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녀의 두 번째 남편-119화 (119/199)

119화 거물과의 맞장 (3)

(119)

다음날 아침이 되었다.

강시혁은 영빈관의 마당을 쓸고 1층과 2층 환기를 시켜주었다.

특히 2층은 미술품이 보관되어 있어 항상 좋은 공기를 유지 시켜주어야 했다. 물론 에어크리너나 제습기가 있지만 날씨 좋은 날은 천연 공기가 들어오고 나가도록 해주었다.

그리고 강시혁은 어제 있었던 일과 오늘 할 일들을 다이어리에 기록했다.

이전처럼 업무일지를 작성하여 문화재단 사무국에 보내주는 일은 없어졌다. 소속이 바뀌었기 때문이었다. 이것만 해도 업무 스트레스가 많이 줄었다.

전에 업무일지를 작성할 때는 혹시 철자법이라도 틀리면 바로 설운동 대리의 전화가 왔다.

설운동 대리는 이상하게 업무의 본질보다는 철자법이나 띄어쓰기가 잘못되면 꼭 시비를 걸었었다.

[이 사람은 삼방 문화재단 사무국 대리보다는 출판사 교정 직원하면 딱 맞을 사람이네.]

이런 일로 강시혁은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었다.

그래서 강시혁은 업무일지를 보내기 전에 꼭 자기가 작성한 일지를 다시 한 번 읽어보았다. 그때는 완벽하게 틀린 글자가 없었는데 다음날 설운동 대리는 귀신같이 오탈자를 잡아내는 것이었다.

그래도 설운동 대리에게 시달린 탓인지는 몰라도 강시혁의 국어실력은 는 것 같았다.

이영남이 왔다.

이영남은 표정이 아주 밝아보였다. 생글거리며 왔다.

부잣집 아들이라 그런지 살결은 언제나 뽀얗고 통통했다.

“형, 오늘 가와라 흥업에 전화 해준다고 했지?”

“우선 자리에 앉아. 커피 한잔 줄까?”

“헤헤. 좋지.”

강시혁이 이영남에게 커피를 한잔 타주었다.

커피를 마시고나서 강시혁은 일본에 전화를 했다.

“이이다 유키 자쵸상 데스까?(이이다 유키 사장님이십니까?)”

“하잇 소오데스. 도찌라사마데스까?(그렇습니다. 누구신지요?)”

“한국의 삼방그룹 강시혁입니다. 안녕하셨습니까?”

“오, 강 상(씨)! 잘 있었어요? 손은 이제 좀 어때요?”

“덕분에 많이 나아졌습니다. 통증도 많이 사라졌습니다.”

“약 잊지 말고 잘 드세요.”

“교바시 보디가드에서는 경호업무 이외에 기업에 대한 조사도 하죠?”

“합니다. 기업의 신용상태도 조사해 드립니다. 채권추심업무도 합니다.”

[경호만 가지고는 밥 먹기 힘드니까 채권 추심업무도 하는 것 같네. 야쿠자들하고 똑 같은 일을 하네.]

“그러면 가와라 흥업에 대한 회사 현황과 신용도를 알 수 있을까요? 정식으로 조사의뢰 하는 것입니다.”

“삼방 문화재단에서 의뢰하는 겁니까?”

“아닙니다. 개인이 의뢰하는 겁니다.”

“개인이? 그럼 강 상 개인이 의뢰하는 겁니까?“

“아닙니다. 다른 분입니다. 혹시 조사 의뢰서 양식이 있으면 보내주세요. 그때 제가 드린 명함에 나와 있는 이메일로 보내주셔도 됩니다.”

“팩스로 보내드릴까요?“

[일본인들은 아직도 팩스를 좋아하는 것 같네.]

“저는 사무실 쪽에 있지 않고 영빈관 쪽에 나와 있습니다. 이쪽에 팩스는 없습니다. 이메일로 보내시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일본은행 계좌번호도 같이 알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의뢰비는 송금해야하니까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회사현황은 가와라 흥업의 자본금과 매출액, 자산상태, 그리고 종업원 수 정도가 나오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신용상태는 금융권이나 신용기관에서 조사한 자료를 보내면 되겠군요.”

“그러면 됩니다. 아, 그리고 사람도 찾을 수 있습니까?”

“관서지역에 있는 사람입니까?”

“오사카에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전에 가와라 흥업에 소속되었던 음악가입니다.”

“그 사람 이름이 뭡니까?”

“사카모토 쯔요시 라는 재즈 음악가입니다.”

“사카모토 쯔요시? 어디서 한번 들은 이름 같기도 한데.......”

“세계적 음악가 에디 히긴스의 제자라고 합니다.”

“작고한 에디 히긴스는 나도 펜이었는데.”

“아, 그러십니까?”

“사카모토 쯔요시라면 수염 잔뜩 길러가지고 다니는 놈이 맞는지 모르겠군.”

“예?”

“오래 전에 NHK 오사카 방송국 심야프로에 가끔 나왔던 것 같은데......”

“그렇습니까?”

“아무튼 알았소. 가와라 흥업 기업조사와 사람 찾는 의뢰서는 이메일로 바로 보내드리죠.”

“감사합니다.”

전화를 끊고 강시혁이 웃으며 말했다.

“이이다 유키 씨가 기업조사 의뢰서 양식을 보내준다고 하니까 이제 됐어. 의뢰서가 오면 의뢰자 서명 난에 리틀 브라운 주소 쓰고 이름 쓰면 되겠지.”

“그건..... 내 이름으로 꼭 해야 하나? 형 이름으로 하면 안 될까?”

“나는 비서실 대리야. 조직원이지. 대외적으로 보내는 서명 같은 건 결재를 받고 해야 돼. 회사 소속원의 이름으로 나가는 것은 회사의 책임문제가 따르기 때문이지.”

“그게 그렇게 되나.......”

이영남은 재벌의 아들이라 자기 이름을 나타내는 것을 꺼리는 것 같았다.

잘못하면 삼방그룹 아들이 이런 일을 했다더라 하는 이야기가 세상에 퍼져나가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자기 돈은 없어도 이상하게 재벌들의 움직임이나 사생활은 관심이 많기 때문이었다.

“형, 그리고 여기는 팩스가 없나?”

“없어. 팩스는 회사의 비품 명목으로 사줘야 하는데 영빈관은 팩스를 사용할 업무량이 많지 않잖아. 그래서 여기까지 팩스는 안 사주었어.”

“그렇구나.”

“리틀 브라운 이름으로 기업의뢰서를 보내기 어려우면 변상철이나 클럽에서 기타 치는 윤진형에게 부탁해 볼까?”

“아, 진형이 형한테 부탁해야겠네. 진형이 형도 사카모토 쯔요시 씨를 보고 싶어 하니까!”

“그래? 잘 됐네. 그럼 드럼이라도 치고 있어. 내가 일본서 이메일이 오면 알려줄게.”

“형, 조금 있으면 점심시간인데 우리 뭐 시켜 먹을까?”

“뭐, 그래도 되겠지. 자장면 시킬까?”

“그럼 간자장 두 그릇하고 탕수육 시켜.”

“양이 많지 않을까?”

“다 못 먹으면 탕수육은 남겨놓았다가 냉장고에 넣어놓고 먹으면 되지.”

“참, 그러면 되겠구나.”

그래서 음식을 주문하고 이영남은 드럼을 치러 갔다.

교바시 보디가드에서 이메일이 왔다.

기업조사 의뢰서와 수수료를 보낼 은행계좌번호가 왔다. 친절하게 설명까지도 있었다. 은행송금은 일본에서 찾는데 시간이 걸릴지 모르니 송금 후 송금영수증을 이메일로 보내주면 바로 일을 착수하겠다고 하였다.

강시혁은 서류를 출력시켰다. 그리고 드럼을 치고 있는 이영남 앞으로 갔다.

“일본서 서류 왔네.”

“그럼 밥 먹고 내가 클럽에 있는 진형이 형을 만나러 갈게. 오후 3시쯤이면 클럽에 출근할거야.“

그런데 이런 일은 강시혁이 해야 되는 게 맞을 것 같았다. 이영남은 어디까지나 오너의 아들이었다. 지금은 형이라고 자기를 따르지만 앞으로 이영남이 경영 참여를 하게 되면 모시고 근무해야 될지 모르는 상황이 올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윤진형이 한테 가서 서명 받는 일은 내가 하지. 귀한 집 도련님이 이런 일을 하면 쓰나.”

이영남이 귀엽게 웃으며 말했다.

“이런 일은 내가 해야 돼. 형은 진형이 형을 안지가 얼마 안 되잖아. 진형이 형은 내가 부탁하면 거절 못할 거야. 그래서 내가 갈게. 형!”

“윤진형이 일본에 수수료 송금하려면 신분증을 가지고 은행에도 들려야 할 텐데?”

“그것도 걱정 마. 윤진형은 내가 부탁하면 들어줄 거야.”

강시혁은 속으로 윤진형이란 기타리스트가 이영남에게 물질적으로 신세를 많이 졌을 거란 인상을 받았다.

주문한 중국음식이 도착했다.

강시혁과 이영남은 영빈관 지하실에 있는 관리실에서 같이 간자장과 탕수육을 먹었다.

음식을 먹으며 강시혁이 말했다.

“리틀 브라운이 송금수수료 내고 또 배달음식비까지 냈으니 오늘 돈을 많이 쓰겠네.”

“괜찮아. 형. 내가 경영 참여를 하고 있지 않아도 이런 돈은 있어.”

“돈 좀 벌게 해줄까?”

“돈 벌 기회가 있으면 형이나 벌어.”

“조금 투자금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나는 안 돼. 나는 신용이 좋지 않아 돈 빌리기도 힘들어. 리틀 브라운이나 벌어봐.”

“뭔데 그래?”

“홍 사장이 장명건설 가압류를 걸면 그때 장명건설 주식을 사들여봐. 재미 좀 볼 거야.”

“큰일 날 소리! 내가 주식투자 한다는 소리를 우리 아버지가 들으면 날벼락이 떨어질 거야. 아마 나를 호적에서 파버릴걸? 그렇지 않아도 내가 음악이나 하면서 투약까지 해서 내 논 놈 취급하는데 기업 내부 정보를 이용해 주식투자하면 되겠어?”

이 말은 맞는 말이다. 기업 대주주의 특수관계인이 기업의 내부정보를 이용해 주식투자를 하면 형사문제까지도 발생한다.

또, 기업에 대한 이미지 손상도 따른다.

“하긴, 리틀 브라운은 안 되겠네. 대그룹 회장님 아드님이 회사 내부정보를 이용해 주식투자를 했다면 세상 사람들의 비난을 받겠지.”

“그러니 형이나 투자하란 말이야.”

“돈이 있어야 하지.”

“내가 빌려줄까?”

이 말에 강시혁은 눈을 크게 뜨고 이영남을 쳐다보았다.

“말은 좋은데 날 뭘 믿고 빌려줘? 난 담보도 없는데.”

“형 신용을 담보로 해야지.”

강시형은 쓸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난 신용도 안 좋아. 여기 들어오기 전에 건대 앞에서 분식점 하다가 망했거든. 그래서 신용이 엉망이야.”

강시혁은 끝내 자기는 신용불량자라고 말하지는 않았다.

“형이 말하는 건 은행권의 신용이고 나는 달라. 나는 사람에게 투자하지 신용에 투자하는 것이 아니거든.“

“뭐라고?”

“지난번에 이태원에서 노는 애들이 나보고 투자를 해달라고 했었지? 그때 내가 거절하니까 폭력사태까지 갈 뻔했잖아. 다행히 형이 옆에 있어서 무사했지만.”

“그랬던 것 같아.”

“걔들은 투자할 가치가 없는 놈들이지. 벌어도 유흥비로 탕진할 놈들이지. 하지만 형은 달라. 형은 벌어도 차가운 술(필로폰)을 찾는 사람이 아니잖아.”

“그놈들도 약을 하는 놈들이군.”

“그래서 내가 그놈들과 거리를 두는 거야. 전에는 잘 어울려 다니며 놀았지만.”

“아무튼 이번 투자는 놓치기 아까워. 확실히 돈을 벌 수 있는 기회인데.”

“형! 주식은 시기를 사는 거야. 다시 말해 때를 사는 거지. 벌수 있는 재료가 있더라도 들어올 때와 나갈 때를 잘 모르면 안 되지. 그래서 어떤 사람은 벌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손실을 보는 것이 아니겠어?”

[이 자식은 드럼만 치는 줄 알았는데 제법인데?]

“정말 나한테 빌려주겠다는 거야?”

“빌려준다니까!”

“얼마를 빌려줄 수 있나?”

“얼마를 원해?”

“나야 다다익선이지.”

“다다익선?”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는 사자성어야.”

“지난번에 나에게 투자를 해달라는 놈들이 20억을 요구했었어. 그래서 내가 시달리다 못해 내가 가지고 있던 현금 10억과 아파트 담보로 융자받은 10억을 준비하기는 했었지. 형을 만나기 전의 일이야.”

“그랬었나?”

역시 돈이 있는 집구석의 자제들이라 금액 단위가 달랐다.

강시혁은 단돈 만원에도 벌벌 떨었지만 이들은 아니었다. 강시혁보다도 나이도 훨씬 어린놈들이지만 오고가는 돈의 화폐 단위가 달랐다.

“어때? 그 돈 20억 그대로 은행에 있으니까 형이 투자해 볼래? 그런데 정말 자신 있어?”

“저, 정말 그 20억을 나한테 빌려주겠다는 거야?”

“그런데 형, 왜 이렇게 몸을 떨어? 야쿠자 일곱 명을 떡으로 만들었다는 사람이 고작 20억에 몸을 이렇게 떨면 어떡해?“

[고작 20억? 하, 어린놈이 20억이라는 금액을 고작이라고 표현하네.]

강시혁이 오기가 생겼다.

“좋아! 빌려줘! 돈 벌면 반씩 나눠먹지!”

이영남이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돈을 빌려주는 이상 돈을 벌어도 형의 몫이고 손실을 보아도 형이 몫이야. 나는 그것까지는 관여 안 해.“

“알았어. 내가 책임지지.“

“하지만 돈을 빌려줄 땐 조건이 있어.“

“무슨 조건?”

“이자는 줘야 되겠지? 은행의 대출이자가 너무 부담스러우면 국고채 3년물 금리 정도는 줘야 되겠지?”

[으와, 이놈 이제 보니 무서운 놈이네. 삼방그룹 이건용 회장 피를 받아서 이재에는 도가 튼 놈이네.]

“국고채 3년물 금리가 얼마나 되는데?”

“연 3.62%야.”

[와, 이놈 소수점 두 자리까지 외우고 다니네.]

강시혁이 입술을 굳게 깨물며 말했다.

“좋아, 빌려줘! 이자는 분명히 주지.”

“다시 말하지만 주식이란 그렇게 쉬운 게 아니냐. 벌수 있는 재료가 있어도 사는 시기와 파는 시기를 잘못 잡으면 헛손질만 하는 수가 있어. 우리 아버지가 그런 말을 했어.”

[아버지가 회장이라 돈에 대한 교육은 철저히 시킨 것 같군.]

“알겠어. 그건 내가 알아서 하지.”

“그럼 차용증 써!”

강시혁이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차용증을 썼다.

강시혁은 어린 이영남 앞에서 몸을 떠는 것이 창피했다. 하지만 큰돈을 평생 만져보지 못한 흙수저라 찌질이처럼 떨 수밖에 없었다.

이영남이 차용증을 품속에 넣으며 말했다.

“돈은 내일이라도 형 통장으로 보내줄게. 두세 번 나누어서 입금이 될 거야.”

“고맙다.”

“다시 말하지만 돈을 못 갚으면 이 차용증은 형을 평생 따라다니며 괴롭히는 족쇄가 될지 몰라. 그러니 잘 생각해보고 지금이라도 투자 안 하겠다고 하면 이 차용증을 되돌려주지.”

“아니야. 누구의 말처럼 나는 면벽수련을 마치고 강호로 나온 사람이야. 되돌아가는 일은 없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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