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4화 가압류 철회 (2)
(124)
강시혁과 변상철은 주차장으로 내려왔다.
변상철이 아직도 흥분된 상태로 말했다.
"‘형! 오늘 나 오버한 것 없지?“
“없어, 괜찮아. 잘 했어. 그런데 오늘 신문사 회장 만난 건 일이 싱겁게 끝났네. 난 회장이 까탈이라도 부릴 줄 알았는데 그러진 않더군.”
“홍 회장은 그래도 상식적인 면이 있는 것 같은데 홍 사장이 회장이 되면 어쩌지? 뽕쟁이라 신문사 말아먹을 것 같은데?“
“참모를 잘 두면 되겠지. 방대한 조직의 시스템이 잘 짜져 굴러가니까 될 거야. 옛날에 임금이 좀 바보 같아도 나라는 굴러 갔잖아.”
“하긴. 지금도 정부부분의 각 수장이나 국회의원들도 함량미달인 사람이 있지만 잘 굴러가긴 하지. 그렇지만 개혁을 한다거나 획기적인 확장을 하거나 하는 일엔 그래도 똑똑한 사람이 앉아 있어야겠지.”
“오늘 맞장 뜬 건 싱겁게 끝났으니 밥이나 먹으러 가자. 가압류 철회서도 받았으니까 좀 비싼 집에 가서 먹을까?”
“형이 이제 접대비 쓸 수 있는 재량권이 있나?”
“쓸 수 있다고 하지만 함부로 쓸 수 있나. 비서실엔 좀생이라는 별명이 붙은 이사가 있어. 그 사람 결재도 받아야하니까 내 돈 주고 사먹어야지. 다음 달 월급도 대리 월급이 나온다니 내가 사랑하는 아우에게 밥 한번 못 사주겠냐?”
“그래, 그럼 근사한대로 안내해봐.”
“어디 주차가 잘 되는 곳으로 가야할 텐데.”
“주차야 시내에서는 호텔 밖에 더 있어?”
“좋아. 이 차가 벤츠 마이바흐니까 격에 맞게 고급 식당으로 안내하지. 이태원에서 하얏트 호텔 건물을 항상 바라만 보고 살았는데 거길 가보자.”
“으와, 하얏트 호텔로? 거기 뷔페식당이 유명하다고 하던데. 나도 그런 데서는 식사를 안 해 봤어. 형 덕에 오늘 목구멍이 호강하게 생겼네.”
강시혁과 변상철은 벤츠를 타고 하얏트 호텔로 들어왔다.
차를 주차시키고 더 테라스 라는 레스토랑으로 왔다. 이 레스토랑은 뷔페식이지만 셰프가 직접 요리하는 코너도 있었다.
그런데 음식 값이 장난이 아니었다.
미국산 소고기 안심이나 호주산 양갈비는 너무 비쌌다, 버섯크림 스프만 해도 2만원이 훌쩍 넘었다. 너무 비싸니 변상철도 쫄아서 사달라는 소리를 못했다.
역시 돈의 위력은 조금 전까지만 해도 서슬 시퍼렇던 두 청년을 주눅 들게 하였다.
“형, 메인 요리는 우리 같은 수준 가지곤 안 되겠어. 그냥 단품 요리나 시켜먹지. 낙지덮밥이 있네. 하, 그래도 저 덮밥도 4만 5천원이네. 둘이 먹으면 9만원인가? 저녁에 삼겹살 실컷 먹고 소주 세병 까는 것 보다 훨씬 더 나오네.”
“왔으니 그냥 먹자. 이럴 때 먹지 우리가 언제 이런데 와보냐?”
“형도 많이 달라졌네. 작년까지만 해도 김밥이나 먹으면서 대리운전 뛰었는데.”
“그냥 먹자니까.”
“이런 덴 어째 뽕쟁이 홍 사장 같은 인간들만 올 것 같은데?”
둘이 낙지덮밥을 시켜먹었다.
그런데 비싸서 그렇지 음식은 깔끔하고 분위기 또한 죽여줬다.
강시혁과 변상철은 속으로 어서 빨리 성공해 이런 데를 자유롭게 드나드는 사람이 되어야지 하였다.
식사 후 강시혁과 변상철은 벤츠를 몰고 남산 순환도로인 소월로를 달렸다.
“형! 호텔에서 고급음식 먹고 이렇게 벤츠 타고 가니 우리도 재벌이 된 기분이지?”
“역시 돈 있으면 좋은 세상이야.”
“난 경찰시험 포기해야겠어. 경찰되어 언제 돈을 모으겠어.”
“경찰이 꼭 돈만 바라고 하는 것은 아니잖아? 사명감도 있어야겠지.“
“사명감도 좋지만 자본주의사회에서는 그래도 돈이 최고야. 돈을 벌어야겠어.”
“그게 마음대로 벌어지냐?”
변상철은 갈 데가 있다면서 지하철 역 앞에서 내려달라고 하였다.
강시혁은 변상철을 내려주고 영빈관으로 돌아왔다.
강시혁은 영빈관에서 느긋하게 커피를 마셨다.
그리고 신문사 홍 회장에게 받은 가압류 철회 확인서를 사진 촬영했다.
강시혁은 가압류 철회 확인서를 먼저 이영진 상무에게 보고하기로 하였다.
대리 나부랭이가 오너의 딸에게 직접 전화하는 것은 무례하다고 생각되었다. 그래서 카톡으로 보고했다.
따지고 보면 대리 주제에 이영진 상무와 카톡으로 대화하는 것만 해도 큰 영광이었다.
아마 삼방그룹 계열사 임원들도 이영진 상무와 카톡을 주고받는 사람은 없으리라고 생각되었다.
[상무님. 오늘 A신문사에 들어가 홍 회장님을 만났습니다.
홍 회장님께서 일본에 계신 홍 사장님을 설득하여 삼방전기 주식에 대한 가압류 철회 확인서를 받았습니다.
가와라 흥업의 대표 이름으로 철회 확인서를 보냈지만 홍 회장님과 홍 사장님의 확인 서명도 들어갔으니 향후 다른 이야기는 없을 듯합니다.
철회 확인서를 우선 사진 찍어 보내드립니다.]
바로 답신이 왔다.
[강 대리님이 큰일을 하셨네요. 수고하셨습니다. 아마 회장님도 기뻐하실 것입니다. 철회서 서류는 나중에 본사에 들어오시면 법무팀장에게 전달해 드리면 됩니다.]
강시혁은 삼방전자 사장에게도 철회서를 받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사장님에게 직접 전화하기가 송구스러워 비서에게 전화했다. 전자사장 비서는 삼방전자 소속이고 강시혁은 그룹 비서실 소속이었다.
상당히 인공 미인이었던 것으로 기억되는 여비서가 전화를 받았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지난번에 들렀던 비서실 강시혁 대리입니다.”
“아, 손에 붕대를 감았던 분?”
“예, 맞습니다. 전자 사장님께 가압류 철회서를 받았다고 말씀드려 주세요.”
“예? 가압류 뭐라고요?”
“가압류 철회서요.”
“그렇게만 말씀드리면 되겠습니까?“
“예, 일본 가와라 흥업에서 가압류 철회서를 보냈고 A일보의 홍 회장님과 홍 사장님의 확인서명도 받았다고 말씀 전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철회서 서류는 제가 내일 오전에 법무팀장님에게 드릴 거라고 말씀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강 대리님.”
여비서가 상냥한 목소리로 대리님이라고 불러주니 기분이 좋았다.
전에는 누가 강 반장이라고 부르면 대학까지 나온 놈이 좀 쪽이 팔렸지만 이제는 괜찮았다.
또, 자기 나이 또래는 대리 정도를 많이 하고 아직 과장은 못 달은 사람이 많았다. 대리면 고개 숙이고 다닐 필요가 없는 것이었다.
강시혁은 여비서와 통화 후 컴퓨터 앞에 앉아 은행 사이트에 들어갔다.
그리고 자기 통장을 조회해 보았다. 새로 들어온 5억이 아직도 있었다.
강시혁은 이 돈 중에 약간만 인출하여 주식을 사보기로 했다.
삼방전자 사장이 삼방그룹 계열사 주식을 10주씩만이라도 사서 공부를 해보라고 하였기 때문이었다.
시계를 보았다. 오늘 주식시장은 끝난 상태였다.
[내일 오전 장에 사면 되겠군.]
강시혁은 자기가 잠을 자는 방으로 갔다.
전에 문화재단 관장이 와서 옷걸이에 걸린 옷을 보자기로 전부 덮어놓으라고 했는데 오늘은 모두 떼어냈다. 이제는 자기가 문화재단 소속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관장의 통제를 받을 필요도 없었다.
방에 있는 오래된 여행용 가방에서 전에 거래하던 증권사 카드를 꺼냈다.
강시혁은 건대 앞에 분식집이 망했을 무렵 주식투자를 했었다. 그나마 가게 보증금 조금 받은 것을 애널리스트들 말만 듣고 투자를 했었다.
당시는 빚 독촉이 하도 심해 빨리 증권으로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런데 자기가 주식을 사고 나니 다음날 주가가 폭락하기 시작했다. 물타기를 했는데 더 떨어지고 자금만 묶이게 되었었다.
그때 큰 손실을 보아서 그 후로는 주식은 절대 안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삼방전자 사장이 주식 투자를 해야 기업에 대한 공부를 할 수 있다니 조금씩만 사보기로 한 것이다.
강시혁은 증권사 카드를 가지고 다시 관리실에 있는 자기 책상 앞으로 왔다.
증권사 사이트에 접속해 보았다. 증권계좌는 아직 살아있었다. 증권계좌에 돈도 있었다. 6천원이 있었다.
강시혁은 다시 은행사이트에 들어가 이영남이 보내준 돈 5억 원 중에서 5백만 원을 자기 증권계좌로 온라인 송금했다.
“삼방 전기나 삼방전자 같은 비싼 주식은 5주 만 살까? 그리고 장명 건설은 주가가 1만 2천 원을 하니 20주 만 사 볼까?”
강시혁은 내일 아침 9시 주식 시장이 시작되면 계열사 10군데 주식만 사보기로 했다.
삼방그룹은 계열사는 많지만 아직 상장이 안 된 회사도 있어 10군데만 사기로 했다,
비서실 유길준 대리가 전화를 했다.
“강 대리님? 유길준입니다.“
"아, 유 대리님!“
“명함이 나왔으니 내일 가져가세요. 영빈관에 가는 인편이 없으니 살짝 들어왔다 가세요.”
“내일 들리겠습니다. 법무팀에 일도 있어서 내일 본사에 들어가야 됩니다.”
“법무팀요?”
“예, 이영진 상무님 심부름입니다.”
“알겠습니다.”
사람들은 이영진 상무님 지시나 심부름이라고 하면 토를 달지 않았다.
이영진 상무는 엄연한 삼방그룹의 차기 대권주자이기 때문이었다.
이번엔 생각지도 않게 삼방 문화재단의 신종화에게서 전화가 왔다.
“잘 계셨어요? 대리님!”
“큐레이터님께서 웬일이세요?”
“비서실 좋은 데로 갔다고 전화도 한번 없네요.”
“죄송합니다. 이쪽이 좀 바빠서요.”
“내일 영빈관엘 들릴 겁니다. 미술품 두 점 가지러 갈게요. 그리고 할 이야기도 있고요.”
“오후에 오시면 안 되겠습니까? 내일 오전엔 내가 본사에 들려야 합니다.”
“정말 바쁜 것 같네요. 그럼 오후에 들리죠.”
“그런데 미술품은 설운동 대리가 가지러오지 않습니까? 카니발은 설 대리가 가져갔는데요.”
“카니발은 설 대리가 자기 자가용으로 쓰고 있습니다. 그리고 요즘은 옛날보다 더욱 목에 힘주고 인턴들을 괴롭혀 인턴이 두 명이나 그만두었습니다.”
“문제가 있는 사람이군요.”
“그럼 내일 봐요.”
“그런데 할 이야기가 있다는 게 뭡니까?“
“내일 말씀드리죠.”
다음날이 되었다.
강시혁은 주식 시장이 열리자마자 삼방그룹 계열사 주식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맛만 보기위해 10주 정도씩 사는 거라 체결은 금방되었다. 삼방 에너지라는 회사는 주가가 너무 단기급등이라 10주를 살 걸 2주 만 샀다.
대신 장명건설은 주가가 높지 않아 아예 50주를 샀다.
[장명건설은 상호를 바꾸지 않나? A신문사 홍 회장의 사위인 김장명이가 설립한 회사라 장명건설로 불리는 게 영 기분이 안 좋네. 이제 이영진 상무가 A신문사 집안과 결별했으니 상호를 바꾸겠지.]
장명건설은 노사분규가 시작된 이후 주가가 계단식 하락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요즘은 바닥에서 횡보하고 있었다.
주식 토론방에 들어가 보았다. 소액 주주들이 이제는 장명건설을 욕하는 것이 아니라 이건용 회장을 욕하고 있었다.
“야, 건용아! 장명건설을 사들였으면 주가를 띄워야 할 것 아니냐?”
“주총 때 보자. 책상 다 들러 엎겠다.”
“이 주식은 완전히 죽은 주식이네. 누가 통 입질을 하지 않네.”
“이제 이 주식은 시장에서 외면한 주식인가?”
“유튜브에 나온다. 이 주식 바닥이고 펀더멘탈은 좋으니 가지고 있으면 돈이 된다고 한다. 그러니 가지고 있어라. 형아 말을 좀 들어라.”
강시혁은 옛날 자기 생각이 났다.
쓸데없이 이런 댓글에 일희일비 하던 때 말이다.
차트를 보았다.
“두세 달 전에 산 사람들은 주가가 완전히 반 토막 났네.”
강시혁은 주식 매입을 마치고 본사로 갔다.
벤츠를 끌고 가지 않고 지하철을 타고 갔다. 대리 주제에 벤츠만 타고 다닌다고 손가락질을 할 것 같아서였다.
강시혁이 지하철 이동을 하고 있을 무렵 본사에서는 회장과 삼방전자 사장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회장님. 가압류 문제는 잘 끝났다고 하네요.”
“나도 영진이 한테 보고는 들었소.”
“영빈관에 있는 경호원, 그 친구가 또 한건 했네요.”
“회사의 임원이 가서 철회를 요구한 것 보다는 피해를 입은 사람이 간 것이 주효했겠지.”
“맞습니다.”
“또 A신문사 홍 회장은 나하고 오랫동안 교분을 유지해온 사람이요. 전자 사장도 잘 알지만 막되어먹은 사람은 아니요. 그러니 경호원의 요구를 수용했을 것이요.”
“경호원, 아니 지금은 그 친구가 비서실 대리로 왔으니 강 대리로 불러야겠군. 언젠가 제가 회장님께 말씀을 드린 적이 있을 겁니다. 그놈은 삼방그룹 직원들 중에서 유일하게 가르시아 밀서를 전달할 놈이라고요.”
“허허. 쓸 만한 놈이 들어온 것 같네요.”
“키워주면 제 몫은 할 놈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신문사 홍 회장 전화를 조금 전에 받았습니다. 자기를 찾아온 경호직원이 건달같이 보였는데 말이 제법 조리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놈에게는 그룹 공채 직원들이 받는 온 보딩(on boarding)이나 OJT(on the job training)
교육도 필요 없는 놈입니다. 알아서 척척 잘 찾아 하니 말입니다.“
“허허. 전자 사장은 그놈을 아주 잘 본 모양이군요.”
온 보딩(on boarding)은 신입사원 적응교육 프로그램이고 OJT교육은 직장 내 직무교육을 말한다.
강시혁은 공채 직원이 아니라서 이런 교육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전자 사장은 강시혁에게 이런 교육이 필요 없다고 하였다. 그것은 자기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전자 사장은 자기 역시 공고를 나와 지방대 공대를 다닌 사람이다.
그래서 비 공채 직원인 강시혁에 대하여 더 관심을 가져주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