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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녀의 두 번째 남편-132화 (132/199)

132화 큐레이터의 잠적 (1)

(132)

강시혁은 즉각 신종화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신호는 가지만 전화를 안 받았다. 30분이 지나서 또 전화를 해보았지만 여전히 신종화는 전화를 안 받았다.

강시혁은 점점 불안감을 느꼈다.

[이거 진짜 어떻게 되는 거야? 몇 억짜리 그림을 가지고 튀었다면 나는 어떻게 되는 거지? 나는 이제 망한 건가?]

그동안 여기까지 쌓아올린 공이 하루아침에 무너지는 소리를 듣는 것 같았다.

[아니야. 지금 신종화는 목욕을 하거나 아니면 스마트폰을 깜박 집에 두고 산책을 나간 것이 틀림없어. 신종화 같이 똑똑하고 많이 배운 여자가 그럴 리가 없어.]

강시혁은 스스로 자기를 이렇게 위안했지만 떨쳐오는 불안감을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었다.

그런데 전화도 오지 않았다.

자기가 두 번이나 전화를 했으면 전화 온 흔적이 있어서 회신 전화를 해줄 텐데 그런 것도 없었다.

이영남이 와서 저녁밥을 먹으로 가자고 해도 넋 나간 사람처럼 앉아만 있었다.

“형! 뭐해? 옛날 애인 생각하는 거야? 왜 이렇게 멍만 때리고 있어?”

“응? 가, 가지.”

강시혁과 이영남은 밖으로 나왔다.

강시혁 말했다.

“우리 멀리 가지 말고 저기 보이는 청화아파트 앞에 있는 원미정으로 가지. 거기서 뚝배기 불고기나 먹을까?”

“내가 등심구이를 살게.”

[재벌 아들이니까 등심구이 정도 사는 건 아무것도 아니겠지.]

“좋아.”

그래서 둘이 원미정 식당으로 가서 등심구이를 시켜놓고 먹었다.

먹는 중간에도 강시혁은 혹시 신종화에게서 무슨 연락이 없을까 하고 스마트폰을 자주 보았다.

그런데 아무것도 없었다.

[앙큼한 년 같으니!]

이영남이 술을 한잔 따라주었다.

강시혁은 주는 대로 받아마셨다.

“형! 무슨 고민 있어?”

“아, 아니. 없어.“

그러면서 강시혁은 술을 계속 받아마셨다.

오늘은 마음이 불안해 술에 취해야만 할 것 같았다. 이영남도 오늘은 술을 잘 마셨다.

강시혁은 이영남을 나인원 아파트 후문이 있는 곳 까지 배웅해 주겠다고 하였다.

이태원역에서 한강진역 쪽으로 한 정거장만 가는 거리라 운동 삼아 걷기도 괜찮았다. 저녁을 먹고 소화를 시키기엔 딱 좋았다.

또. 이영남은 이태원 거리를 강시혁과 같이 다니는 것을 좋아하였다.

강시혁은 경비반장으로 회사에 들어왔던 사람이고 지금은 비서실 대리이지만 주 업무가 이영진 상무의 경호원이나 다름없는 사람이다. 그래서 이영남은 강시혁이 운동을 많이 하고 싸움을 잘하는 사람으로 여겼다.

이영남은 강시혁과 함께 밖에 나오면 든든했다.

그래서 자기보다 목 하나는 더 키가 큰 강시혁을 쳐다보면서 언제나 생글거렸다.

둘이 걷다보니 어느새 한강진역 근방의 폭스바겐 매장이 있는 곳 까지 왔다.

“형, 여기까지 왔으니 됐어. 이제 들어가.”

“아니, 후문에 들어가는 것 보고 갈게.”

강시혁은 이영남이 손을 흔들며 후문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영빈관으로 향했다.

오다가 대로변에 있는 스타벅스 앞에서 신종화에게 전화를 걸어보았다.

신호가 계속 갔지만 역시 전화를 받지 않았다.

강시혁은 문자를 보냈다.

[세 번이나 전화를 했지만 연결이 안 되는군요. 급히 나한테 전화 주기 바랍니다.]

욕이라도 퍼붓는 문자를 보내려고 하다가 그건 참았다.

아직은 확실한 것을 모르기 때문이었다.

[혹시 그림을 매각하고 애인하고 둘이 외국으로 튄 것은 아닐까? 내가 경찰에 신고하면 어떻게 되는 거지? 나는 회사에서 잘리겠지만 신종화는 그러면 어떻게 되는 걸까? 한국에 영원히 못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강시혁은 별의별 생각이 다 났다.

문화재단의 사무국장에게 전화를 걸어보기로 했다. 문화재단에서는 사무국장이 그래도 가장 중립적인 인물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밤늦게 전화를 걸어 신종화가 가져간 그림을 물어보기가 난감했다.

잘못하면 신종화가 확실한 범죄 행위자가 되어 일이 커지게 되기 때문이었다.

[해결을 해도 둘이 해결하는 것이 낫겠지.]

그래서 업무가 시작되는 내일 오전에 전화를 걸어 신종화에 대하여 간접적으로 슬며시 물어보기로 하였다.

다음날이 되었다.

출근하자마자 사무국장에게 전화하는 것도 이상할 것 같아 10시쯤 전화를 했다.

“사무국장님! 안녕하십니까? 강시혁입니다.”

“어머! 이게 누구야? 강 반장님, 아니 강 대리님 아니세요?”

“자주 연락 못 드려 미안합니다.”

“연락은요. 비서실 일이 바쁠 텐데요. 간간히 강 대리님 소식은 듣고 있습니다. 평이 좋던데요?”

“그래요?”

“강 대리님이 공채 직원이 아니라서 혹시 왕따라도 당하는 것이 아닌 가 했더니 그게 아니었습니다. 역시 강 대리님이었습니다.”

“비서실 직원들하고 따로 떨어져 근무하니까 그런 것 같습니다. 관장님도 안녕하시죠?"

"관장님은 요즘 잘 나가십니다. 공기업 부사장으로 계신 남편 되시는 분이 사장이 되었답니다."

"오, 그래요? 축하할 일이네요."

[잘 나가는 사람은 계속 잘 나가네.]

"언제 한번 문화재단에 놀러 와요."

"그런데 요즘 설운동 대리하고 큐레이터 신종화 씨는 사이가 좋아졌나요? 제가 있을 때는 두 분이 티격태격 했었는데.”

“아휴, 말 말아요. 내가 두 사람 때문에 속상해 죽겠어요. 지난주에 신종화와 설운동 대리가 크게 싸웠어요. 사무실서 서로 언성이 오고가고 서류도 집어던지고 그랬어요.”

“오, 그랬어요?”

“그래서 지금 신종화가 사표 던지고 며칠째 안 나오고 있어요.”

“예엣?”

강시혁은 일부러 놀라는 척을 했다.

“그러니 여기 일이 잘 안돌아가고 있어요.”

“그, 그럼 사표가 수리되었습니까?”

“관장님이 화가 나서 설 대리와 신종화 두 사람 다 사표를 받으라고 했어요. 하지만 동시에 두 사람을 정리하면 일이 안돌아간다고 내가 말렸어요.”

“잘 하셨네요. 두 사람 다 자르면 안 되겠지요. 그래도 문화재단의 핵심 인물들인데.”

“그런데 신종화는 지금 몸이 아프다고 며칠째 안 나오고 있어요.”

“그래요? 그렇다면 저도 연락을 해봐야겠네요.”

“연락하지 마세요. 걔 지금 전화 안 받을 거예요. 전화 다 꺼놨어요.“

“그럼 어떻게 연락을 주고받습니까?”

“지금 나만 걔 엄마 전화로 통화하고 있어요. 참 그저께 토요일엔 신종화가 전화가 왔는데 강 대리님이 문화재단에 한번 놀러오지 않았냐고 묻던데요? 그래도 강 대리님이 생각나는 모양이에요. 호호호.”

[내가 문화재단에 놀러오지 않았냐고? 이런 죽일 년을 보았나!]

강시혁은 흥분을 가라앉히고 웃으며 말했다.

“신종화 씨가 그림에 대한 안목은 높지요. 열정도 있고요. 언젠가 영빈관에 보관된 작고하신 유명작가 K화가의 대작 그림을 감성하러 온다고 했는데 안 오네요.”

“그 작품은 우리가 어렵사리 구한 작품입니다. 지금 영빈관에 잘 보관되어 있지요? 관리 잘하셔야 할 겁니다.”

[영빈관에 잘 보관되어 있냐고? 신종화 이년이 그림을 가지고 잠적한 것이 틀림없구나! 그런데 이 개 같은 년이 자기가 망하는 것은 좋은데 왜 나까지 망하게 만드나!]

강시혁이 웃으며 말했다.

“예 관리 잘하고 있습니다.”

“신종화와 통화가 되면 강 대리님이 안부 전하더라고 말해드리죠.”

“녜, 고맙습니다.”

강시혁은 전화를 끊고 나니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림 갖고 튀었구나. 애니메이션인가 뭔가를 전공했다는 그 남친이란 녀석과 공모해서 튀었구나!]

강시혁은 이걸 어떻게 처리할까하고 고민했다.

지금 경찰서에 들어가 고소하면 문화재단은 물론 삼방그룹이 발칵 뒤집힐 것이 뻔했다. 자기는 미술품을 함부로 내준 관리 소홀로 사표를 강요받을지도 몰랐다,

그림 값이 얼마인지는 모르지만 작고한 유명 원로화가의 작품으로 수억 원 이상 한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당연히 언론에도 대서특필 보도가 될 것이고 삼방그룹의 관리방식이 도마 위에 오를 것이 분명했다.

강시혁은 미치고 환장할 것 같았다.

아무도 다치지 않고 해결할 방법이 없나 생각해보았다. 하지만 뾰족한 방법이 없었다.

누구에게 자문을 받아보려고 해도 할 수도 없었다. 소문이 나기 때문이었다.

혼자 끙끙 앓아야만 했다.

강시혁은 일단 문자를 한 번 더 보내기로 했다.

신종화가 전화는 안 받아도 문자는 보지 않겠나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큐레이터님.

전화도 받지 않는군요. 확인해본 결과 영빈관에서 반출한 대작 그림 두 점은 문화재단 갤러리로 옮기지 않고 큐레이터님이 은닉한 상태군요.

사흘간 시간을 드리겠습니다. 그림을 이 이간 안에 가져오지 않으면 형사 고발하겠습니다. 그렇게 되면 저도 그림을 내준 과실이 있어 상처를 받겠지만 큐레이터님은 사회에서 영원히 매장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림 반출 사실은 현재 저와 큐레이터님 밖에 모릅니다. 원만한 해결을 원합니다.]

강시혁은 신종화의 행동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좁은 나라에서 그림을 가지고 튀면 어디로 갈 것이며 형사문제가 된다면 자기는 미술계에서 매장되는 것을 모르지 않을 텐데 이상했다. 통 이해가 안 갔다.

[혹시 애니메이션 한다는 그 남친과 뽕을 하는 것은 아니겠지?]

강시혁은 신종화 문제는 일단 사흘만 기다려보기로 했다.

그래도 아무 연락이 없다면 자기도 어쩔 수 없이 경찰에 고소를 하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리고 자기를 많이 걱정해주고 있는 이영진 상무에게는 고소하기 전에 귀띔은 해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강시혁은 오후엔 장명건설 주식을 조금씩 사보기로 했다.

그런데 장면건설 주가는 지난주 금요일보다 3%나 오르고 거래량도 늘어난 상태였다.

바닥에서 거래량도 없던 주식이 이제 거래량이 조금씩 살아나고 있는 것이었다.

[이거 이러다가 주식이 그냥 올라가는 것 아닌가? 투자자들이 바닥으로 인식하고 사들이는 모양인데 나도 좀 많이 사볼까?]

그런데 아무래도 홍 사장 쪽이 걸렸다. 홍 사장 쪽이 조용할 리는 없기 때문이었다.

“이건 떡밥이다!”

거래량이 늘어나야 주식을 사고파는데 유리하다.

그래서 거래량이 조금씩 살아나도록 떡밥을 던지는 것으로 보았다. 그래서 강시혁도 입질 정도의 수준이지 주식을 많이 사지는 않았다.

주식 카페 토론장도 활발해지는 것 같았다.

“더 이상 밀릴 것도 없다. 이제 조금씩 사모아야 한다.”

“차트 봐라. 이제 추세선이 우상향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다.”

“타워크레인 위에서 농성도 이제 끝날 때도 됐다. 그러면 주가 올라가는 일만 남았다.”

“농성만 끝나면 삼방건설에서 공사 하나 떼어주지 않겠냐?”

상상은 자유다. 아무것도 모르는 소액 투자가들의 상상력까지 뭐라고 할 수는 없었다.

강시혁은 조만간 홍 사장이 가압류를 할 것으로 보았다. 그러면 지금 산 사람들은 손절해야만 할 것이다.

홍 사장은 손절물량을 쓸어 담겠다는 의사가 분명해 보였다.

[그래, 거래량 제발 살아 나거라. 그래야 손절물량 나오면 내가 받아먹을 수 있다. 홍가하고 나누어 받아먹으면 된다.]

강시혁은 이날 저녁 잠자리에 들기 전에 카톡을 열어보았다.

카톡 보낸 것에 대한 신종화의 답신은 없었다.

신종화에게 또 한 번 전화를 할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이날밤 강시혁은 악몽을 꾸었다.

걱정거리가 많으면 악몽이 꾸어지는 모양이었다.

꿈에 신종화와 그의 남친이 미술품 절취 제목으로 경찰에 체포되었다.

그리고 강시혁은 이것을 내부에서 방조한 협의로 역시 경찰에 체포되는 꿈을 꾸었다.

기자들이 몰려오고 회장의 성난 얼굴도 보이고 이영진 상무의 실망하는 얼굴도 보였다. 이영남이 형이 그럴 줄 몰랐다고 울부짖는 모습도 보였다.

그런데 더 웃기는 것은 다음날 신문에 나온 기사 때문이었다.

기사에는 신종화의 뽀샵 얼굴이 나오고 그의 남친 사진도 나왔다.

남친은 눈썹이 짙은 잘생긴 젊은이로 신종화보다 세 살 어리다고 나와 있었다.

그리고 강시혁의 사진도 그 밑에 나왔다.

사진은 대리 뛸 때의 사진이라 옷도 후줄구레 했고 얼굴은 영락없는 쪼다로 나왔다.

또, 강시혁은 신종화에게 가스라이팅을 당해 신종화가 조정하는 대로 움직이는 사람이라고 했다.

실제 그는 문화재단 소속시절 신종화보다 나이는 몇 살 많지만 그녀의 말을 잘 듣는 부하였었다고 나왔다.

기자가 누구인지는 몰라도 한술 더 뜬 기사도 내보냈다.

강시혁은 신종화의 지시에 따라 몸에 문신도 했으며 신종화가 원하는 머리 스타일을 했으며 월급을 타도 신종화에게 모두 주고 자기는 영빈관 지하실에서 라면이나 끓여먹고 지냈다고 나왔다.

강시혁이 잠에서 깨었다.

[참, 더러운 꿈을 꾸었네. 에잇! 퉤퉤! 내가 왜 신종화한테 가스라이팅을 당해?]

강시혁은 이제 하루가 지났으니 이틀만 지나면 무조건 신종화와 그의 남친을 잡아넣으리라고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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