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6화 주총 참석 (1)
(126)
강시혁은 신종화의 남친이 대리 기사라는데 동병상린의 아픔을 느꼈다.
대학의 시간강사라면 나름대로 많이 배운 사람이다.
그런데 대리 기사라니 얼마나 고생을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남친은 사고가 건전하고 의지가 굳셀 것 같습니다. 시간 강사하며 대리 운전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틀림없이 성공할 겁니다.”
“됐어요. 좋은 말로 위로해주는 것 고맙게 받아들일게요.”
“남친은 전공이 같은 서양화 비구상인가요?”
“에니메이션 쪽이에요. 취업은 그쪽이 잘되어서 한 건데....”
“그리고 사표를 냈지 아직 수리가 된 것은 아니죠?”
“수리가 되겠죠.”
“관장님은 수리를 안 할 겁니다. 사표의 원인이 설운동 대리와 불화에 의한 것이라면 더욱 그럴 것입니다.”
“어떻게 그걸 알죠?”
“관장님은 선민의식이 대단한 분입니다. 하이소사이어티가 아니면 다 그렇고 그런 사람으로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니 그렇고 그런 사람의 어느 한편의 손을 들어주지는 않는다는 말입니다.”
“설운동 대리의 손도 안 들어주고 내 손도 안 들어 준다는 말이군요.”
“그렇습니다.“
“강 대리님 이제 보니 대단하시네요. 사람을 꿰뚫어보는 천리안의 소유자네요. 역시 삼방그룹 비서실의 대리로 간 것이 그냥 간 것은 아닌 것 같네요.”
“나는 그냥 상식적인 사람일 뿐입니다. 언제나 상식적으로 판단하면 그게 맞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강 대리님의 새로운 면을 보았네요. 비교하는 것은 나쁜 일이지만 설운동 대리와는 하늘과 땅 사이네요.”
“나는 사표가 반려되고 큐레이터님이 계속해서 문화재단에 남아주시는 것을 원합니다. 언젠가 관장님이 한번 되셔야지요.”
이 말에 신종화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
다음날이 되었다.
강시혁은 비서실로 보낼 주간업무 보고서를 쓰고 있었다.
이번의 활동은 A신문사 회장을 면담하고 가와라 증권의 가압류 철회를 중점적으로 썼다.
“이렇게 장황하게 써야 내가 놀지 않고 무언가 일을 하는 사람처럼 보이겠지.“
주간 업무보고를 절반도 쓰지 않았는데 비서실 최 이사가 전화를 했다.
“강 대리! 내일 모레 목요일 어디 가면 안 돼요.”
“무슨 일이 있습니까?”
“삼방에너지 본사에서 열리는 주총에 참석 좀 해야겠소.”
“주총요? 지금은 주총 시즌이 아닌 것 같은데......”
“임시 주총이요. 사외이사 선임 건이 있고 사채발행 대표이사 위임 건이 있어요.”
“아, 그럼 제가 을지로 본사로 가면 되겠습니까?”
“당신 상방그룹 비서실 대리 맞아?”
“예?”
“삼방에너지 본사가 울산에 있는 것 몰라? 대리면 초급 간부인데 계열사 소재지도 모르다니 말이 되나?”
“죄, 죄송합니다. 비서실로 온지 얼마 안 되어서.”
“그럼 다른 동료들에게라도 물어야지. 내 말이 틀렸소?”
“아, 아닙니다. 맞습니다.‘
“삼방에너지 홈페이지에 들어가 봐요. 거기 공지 란에 임시 주총에 관련된 내용이 있을 거요. 금감원 전자공시 사이트에도 공지가 떴으니 한번 살펴봐요.”
“알겠습니다. 이사님.”
“이번 사외이사는 회장님의 아드님인 이영남 씨를 선임하고 보수 한도도 정하는 회의요. 사채발행은 해외공장 확장 건이요.”
“아, 그렇습니까? 그럼 참석만 하면 됩니까?”
“쯧쯧쯧.”
“예?”
“가서 부처님처럼 앉아만 있으면 뭘 해. 떠들어야지!”
“떠들다니요?”
"아휴, 내가 이런 벽창호를 두고 일을 하려니 미치겠네. 옆에 있다면 조인트를 콱!“
“죄송합니다. 이사님.”
“거기 가면 주주들이 많이 참석했을 거요. 요즘 주가가 폭락이라 주주들 속이 부글부글 하고 있으니까 반대의견이 나올지 몰라요. 그러니 사회자가 안건 통과의 가부를 물으면 재빨리 목소리 높여 찬성을 외치란 말이요.”
“아!”
“다른 사람 발언하기 전에 사회자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손들고 의장을 부르며 찬동을 외치란 말이요. 강당이 떠나가게 말이요.”
[그럼 내가 이야기만 듣던 총회꾼이 되는 건가?]
그렇다면 목소리 큰 변상철도 데려갈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나 변상철이나 주총의 회의진행을 한 번도 구경을 못해봤기 때문이었다.
“저, 이사님! 제가 아는 사람 중에서 주총에 다니며 전문적으로 일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목소리 또한 커서 별명이 변울대 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같이 가도 되겠습니까?”
“좋지.”
“일당도 줍니까?”
“당신은 안 되지만 그 사람은 줄 수도 있지.”
“그럼 알겠습니다.”
“같이 가는 사람은 신원이 확실하고 믿을만한 사람이요?”
“그건 제가 보증합니다.”
“그리고 몇 가지 준비사항이 있어요.”
“메모지 준비했습니다.”
“첫째, 갈 때는 양복에 단 회사 뺏지는 떼고 가요.”
“알겠습니다.“
“둘째, 사원증은 가지고 가야합니다. 회의장 입구에서 주주명부 대조하니까 당신은 좀 일찍 가서 삼방에너지 직원에게 사원증을 살짝 비춰주란 말이요.”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그리고 회사 차를 이용하지 말고 고속버스를 이용해서 가요. 울산 고속버스터미널에서 삼방에너지 본사까지는 택시타고 들어가면 될 거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당신 갔다 오면 내가 유길준 대리에게 이야기해서 일일 출장비는 달아주겠소.”
“감사합니다.”
[좋은 구경하고 돈까지 받는다니 괜찮네.]
“나도 내려갈 것이요.”
[이크! 이 인간 울산에서도 만나게 생겼네.]
강시혁은 이사에게 아부 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울산서 이사님 뵈면 제가 한번 모시겠습니다.”
“모시긴 뭘 모셔. 당신은 일반 주주 자격으로 참석하는 사람인데! 그리고 난 내려간 김에 따로 만날 사람들도 있어요. 회의가 끝나면 회사 직원들과 아는 체 하지 말고 바로 터미널로 가서 사라지란 말이요. 안개처럼 말이요.”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안개처럼 사라지겠습니다.“
강시혁은 전화를 끊고 비서실 이사의 얼굴을 떠올려 보았다.
최 이사는 좀생이라는 별명이 있지만 화끈한 구석도 있는 사람으로 보였다. 그런데 말이 좀 빠르고 호리호리한 사람이라 까칠한 인상을 주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문화재단에 있을 때는 나이도 동갑인 대리급 직원인 설 대리에게 간섭을 받는 게 존심이 상했었다.
그렇지만 비서실 최 이사는 나이도 10여년 이상 차이가 지고 직급도 차이가 많이 나서 존심이 상하거나 하는 감정은 일어나지 않았다.
강시혁은 삼방에너지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았다.
대그룹 회사의 계열사라 홈페이지도 럭셔리하게 꾸며놓았다. 공장 사진을 보니까 굉장히 큰 것 같았다.
금감원 전자공시 사이트에 들어가 삼방에너지를 검색해 보았다. 임시 주주총회를 연다는 공시가 떠 있었다.
팍스넷에 들어가 주가도 살펴보았다. 네이버에도 들어가 보았다.
주가 차트는 망가지고 있었다. 최근에 많이 올라갔다가 꺾이고 있었다. 사채발행 때문에 그런가 하였다. 사채도 어디까지나 부채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영남이 사외인사로 선임된다니 또 여기서도 월급이 나오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영남은 아무 일을 하지 않아도 여러 회사에서 월급이 연금처럼 또박또박 나오는 것이었다.
강시혁이 변상철에게 전화를 했다.
“상철이냐? 뭐하냐?”
“뭐하긴! 침대 만들고 있지.”
“대단하네. 침대도 만들고.”
“만들긴! 만드는 사람 연장 갖다 주는 일이나 하고 앉았지.”
“내가 목요일 울산에 가는데 시간이 없겠구나.”
“울산을 왜 가는데?”
“삼방에너지 주주총회에 참석해.”
“비서실이 그런 일도 하는 것 같네. 주주총회 준비 같은 걸 하나?”
“아니야. 일반 주주처럼 참석하고 소리나 한번 지르고 오면 돼.”
“소리를 질러?”
“궁금하면 같이 가. 파노라마로 주총 장면을 보여줄게.”
“주주총회 장면은 한 번도 구경해보지 못했는데! 같이 갈까?”
“침대 만드는 것은 어떻게 하고?”
“여긴 나 없어도 돼.”
“그래?”
“그런데 형하고 다니면 좋은 경험은 하는데 영양가가 있어야지.”
“일당 줄게.“
“정말이야?”
“같이 가면 회사에서 공식적으로 줄 거야. 그런데 이건 비밀을 지켜야 돼.”
“내가 입이 무겁기로 학교 다닐 때 소문 난 걸 형도 알잖아.”
“주총 안건은 이영남이 사외이사 선임하는 거고 사채 발행하는 안건이야. 우리는 찬성을 외치고 오면 돼.”
“쉽네.”
“그러니까 바람 쏘일 겸 같이 가자. 자동차 안 가지고 고속버스 타고 가니까 이어폰으로 음악이나 들으며 가자.”
“좋아. 견문도 넓히고 일당도 준다니 가지.”
강시혁은 맛보기로 산 주식들을 살펴보았다.
맛보기로 조금 산 것이라 등락에 큰 의미는 없었다. 그러다가 회사 현황표나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엑셀에다가 각사의 매출액과 영업이익, 경상이익을 기록하고 자산과 부채, 그리고 자본금 등을 기재했다. 종업원 숫자와 주주현황도 일일이 엑셀에 기록을 하였다,
[지금은 이것들을 암기하지 못하겠지만 날마다 쳐다보면 외워지겠지.]
강시혁은 누가 삼방에너지 작년도 경상이익이 얼마야? 한다거나 삼방전자 자본금이 얼마야? 하고 물으면 즉각적으로 대답할 수 있도록 암기하기로 하였다.
카톡 알람이 울렸다.
뜻밖에도 이영진 상무에게서 온 것이었다.
[차량 운전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번 토요일은 시간을 비워두시기 바랍니다. 천안 XX대학교 생활관 기공식에 참석해야 합니다. 그날 김 기사가 다른 일이 있어 강 대리님에게 협조를 구하는 것입니다.]
“대학교 생활관 기공식에? 삼방그룹이 대학교하고 무슨 상관이 있어서 기공식에 참석하나? 삼방건설이 그 생활관을 건설하는 일을 맡았나?”
강시혁이 즉각적으로 답신을 보냈다.
[운전 가능합니다. 손은 다 나았습니다. 토요일 대기하고 있겠습니다.]
비서실 유길준 대리에게서 전화가 왔다.
“강 대리요? 나요. 유길준이요.”
“아, 유 대리님!“
“여직원들이 나보고 강 대리에게 전화를 해달라고 하네요. 날짜를 잡자고 하네요.“
“신고식 말입니까?“
“여직원들이 이태원을 가보고 싶다고 하네요. 이태원에 회식할 좋은 장소 많지요?”
“있기는 합니다만....”
“왜요? 돈 많이 나갈까봐 그래요? 너무 돈 걱정은 하지 말아요. 강 대리나 나나 대리급들이 무슨 돈이 있겠어요. 내가 좀생이 최 이사에게 말해서 법인카드 빌려달라고 하죠.”
“그래도 됩니까?”
“비서실 직원들 체력단련비는 있어야 할 것 아닙니까? 예산 범위 내에서 쓰는 건 상관없어요. 내일 모레 목요일 어때요?”
“이번 주는 어려울 것 같은데요? 목요일은 이사님 지시로 울산에 있는 삼방에너지 주총에 참석해야 합니다. 또 토요일엔 이영진 상무님이 천안에 있는 대학교 생활관 기공식에 가는 것 모셔드려야 합니다.“
“그럼 금요일 회식하면 되겠네.”
“금요일도 일이 있습니다.”
강시혁은 금요일 회식하는 것이 싫었다. 과음하게 되면 토요일 이영진 상무를 모실 때 부석부석한 얼굴로 맞이하게 되기 때문이었다.
또 과음하면 목소리도 갈라지고 슬 냄새도 피울 수 있었다. 그래서 금요일도 피하고 싶었던 것이다.
“난 강 대리가 한가한 보직인줄 알았더니 아니네.”
“죄송합니다. 다음 주에는 꼭 자리를 마련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할 수 없지. 그런데 울산 내려갈 때는 속옷을 두껍게 입고가야 할거요.”
“예? 속옷이라니요?”
“네이버 카페에 삼방에너지 주주 동호회 카페가 있는지 모르죠? 거기 동호회 회원들이 지금 난리에요.”
“주가가 떨어져서 그런가요?”
“이번 주총 때 모두 내려가서 책상 둘러엎겠다고 난리 브루스요.”
“예? 정말입니까?”
“의심나면 한번 들어가 봐요.”
강시혁이 네이버에 들어가 보았다. 정말 삼방에너지 주주 동호회 카페가 있었다.
카페는 주가 하락에 대한 성토로 도배가 되어 있었다.
“주총 때 모두 내려가 책상을 뒤엎어버립시다.”
“사외이사 선임을 막고 대표이사 해임건의안을 내야 한다.”
“사채 발행도 막아야 한다. 주주이익 제고를 위한 행동이 아니다.”
“그날 서울에서 내려가는 사람들을 위해 관광버스를 동원시킵시다. 내려가지 못하는 주주들은 위임장 보내주세요.”
또 이런 글도 올라와 있었다.
“이건용이는 주가하락에 대한 책임을 안 지나?”
“주주가 아닌 놈이 들어오면 바로 멱살 잡고 끌어냅시다.”
정말 분위기가 험악했다.
강시혁은 좀 불안했다.
많은 사람이 내려와 주총 회의장을 아수라장을 만들고 자기 멱살을 잡으면 어떻게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 야쿠자들처럼 각목이나 재크나이프를 휘두르지는 않겠지만 멱살 잡고 넘어트려 발로 짓밟는다면 큰일이었다.
“설마 그렇게까지 가지는 않겠지.”
주총에서 싸움이 나서 다쳤다는 소리는 아직 들어보지 못한 것 같았다.
그렇지만 동호회 게시판은 살벌하기만 하였다.
생각해보니 최 이사라는 사람도 이상한 것 같았다.
비서실의 많은 직원들 중에서 자기만 콕 짚어 내려 보내는 것이 수상하기만 하였다.
꼭 너 한번 당해봐라 하는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