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화 거물과의 맞장 (2)
(118)
강시혁은 변상철을 데리고 가려는 것이 이유가 있었다.
홍 회장이 하는 말을 자기가 놓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변상철이 옆에 있으면 나중에 법률문제가 발생하더라도 입보(立保: 보증을 세움)가 가능하기 때문이었다.
변상철도 강시혁을 따라가려는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변상철은 경찰 간부시험 공부를 하기 전에는 언론에 관심이 많았었다. 어문계 출신은 기업보다는 언론사가 더 맞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부모님들도 경찰 간부보다는 은근히 언론사 취업을 더 원했었다.
그런데 A일보는 들어가기가 정말 어려웠다. 일 년에 몇 명 뽑지도 않았다.
그래서 취준생들은 A일보 입사시험을 언론고시라고 불렀다.
변상철은 강시혁 몰래 A일보 기자시험에 두 번 응시해 보았었지만 서류심사도 통과하지 못했었다.
그래서 이 기회에 보수 언론의 심장이라고 할 수 있는 홍 회장을 만나 설전도 해보고 공갈도 쳐볼 수 있다니 자못 기분이 좋았다.
이영남이 말했다.
“형, 그런데 홍가 놈이 가지고 있는 장명건설 주식에도 가와라 흥업이 가압류를 하지 않을까?”
강시혁은 아차 했다.
삼방전기 10만주만 신경을 썼었는데 장명건설에도 가압류를 할 수 있어서였다.
장명건설의 주식 5%는 실제 홍 사장이 소유하고 있어서 가압류를 한다고 해도 법률적 문제에 저촉되는 것도 없었다.
[그러면 안 된다! 장명건설의 홍 사장 지분만 가압류해도 그룹이 타격을 입는다!]
만일 가와라 흥업이 홍 사장 지분에 대하여 가압류를 건다면 장명건설 주가는 폭락할 수 있었다,
지금 장기 노사분규로 주가가 바닥을 헤매는데 가압류까지 들어온다면 주가는 지하실 바닥을 뚫고 내려갈 것이 뻔했다.
또 장명건설의 지분 30%를 가지고 있는 삼방건설의 주가도 동반 폭락할 수 있었다.
삼방전기 주식 10만주에 대한 가압류보다는 파급력이 약하겠지만 삼방건설 주가는 일시적으로 하락될 것이 뻔했다.
[장명건설 가압류 들어오는 것도 막을 수 없을까?]
막을 길이 없을 것 같았다.
그러다가 퍼뜩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가와라 흥업은 실제 돈을 홍 사장한테 빌려주지 않았는데 일종의 쇼로 가압류를 진행한다면?]
강시혁은 머리를 망치로 맞는 듯한 충격을 느꼈다.
노사분규에 가압류까지 만들어 주가를 폭락시키고 홍 사장 측에서 조용히 주식을 매집한다면? 그리고 이후 주가를 띄운다면 틀림없이 큰 이익을 보기 때문이었다.
더군다나 협의이혼의 조건에 따라 내년 1월 31일까지 장명건설을 액면분할 한다면 주가가 다시 상승한다.
홍 사장은 크게 돈을 벌게 될 것 같았다.
[홍 사장이 진짜 노리는 것은 이것이 아닐까?]
강시혁은 홍 사장을 따라 자기도 장명건설 주식을 사면 어떨까 하였다. 폭락했을 때 사들이면 돈을 벌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자기는 종자돈이 없었다. 고작 홍 사장에게 두드려 맞고 번 700만원만 있을 뿐이었다.
[돈이 돈을 번다는 말이 맞아. 내가 돈이 있어야 뭘 하지. 변상철에게 투자해 보라고 할까? 이놈은 백수니까 돈이 없겠지. 자기 엄마가 돈이 있지만 내말 듣고 함부로 투자하지는 않겠지.]
그러다가 강시혁은 이영남을 흘깃 쳐다보았다.
이영남은 귀여운 입으로 입을 오물거리며 고기를 먹고 있었다.
[이영남에게 투자하라고 할까? 에이, 안하겠지. 대그룹 오너의 아들이 그런 푼돈이나 벌자고 그 짓 하겠어? 괜히 나중에 구설수라도 오르면 큰일이겠지.]
강시혁은 자기도 모르게 분노가 솟았다. 종자돈이 없는 자기가 너무 한심하고 대책이 없기 때문이었다.
이제 대리 벼슬 하나 받아서 언제 돈을 벌고 새 장가를 갈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에이! 씨팔!”
강시혁은 자기도 모르게 테이블을 꽝 쳤다.
술잔에 든 술이 출렁거렸다.
변상철과 이영남이 크게 놀랐다.
“형! 왜이래?”
“응? 아, 아니야. 홍 사장 하는 짓이 괘씸해서 잠시 흥분했나봐.”
강시혁이 이영남에게 말했다.
“이이다 유키 씨에게 가와라 흥업의 회사 현황을 조사해 달라는 것은 내일 오전 중에 전화를 할게. 오늘은 너무 늦었으니까.”
“그럼 내가 내일 오전 중에 영빈관으로 갈게. 그런데 이이다 유키 씨와 통화하려면 일본어 통역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이이다 유키 씨가 영어가 가능해. 조금 발음이 이상해서 겐사이 보디가드를 겐사이 보디가이도라고 발음해서 문제지만.”
“그렇다면 다행이네.”
이야기 도중 이영남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나, 아는 형하고 식사하고 있어.”
말하는 것을 보니 친구에게서 걸려온 전화 같았다.
그런데 식당이라 손님들이 떠드는 소리 때문에 전화가 잘 안 들리는지 이영남이 밖으로 나갔다.
강시혁이 변상철의 빈 잔에 술을 채워주며 말했다.
“술 한 병 더 시킬까?”
“그만하지. 오늘 형이 손가락 수술 한 것 때문에 술을 안 마시니 재미가 좀 없네.”
“우리 A일보 홍 회장한테 가는 건 언제 갈까?”
“모레 어때? 난 내일 포천의 아버지 회사에 가볼 일이 있어.”
“그럼 모레 오전 중에 와라. 오늘 예식장에 갔던 것처럼 정장하고 와라.”
“그런데 난 명함도 없는데.”
“나도 명함은 안가지고 갈 거야. 비서실 대리 명함은 아직 안 만들었어. 삼방 문화재단 때 명함밖에 없어.”
“그래?”
“홍 회장한테는 삼방그룹 명함은 주지 않고 대면을 할거야. 삼방그룹 쫄다구 명함 들고 가봤자 괜히 역효과만 날거야.”
“그래도 어디 소속이라고 밝혀야 되지 않을까?”
“명함 없어도 내가 홍 사장에게 맞은 것 사실이고 일본서 손가락 잘린 것도 사실이니까 괜찮겠지. 명함을 요구하면 그냥 삼방문화재단 명함주지.”
“그 명함엔 대리라는 표시가 없을 것 아닌가?”
“언론재벌 홍 회장이 대리나 과장 따위를 쳐주겠어? 아마 임원이 왔다고 해도 시큰둥할 거야.”
“하긴 그래.”
“그런데 너 지금 전화 받으러 나간 리틀 브라운의 정체에 대해서 알지?”
“알아. 삼방그룹 아들 아닌가? 클럽에서 기타 치는 내 친구 윤진형이 귀띔해 줬어. 형이 리틀 브라운에게 존댓말 쓰는 것도 영빈관 출입하는 것도 수상히 보긴 했어.”
“그랬구나.”
“그런데 오늘은 리틀 브라운이 형한테 반말을 하데? 하긴 형이니까 친밀감이 있으라고 반말을 하는지는 모르겠네. 내가 형한테 반말하는 것처럼 말이야.”
“리틀 브라운이 나를 잘 따르기는 해.”
“윤진형이 말로는 리틀 브라운이 음악만 좋아해서 자기 아버지인 회장에게 눈 밖에 난 것 같다고 하더군.”
“그래?”
“하긴 얼마나 음악을 좋아하면 별칭이 리틀 브라운이야? 오늘도 형한테 가와라 흥업의 회사 현황을 조사의뢰 하겠다고 하면서 일본인 재즈 음악가를 찾는다고 하잖아.”
“재벌 아들이지만 음악 덕후임에는 틀림없어.”
“그리고 정체성도 조금 의심이 가. 어느 때 보면 자식이 호모 같기도 해.
“‘설마.“
“대한민국 굴지의 재벌 아들이 왜 그렇게 컸나 모르겠어.”
강시혁은 리틀 브라운이 회장의 혼외의 자식인 것을 변상철은 모르고 있는 것 같아 다행으로 여겼다.
이영남은 전화통화를 끝냈는지 들어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저기 들어오네. 리틀 브라운 이야기는 다음에 하지.”
이영남이 들어오면서 말했다.
“어, 형. 미안해. 식당 밖에서 노는 애들을 또 만났네.“
“이태원에서 노는 애들 말인가?”
“맞아. 형 자랑을 좀 했어. 이번에 일본 출장 가서 일본 야쿠자들과 칠대일로 싸웠다고 자랑 좀 했어.”
옆에서 변상철이 킥킥대고 웃었다.
“형은 완전히 이젠 조폭이 되어가는 것 같네.”
강시혁도 자기가 이렇게 되어가는 것은 싫었다. 이건 아니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경영학 공부를 더해 기업 활동에 대한 공부를 더 하고 싶었는데 주위에서 싸움이나 하고 돌아다니는 사람으로 만드는 것 같아서였다.
강시혁은 오늘 술을 마시고 싶었다.
그동안 손가락을 다친 이후는 술을 마음 놓고 마시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오늘 잘 참았다고 생각했다.
술을 마시지 말라는 의사의 말은 들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식당을 나왔다.
밤이 깊어지자 이태원 거리의 사람은 더욱 많아졌다.
해밀턴 호텔 쪽으로 오니 경찰관 두 명이 서 있었다. 젊은 경찰관이었다.
강시혁이 다가가 손을 내밀며 말했다.
“수고 많습니다. 용산구 방범위원입니다.“
“아, 그러십니까?”
이 모습을 보고 이영남은 어깨를 폈다.
이영남이 클럽에 가서 한잔 더 하자고 했다. 기타리스트 윤진형이 있는 클럽에 가서 조금 놀다 가자고 하였다. 그렇게 되면 또 술에 대한 유혹을 받을 것 같았다.
“나는 들어갈게. 손에 통증이 오기 시작하네.”
“그럼 상철이 형하고 놀다 갈게.”
“그래, 난 먼저 갈게.”
그러면서 강시혁은 먼저 영빈관으로 돌아왔다.
강시혁은 영빈관에 들어와 손과 발을 씻고 치아도 닦았다.
누워서 미국 드라마나 보다가 자야 되겠다고 마음먹었다.
침대에 누우니 장명건설의 주가만 생각났다.
틀림없이 이번에 잘만 투자하면 돈을 벌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생각하다가도 종자돈 700만원으로 벌어야 얼마나 버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홍 사장에게 맞아서 번 돈 700만원을 몽땅 투자해 볼까? 배로 튄다면 700만원은 먹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러다가 강시혁은 어디서 돈을 빌려서 좀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전에 주식투자할 때는 정보가 없었지만 이번엔 확실히 돈을 벌수 있을 것 같았다. 홍 사장만 따라 해도 될 것 같았다.
[삼방전기에 가압류 거는 건 안되지만 장명건설은 가압류 걸어라. 나도 따라서 좀 담가볼 테니까!]
잠들기 전에 증권사이트에 들어가 보았다.
장명건설은 한때 삼방그룹에 편입될 당시 폭등하여 2만원까지 갔지만 지금은 지속된 노사분규로 1만 2천원 언저리에서 맴돌고 있었다.
주주 토론장엘 들어가 보았다.
모두 바닥에 왔으니 이제 들어가도 될 것 같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유튜브도 들어가 보았다.
애널리스트들은 바닥을 다지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대기업이 대주주라 언젠가 반등이 가능 할것이란 설명도 있었다.
강시혁이 보기엔 전부 장님 코끼리 만지는 격이었다.
전엔 애널리스트나 경제학자들이 대단한 사람들로 보였으나 오늘 보니 별것 아니란 생각도 들었다.
[제기랄! 전부 놀고 자빠졌네!]
[소액 주주들은 홍 사장이 자기 지분에 대한 가압류를 걸 계획을 모르고 있겠지? 알 수가 있겠나? 그것은 오로지 금수저인 홍 사장만 알고 있는 사항인데.]
다시 한 번 장명건설의 회사현황을 보았다.
자본금: 300억
발행주식: 600만주
1주당 발행가: 5천원
현재 주가: 1만 2천원
현재 시가총액: 720억원
주주 분포를 보았다.
홍승필: 5%
김장명: 5% (홍승필 매형)
삼방건설: 30%
이영진: 5%
금융권 및 외국인: 5%
소액주주: 50%
홍승필 사장이 5%를 가지고 있다면 발행주식의 5%인 30만주를 가지고 있다는 말이 된다. 15억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그렇지만 시가로 보아서 그의 주식 평가액은 36억이 된다.
이 회사는 원래 자본금이 100억이었으나 감자 후 매각이 아니라 증자 후 매각을 하였다.
대개 M&A를 할 때는 감자 후 매각인데 이 회사는 증자 후 제3자 배정방식을 취했다. 그 제3자가 삼방건설이다. 그래서 삼방건설의 자회사가 된 것이다.
삼방그룹의 임직원들은 장명건설을 과대평가하여 인수하였다는 의견을 제출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그래서 이영진 상무의 배임 이야기가 조금씩 흘러나오고 있는 중이었다.
더구나 이 회사는 장기 농성으로 그룹의 이미지에도 타격을 입혔다.
홍 사장의 지분에 대한 가압류가 들어온다면 또 한 번 시끄러운 문제가 발생할지도 몰랐다.
강시혁이 피식 웃었다.
[일이 재미있게 돌아갈 것 같은데?]
강시혁은 홍승필 사장의 가압류가 들어온다면 주가는 1만 원 이하로 곤두박질 할 것으로 보았다.
그때 자기도 홍 사장한테 맞아서 번 돈 700만원을 한번 질러보기로 마음먹었다.
시계를 보았다. 이제 11시가 조금 넘었다.
이영진 상무에게 카톡을 보냈다.
[비서실 대리라는 과분한 직책을 받았습니다. 오늘 비서실 직원들과 인사도 했습니다. 모두 반갑게 대해줘 고마웠습니다.
내일은 일본의 이이다 유키 씨에게 가와라 흥업에 대한 기업현황과 신용상태를 조사해 달라고 의뢰를 하겠습니다.
그리고 모레 쯤 A신문사에 들어가 홍 회장님을 만나 홍 사장님의 삼방전기 가압류 준비를 철회해 달라고 요구하겠습니다.
저는 홍 사장에게 두 번이나 피해를 입었기에 홍 회장님도 제 요구를 들어주실 것으로 봅니다.
밤늦게 미안합니다.]
조금 있다가 이영진 상무로부터 답장이 왔다.
[적극 응원하겠습니다.
나중에 홍 회장님의 답변을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좋은 밤 되세요.]
“좋은 밤 되라고? 오늘 밤에도 꿈속에 이영진 상무가 나타나 다친 내 손을 쓰다듬어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