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화 큐레이터의 잠적 (3)
(134)
장명건설의 가압류 소식은 빨리도 전해졌다.
다음날 각 경제신문마다 장명건설 기사가 나왔다.
[장기간 노사분규중인 장명건설이 또 다른 악재를 만났다.
대주주인 홍승필 씨가 일본의 엔터테인먼트 회사인 가와라 흥업에서 빌린 부채를 갚지 못하자 가압류가 들어온 것이다.
현재 이 회사는 3/4분기에도 적자를 면치 못했으며 4/4분기에도 장기 노사분규로 적자 행진을 이어갈 것으로 보고 있다.
이 회사의 제1 대주주는 30%의 지분을 가지고 있는 삼방건설이다. 삼방건설 역시 지속되는 적자로 지분 매각의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는 중이다.]
장명건설 주가는 바로 곤두박질을 하였다.
주가 차트에 장대 음봉을 만들어내며 하한가로 직행하였다.
강시혁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주가 매집에 슬슬 들어가 볼까 하였다.
하지만 내일 또 꺾인다면 아직은 아니라고 판단되었다.
[손절 물량이 더 나와야 해. 좀 더 기다려 보자.]
강시혁은 이날 하루 종일 주가창만 쳐다보았다.
대량 거래가 나오며 종가는 10,500원이 되었다.
12,000원 주가가 횡보할 때 바닥이라고 사서 15,000원까지 올라갈 때 개미들은 열광하였다. 하지만 뽕쟁이 홍 사장의 한 수에 주가가 10,500원이 되었으니 최근에 주식을 산 사람은 피눈물을 흘려야 했다.
장명건설에 물린 사람들은 회사원도 있고 교사도 있고 군인도 있고 자영업자도 있을 것이다. 대학교수도 있고 예술가도 있고 노동자들도 있을 것이다. 흙수저 1만 명이 단 한명의 뽕쟁이 금수저를 이기지 못하고 당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을 알고 있는 흙수저가 있었다.
바로 강시혁이었다.
강시혁이 시계를 보았다.
오늘 주식시장이 끝나고 시간은 벌써 오후 4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강시혁은 영빈관 마당으로 나왔다. 그리고 심호흡을 하며 가벼운 운동을 했다.
운동을 하고 다시 관리실로 왔다.
장명건설의 제1 대주주인 삼방건설의 주가는 어떤 가 살펴보았다.
장명건설의 영향으로 5%나 빠져있었다. 삼방건설 주가 토론게시판에 들어가 보았다.
“삼방건설은 장명건설을 왜 인수했나? 이 머저리들아!”
“삼방건설 투자자산이 마이너스로 재무제표에 반영되면 부채비율이 얼마나 되는지 알지?”
“하고많은 주식 중에서 왜 삼방건설을 사서 고생이냐. 이 형이 산 XX건설로 와라.”
“팁 하나 가르쳐 준다. 삼방건설은 곧 대규모 유상증자를 할 것이다. 모두 튀어라.”
“장명건설 지분은 지금이라도 처분해라. 매년 적자회사를 뭐하려고 끌어안고 있나?”
삼방건설도 장명건설 인수로 타격을 받고 있었다.
주식 투자자나 임직원들은 또 한 번 이영진 상무 욕을 할 것으로 보았다.
삼방건설이 필요도 없는 장명건설을 인수하는 데는 이영진 상무의 입김이 작용했으리라고 보고 있기 때문이었다.
왜냐하면 장명건설의 대주주는 삼방건설 외에 남편인 홍 사장과 홍 사장의 매형인 김장명도 대주주였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아직 이영진 상무와 홍승필 사장의 이혼 소식을 모르고 있었다.
강시혁은 지금 재벌 오너의 주변에 있기 때문에 고급 정보를 많이 알고 있다.
계열사의 임원들이나 비서실의 간부들보다도 더 잘 알고 있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이영진 상무의 이혼 소식이나 장명건설의 가압류는 홍 사장의 쇼라든가 이영남이 혼외자식이고 그 친엄마는 이미 사망하여 미국의 메모리얼 파크에 누워있다는 것 등이었다.
강시혁은 재벌가의 핵으로 서서히 접근하고 있는 중이었다.
이날 저녁 늦게까지 심부름센터 소장의 전화는 없었다.
강시혁은 심부름센터 소장에게 다그치는 전화라도 할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내일까지 기다려 보기로 하였다.
[소장이 큰소리 탕탕 치더니 소식도 없네? 그러면 그렇지. 사람 찾는 것이 쉽지는 않겠지.]
다음날이 되었다.
강시혁은 아침 일찍 일어나 청소 후 밥을 해먹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어쩌면 오늘부터 주식 매집에 들어가야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아침 9시 주식 시장이 열리고 거래가 시작되었다.
장명건설 주가는 초반부터 밀리기 시작했다. 팔자 물량이 또 대량으로 나왔기 때문이었다. 지금 나오는 물량들은 대부분 손절 물량으로 보았다.
주가는 9천 원대로 내려갔다. 9천원은 지킬 것 같더니 9천원이 무너지고 8,800원이 되었다. 15,000원짜리가 8,800원이 되는 데는 불과 며칠 걸리지도 않았다. 강시혁이 건대 앞에서 장사를 할 때와 비슷했다. 그때도 불과 며칠 못가서 주방 아줌마 인건비도 못줄 형편이 되었었다.
주식은 인생의 굴곡을 말해주는 것 같았다.
이제 떨어질 만큼 주가가 떨어졌다는 인식들을 했는지 사자 물량이 조금씩 들어왔다.
강시혁은 9천원 부근에서 매집을 하기 시작했다. 8,800원이나 8,700원으로 내려가면 무조건 잡아버렸다.
강시혁은 이날 라면을 끓여먹으며 주식거래에만 매달렸다.
이날 오후 3시까지 약 3억 원의 주식을 매집했다.
장이 끝나고 눈을 비비고 있는데 심부름센터 소장의 전화가 왔다.
“신종화 씨의 소재지를 파악했습니다.”
“그렇습니까?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가 사람 찾는데 들인 시간은 이틀 분으로 계산해 주셔야 합니다.”
“그런 건 걱정 마시고 신종화씨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추가 비용을 온라인 송금해주시면 알려 드리겠습니다. 우리 계좌번호는 바로 사장님, 아니 대리님 전화번호로 알려 드리겠습니다.”
[씨팔! 누가 돈을 떼먹나! 궁금해 죽겠네.]
계좌번호가 왔다.
강시혁이 추가비용을 송금해 주었다.
강시혁이 심부름센터 소장에게 전화를 했다.
“추가비용 송금했습니다. 이제 신종화 씨의 소재지를 알려주세요.”
“네, 입금 확인했습니다. 신종화 씨는 지금 마포에 있습니다.”
“마포요? 마포 어디에 있습니까?”
“마포구청역 1번 홈으로 나오시면 오피스텔이 많은 거리가 나옵니다. 거기에 XX오피스텔이 있습니다. 그 오피스텔 지하에 대리님이 알려주신 기아 K7 차가 있을 겁니다.”
“그래요? 그런데 사람은요?”
“그 오피스텔 804호로 가보세요. 거기에 있는데......”
“왜요?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이런 말씀드리기가 미안하지만 남자하고 같이 있는듯해서......”
“남자라고요? 그런 것 상관없습니다,. 나는 그 사람 애인도 아닙니다. 남자가 두 명 있던 세 명 있던 상관없습니다.”
“하하, 그렇습니까? 그럼 얼른 가보세요. 지금 가면 외출 중일지 모르니까 저녁에 가보세요.”
“고맙습니다. 그리고 수고하셨습니다.”
[전직 경찰관이라더니 잘도 찾았네. 하긴 이 사람들은 위치추적으로 알아내는 수가 있겠지.]
강시혁은 바로 변상철에게 전화를 했다.
“나다. 오늘 가야겠다. 저녁에 이리 와라.”
“내가 정리할 것이 있어. 한 30분 정도 있어야 나갈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럼 이태원으로 오지 말고 마포구청역 1번 홈에서 바로 만나자. 그 여직원이 있는 곳이 거기에 있는 오피스텔에 있다더라.”
“어? 거기 내 동창 한 놈도 거기에 사는데.”
“저녁 7시쯤 괜찮겠어?”
“7시? 7시면 괜찮아. 부지런히 여기서 움직이면 갈수 있어.”
“그럼 거기서 보자.”
“그런데 그림 가지러 간다며? 지하철 타고 가도 돼?”
“그 여직원 차가 있어. 지하철 타고 오면 돼.”
강시혁은 벤츠 차를 끌고 갈까하다가 그만두었다.
회사 차를 가지고 마포 쪽으로 가면 또 누구 눈에 띄어 구설수에 오를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저녁 7시가 되었다.
마포구청역 1번 홈으로 가니 변상철이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어? 일찍 왔네.”
“아냐, 나도 방금 왔어. 그런데 모자에 웬 마스크를 그렇게 썼어.”
“몰래 가느라고 그런 거야. 눈에 띄면 안 되거든.”
“그림 가지러 가는데 눈에 좀 띄면 어때?”
“사실은 오늘 범인을 체포하러 가는 거야.”
“범인이라니!”
“가면서 이야기 해줄게.”
강시혁은 가면서 신종화 사건을 대략 변상철에게 알려주었다.
“흠. 그런 일이 있었군.”
“바로 경찰에 고소하는 것보다 우리끼리 해결하는 게 낫지 않겠어? 젊은 여자 장래가 걸린 문제인데.”
“확실히 형은 휴머니스트야. 사람을 존중할 줄 아니 훌륭한 경영자가 되겠는데?”
“경영자는 무슨! 지금 대리 자리 지키기도 벅차다.”
“그 신종화라는 사람이 형의 목소리를 알지 모르니까 804호 문은 내가 먼저 두드리지.”
“경찰에서 왔다고 하면 문을 열어주겠지?”
“그거 보다는 관리실에서 왔다고 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만일 그 여자가 문을 열고 나오면 형은 바로 나하고 같이 밀치고 문 안으로 들어가면 돼.”
“주거침입이 안 될까?”
“그림을 도둑맞았는데 그게 문제야? 그런 것 성립 안 해. 무조건 쳐들어가. 하지만 잡더라도 폭행을 하면 안 돼.”
“그런 건 염려 마. 괜히 폭행하면 내가 바가지 쓰지. 그런데 뺨은 한 대 쳐야 내 속이 풀릴 것 같다.”
우선 오피스텔 지하 차고로 갔다.
신종화의 차인 기아 K7이 있었다. 강시혁은 차만 보고서도 괜히 흥분되었다.
[나쁜 년! 여기서 그 남친이란 놈과 동거를 했구나! XX장관하고 동거를 하지 않는 게 다행이다.]
강시혁과 변상철이 8층으로 올라갔다.
강시혁은 옆에 숨어있었고 변상철이 804호 벨을 눌렀다. 반응이 없자 변상철이 문을 쾅쾅하고 쳤다.
안에서 소리가 들렸다.
“누구세요?”
확실히 신종화의 목소리였다. 강시혁은 또 흥분이 되었다.
변상철이 침착한 어조로 말했다.
“관리사무실에서 왔습니다.“
“무슨 일인데요?”
“아래층에서 물이 떨어진다는 신고가 들어왔습니다.”
문이 열리자 변상철이 들어가고 이어 강시혁이 재빨리 들어갔다.
좁은 방안은 그림을 그리다 말았는지 화구 같은 것이 어지러이 놓여 있었다.
신종화가 강시혁의 얼굴을 보고 소스라쳐 놀랐다.
“어머!”
“이 나쁜 년!”
강시혁이 신종화의 뺨을 철썩 때렸다.
“앗!”
뺨을 맞은 신종화가 비틀거렸다.
방안에 있던 남자가 이 모습을 보고 진공청소기를 들고 달려들었다.
“아니, 이 새끼가 누군데 사람을 쳐!”
하지만 이 남자는 건장한 체격의 강시혁과 변상철을 이길 수가 없었다. 상대는 더구나 두 사람이었다.
남자는 바로 변상철과 강시혁에게 제압을 당했다.
강시혁이 남자의 등 뒤에서 팔을 꺾었다.
“악! 놔 이 새끼야!”
“너도 공범이지?“
그러면서 강시혁이 더 팔을 꺾자 남자가 비명을 질렀다.
“악! 악!”
신종화가 강시혁의 팔에 매달리며 울부짖었다.
“놔요! 그 사람은 아무 죄도 없어요. 엉엉.”
“이놈도 같이 공모해서 그림을 빼돌린 것 아니야?”
“그게 아니에요. 흑흑. 내가 나쁜 년에요. 강 대리님 그 팔을 놔요.”
강시혁이 남자의 팔을 놓으며 신종화에게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왜, 이런 짓을 했지요?”
“흑흑. 미안해요. 강 대리님.”
“왜 나까지 망하게 하려고 그랬죠?”
“흑흑.”
신종화는 울기만 하고 남자는 저항하지 않았다.
남자는 사태가 이상하게 돌아가는 것을 느낀 것 같았다. 강시혁과 신종화의 얼굴만 번갈아 쳐다보았다.
강시혁은 처음으로 남자의 얼굴을 찬찬히 쳐다보았다.
콧수염과 턱수염을 기른 젊은 남자였다. 눈썹이 짙어 꿈에서 보았던 남자와 아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염을 길러서 그렇지 나이는 어려 보였다. 신종화 또래인 것 같았다.
강시혁은 꿈이 생각났다.
꿈에서는 눈썹 짙은 이놈과 신종화가 자기를 가스라이팅 했었다고 하였다. 그리고 이놈들이 조종하는 대로 자기가 움직였다고 했었다. 웃음만 났다.
[내가 어린 이놈들에게 가스라이팅을 당해? 허 참. 그날 밤 내가 개꿈을 꾸긴 제대로 꿨어.]
꿈에서 강시혁은 실제 신종화의 부하였다고 하였었다.
그 말은 맞았었다. 미술관 관장은 강시혁에게 큐레이터 신종화의 지시를 받고 일을 하라고 했기 때문이었다.
신종화 역시 강시혁보다는 자기가 위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오늘 신종화는 강시혁에게 고양이 앞에 쥐였다.
사실 신종화나 설운동은 강시혁의 상사가 될 재목들이 아니었다.
강시혁은 그동안 중국인들이 말하는 도광양회(韜光養晦)처럼 자기를 낮추고 숨죽이고 살아온 것뿐이었다.
도광양회는 자기의 재능을 감추고 때를 기다린다는 사자성어다.
강시혁이 다시 엄숙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신종화 씨! 신종화 씨 답지 않게 왜 이런 짓을 했죠?”
“대작을 베껴 그려 돈을 마련하려고 했었어요. 모작(模作)이 끝나면 그림은 도로 영빈관에 갖다 놓으려고 했어요. 흑흑.”
“모작을?”
정말 방 안에는 영빈관에서 가져온 대작을 보고 베낀 그림이 세장 있었다.
그런데 원본과 얼마나 똑같은지 강시혁은 놀랐다. 확실히 이들의 솜씨는 놀랄 만 하였다.
“동수 씨가 지방 대학에 전임으로 가는데 돈이 필요했어요. 그 학교 재단에서 기부금을 요구했어요. 그래서 모작으로 돈을..... 흑흑.”
강시혁이 수염 난 남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당신이 동수 씨요?”
“그, 그렇습니다.”
“나는 저 그림을 보관하고 있었던 영빈관 경비반장 겸 삼방그룹 비서실 대리요. 저 그림은 신종화 씨가 회사의 승인 없이 반출한 그림이요.”
“예? 승인받고 반출한 것이 아닙니까?”
“아니요. 그러니 저 원본은 바로 오늘이라도 영빈관에 가져다 놓으세요. 그래야 당신들이 다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