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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녀의 두 번째 남편-115화 (115/199)

115화 승진 (4)

(115)

강시혁은 이영진 상무를 향하여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 미안하지만 가와라 흥업에서 왔다는 내용증명을 제가 한부 복사해가면 안될까요?”

“예? 그건 왜요?”

“이제 저는 비서실의 대리가 되었으니까 무언가 상무님의 일을 돕고 싶습니다.”

“뜻은 좋은데 이런 일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닙니다. 노련한 매니지먼트에 대한 지식도 있어야 합니다.”

“물론 제가 경험이 없어 당장 힘이 되어드리지는 못할 겁니다. 그렇지만 저도 공부하는 차원에서 가와라 흥업 문제에 한번 접근하고 싶습니다.”

“알겠어요. 그럼 서류를 복사해 드리죠. 하지만 이 일은 외부에 누설하시면 안 됩니다.”

“알겠습니다. 저만 알고 있겠습니다.”

이영진 상무는 비서를 불렀다. 그리고 일본에서 배달되어온 내용증명을 한부 복사하라고 하였다.

내용증명 뒤에 붙은 한글 번역본도 같이 복사해 강 대리에게 주라고 하였다.

강시혁이 복사서류를 받으며 말했다.

“현재로서는 제가 해결 방안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 서류를 가지고 무슨 수가 있겠나 집중적으로 연구해 보겠습니다.“

“무리하지는 마세요. 그냥 공부한다고만 생각하시면 됩니다. 이 문제는 법률을 전공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그룹 법무팀에서 처리할 것입니다.”

강시혁은 일단 서류를 곱게 접어 양복의 안 포켓에 넣었다.

그리고 절도 있게 허리 굽혀 이영진 상무에게 인사하고 방을 나왔다.

이영진 상무 방을 나와 비서에게 전자 사장님이 계신 곳을 물었다.

비서는 전자 사장이 있는 15층 사장실을 알려주었다.

강시혁이 이번엔 전자 사장을 만나러 15층으로 갔다.

전자 사장까지는 승진 인사를 하지 않아도 되지만 자기를 자주 챙겨주는 것 같아 고마움은 전달해 주어야 할 것 같았다.

그리고 전자 사장은 CEO로는 최고의 직에 있는 사람이라 무언가 배울 것도 많으리라고 보았다.

이런 분은 적극적으로도 접근해야 하는데 그동안 명분이 없어 접근하지 못했다,

명분 없이 무작정 접근하는 것은 오히려 상대방이 의심하고 경계감만 높여주기 때문에 찾고 싶어도 못 찼았던 것이다.

문화재단에서 제일 높은 사람인 관장이 대학교 학장 출신이고 저명한 화가 출신의 행정가다. 연봉은 3억 정도를 받는다. 대학 학장보다는 훨씬 많이 받는다.

그렇지만 전자사장은 얼마 전 뉴스에 보니까 연봉이 35억이라고 하였다. 도도한 관장의 10배 급여를 받고 있는 것이었다. 국내 CEO로 월급 많이 받는 순서로 말하자면 베스트5 안에 들어가는 사람이었다.

그룹사에서 그에게 그렇게 많은 급여를 주는 것은 그만한 일을 하기 때문이었다. 그런 사람을 강시혁이 이제 정식으로 만나러 가는 것이다.

사장이 바쁘니까 그냥 가라고 손짓을 할지 모르지만 오늘은 당당히 비서실 대리 자격으로 가는 것이었다.

강시혁이 엘리베이터를 탔다.

전에는 이 빌딩에 와서 사원증을 목에 걸고 다니는 사람들을 보면 한없이 부러웠는데 지금은 아니었다. 자기는 평사원도 아니고 대리이기 때문에 이제는 어깨를 펴고 다니는 것이었다.

15층 삼방전자 사장실을 들어갔다.

여기도 예쁜 여비서가 사장실 입구에 앉아 있었다. 강시혁은 아예 자기 소속을 말했다.

“비서실 강시혁 대리입니다. 사장님을 뵈러 왔습니다.”

“잠깐 기다려 주세요.”

비서가 먼저 사장실에 들어가 비서실의 대리라는 사람이 왔다고 보고했다.

사장은 비서실 대리가 무슨 심부름이라고 왔는가 하여 들어오라고 하였다. 비서가 강시혁 대리라고 분명히 말했는데 사장은 건성으로 들었는 것 같았다. 영빈관에 근무하는 강시혁이 온지는 몰랐던 것 같았다.

강시혁이 문을 열고 들어오자 사장은 눈을 껌벅거렸다.

그리고 나서 큰 소리로 말했다.

“자네는 영빈관 강 반장이 아닌가!”

“예. 맞습니다. 이번에 비서실 대리로 승진하여 인사하러 왔습니다.“

그러면서 강시혁은 두 손을 앞으로 모으고 코가 땅에 닿도록 허리 굽혀 인사를 하였다.

“번지수를 잘못 찾은 것이 아닌가? 비서실 대리로 승진했는데 왜 삼방전자 사장을 찾나?”

“사장님이 적극 저를 추천해 주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래서 인사드리러 왔습니다.”

"응? 나는 추천한 것도 없는데? 그거야 자네가 일을 잘해서 된 거지 나하곤 아무 상관이 없네. 아무튼 승진을 했다니 축하하네. 앞에 앉게.“

“앞에 앉아도.... 되겠습니까?”

“사람이 앉는 의자니까 앉아도 되겠지.”

사장이 비서에게 차를 가져오라고 하였다.

여기서도 비서가 자꾸 강시혁을 쳐다보았다. 사장이 대리급 사원을 불러 차를 대접한 전례가 없기 때문이었다.

또, 비서실 대리면 바로 아래층에서 근무하는 사람일 텐데 사장이 차를 대접하는 것이 수상했다. 이런 비서의 궁금증을 알았는지 사장이 말했다.

“이 사람은 이태원 영빈관 파견자니까 차는 대접해서 보내야겠지.”

예쁜 여비서가 녹차를 가져왔다.

여비서는 강시혁이 앉은 테이블에 찻잔을 올려놓고 강시혁을 다시 한 번 또 쳐다보았다.

여비서는 자기 자리에 돌아와 그룹 비서실 여직원에게 전화를 했다.

“오늘 전산망에 비서실 대리로 발령 난 사람 있지? 그 사람 지금 우리 사장님 실에 와있어. 잘 생겼던데?”

“그 사람은 보통 비서실 직원이 아니야. 이영진 상무님 보디 가이드나 다름이 없는 경호요원이야.”

“그래? 어쩐지 가슴이 벌어지고 머리도 조폭 같더라.“

“이번에 이영진 상무님이 일본에 갔을 때 일본 야쿠자 조폭들을 일곱 명이나 상대해 싸웠데.”

“그으래? 멋진 남자네! 그런데 옆모습이 참 멋지더라. 내가 차를 가져다주면서 봤어.”

“마음에 있어?”

“얘는 별소리 다한다!”

“그 사람 손 봤지?”

“왼손은 다쳤는지 붕대 감았더라.”

“야쿠자들이 회칼로 손가락을 잘랐데.”

“어마! 끔찍해라! 그게 정말이야?”

여자들이 전화 받는 소리는 사장실까지 들리지는 않았다.

사장이 강시혁에게 말했다.

“차, 마셔! 왜 내 얼굴만 쳐다보나?”

“마시겠습니다.”

“이영진 상무님은 뵈었나?”

“방금 뵙고 내려오는 길입니다. 이영진 상무님도 제가 승진하는데 전자 사장님이 많이 도와주셨다고 했습니다.”

“내가 왜 자네를 도와주나? 대리 승진은 자네가 그동안 착실히 근무했고 또 이번에 일본에 가서 공도 세웠으니까 되었겠지.”

“일본에 있을 때 사장님과 친구처럼 지낸다는 교바시 보디가이드 사장님에게 신세를 많이 지었습니다. 교바시 보디가이드 사장님이 귀국하면 꼭 전자 사장님께 안부를 전해달라고 하시었습니다.“

“그랬나?”

강시혁은 교바시 보디가이드의 사장이 자기에게 연봉 10만 불 조건으로 스카웃 제의를 했다는 것은 말하지 않았다.

“교바시 보디가이드의 이이다 유키 사장이 욕심이 많은 사람이네. 자네를 보고 그냥 두지는 않았을 텐데? 같이 일하자고 한마디 했을 것 같은데?”

강시혁은 속으로 뜨끔했다.

혹시 이 사람은 다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 그런 말은.....“

“이제 대리가 되었으니 일본은 못가겠지?”

그러면서 사장은 다 알고 있다는 듯이 생글거렸다.

“저, 저는 이영진 상무님을 지켜야 합니다.“

“그래, 잘했네. 그래야 되겠지.”

“전에 사장님께서 영빈관에 오셨을 때 자네는 지금처럼 그대로 근무하면 되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습니다.”

“내가 그랬었나? 그런데 대리는 관리직이네. 이제는 그대로 근무하면 안 되고 일을 찾아서 해야 되겠지? 안 그런가?”

“그, 그래서 가와라 흥업이 가압류 한다는 것을 어떻게 해서든지 저도 해결방안을 연구해 보려고 합니다.”

“좋은 방안이 있나? 자네의 샤프한 생각을 나도 한번 들어보세.”

그러면서 사장은 짓궂은 표정으로 말했다.

“아, 아직은 방안을 세우지 못했고 영빈관에 돌아가면 연구를 해보려고 합니다. 그래서 가와라 흥업에서 보내온 내용증명도 제가 한부 복사했습니다.”

그 소리를 듣더니 전자 사장이 크게 웃었다.

“하하하. 이제 강시혁이라는 사람이 면벽수도를 마치고 드디어 강호 세계로 하산을 한 것인가?”

“예?”

“잘 해봐. 이제 슬슬 강호 무림은 자네의 시대가 될 것이네.”

[흠. 이 양반도 무협지를 많이 읽어본 것 같네.]

“저는 경영학과 출신도 아닙니다. 또 해외 MBA출신도 아닙니다. 현재는 의욕만 가지고 있지 아무것도 아이디어를 낼 수가 없습니다. 그게 걱정입니다.”

“경영학과 출신도 아니고 해외 MBA출신도 아니라고? 그럼 나하고 똑같네.”

“예?”

“나는 지방에서 공고를 나왔지. 그리고 공장에 다니면서 이공계 야간대학을 다녔지. 나 같은 사람도 있는데 뭘 그렇게 걱정하나?

강시혁은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사장님 세대하고 저하고 같습니까? 그때는 그게 가능했는지 몰라도 지금은 개천에서 용이 되는 시대가 아니잖습니까! 상승 사다리는 이미 부러져버린지 오래 된 시대입니다.]

전자 사장이 강시혁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입가에 미소를 띤 채 말했다.

“자네는 지금 속으로 사장님 세대와 우리 세대는 다릅니다 라고 말하는 것 같군.”

[하, 이 양반은 독심술이라도 연구했나? 내 마음속을 거울처럼 들여다보는 것 같네!]

사장이 일어나 뒷짐을 진채 사장실을 왔다 갔다 하며 말했다.

“이제부터 경영학에 대하여 관심을 갖고 공부를 하게. 지금도 성공하는 사람은 성공하네.”

“알겠습니다.”

“영빈관에서 생활한다고 들었네. 이제 소속도 비서실로 옮겼으니 문화재단에서도 자네에게 업무간섭을 안할 것이네. 공부하는 환경이 얼마나 좋은가?”

“그, 그런 것 같습니다.”

“경영학 책을 보면 따분하고 막히는 부분이 많을 것이네. 그렇다면 주식투자를 해보게.”

“예? 주식요? 투자할 돈이 없습니다. 그리고 주식은 한번 혼난 적이 있어서 주식 근처에 가지도 않습니다.”

“주식투자로 돈을 벌라는 말은 아니네. 주식투자는 사장인 나도 힘드네. 그만큼 시장의 변수도 많고 세력들 장난도 많은 것이 주식 시장이네.”

“그런데 투자하라는 뜻은........”

“우리 삼방그룹의 계열사는 20개 회사가 넘네. 삼방전자, 삼방화학, 삼방전기, 삼방건설, 삼방개발..... 우선 주력기업 몇 군데 주식을 10주씩만 사보게. 돈이 안되면 1주도 좋네. 그리고 그 회사 대하여 연구를 하게. 1주라도 그 회사 주식을 사면 공부를 하게 되지. 하다못해 재무제표라도 보게 되네.”

“그건 그럴 것 같습니다.”

“금융감독원 사이트에 회사의 감사보고서 자료가 있으니까 잘 보고 연구하게. 자네는 지금 삼방전자나 삼방전기의 작년도 영업 이익률에 대하여 모르지 않나? 내 돈을 투자하면 관심을 갖게 되지.”

“알겠습니다.”

이때 비서가 들어왔다.

“일본서 전화가 왔습니다. 교바시 보디가이드의 사장님이시랍니다.”

“바꿔 줘봐.”

강시혁은 전자 사장의 전화 받는 모습을 보고 상당히 놀랐다. 유창한 일본말이 쏟아져 나오기 때문이었다.

이공계 야간대학을 나온 사람이 리츠 메이칸 대학의 최 교수보다도 일본어를 더 잘 하는 것 같았다. 아니, 이럴 때는 꼭 일본사람 같았다.

전화를 끊고 전자사장이 웃으며 말했다.

“방금 이이다 유키 사장과 통화를 했네. 가와라 흥업이 내용증명 보낸 것에 대해서 말했네. 이이다 유키 사장은 삼방그룹이 이에 대해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를 물었네.”

“아, 그렇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그까짓 일본의 내용증명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는다고 했네.”

“그래도 신경은 써야하지 않을까요?”

“내가 이이다 유키 사장에게 분명히 말했네. 지금 비서실 대리로 승진한 강시혁 대리가 내용증명에 대한 대책을 연구 중인데 무얼 그렇게 걱정 하겠는가 했네.”

“예? 저, 저는 아직 아무것도 연구한 것이 없습니다.”

“무얼 그리 걱정하는가? 걱정하지 말게!”

“예? 걱정하지 말라니요?“

“자네는 일본에 가서 야쿠자 일곱 명과 맞장 떴다며?”

“그, 그렇습니다.”

“이번에도 맞장 떠! 바로 쳐들어가 맞장을 뜨란 말이네.”

“예? 누구하고 맞장을 뜨란 말입니까?”

“누구긴 누구야? 신문재벌 홍 회장과 홍 사장이지!”

“예엣?”

“바로 쳐들어가란 말이네!”

“어떻게, 그렇게!“

“그들은 자네에게 채무가 있지 않은가? 자네는 삼성동 오피스텔에서 맞았고 또 일본에서 손가락도 잘려지지 않았는가?”

“그건 맞습니다.“

“그만한 채권이 있다면 이니셔티브를 쥔 쪽은 자네네.”

강시혁은 무슨 말인지 통 몰라 눈동자만 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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