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3화 큐레이터의 잠적 (2)
(133)
강시혁은 신종화가 막 되어먹은 여자는 아니라고 보았다.
그림을 보는 안목과 센스도 있고 나름대로 스펙도 괜찮은 여자로 보았다. 그래서 그림을 들고 해외로 도망을 갈 것으로 보지는 않았다.
범죄자가 되면 한국에 영원히 들어오지 못한다. 그래서 어리석은 판단은 하지 않을 것으로 보았다.
더구나 신종화는 자기 엄마 전화로 사무국장과 통화를 하고 있다고 했다. 국내에 있는 것은 분명해 보였다.
강시혁은 신종화라는 사람을 잃고 싶지 않았다.
또 젊은 여자의 인생을 망치고 싶지 않았다.
신종화 문제는 일단 덮어놓고 장명건설 주가를 살폈다.
오늘은 정말 거래량이 폭주하고 주가도 15,000원을 돌파하였다.
며칠 전만 하더라도 12,000원 언저리에서 놀던 주식이 15,000원으로 폭등한 것이다. 노사 협의가 다시 진행된다는 소문도 들렸다.
[홍 사장의 가압류가 들어올 때가 되었는데 소식이 없네. 내가 잘못 판단한 건가?]
강시혁은 불안했다.
이영남에게 이자를 주기로 하고 돈을 20억이나 빌렸는데 상황이 이상하게 흘러가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신종화까지 속을 썩이고 있는데 장명건설 주가의 흐름도 기대와 달리 움직여 환장할 것 같았다.
낙담하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이태원의 자율방범대 대장의 전화였다. 받지 않을까 하다가 받았다.
“강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50대의 자율방범대장은 강시혁을 꼭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아, 예. 대장님 아니십니까? 잘 지내시죠?”
“오늘 점심에 내 사무실로 한번 오세요. 방범회의를 겸해서 친목을 위한 점심이나 같이합시다.”
“사무실은 그때 거기죠?”
“예, 이슬람 거리에 있는 빌딩 4층에 그대로 있습니다. 최근에 통 방범회의를 못했는데 회의했다고 경찰서에 보고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점심은 내가 사죠.”
강시혁은 이런데 가면 신종화의 실종에 관해서 도움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했다.
경찰서에 정식으로 실종 신고를 하기 전에 자문이나 받아보리라고 마음먹었다.
방범대장은 경찰서에 발도 넓고 이태원의 유지이기 때문이었다.
강시혁이 점심에 방범대 사무실로 갔다.
50대 아저씨들이 칠팔 명 모여 있었다.
방범대장이 손을 내밀며 말했다.
“와 주셔서 고맙소. 강 선생! 역시 재벌회사에 계신분이라 여기서 때깔이 제일 좋네요.”
“고맙습니다.”
“회의는 경찰서 지구대장님이 오시면 같이 합시다.”
경감 제복을 입은 지구대장이 왔다. 회의가 진행되었다.
크리스마스 날과 연말연시 이태원지구 방법활동에 대한 회의였다. 지구대장은 청소년 선도에 힘써 달라는 부탁을 하였다.
회의가 끝나고 식사를 하러갔다. 식사는 갈비탕을 먹기로 했다.
강시혁은 식당에서 일부러 경찰서 지구대장 옆에 앉았다. 지구대장은 모인 사람들 중에서 제일 젊고 깨끗한 옷을 입은 강시혁에게 물었다.
“방범위원님은 지금 무슨 일을 하고 계십니까?”
강시혁이 말을 하려고 하는데 앞에 있던 방범대장이 먼저 말했다.
“아, 이 분은 삼방그룹 영빈관 경비 반장님이십니다.”
“오, 재벌회사에 계시는군요.”
이런 데서는 비서실 대리보다는 경비반장이 더 어울렸다. 그래서 강시혁은 미소만 지었다.
밥을 반쯤 먹었을 때 강시혁이 지구대장에게 질문을 하였다.
“실종 신고를 하려면 꼭 경찰서에 가야 합니까?”
“전화나 온라인도 가능합니다. 왜? 누가 없어지기라도 했나요?”
“회사 직원 하나가 장기 결근을 해서요. 전화를 다 꺼버리고 잠적해서 연락이 안 됩니다.”
“회사 기밀이라도 갖고 튄 모양이군. 실종자 사진과 인적사항 가지고 우리 지구대로 오면 됩니다. 그런데 단순히 사람 찾기라면 사설탐정을 의뢰해도 됩니다.”
“사설 탐정요?”
“신용정보법이 개정되었습니다. 전에는 흥신소 업이 불법이지만 2020년 8월 5일부터는 신용정보법이 개정되어 탐정업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요? 탐정업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까?”
“많습니다. 5천개는 될 겁니다. 엉터리도 많지만 믿을만한 곳도 있습니다.”
“그, 그럼 소개하나 해주시겠습니까?”
“삼각지에 있는 XX심부름센터의 소장이 전직 경찰출신이고 양심적으로 일합니다. 한번 찾아가 보세요.”
“심부름센터요?”
“아, 요즘은 신용정보법이 바뀌어 심부름센터 옆에 괄호를 치고 탐정업 이라는 표시는 했습니다. 요즘은 주로 배우자의 부정행위를 잡아달라는 의뢰가 많이 들어온다고 합니다.”
“배우자의 부정이 많은가요?”
이 질문을 하고 강시혁은 헤어진 와이프 심은혜가 잠깐 생각났다.
“잡고 보면 배우자의 부정은 70%이고 의처증이나 의부증이 30%랍니다.”
“연락처 알려주시겠습니까?“
“인터넷 찍으면 나옵니다. XX심부름센터나 XX흥신소를 찍으면 인터넷에 사무실 전화번호와 주소가 뜹니다.”
“고맙습니다.”
“그런데 부녀자나 아동 납치, 정신질환자나 치매노인 찾는 건 경찰서에 가서 실종신고를 해야 합니다.”
“납치는 아닙니다.”
“배우자의 현장을 찾거나, 보고 싶은 동창을 찾거나, 채무자의 소재지 파악은 경찰이 아닌 사설 흥신소를 이용하면 됩니다. 그런데 수수료가 좀 비싸다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걔들도 사무실 임대료나 인건비는 나가니까요.“
“당연하겠죠.”
강시혁은 방범회의를 마치고 사무실로 왔다.
카톡이 하나 들어왔다. 이영진 상무의 카톡이었다.
[다음 주 목요일 오후 2시에 영빈관에서 행사가 있습니다. 미국의 듀크 대학 총장님과 천안 XX대학 총장님이 방문하실 겁니다. 회의 후 영빈관에 보관된 미술품 관람도 있을 예정입니다.]
“뭐라고? 미술품 관람?”
강시혁은 하늘이 노래짐을 느꼈다.
신종화를 빨리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구대장이 말한 흥신소를 당장 인터넷에서 찾아보았다. 인터넷에 나와 있었다.
[XX심부름(명탐정)]
역시 상호는 심부름센터인데 괄호로 명탐정을 넣은걸 보니 사람 찾기가 전문인 것 같았다.
클릭을 해보았다.
비밀보장, 가정고민 해결, 못 받는 돈 받기, 기업조사. 같은 내용이 적혀있고 믿을 수 있는 경찰관출신의 소장이라는 문구도 있었다.
강시혁은 바로 전화를 하려다가 인적사항이나 사진이 필요할 것 같아 문화재단 설운동 대리에게 전화를 했다.
“설 대리님 안녕하십니까? 강시혁입니다.”
“아, 예. 안녕하십니까.”
생각했던 대로 설운동 대리는 풀죽은 목소리였다.
"다음주 목요일 미국의 듀크 대학 총장님이 영빈관에 오십니다. 정부의 고위층도 참석합니다."
"그, 그렇습니까?"
"미술계 행사라 위에서 신종화 씨를 당일 참석 시키라는 지시가 내려왔습니다. 그런데 신종화 씨는 요즘 안 나온다면서요?“
“그 지랄 맞은 년이 내가 몇 마디 하지도 않았는데 무단결근하네요.”
“크게 싸웠습니까?”
“아닙니다. 나한테 비비꼬는 말을 해 내가 욕을 좀 했더니 같이 욕을 하며 생 지랄을 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멱살을 쥐니 요 앙칼 맞은 것이 고래고래 악을 쓰고 덤벼들어 휴지를 입에 넣었죠. 그러더니 그날부터 안 나옵니다.”
“대리님도 잘못하셨네요. 남자도 아닌 여자에게 멱살을 잡고 입에다 휴지뭉치를 집어넣으면 되겠습니까? 완전 폭력이지요.”
“가, 강 대리가 그날 상황을 안 봐서 그래요. 눈에 불을 키고 악을 쓰며 달려드는데 그, 그럼 어쩌란 말입니까?”
설운동 대리는 이제 말까지 더듬었다.
설운동 대리도 이제 일이 커져가니 불안한 모양이었다.
“사과하세요. 잘못하면 두 분 다 위험합니다.”
“그, 그래서 내가 사과할 겸 집에도 찾아갔어요. 요즘 집에도 안 들어오고 행방불명이랍니다.”
“그럼 어쩌죠? 목요일 행사가 있는데? 이번 행사는 정부 고위층도 참여하기 때문에 참가자 인적사항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우선 신종화씨 인적사항이나 보내주세요. 아 참, 사진도 같이 보내주세요. 지금 바로 이메일로 보내주세요.”
“알겠습니다.”
설운동 대리는 알겠습니다 라고 말하는 것이 꼭 부하가 상사에게 말하듯이 하였다.
이제 강시혁에게 완전히 꼬리를 내리고 있는 것 같았다.
강시혁이 한마디 더 했다.
“목요일 행사에도 신종화 씨가 안 나온다면 비서실에서 정식 조사가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 그럼 어떻게 되는 건가요?”
“나는 비서실 직원으로 조사만 할뿐이지 판단은 위에서 합니다. 그것까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에효.”
설운동 대리의 떠는 모습이 눈에 들어오는 듯하였다.
설운동 대리도 문화재단에서 잘리게 된다면 더 좋은 직장으로 가기에는 힘든 사람으로 보였기 때문이었다.
30분 정도 지나자 설운동 대리가 신종화의 인적사항과 사진을 이메일로 보내주었다.
강시혁은 사진을 출력시켰다. 그리고 설운동 대리에게 다시 전화를 했다.
“신종화 씨 인적사항은 잘 받았습니다. 그런데 신종화 씨가 타고 다니는 차량번호도 알 수 있겠습니까?”
“기아 K7말입니까? 잠깐 기다리세요.”
설운동 대리가 신종화의 차량번호를 불러주었다.
강시혁은 신종화의 인적사항을 들고 삼각지에 있는 사설 탐정업 사무실로 갔다.
이태원 방범대장 사무실보다도 더 작은 사무실에 얼굴 새카만 50대가 앉아 있었다.
[제기랄, 탐정업을 하려면 일본 교바시 보디가드처럼 규모를 크게 해야지.]
“경찰서 지구대장님 소개로 왔습니다.”
“오, 그러세요? 이리 앉으시죠.”
남자가 의자를 권하며 자기 명함을 주었다.
“제가 여기 소장입니다.”
강시혁도 자기 명함을 주었다.
소장은 강시혁의 명함과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삼방그룹 비서실?”
“회사 직원이 무단결근하여 찾으려고 합니다. 회사에서 공식적으로 의뢰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 찾는 것이 우리 전문입니다. 우리는 정식 탐정업 등록업체입니다.”
“그래서 찾아왔습니다. 여기 이 사람 차량번호도 있습니다.”
“차량번호 알면 금방 찾습니다. 내일이라도 찾아드리죠.”
그러면서 소장은 신종화의 인적사항과 사진을 유심히 쳐다보았다.
“미인이네요.”
“뽀샵 사진입니다. 하지만 골격은 비슷합니다.”
“혹시?”
그러면서 소장은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었다.
아마 강시혁이 이 여자를 좋아해서 찾는 것으로 아는 것 같았다.
“회사에서 행사가 있습니다. 이 사람이 안 나오면 낭패를 봅니다. 그래서 급히 찾아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찾게 되면 바로 연락드리겠습니다.”
“빨리 찾으면 급행료 드리죠.”
“고맙습니다. 빨리 찾도록 하겠습니다.”
강시혁이 삼각지에 갔다가 돌아오니 오후 5시가 넘었다.
장명건설 주가가 얼마나 올랐나 보았다.
그런데 잘 올라가던 주식이 장 30분전을 앞두고 급격히 하락한 것으로 나왔다. 7% 정도 올라갔다가 지금은 오히려 7% 마이너스였다.
[음? 왜 이러지? 정말 가압류 소식이라도 들어왔나?]
그래서 얼른 공시 시스템에 들어가 보았다. 하지만 아무것도 올라온 것이 없었다.
“갑자기 마이너스가 나온걸 보니 누군가가 냄새를 맡고 주식을 팔았다는 이야기인데.....”
강시혁이 주식거래 사이트에 들어가 보았다.
시간외 거래현황을 살펴보았다. 시간외 전부 하한가였다.
“무언가 냄새가 나.”
아니나 다를까 10분 정도 지나자 공시가 하나 떴다. 예탁 유가증권 공유 지분 가압류 공시였다.
더 클릭을 해보았다.
홍승필 지분의 예탁 유가증권을 서울 지방법원에서 가압류 한다는 공시였다.
“내일 소액 주주들 곡소리 나겠군. 그런데 오늘 장 막판에 판 놈들은 누구야? 이놈들이 정말 꾼 같네. 이렇게 되면 시간외에서도 던지는 게 좋다고 생각하겠지.”
벌써 주식 토론방이 들끓기 시작했다.
“홍승필 지분의 가압류는 악재다. 내일 하한가는 뻔하다. 킥킥킥.”
“홍승필 이 자식은 삼방의 사위 아닌가? 그런데 왜 가압류까지 가도록 놔뒀지?”
“홍가 놈이 뽕을 하다가 빚을 진 모양이다.”
“삼방건설도 장명건설을 무리하게 인수하여 재무구조가 나쁘다더라. 삼방건설도 주가 흘러내리는걸 봐라.”
“내일 빠져나오는 건 지능 순이지. 잘못하면 삼방건설도 장명건설을 버릴 수가 있어.”
“이 주식 아직도 붙잡고 있는 놈들은 또 뭐야?”
강시혁은 내일부터는 소액주주들이 손해를 보고 파는 손절물량이 많이 나올 것으로 보았다. 총알(주식 투자할 돈)은 충분히 있으니 조용히 이 주식을 사 모으기로 하였다. 왜냐하면 홍승필 지분에 대한 가압류는 쇼이기 때문이었다.
강시혁은 주식 사이트를 닫고 후배 변상철에게 전화를 했다.
“지금 포천이지?”
“퇴근중이야.”
“이문동 집에서 포천 침대공장까지 출퇴근 하냐?”
“기숙사 있는데 못 자겠어. 그래서 지금은 집에서 다녀.”
“그래? 그럼 포천에서 너의 집까지는 얼마나 걸리지?”
“얼마 안 걸려. 요즘은 양주와 포천이 터널이 뚫려 양주역까지 금방 와. 그래서 승용차는 양주역에 놔두고 지하철 타고 오면 1시간 20분 정도면 와.”
“내일이나 모레쯤 좀 일찍 퇴근 후 여기에 올수 있지?”
“무슨 일인데?”
“일은 무슨 일. 술 먹자는 말이지.”
“그런데 꼭 내일이나 모레야만 하나?”
“아, 문화재단 여직원 집에 잠깐 들려 미술품만 가져오고 술 마시면 돼.”
“일당 준다면 가지.”
“암, 주지.”
강시혁은 신종화를 찾게 되면 혼자 가는 것 보다는 변상철과 같이 가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잘못하면 저항을 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