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6화 건설주 대박 (1)
(136)
장명건설은 가압류로 주가가 하락하고 있는데 또 악재가 터졌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서울의 진보 시민단체들 때문이었다. 이들은 장명건설 노조의 농성현장에 내려가 합류한다고 하였다.
이렇게 되면 주가가 하락하는 정도가 아니라 회사가 문을 닫아야할지도 모른다.
정부에서도 심상치 않게 볼 수도 있었다.
강시혁은 현재 장명건설을 7억 원 어치나 사둔 상태였다.
나름대로 확실한 정보를 가지고 매집을 했던 것이다. 그 정보는 바로 가압류가 홍 사장의 쇼라는 믿음에서 출발했던 것이다. 막연하게 감만 가지고 투자를 한 것은 아니었다.
[시민단체가 개입하는 것도 홍 사장 측에서 사주한 것이 아닐까? 주가 더 떨어지라고 사이비 시민단체 하나 붙잡고 꼬드긴 건 아닐까?]
강시혁은 별의별 의심이 들었다.
하지만 시민단체가 움직이는 건 국민적 이목을 집중시키므로 장명건설의 제1 대주주인 삼방그룹도 부담을 느끼지 않을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터넷에선 타워크레인 위에서 농성하는 노조원들의 사진이 나오기도 하였다.
일단은 내일 오전은 주식투자를 쉬기로 하였다.
어차피 내일은 비서실 회의가 있다니 거기나 참석을 해야 되겠다고 마음먹었다.
오늘은 강시혁이 처음으로 비서실 회의에 참석하는 날이다.
정장을 하고 삼방그룹 본사로 갔다.
얼굴을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했다. 이사도 만났다.
“어? 당신 왜 들어왔어?”
“회의 참석차 왔습니다.”
“아, 오늘 회의가 있지. 월례회의 정도는 당신도 참석해야겠지.”
아래층에 있는 중(中) 회의실에서 열리는 회의는 참석 인원이 그리 많지는 않았다. 비서실 인원 자체가 많지 않기 때문이었다. 인원은 비서실보다는 경영기획실 직원이 많았다.
비서실은 높은 분들 따까리나 행사 같은 것을 주관하지만 경영기획실은 주로 회사의 재무 분석이나 신규사업 추진 등을 하므로 인원이 상당히 많았다. 그래서 신규 사업계획서 같은 것은 기획실에서 나온다.
재벌그룹의 인재들이 가장 가고 싶어하는 부서가 비서실과 경영기획실이다.
비서실은 높은 사람들과 접촉이 많아 잘하면 출세가 빠른 곳이다. 그래서 천성적으로 언변도 좋고 외향적이며 따까리 타입이라면 있을만한 곳이다. 회사에 따라서는 비서실을 회장 부속실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경영 기획실은 전략경영 기획실, 종합경영 기획실 등 회사마다 이름을 약간 달리하고는 있지만 한 기업의 미래를 책임지는 곳이라 이곳도 엘리트 사원들이 가고 싶어 한다.
기획실이라는 곳이 일단은 경영분석을 해야 하므로 경영학과 출신이 유리하다.
또 신규사업이 국내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해외사업도 활발히 추진하므로 해외 유학파들도 많이 들어온다..
회의실에 15명 정도의 비서실 직원들이 모였다. 임창영 과장의 얼굴도 보였다.
강시혁은 맨 끝에 말석에 앉으며 임창영 과장에게 눈인사를 했다.
임창영 과장이 야릇한 미소를 짓는 것 같았다. 저놈이 영빈관 경비를 하면서 딸랑이를 흔들더니 여기까지 올라왔네 하는 미소일수도 있고, 아니면 정말 축하의 미소인지는 몰랐다.
여성도 한명 있었다.
나이가 많았던 여성으로 강시혁에게 저녁 한번 사라고 했던 여성이었다. 대리급인 것 같았다. 이 회의는 사원 급은 들어오지 않는 회의였다.
회의가 시작되었다.
사장 급으로 알려진 비서실장이 먼저 회장님 지시사항과 훈화의 말을 했다.
“우리는 회장님의 그림자와 마찬가지입니다. 회장님을 대신해 각 계열사 간의 조정 역활도 하여 조직이 원활하게 돌아가도록 해야 합니다. 말하자면 청와대 비서실 같은 역할을 해야 합니다.”
이때 회의실 문을 열고 여비서 한명이 들어왔다.
“회장님이 급하게 실장님을 찾습니다.”
“음, 그래?”
실장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회의 중이라도 회장이 부르면 만사 제쳐놓고 가야만 하는 것이 비서실 직원들의 숙명인 것 같았다.
실장이 일어서서 최 이사를 쳐다보며 말했다.
“최 이사. 회의는 당신이 주재하시오.”
“알겠습니다. 다녀오십시오.”
그래서 회의는 최 이사가 주재했다.
바로 강시혁이 삼방 에너지의 임시 주총에 참석할 때 왔던 사람이다.
깐깐하게 생긴 최 이사가 말했다.
“모두 봤죠? 방금 회장님이 부르니까 실장님이 모든 걸 제쳐놓고 뛰어가는 걸 말입니다. 우리 비서실 직원들은 그래야 합니다.”
모두 고개만 숙이고 듣기만 했다.
최 이사의 목소리가 계속 들렸다.
“우리 비서실 직원들은 마누라하고 잠자리를 같이 하다가도 회장님이 부르면 중지하고 달려 나와야 합니다.”
이 대목에선 웃을 만 한데 아무도 웃지 않았다.
강시혁만 미소를 짓다가 분위기가 너무 엄숙해 바로 표정을 바꾸었다.
“옛날 말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공자님 말씀에 부명소(父命召)이거든 유이불락(唯而不諾)하고 식재구즉토지(食在口則吐之)니라 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이, 박 과장, 자네는 북경대학 박사학위 소지자니까 이 말이 무슨 말인지 알지?”
중간에 앉은 박 과장이란 사람이 엉덩이를 들썩하더니 우물쭈물 하는 것 같았다.
비서실 직원들 중에서는 영어나 중국어, 일어 등을 원어민 뺨치게 잘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것은 회장이나 이영진 상무가 외국인 손님들과 접촉이 자주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지금 말하는 박 과장이나 임창영 과장 같은 유학파들도 있는 것이다.
강시혁도 순차통역을 할 실력은 아니지만 영문과 출신이라 비서실 내에서는 영어권으로 분류되고 있었다.
최 이사는 박 과장의 말을 기다리지 않고 계속 말했다.
“부명소는 부모가 부르면 이란 말이고 유이불락은 즉시 대답하고 머뭇거리지 말란 말이고 식재구즉토지는 음식이 입에 있으면 뱉고 달려가란 말입니다. 다시 말해 어른이 부르면 밥 먹다가도 입에 든 음식을 뱉어내고 달려가란 말입니다. 알았어요?”
“네.”
모두 방금 최 이사가 한 말을 앞에 있는 다이어리에 메모를 했다. 강시혁 역시 메모하는 척 했다.
강시혁은 까칠하게 생긴 최 이사를 쳐다보며 고등학교 때 국어시간에 배운 문장 구절 하나가 생각났다.
[저 양반 몰골은 흉악한데 문자 속은 기특하네.]
이번엔 최 이사가 메모지를 보며 말했다.
“실장님이 말씀 하려고 했던 사항인데 두 가지만 말씀 드리겠습니다. 첫째는 각사 주총 일자를 파악해 주시고 공시자료는 공시 전에 꼭 비서실로 먼저 보내달라는 공문을 띄우세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장관을 지내신 XXX씨가 우리 그룹의 계열사 사장으로 오십니다. 골프 회원권을 줘야하니까 이번 기회에 각사의 골프회원권 현황을 파악해 두세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오 과장! 자네는 지난번 회장님이 삼방화학 체육대회에 참석하시고 손을 흔들며 나오자 자네도 뒤에서 같이 손을 흔들었다며? 그것 때문에 말이 많네.”
“그건 오해입니다.”
“자네가 회장인가? 왜 회장님처럼 손을 흔들어? 비서는 그림자처럼 일을 하라고 했는데!”
“제 입사동기가 저를 보고 손을 흔들어 제게 답례 차 흔들었을 뿐입니다. 입사 동기가 거기 관리과장으로 있었습니다.”
“옛 말에 오이 밭에서는 갓끈을 매지 말라는 말이 있었네. 오이 도둑으로 오해하지.”
“조심하겠습니다.”
“자, 시간도 많이 흘렀으니 각자 업무보고 하고 끝내지. 왼쪽에 앉은 순서대로 보고해봐.”
각자 돌아가면서 자기의 업무보고를 하였다.
주로 지난주에 한 일과 금주에 할 일 등을 보고했다.
강시혁의 차례가 왔다. 강시혁도 지난주에 천안에 있는 XX대학교 생활관 기공식에 갔다 온 일과 금주에 듀크대학 총장이 영빈관을 방문하기 때문에 준비를 해야 한다고 보고했다.
최 이사가 강시혁에게 말했다.
“강 대리! 자네는 비서실 회의에 처음이지?”
“네, 그렇습니다.”
최 이사는 전엔 강시혁에게 말을 놓지 않았는데 이제는 완전히 말을 놓았다.
“지금 보고 내용은 주간 업무보고에 다 보고하고 있지?”
“그렇습니다.”
“주간 업무보고도 좋지만 듀크대학 총장이 방문한다는 것 같은 건 이쪽도 사전에 구두로라도 알려주게. 임창영 과장에게 보고해도 되고 아니면 유준상 대리에게라도 전화 한통 해주게.”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자, 그럼 오늘 회의는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각자 맡은 일을 열심히 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강시혁 대리는 나 좀 보고 가지.”
“예? 저 말씀입니까?”
“그럼 여기에 강시혁이란 사람이 자네 말고 또 있는가? 따라오게.”
강시혁이 최 이사 뒤를 따라갔다.
최 이사는 비쩍 마른 사람이 걸음걸이는 패기가 있어 보였다.
최 이사 방으로 들어갔다.
여비서가 봉투 하나를 최 이사에게 내밀며 말했다.
“회장님 실에서 부의금 봉투를 써달라고 하십니다.”
최 이사가 붓펜을 들고 봉투에 부의라는 글씨와 뒤에 삼방그룹 회장 이건용이라고 썼다.
그런데 글씨를 보고 깜짝 놀랐다. 붓글씨체이긴 한데 거의 인쇄한 것과 같은 수준이었다. 줄 또한 반듯했다.
[지난번 부의 봉투를 보고 누가 썼나 했더니 이 양반이 썼군. 장말 잘 쓰네. 그룹사 비서실에 근무하려면 자기 특기 하나씩은 가져야겠네.]
여비서가 부의금 봉투를 들고 가버리자 최 이사가 의자를 강시혁 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다리를 꼬고 말했다.
“강 대리는 비서실로 오기 전에 문화재단에서 근무했다고 했었지?”
“그렇습니다.”
“거기 설운동 대리라는 사람을 잘 알겠군.”
“예, 잘 압니다.”
최 이사가 자기 책상 서랍에게 서류 하나를 꺼냈다.
뒤에 우체국 소인이 찍힌 편지봉투를 호치키스로 찍은 것으로 보아 누구의 편지인 것 같았다.
“회장님 앞으로 투서가 하나 들어왔네.”
"예? 투서요?“
“익명으로 투서를 한 것인데 설운동 대리가 삼방 갤러리에 전시하는 작가들에게 강제로 소품 하나씩을 요구했다는 제보네.”
“예? 소품요?”
“그림 그릴 때 서비스로 작은 그림 하나를 작가들에게 그려달라고 했겠지.”
“그림 모으는 게 취미인 것 같습니다.”
“두둔하지 말게. 소품도 화랑가에 매매가 되네. 다시 말해 돈이 된다는 말이지.”
“아!”
“그러니 자네가 조용히 조사해봐.”
“제, 제가요?”
“그쪽 일은 자네가 잘 알 것이 아닌가? 친하다고 해서 비서실 소임을 잊으면 안 되네.”
“아, 알겠습니다.”
“그럼 가보게. 설운동 일은 조용히 진행하고 외부 누설하지 말게.”
“알겠습니다.“
강시혁은 주식 투자도 해야 하는데 귀찮은 일이 생겼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문화재단 쪽 일은 관여하기도 싫기 때문이었다.
강시혁이 비서실을 나와 엘리베이터 쪽으로 가다가 이영진 상무를 만났다.
이영진 상무는 서너 명의 남자들과 함께 오고 있었다.
그런데 남자들이 모두 50대라 계열사 임원 아니면 사장으로 보였다. 강시혁이 허리를 크게 굽혀 인사를 하였다.
“안녕하셨습니까?”
“어머, 강 대리님 오셨군요.”
“예, 비서실 회의가 있어서 왔습니다.”
“정장에 사원증을 목에 걸고 가시니 근사해 보이네요.”
그러면서 이영진 상무가 강시혁의 왼손을 쳐다보았다.
강시혁은 얼른 다쳤던 손가락을 주먹을 쥐고 감추었다. 이 모습을 보고 이영진 상무가 미소를 지었다.
“목요일 듀크대학 총장이 오시는 날엔 문화재단 큐레이터가 나오기로 했습니다. 같이 서빙업무를 진행하면 될 것 같습니다.”
“고맙습니다. 상무님.”
“그럼 목요일 영빈관에서 봐요.”
이영진 상무는 고개만 까닥하고 돌아섰지만 강시혁은 크게 허리 굽혀 인사를 했다.
대리와 부회장 급의 상무와는 그 직급 차이가 너무도 크기 때문이었다.
강시혁은 이태원에서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조금 전에 만났던 이영진 상무를 생각했다.
자기의 손가락을 쳐다보는걸 보아서는 아직도 마음 한구석에는 애틋한 감정이 있는 것 같이 보였다.
그런데 이영진 상무는 젊은 여자가 또래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50대 남자들에 둘러싸여 생활하니 불쌍해 보이기도 했다. 얼마나 갑갑하고 스트레스를 받을까 했다.
더군다나 가정적으로 이혼을 했으니 돈만 많지 불행한 사람임은 틀림이 없었다.
강시혁은 지하철 역에서 내려 얼른 햄버거 하나만 사먹고 영빈관으로 왔다.
오전 주식시장에 거래를 못했지만 오후 장엔 집중적으로 거래를 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강시혁은 하늘이 주신 이번 기회를 놓치고 싶지는 않았다.
설운동 대리를 조사하러 가는 일은 주식시장이 끝나고 오후 4시쯤에나 가보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영빈관의 관리사무실에 들어와 컴퓨터를 켰다.
장명건설 주가는 8,500원 언저리에서 등락을 거듭하고 있었다.
지금 나오는 매도 물량은 모두 소액주주들이 견디지 못하고 내다파는 것들뿐이었다.
오늘은 제법 매도 물량이 쌓여있었다.
강시혁이 매도 물량을 서서히 담기 시작했다.
매도 물량이 차츰 줄어들자 매도 물량이 추가로 잘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누군가가 주가를 밀어버려 곤두박질치게 만들었다.
[세력이 있기는 한 것 같네.]
이렇게 되자 매도물량이 나오며 누군가는 또 사기 시작했다.
강시혁도 사는 쪽에 붙어 같이 매집을 해 나갔다.
오후 1시부터 3시까지 화장실도 안가고 주식거래만 했다. 2억 정도의 실탄을 사용한 것 같았다.
이제 누계 실탄 사용은 9억이 되었다.
아직도 11억의 실탄이 남아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