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화 거물과의 맞장 (6)
(122)
강시혁은 변상철과 함께 A신문사로 향했다.
둘이 모두 검은 정장에 넥타이를 매고 갔다. 몸에는 남성용 향수도 뿌리고 갔다.
차가 남산 소월로로 접어들었을 때 강시혁이 말했다.
“상철아, 아까 영빈관에 리틀 브라운이 있어서 재대로 이야기 못했는데 어디 가서 작전 좀 짜고 가자.”
“여기서 조금 더 가면 남산 주차장이 있어. 서울 과학 전시관 앞에 있는 주차장이야. 거기 주차장에 차를 세워놓고 이야기 하고 가지.”
그래서 강시혁과 변상철을 태운 벤츠는 남산 주차장으로 들어갔다.
주차장은 주말이 아니라서 공간이 많았다. 자동차 안에서 대화하기는 딱 좋았다.
주차장에서 변상철이 먼저 물었다.
“형! 일단 신문사에 가게 되면 비서가 어디서 왔느냐고 물으면 뭐라고 할래?”
“삼방그룹에서 왔다고 하는 것은 피해야 되겠지?”
“일단은 일본서 왔다고 하지. 그래야 비서들이 회장을 만나게 해줄 거야. 아드님 일로 일본서 왔다고 하면 만나주지 않겠어?”
“좋아. 그렇게 하자.”
“문제는 이 구렁이 같은 회장이 그래도 안 만나줄까 그게 걱정이야.”
“공갈을 좀 쳐야겠군.”
“공갈을 치다니?”
“회장실에 회장이 있는 줄 알고 왔는데 안 만나주면 아들의 안전에 대하여는 책임을 질수 없다고 해야겠지.”
“흠, 그것도 괜찮을 것 같은데?”
“비서가 우릴 쫓아내면 네가 얼른 내 팔을 잡고 형! 그냥 갑시다. 일본에 있는 홍승필 사장의 다리 하나를 부러뜨려 놉시다. 그러란 말이야.”
“알았어. 형이라고 하지 않고 조폭처럼 아예 형을 형님이라고 부를게.”
“이러다가 우리가 공갈 협박에 범죄 조직단체 사칭에 걸리는 건 아니겠지?”
“닳고 닳은 회장이라고 해도 자식의 안전에 걸린 문제를 가지고 그러진 않을 거야.”
“그리고 일단 회장실에 들어가면 가와라 흥업이 가압류를 하려는 배경을 좀 설명을 해 주어야겠지. 그리고 내가 삼방그룹 VIP경호원이었었다고 말하고 내가 당했던 일도 말해줘야겠지.”
"손가락 잘린 것도 이야기 해.“
“그리고 내가 고발하지 않는 대신에 가와라 흥업의 삼방전기 10만주 주식 가압류 신청을 철회해 달라고 해야겠지.”
“그래도 자기는 아들의 일이라 모르겠다고 하면?”
“우리도 언론에 터트리고 홍 사장이 뽕을 한다는 것도 터트려 사회에서 매장을 시켜버리겠다고 해야지.”
“그래도 당신들 마음대로 하슈! 그러면 어떻게 할 거야?”
“그럼 우리도 마음대로 하는 거지. 아쉬울 것도 없잖아?”
“우리가 피해자라 이니셔티브를 쥔 건 맞아.”
“그리고 숨통은 터줘야지. 장명건설의 홍 사장 지분은 우리가 마음대로 못하니까 거기다가 가압류 거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해줘야겠지.”
“헹, 장명건설에다가 빨리 가압류 걸으라는 것과 똑 같네.”
[상철아! 그 시기가 바로 내가 장명건설 주식을 매집할 때란다. 이영남이 빌려준 돈으로 말이다.]
변상철은 강시혁이 이영남에게 20억이나 되는 돈을 빌려서 투자하려고 하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그래서 변상철은 강시혁이 투자를 해보았자 자기 수중의 몇백만 원이겠지 하는 수준이었다.
“좋아! 신문사로 가! 대충 알았으니까!”
강시혁이 벤츠를 몰고 신문사 지하 주차장으로 갔다.
그런데 신문사 직원들 차량과 방문객 차량으로 주차장이 만원이었다. 한참 기다린 끝에 자리 하나가 나와 가까스로 주차를 시켰다.
경비한테 회장실이 어디냐고 물으면 어디서 왔냐고 할까봐 무조건 엘리베이터를 탔다.
말쑥한 정장을 하고 와서 그런지 잡는 사람은 없었다.
무조건 5층에서 내렸다.
복도에서 여직원 두 명이 재잘거리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변상철이 다가가 물었다.
“회장님실이 어디시죠?”
“회장님실은 여기 아닌데요? 7층인데요?”
“우리가 잘못 내렸나?”
둘이 7층으로 올라갔다.
여기도 비서가 있었다. 비서도 남자 비서와 여자 비서가 같이 앉아 있었다.
“홍 회장님을 뵈러왔습니다.”
“어디서 오셨습니까?”
“일본에서 왔습니다.”
“예, 일본요? 일본의 어느 단체에서 오신분입니까?”
“일본에 계신 아드님 일로 왔다고 하세요.”
“잠깐 기다리세요. 아까 나가시던 것 같은데 계신 가 모르겠습니다.”
남자 비서가 회장실로 들어갔다 나오며 말했다.
“회장님이 아직 안 들어오셨네요.”
변상철이 화가 나서 말했다.
“아니, 비서가 회장님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을 모른단 말이요? 그럼 당신들은 여기 폼으로 앉아있는 거요?”
“무슨 말을 그렇게 하십니까?”
“그럼 여기서 회장님이 오실 때까지 기다리지요.”
“여기는 사무실입니다. 기다리는 건 좋은데 밖에 나가서 기다려주셨으면 합니다.”
“뭐가 어째?”
“소란 피우시면 경비실에 이야기해서 끌어내라고 하겠습니다. 여기가 어디인지 알고 이런 행패를 부립니까?”
보수언론의 심장부는 역시 대단했다.
신분이 불확실한 방문객은 일언지하에 쫓아내는 것이었다.
변상철이 각본대로 말했다.
"형님! 안되겠습니다. 우리가 일본에 있는 홍 사장 다리 몽뎅이 하나를 부러트리든지 그대로 처리해야겠습니다.“
“그래야 되겠군!”
강시혁이 전화번호를 누르는 시늉을 냈다.
그리고 유창하지는 않지만 영어로 통화를 하는 척 했다.
“아, 오니상데스까(형님 입니까)? 역시 예상했던 대로 홍 회장이 우리를 일부러 피하는 것 같습니다. 홍 사장은 그대로 처리해야겠습니다. 이번 기회에 완전히 매장을 시키도록 하겠습니다.”
그래도 비서는 싸늘한 미소를 지으며 꿈쩍도 하지 않았다.
아마 평소에도 회장을 만나러 각종 군상들이 찾아오는 것 같았다. 그래서 비서들도 단련이 된 것 같았다.
강시혁이 점잖게 비서에게 말했다.
“저 안에 회장님이 계신 것을 압니다. 아드님의 일인데도 만나지 않으려고 하니 우리도 그대로 가겠습니다. 우리가 가고나면 이렇게 말하십시오. 가와라 흥업의 채권 추심일로 내일은 홍 사장의 신변에 재미있는 일이 일어날 거라고 말씀하십시오.”
“뭐라고요?”
“아주 재미있는 일 말입니다. 후후후.”
강시혁은 그러면서 붕대 감은 손을 턱에 한번 문지르고 비서에게 음흉한 미소를 지어주었다. 우리에겐 카드가 있다는 것을 은연중 보여주는 행동이었다.
비서실을 나오니 변상철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강시혁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형! 이대로 가는 거야? 그럼 어떡해? 비실비실 쫓겨나서 가는 거야? 내가 가서 비서 모가지를 잡아버릴까?”
“가만 있어봐. 우릴 부르러 올 거야. 천천히 로비로 내려가 있자고.“
"우리를 부르러 온다고?“
“아들인 홍 사장 주변에 재미있는 일이 생길 거라고 했잖아. 궁금해서라도 우릴 부를 거야.”
A신문사 회장 비서가 회장실을 들어갔다.
회장은 눈을 감고 염주 알을 굴리고 있었다. 불교신자인 것 같았다.
“방금 온 젊은 두 사람은 쫓아버렸습니다.”
“자네는 비서를 하기 전에 사회부 기자를 했으니 찾아온 놈들이 누구라는 것을 대강은 눈치 챘겠지? 뭐하는 놈들 같더냐?”
“두 놈이 왔는데 조폭 같았습니다.”
“나는 또 특종감이 있으니 용돈이나 달라고 온 놈들인 줄 알았다. 조폭같이 생긴 놈들이 왔다면 옛날에 아들놈이 약물 투입하는 걸 미끼로 공갈이나 치러 왔겠구먼.”
“그런데 그놈들이 일본에서 왔다고 했습니다. 가와라 흥업의 채권 추심일로 왔다고 했습니다.”
“뭐라고? 가와라 흥업?”
회장은 그 자리에서 바로 일본에 전화를 하였다.
“승필이냐? 나다. 오늘 청년 두 명이 왔는데 가와라 흥업 일로 왔다고 한다. 무슨 이야기냐?”
“아, 가와라 흥업 일은 우리가 신경 쓸 일이 아닙니다.”
‘알았다. 그래서 쫓아버리기는 했다. 그런데 그놈들이 가면서 가와라 흥업의 채권추심 일로 왔다고 했는데 그 말은 무슨 말이냐?“
“채권추심요? 가압류가 아니고 분명히 채권추심이라고 했답니까?”
“비서가 그렇게 들었다고 하더라.”
“혹시 온 놈들이 왼손에 붕대를 감은 놈이 아닙니까?“
회장이 고개를 들고 비서를 바라보며 말했다.
“방금 왔던 놈 중에서 왼손에 붕대를 감은 놈이 있더냐?”
“예, 있었습니다. 가와라 흥업의 채권 추심일로 내일은 홍 사장님의 신변에 재미있는 일이 일어날 거라고 말했습니다.”
“재미있는 일?”
“예, 분명히 그렇게 말하고 여유로운 미소를 짓고 내려갔습니다.”
회장이 다시 스마트폰을 입에 대고 말했다.
“맞다. 손에 붕대를 감은 놈이 왔다고 한다. 그러면서 내일은 네 신변에 재미있는 일이 일어날 거라고 했다는데 그게 무슨 말이냐?”
“검찰 고발 아니면 진보 언론사에 찾아가겠다는 말일 겁니다. 죄송하지만 그놈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일단 들어보시는 게 좋을 것 같네요.”
“쩝. 정말 무슨 일이 있는 거냐?”
“일은 없습니다. 그놈들이 어디까지 알고 있나를 확인만 해보세요.”
[이놈이 또 무슨 일을 저질렀나?]
회장이 고개를 들고 비서에게 말했다.
“그놈들 아직 멀리가지 않았을 테니 한번 찾아봐.”
“알겠습니다.”
강시혁이 뒷짐을 쥐고 신문사 로비에서 서성거렸다.
비서가 내려왔다.
“아직 안가셨군요. 회장님이 방금 들어오셨습니다.”
[방금 들어온 것 좋아하네. 아들 신상에 재미있는 일이 있을 거란 말이 먹혀들어간 것 같군.]
강시혁과 변상철이 비서의 안내로 회장의 방엘 들어갔다.
회장은 생각보다는 좀 늙어 보이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금테 안경을 올리는 모습이 꼭 삼방 문화재단의 관장과 비슷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아니, 생긴 것도 비슷한 것 같았다.
강시혁이 예의를 갖춰 공손히 인사를 했다.
“일본에서 온 강시혁입니다.”
“저는 변상철입니다.”
강시혁은 회장의 얼굴을 똑바로 보고 있었으나 변상철은 회장보다는 회장실을 두리번거리며 쳐다보았다. 아마 두 번이나 이 신문사 입사 시험에 떨어진 사람이라 그런 것 같았다.
회장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나에게 무슨 용무가 있는 거요?”
“이야기가 좀 깁니다. 앉아서 이야기해도 될까요.”
“그러슈.”
강시혁과 변상철이 자리에 앉자 회장이 또 말했다.
“일본에서 왔다고요?”
“그렇습니다.”
이럴 경우에 방문객들은 공손히 자기의 명함을 회장에게 주는데 이 젊은이들은 그런 게 없었다.
회장은 두 사람이 무례하다고 생각했다.
“당신들은 뭐하는 사람들입니까? 여기가 어디인지는 알고 온 겁니까?”
“일제시대부터 민족지로 유명한 A일보의 회장님실로 알고 왔습니다. 하지만 회장님보다는 아드님 일로 왔습니다.”
“아들은 지금 일본에 있습니다. 아들에 관한 일이라면 아들과 협의하지 왜 나한테까지 왔나요?”
강시혁이 긴장하지 않고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상대는 강호의 노회한 고수이고 자기는 강호 초출이기 때문에 일부러 여유를 부린 것이다.
강시혁이 품속에서 서류 두 장을 꺼냈다.
가와라 흥업에서 삼방전기를 상대로 회장 지분의 주식 10만주를 가압류 하겠다는 서류였다. 처음에 보냈던 팩스와 나중에 다시 보낸 내용증명 서류였다.
“이걸 한번 보십시오.”
“서류를 보기 전에 나와의 대화 내용을 녹음하면 안 됩니다.”
“그건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회장이 서류를 보더니 테이블 위에 던지며 말했다.
“가와라 흥업이 뭐하는 회사인지는 몰라도 가와라 흥업과 삼방전기의 일이 아들놈과 무슨 관계가 있다는 거요?”
“아드님이 이번에 이혼하셨지만 결혼 전에 삼방그룹 회장님이 삼방전기 10만주를 구두로 주겠다고 했었지요. 이혼했으니 이것도 없던 것으로 되었겠지요.”
“나는 처음 듣는 소리요.”
[처음 듣는다고? 교활한 늙은이 같으니라고!]
강시혁이 계속 능글맞은 미소를 띠우며 말했다.
“이 서류는 아드님이 가와라 흥업에 100억을 빌렸다는 차용증입니다. 그리고 담보로 삼방전기 10만주를 제공하겠다는 약정서입니다.”
강시혁이 말이 여기까지 나오자 회장이 자세를 고쳐 앉으며 긴장하는 것 같았다.
“아들놈이 가와라 흥업에서 100억을 빌렸다고?”
“차용인 서명자가 분명히 홍승필로 되어있고 사인도 했습니다.”
“나는 모르는 일이요. 이걸 왜 나한테 들이미는 거요?”
“죄송하지만 옆에 서있는 비서에게 자리를 좀 비켜달라고 할 수 없습니까?“
회장이 비서에게 잠깐 나가 있으라고 하였다.
비서가 강시혁을 한번 째려보고 나갔다.
회장이 녹차를 한잔 마시며 말했다.
“계속해 보시오.”
“그리고 이 서류는 가와라 흥업이 일본 야쿠자 조직에게 의뢰한 채권 추심의뢰서입니다. 삼방전기 10만주를 받아달라는 추심의뢰입니다.”
“끙.”
“일본 야쿠자들은 이번에 홍 사장과 협의이혼을 하기위해 일본에 온 삼방그룹의 이영진 상무를 납치하려고 했습니다. 명분은 채무 독촉이죠.”
“삼방전기 주식은 구두로 주겠다고 한 건데.......”
“회장님은 잘 아시는군요. 그게 무리라는 것을 말입니다. 그래서 홍 사장의 사주를 받은 야쿠자들이 이영진 상무 납치를 시도했고 이 과정에서 경호원과 싸움이 벌어졌습니다.“
“그랬.... 나요?”
회장은 점점 눈을 크게 뜨고 강시혁을 쳐다보았다.
“이영진 상무 경호원이 크게 다쳤고 야쿠자들도 크게 다쳤습니다. 다행히 이영진 상무는 납치를 면했지만 경호원은 야쿠자들에게 끌려가 손가락이 잘라졌습니다. 생선 회칼로 말입니다.”
“손가락이?”
그러면서 회장은 테이블 위에 올려 진 강시혁의 붕대 감은 왼손을 보고 크게 놀랐다.
“그럼, 다, 당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