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녀의 두 번째 남편-129화 (129/199)

129화 기공식 갔다 오는 날 (1)

(129)

강시혁은 새소리에 잠이 깨었다.

이곳 영빈관은 정원에 나무들이 있어 새들이 자주 몰려왔다. 특히 아침이면 더욱 몰려와 지저귀었다.

강시혁은 처음에 새 모이를 자주 주었었다. 그러다보니 이놈의 새들이 자기 친구들을 불러 모았는지 숫자가 더 많아졌다.

와서 지저귀는 것은 좋은데 똥을 많이 싸는 것이 골칫거리였다. 여기저기 똥을 싸놓는데 어떤 것은 잘 지워지지도 않았다. 그래서 요즘은 모이를 주지 않았다.

새들은 오늘도 밥을 달라고 아우성대지만 강시혁은 모른 채 하고 청소만 했다.

오늘은 오전 10시까지 이영진 상무 댁까지 가야한다.

천안에 있는 대학교 기공식에 가야하기 때문이었다.

강시혁은 아침을 일찍 먹고 양치질에 가글까지 했다. 이영진 상무를 모시는데 아무쪼록 깔끔한 인상을 주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머리도 잘 빗고 눈썹도 아이브로우 펜슬로 좀 더 진하게 그렸다.

세탁소에서 새로 찾아 논 흰 와이셔츠를 입고 넥타이를 매었다. 명함도 여러 장 챙겼다. 날이 추우므로 파커도 챙겼다.

강시혁이 거울에 자기 얼굴을 비추어 보았다.

[한자리 해먹게 생긴 인물이야. 지금 돈이 없고 지하실 생활을 하지만 언젠가 나도 해 뜰 날이 있을 거야. 암. 물론이고말고.]

강시혁은 차고로 내려갔다.

벤츠 마이바흐도 어제 손세차를 했기 때문에 아주 깨끗했다. 이 차를 몰고 간다면 기공식장의 내외귀빈 여러분들도 틀림없이 우러러볼 것으로 믿었다.

강시혁은 시동을 걸고 선 그라스를 끼었다.

강시혁이 이영진 상무 집 앞으로 갔다.

잠시 후 대문이 열리며 사람이 나오는데 이영진 상무인줄 알았더니 금산 아줌마였다.

“안녕하세요? 이모님!”

“와, 이게 누구야? 사람이 이렇게 달라질 수 있나? 연예인 같네.”

“연예인이라뇨. 아직도 영빈관 지킴이인데요.”

“아녀. 달라졌어. 허물 벗은 것 같아. 시상에! 시상에!”

그러면서 금산 아줌마는 강시혁의 온몸을 훑어보았다.

“하하, 허물을 벗다니요. 제가 무슨 허물 벗는 곤충인가요?”

“관리 사무직이 되었다더니 이젠 달라졌어. 본인은 모르겠지만 달라졌어.”

달라지긴 했을 수도 있었다.

대리 뛸 때보다는 요즘 음식은 잘 먹었다. 울산에 가서 고래 고기까지 먹고 오지 않았던가!

그리고 얼굴에 크림도 자주 바르고 공기 좋은 영빈관에서 생활해서 그런 것 같았다.

이영진 상무가 왔다. 흰색 밍크코트를 입고 왔다.

원래 미인인데다가 고급 옷을 입어서 그런지 더 부티가 났다.

한눈에 봐도 부유한 집안의 여식같이 보였다.

더군다나 이영진 상무는 오늘따라 옅은 화장까지 했다. 표정도 상당히 밝아보였다.

강시혁이 정중히 인사하고 뒷문을 열어주었다.

차가 이태원을 뻐져 나와 한남대로로 들어섰다.

이영진 상무는 뒷좌석에서 계속 스마트폰을 보았다. 카톡을 보는지 아니면 무슨 동영상을 보는지 화면 스크롤을 하면서 보고 있었다.

차가 경부고속도로 톨게이트를 지나자 이영진 상무는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차창 밖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강시혁이 운전하는 운전대 위의 손을 보았다.

“이제 붕대를 풀르셨군요.”

“예. 이제 다 나았습니다. 샤워 같은걸 해도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굽혔다 폈다가 가능해요?”

“조금 부자연스럽지만 가능합니다.”

“흉터 많이 남았죠?”

“자세히 보면 모르지만 그냥 얼핏 봐서는 잘 모릅니다.”

그러면서 강시혁은 앞만 쳐다본 채 다쳤던 손만 들어 올려 보았다.

접합한 손은 두께가 더 두터운 것 같고 투박했다. 완벽하게 성한 손가락의 모습은 아니었다. 이영진 상무가 작은 한숨을 쉬었다.

“미안해요.”

“미안하긴요. 제가 그날 대처를 잘못해서 이렇게 된 건데요.”

“비서실 일은.... 힘들지 않나요?”

“아닙니다. 재미있습니다.”

“그동안 강 대리님이 많은 일을 하신 것 같아요. 가와라 흥업의 가압류 철회서를 받아주셨고 또 목요일엔 울산 주총에 참석하셔서 활약을 했단 이야기도 들었어요. 큰일을 하셔서 제가 회사를 대표해 고맙다는 말을 드립니다.“

“큰일을 한건 아닙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죠. 울산 주총도 가서 찬동합니다 하는 소리만 몇 번 외치고 온 것뿐입니다.”

“강 대리님처럼 그렇게 외치고 오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주총을 진행하는 의장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찬동 소리를 외쳐야 하는데 순간 타이밍을 놓치는 직원들도 많았어요.”

“그렇습니까?“

[최 이사가 까칠한 면은 있는 것 같은데 보고는 제대로 하는 사람 같군.]

“그런데 회사는 아무 일이 없는데 주식시장에서 주가를 가지고 장난을 치는 세력들이 있어 항상 골치를 썩이고 있습니다. 주가 떨어지면 소액주주들은 회사에 무슨 일이 있는지 오해를 하지요.”

“정말 주가를 가지고 장난치는 세력은 금감원 같은데서 페널티를 주어야 합니다. 아니, 형사입건 해야 합니다.”

“회장님이 늘 그런 말씀을 하셨어요.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회사가 잘되어 정부에 법인세 잘 내고 주주들에게 배당 잘하는 것이 첫 번째라고 하셨지요.”

“맞는 말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고용을 많이 해 일반 국민들에게 일자리를 많이 제공해줘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산돼지같이 생긴 양반이 말은 옳은 말을 한 것 같네.]

“회장님은 훌륭한 생각을 가지고 계신 겁니다. 그것이 바로 기업보국이죠.”

이 말에 이영진 상무가 미소를 지었다.

상큼한 그녀의 미소에 강시혁은 또 가슴이 울렁거렸다.

[아아, 이렇게 아름다운 여인을 홍 사장은 왜 놓쳤을까? 부부는 서로 지켜야 할 것이 있는데 홍 사장은 이영진 상무를 연예인 K양을 대하듯이 한 것이 틀림없어. 뽕을 나누어주고 잠자리를 같이 하자고하면 정상적인 여자는 놀랄 것이 아닌가!]

강시혁은 홍 사장이 오늘도 아마 오사카의 어느 음침한 곳에서 뽕을 하고 있으리라고 보았다.

K양과 같은 여자들과 알몸으로 뽕에 취해 흐느적거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자들은 갖출 것은 다 갖추었으니 더 새로운 쾌락을 추구하려고 약에 손을 대는 거겠지. 그래서 사회 지도층인사들의 자녀들이 요즘 약물중독자가 늘어나고 있다고 하지 않는가!]

차는 계속 달렸다.

벌써 안성 인터체인지를 지나 망향휴게소를 앞두고 있었다.

강시혁이 룸미러를 보며 말했다.

“이제 천안이 얼마 안 남았습니다. 화장실에서 용무를 보고가시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좋아요. 음료수도 하나 사먹고 가지요.”

차가 휴게소로 들어왔다.

이영진 상무도 행사장에서 화장실 가는 것 보다 이곳에서 일을 처리하고 가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강시혁은 여자 화장실 앞에서 기다려주었다.

이영진 상무는 화장실을 나와 휴게소 매점 쪽으로 갔다.

“음료수 같은 것은 제가 사오죠. 의자에 앉아계시겠습니까?”

“아녜요. 제가 가서 사지요.”

이영진 상무는 캔 커피 두 개와 딸기 우유 두 개를 사왔다.

그리고 강시혁에도 나누어주었다.

“우유는 먹고 갈까요?”

이영진 상무는 의자에 앉아 딸기 우유를 마시기 시작했다.

재벌이라도 마시는 것은 강시혁이 마시는 것과 똑 같았다. 강시혁도 반대편 의자에 앉아 같이 딸기 우유를 마셨다.

이영진 상무가 스마트폰을 보다가 우유를 엎질렀다. 우유가 밍크코트에 묻었다.

밍크코트에 묻은 우유는 다시 흘러내려 이영진 상무가 신은 구두 위에 떨어졌다.

강시혁이 황급히 자기 손수건을 꺼내 밍크코트에 뭍은 우유를 닦아주었다. 그리고 구두에 뭍은 뽀얀 우유도 닦아주었다.

“어머나! 손수건을 가지고 구두를 닦으시네!”

“괜찮습니다. 저는 오늘 상무님을 모시기 위해 나온 사람입니다. 또 경호도 하기 위해서 나온 사람입니다.”

“그래도 미안스럽게!“

그러면서도 이영진 상무는 싫어하는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강시혁은 우유 젖은 손수건을 곱게 접어 주머니에 넣으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심은혜에게도 이렇게 한 적이 있었던가? 나는 한 번도 내 손수건을 꺼내 심은혜의 구두는 물론 옷에 뭍은 것을 닦아준 적이 없었다. 내가 이렇게 심은혜에게도 살갑게 대해줬다면 심은혜가 고무신을 거꾸로 신지는 않았었겠지.]

강시혁은 심은혜와 갈라선 것에 대해 다시 한 번 아쉬움이 남았다.

옆에 앉은 할머니가 이런 강시혁의 모습을 보고 한마디 했다.

“둘이 부부요?”

이 말에 이영진 상무의 얼굴에 당황하는 빛이 뚜렷했다.

당황하기는 강시혁도 마찬가지였다.

“아닙니다. 회사 직원입니다.”

“요즘은 회사 직원끼리도 이렇게 살갑게 대해주는군. 난 두 사람이 부부인줄 알았네. 얼굴이 닮았어.”

[얼굴이 닮다니! 이 할머니가 노망이 드셨나? 내가 어째서 저런 미인과 닮았단 말인가!]

이영진 상무도 듣기 민망한지 자리에서 일어섰다.

“가시죠.”

“네, 상무님!”

이영진 상무가 벤츠 앞으로 왔다.

강시혁이 얼른 리모컨을 작동시켜 문 잠금 장치를 풀었다. 그리고 문을 열어주며 차에 올라가라고 안내를 해주었다. 꼭 공주님을 위하여 롱소드를 옆에 찬 충성스러운 중세 궁성 기사가 안내를 해주는 것 같았다.

차가 천안 IC를 지나 XX대학교로 갔다.

학교 입구에는 ‘祝 생활관 기공식’ 이라는 현수막이 크게 걸려 있었다.

나무가 아름다운 캠퍼스 안으로 들어가자 행사 도우미들이 벌써 나와 차량을 안내하고 있었다.

도우미들은 모두 양복을 입고 흰 장갑을 끼고 차량을 유도하고 있었다.

학생들인지, 아니면 교직원들인지는 몰라도 젊은 사람들이 나와서 안내하고 있었다.

강시혁이 룸미러를 쳐다보며 말했다.

“상무님. 저는 어떻게 할까요? 상무님이 행사에 참석하시면 저는 주차장에서 대기하면 되겠습니까? 아니면 뒤를 따라다니며 경호를 해야 되는지요?”

“강 대리님은 기사가 아닙니다. 비서실 직원이죠. 당연히 경호해 주세요. 일본에 가셔서도 그렇게 했잖아요?”

"알겠습니다. 밀착 경호는 아니더라도 삼보 정도의 거리에서 경호 하겠습니다.“

강시혁은 비상등을 깜박이며 들어갔다.

안내하는 사람들은 벤츠 마이바흐가 들어오자 VIP차량이 온줄 알고 제일 좋은 자리로 안내했다. 그리고 차 안에서 누가 내리는 가 전부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오늘 여기에 온 VIP들은 지역사회의 기관장들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나이들이 지긋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벤츠에서 내리는 사람은 흰 밍크코트를 입은 새파랗게 젊은 여성이 아닌가! 행사장에 나온 모든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기 충분했다.

강시혁이 선 그라스를 쓴 채 뒤에서 따랐다.

강시혁은 딱 벌어진 어깨에 머리도 깍두기머리에 선 그라스를 껴서 그런지 정말 경호원처럼 보였다.

더구나 강시혁은 이 여자에게 접근하면 안 된다는 식으로 고개를 좌우로 돌려가며 경계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삼방그룹의 이영진이다!”

모든 사람들이 호기심을 가지고 쳐다보았다.

이영진은 삼방그룹의 후계자로 가끔 매스컴에 나오는 인물이었다. 연예인보다도 더 유명세를 타고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런지 행사장 도우미는 물론 외부에서 온 사람들도 이영진을 열심히 쳐다보았다.

50대 신사 한 사람이 달려왔다.

젊은 이영진 상무에게 공손히 인사하며 말했다.

“어서 오십시오. 삼방그룹의 이영진 상무님이시죠? XX대학교의 기획 행정처장입니다. 총장님은 내외귀빈 대기실에 계십니다.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그러면서 처장이라는 사람은 강시혁을 흘깃 쳐다보았다. 선 그라스를 낀 체격 좋은 남자가 경호원인 것 같아 쳐다보는 것 같았다.

그러나 강시혁은 선그라스를 끼고 있어서 표정을 읽을 수가 없었다.

이영진 상무와 강시혁은 VIP대기실로 이동하였다.

대기실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와 있었다. 지역의 기관장들이 대부분이었다.

경찰 고위간부 제복을 입고 있는 사람도 보였다. 강시혁이 쳐다보니 총경 계급장을 단 사람이었다. 지역의 경찰서장으로 보였다.

머리가 홀딱 벗겨진 60대가 이영진 상무에게 손을 내밀며 반갑게 맞이했다.

“오, 이영진 상무님! 먼 길 오셨습니다.”

“총장님! 안녕하세요?”

총장이 모여있던 귀빈들을 한사람씩 소개했다.

그럴 때 마다 이영진 상무는 미소로 고개만 까닥 해주었다. 악수는 하지 않았다.

서장이라는 사람은 이영진 상무에게 거수경례를 했다.

“이 지역 경찰서장입니다. 반갑습니다.”

기공식이 시작되었다.

VIP들은 모두 행사장으로 이동했다.

행사장 광장엔 플라스틱 의자가 마련되어 있었다.

초겨울에 들어가는 계절이지만 한낮의 해가 떠서 그런지 그렇게 춥지는 않았다.

VIP들은 기공식 글씨가 써져있는 현판 앞에 일반 참석자들을 향해 마주보고 앉았다.

이영진 상무 뒷좌석에 강시혁이 조용히 앉았다.

식을 알리는 사회자의 멘트가 울렸다.

사회를 보는 사람은 이 대학교의 기획 행정처장이었다.

“지금부터 XX대학교 생활관 기공식을 거행하겠습니다. 국민의례는 생략하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총장님의 인사말씀과 축사가 있겠습니다.”

총장이 나와 인사말을 하고 이어 축사를 했다.

축사에는 삼방그룹이 사학발전에 뜻을 갖고 거액을 희사하여 아름다운 생활관을 갖게 되었다고 했다.

이어 사회자가 앞줄 내외 귀빈석에 앉은 사람들을 한분 한분씩 소개했다.

이영진 상무 소개차례가 되었다. 사회자의 멘트가 행사장을 울렸다.

“이분은 제가 소개를 하지 않더라도 여러분들이 너무도 잘 아실 겁니다. 삼방그룹의 이영진 상무님께서 오셨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요란하게 박수를 치며 우우 하는 함성까지 질렀다.

오늘의 주인공은 역시 이영진 상무였다.

이영진 상무는 자리에서 일어나 좌측에 한번, 우측에 한번 크게 허리 굽혀 인사를 하였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사회자는 VIP들을 모두 소개했지만 강시혁은 소개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소개하지 않은 선 그라스 낀 사람이 누구인가하고 궁금해 여겼다. 경호원인가? 아니면 안기부에서 파견 나온 사람인가? 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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