 강시혁도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이렇게 두 사람은 엄숙한 표정을 지은 채 한동안 말이 없이 앉아 있기만 했다.

찻집 주인아줌마가 지나가다가 두 사람의 이런 모습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

“어머! 두 사람 눈싸움 하시나봐. 호호.”

그래도 두 사람은 움직이지 않고 입을 굳게 다문 채 팔짱만 끼고 있었다.

한참 후 강시혁이 먼저 말했다.

“좋습니다. 두 점 받았다고 진술서를 써주세요, 하지만 내가 설 대리님 진술서를 위에 보고하면 위에서 만족해할지는 모르겠습니다. 투서에 나와 있는 작가들을 직접 만나보라는 지시가 또 내려올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설운동 대리는 팔짱을 끼고 입을 굳게 다물고 있었다.

강시혁이 생강차를 다 마실 무렵 설운동 대리가 갑자기 볼펜을 쥐고 진술서를 쓰기 시작했다.

진술서를 강시혁이 슬며시 보았다.

진술서엔 그동안 총 6점의 소품을 받았으며 친지들에게 선물을 했다고 썼다. 팔아먹었다고 쓰지는 않았다.

강시혁이 설운동 대리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설운동 대리는 이제 마음을 비운 것 같았다.

어제는 신종화 사건으로 시말서를 쓰고 오늘은 작가들에게 강요해 소품 6점을 받았다는 진술서를 썼으니 얼굴에 불안감이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의외로 미소를 짓고 있는 것이 보였다.

[이 친구 이젠 모든 게 끝났다고 마음을 비운 모양이네.]

강시혁이 진술서를 대봉투에 담으면서 말했다.

“향후 설 대리님에 대한 조치는 위에서 할 겁니다. 단지 나는 조사 후 진술서를 받아오라는 지시밖에 받은 것이 없습니다. 너무 불안해하지는 마세요. 그동안 설 대리님의 근무 성적이 좋아 해임까지야 가겠습니까?”

“짚이는 데가 있습니다.”

“짚이다니요?”

“틀림없이 관장님의 제자라는 그 여자 작가가 투서를 했을 겁니다.”

“아까는 신종화를 의심하더니 이제는 여자 작가를 의심하는군요. 하지 마세요. 그냥 재수가 없었다고만 생각하세요. 그런데 대리님은 이상하게 여자들하고 얽히는군요. 양보하면서 사세요. 그게 속 편합니다.”

이 말을 해놓고 강시혁은 움찔 하였다.

자기도 헤어진 와이프 심은혜에게 특별히 양보하고 산 기억이 없기 때문이었다.

강시혁이 설운동 대리의 진술서를 받아가지고 지하철을 탔다.

지하철 안에서 이영남의 전화를 받았다.

“형! 나 영빈관으로 가고 있어. 맥주 한잔 할까?”

“좋지. 그렇잖아도 오늘 피곤해 한잔 하려든 참이었어. 그런데 내가 지금 문화재단에 갔다 오는 길이야. 30분 정도 있어야 영빈관에 도착할 것 같아.”

“그럼 30분후에 나도 갈게.”

강시혁이 영빈관에 도착 후 얼마 있다가 이영남이 도착했다.

정말 맥주를 사가지고 왔다. 안주 깜으로 오징어와 견과류 같은 것도 가지고 왔다. 과일도 가지고 왔다.

“에고, 이런 건 나보고 사오라고하지 귀한 집 도련님이 이렇게 다 사가지고 왔네.”

“난 사가지고 오면 안 되나?”

“그래도 되지만 내가 미안하잖아.”

“그런데 형, 오늘 왜 피곤했어?”

“응, 그건 오전에 본사에 들어가 회의했고 오후엔 리틀 브라운이 빌려준 돈 투자해야 되기 때문에 포트폴리오를 짜느라고 바빴지. 또 문화재단에 가서 뭘 또 조사할 것이 있어서 갔다 오는 길이야. 오늘은 정말 바빴어.”

“그럼 맥주 한잔 해야겠네. 피로를 푸는 덴 맥주가 최고지.”

“좋지.”

둘이 서로 영빈관 지하에 있는 관리사무실에서 맥주잔을 부딪쳤다.

강시혁은 오늘 따라 맥주가 잘 받는 듯 했다. 그것은 오늘 해야 할 일을 다 했기 때문이었다.

강시혁이 맥주를 마시고 입가에 묻은 거품을 닦으며 말했다.

“그런데 오늘은 리틀 브라운 얼굴이 좋아 보이는데? 무슨 좋은 일 있어?”

“아, 그건 재즈 음악가 사카모토 쯔요시와 통화를 했기 때문이야. 내가 비행기 표와 호텔을 잡아주기로 하고 초청을 했어.”

“그래? 그럼 영빈관에 아버님 어머님 모셔 와서 프라이빗 콘서트 하면 되겠네. 영진 누나도 사카모토 쯔요시 씨가 온다면 여기 영빈관에 온다고 했어.”

“그런데 형! 이번에 내가 형에게 빌려준 돈으로 돈을 벌면 정말 사무실 하나 낼 거지?”

“벌면 하지. 못 벌면 못하지만.”

“왜 그러냐 하면 내가 쉴 곳이 마땅치 않고 또 누굴 초청하거나 하면 사무실이 있어야 될 것 같아서 그래.”

“기왕이면 회사 하나 만들까?”

“그것도 좋지. 대외적 활동을 하거나 누굴 초청하려면 개인보다는 회사이름으로 하는 게 좋긴 하지.”

“회사를 차리면 영남상사라고 할까? 아니면 리틀 브라운 컴퍼니 라고 할까?”

“내 이름 들어가는 건 싫어. 아버지가 알면 또 불호령을 내릴 거야. 회사 하나 준다는데 받지는 않고 구멍가게 차린다고 또 화낼 거야. 그러니 형 이름으로 해.”

“상철이를 끌어드릴까?”

“상철이 형을 끌어드리는 건 좋은데 회사 주인은 형이 해야지. 그럼 두 사람이름으로 하던가.”

“시혁이와 상철이라고 회사 이름을 지을까?”

“유치해. 그리고 상호가 길어.”

“그럼 강시혁의 K와 변상철의 B를 따서 K&B라고 할까?”

“헤헤. 그건 괜찮은 것 같은데. 이러다가 나중에 K&B그룹이 되는 것 아냐?”

그러면서 두 사람은 크게 웃었다.

웃고 나서 강시혁은 퍼뜩 아이디어 하나가 떠올랐다.

K&B라는 유령회사의 명함을 가지고 장명건설 노사분규 현장을 한번 찾아가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