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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녀의 두 번째 남편-114화 (114/199)

114화 승진 (3)

(114)

다음날 오전

삼방그룹 전산망에 인사발령 하나가 떴다.

비서실 대리 한 명 인사발령 공지였다.

인사발령은 나중에 퇴직금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인지 별도로 문화재단에서 전출이란 문구가 들어있기는 했다. 몇 개월간 문화재단에서 근무한 일수를 인정한다는 문구였다. 그리고 근무지는 영빈관 파견이라고 했다.

비서실 직원들이 웅성거렸다.

모두 총무를 담당하는 유길준 대리한테 몰려들어 물어보았다.

“어이, 유 대리. 강시혁이 누구야? 대리 발령인데?”

“나도 잘 모르겠어. 여권 발급 때문에 한번 통화는 했었는데 영빈관에서만 쭉 근무했던 사람이라 교류는 없었어.”

“어느 대학 출신이야?”

“문화재단에서 넘어온 서류를 보니까 K대 영문과 출신이네.”

“K대 영문과? 스카이 출신이 아니네. 그렇다고 미국에 가서 MBA를 따온 것도 아니고.”

“전기 기능사 자격증 하나는 있더군.”

“전기 기능사? 그런 거야 기술학원만 다니면 다 따는 것 아니야?”

“너는 없잖아?”

“이제 알겠네. 삼방그룹 비서실 대리 특채는 기능사 자격증이 있어야 한다는 걸. 어이, 우리들도 이제 기술학원이나 다니자.”

임창영 과장이 왔다.

“야, 너희들 여기서 뭐하는 거야?”

“대리 인사발령이 있어서 이야기 나누는 중입니다. 과장님은 영빈관에서 근무한다는 대리 발령자를 알겠군요. 그동안 이태원 영빈관 출입도 했었으니까요.”

“아, 강시혁 말이지? 알아. 그 사람.”

“그 사람은 영빈관 근무자인데 거기서 뭘 하는 사람입니까? 거기서 높은 사람들 회의가 자주 있는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그 사람은 VIP경호원이야.”

“경호원요? 전기기능사 아닙니까?”

“아니야. 영어도 잘하고 태권도가 3단이야. 인물도 잘났어. 이번에 이영진 상무가 일본 출장 갔을 때 일본 야쿠자 일곱 명과 맞짱 뜬 인물이야.”

“일곱 명과요? 혼자서 말입니까?”

“혼자서 그랬다는군. 나도 그 친구가 운동을 한 줄은 알지만 혼자 그렇게 싸운 줄은 몰랐어. 이야기 들으니 자동차 보닛 위에서 붕붕 날아다니며 공격했다던데?”

“오, 그래요? 그럼 원래 국가 금메달 선수 출신 아닙니까? K대학은 운동 특기자들을 원래 잘 뽑잖습니까?”

“그건 아닌 것 같아. 일단은 영어 잘하고 운전 잘하고 운동 잘하면 경호원으로 손색은 없겠지. 그런 건 자네 같은 스카이출신 책상물림이 하는 건 아니지. 자네도 원한다면 내가 추천해 줄까?”

“믿을 수가 없네요. 야쿠자 두세 명도 아니고 일곱 명과 맞짱을 뜨다니요. 야쿠자들이야 원래 회칼을 가지고 다니는 인간들 아닙니까?”

“그렇지 않아도 싸우다가 잡혀 손가락이 하나 잘려져 나왔다고 했어. 접합수술은 했지만 손가락 하나가 나갔으니 나중에 여기 한번 들어오면 봐 바.”

“오, 그래요?”

직원들이 이제야 강시혁의 실체를 알고 인정을 해주는 눈치였다.

일단은 자기들이 갖고 있지 않은 능력을 가졌으니 스카이 출신도 아니고 공채 출신도 아니지만 인정을 해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경호원으로의 능력이지 나중에 자기들처럼 제너럴 매니저로 성장하는 데는 한계가 있으리라고 보았다.

이것이 비서실에 근무하는 엘리트 사원들의 의식이었다.

비서실 여직원이 임창영 과장에게 왔다.

“저, 과장님! 실장님이 찾는데요?”

“나를? 알았어요.”

임 과장이 비서실장 방으로 갔다.

“찾으셨습니까?”

“전산망에 뜬 인사발령 통보 봤지?”

“봤습니다.”

“자네가 강시혁이라는 친구를 잘 아니까 전화해서 비서실로 들어오라고 하게. 승진했으니 회장님과 이영진 상무에게 인사는 시켜야겠지. 관례상 대리급은 승진 시 회장님까지는 인사하지 않지만 특수 경호업무를 하게 될 사람이라 인사는 시켜야겠지.”

“알겠습니다.“

“그리고 여기 들어오면 비서실 간부사원들에게도 인사 시키게.”

“알겠습니다.”

강시혁이 책상에 앉아서 업무일지를 쓰다가 전화를 받았다.

비서실 임창영 과장의 전화였다.

“축하합니다. 오늘부로 강시혁 씨는 삼방그룹 비서실 대리로 발령이 났습니다.”

“예? 저, 정말입니까?”

어제 문화재단 미술관 관장이 하던 말이 맞았다.

좋은 소식이 있을 거란 이야기를 했는데 바로 이거였구나 하였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강시혁 씨를 대리로 올리는 데는 이영진 상무와 전자 사장님의 입김이 많이 작용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면 그렇지. 나의 승진에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이영진 상무겠지. 그런데 전자 사장님은 또 고맙게 이번에도 승진하는 걸 거들어주셨구나. 그 양반은 이상하게 나를 잘 본 것 같아. 그런데 뭐? 미술관 관장이 기회 있을 때마다 나를 대리시켜줘야 한다고 약을 팔았다고? 그 여자는 참 속보이는 행동만 골라하네.]

임창영 과장의 말이 계속 되었다.

“강 대리는 근무지가 비서실은 아니고 영빈관 파견근무가 될 것입니다. 하는 일은 이전하고 같습니다. 단 회장님과 이영진 상무의 경호업무 일은 좀 더 늘어날 것 입니다.”

“알겠습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비서실장님께서 강 대리를 본사로 들어오라고 하셨습니다. VIP경호 업무를 맡는 분이라 회장님과 이영진 상무님께 인사해야 한답니다. 그리고 비서실 실장님을 비롯한 간부들에게도 인사해야 합니다. 복장 단정히 하고 오전 중에 들어오시기 바랍니다.”

“알겠습니다!”

강시혁은 세탁소로 달려갔다.

야쿠자들과 마사키 미술관 앞에서 싸울 때 옷이 터져 수선해달라고 맡겼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세탁소 아줌마가 옷을 고쳐 놨다. 아줌마가 너무 고마워 수선비 거스름돈은 받지도 않았다.

강시혁은 깍두기 머리를 다시 빗고 이번에 공항 면세점에서 사가지고 온 넥타이를 맸다.

“비서실 놈들은 다 깔끔한 놈들이니 나도 이미지 하나는 깨끗하게 하고 가야지. 더구나 이영진 상무도 만난다니 멋있게 하고 가야지.”

강시혁은 얼굴에 로션도 또 바르고 양복에 향수도 뿌렸다.

손가락의 붕대로 새것으로 다시 감았다. 손가락이 어디 부딪치면 안 되므로 손가락 세 개를 동시에 붕대로 감았다. 그랬더니 많이 다친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기왕이면 많이 다친 것처럼 붕대를 감고 가야지. 인생은 어차피 연출이 아닌가!]

강시혁이 삼방그룹 본사로 갔다.

우선 비서실 임창영 과장을 만났다. 임 과장이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건장한 체격에 깍두기머리에 손에 붕대를 감고 온 강시혁을 보고 직원들이 수군거렸다.

“저 사람이 이번에 대리 발령받은 강시혁이라는 사람인가보다.”

“체격 정말 좋은데? 그런데 머리가 깍두기인걸 보니 혹시 조폭 출신이 아닐까?”

여비서들도 수군거렸다.

“저 사람이 이번에 발령받은 강 대리라는 사람이래.”

“경호요원이라고 해서 무섭게 생긴 줄 알았는데 존잘남인데?”

“언니는 애완견보다는 저런 대형견이 좋다고 했잖아?”

그러면서 여비서들은 킥킥대고 웃었다.

강시혁은 킥킥대고 웃는 여자를 멀리서보고 이런 생각을 했다.

[저 여자들도 삼방그룹 비서실 직원이니까 급여가 연봉 5천, 6천 만원은 받겠지?]

강시혁이 임 과장의 안내로 비서실장을 만났다.

강시혁이 꾸벅 인사하며 말했다.

“강시혁입니다.”

“음. 축하하네. 이제 비서실 식구가 되었으니 잘해보세.”

그러면서 비서실장이 손을 내밀어주었다.

강시혁이 황송해서 두 손으로 악수를 하려다가 멈칫했다. 자기의 왼손은 붕대가 감겨져 있다는 사실을 알고 엉거주춤한 자세로 악수를 하였다.

“회장님 나가시기 전에 인사를 드려야 하니까 나랑 같이 가지. 대리급 승진인사에 회장님까지 인사하지 않지만 자넨 VIP경호요원이라 인사하는 게 좋겠지. 손은 괜찮은가?”

“괜찮습니다.”

회장실은 방이 넓어서 그런지 고요하기만 했다.

두꺼비처럼 생긴 회장은 방 한가운데 있는 긴 테이블에서 신문을 보고 있었다.

젊은 사람들은 스마트폰을 보지만 회장 같이 나이 많은 사람들은 역시 종이 신문을 즐겨보았다.

회장이 돋보기안경 너머로 비서실장을 쳐다보았다.

비서실장이 어깨를 숙인 채 말했다.

“이번에 승진한 강시혁 대리입니다. 회장님께 인사를 드리러 왔습니다.”

회장은 신문을 든 채 돋보기 너머로 강시혁을 쳐다보았다.

강시혁이 허리가 땅에 닿도록 크게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였다.

“흠. 그래? 축하하네. 강시혁이라고 했지? 일 잘 하게.”

“열심히 하도록 하겠습니다.”

“손은 괜찮은가?”

“넵. 수술이 잘되어 원상회복이 가능하다고 했습니다.”

“다행이네. 왔으니 이영진 상무도 보고 가게.”

그러면서 회장은 다시 신문을 보기 시작했다.

비서실장과 강시혁이 동시에 허리 굽혀 인사를 하였다.

비서실장과 강시혁은 회장 방을 나왔다.

비서실장이 말했다.

“이영진 상무 방은 아래층에 있으니 혼자 가게. 난 일이 좀 있네. 이영진 상무 방에 갔다가 다시 나한테 와야 하네. 비서실 직원들과도 인사를 해야 하니까.”

“알겠습니다.”

강시혁이 이영진 상무의 방에 가자 방 입구에 있는 데스크에 앉아있던 비서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강시혁의 양복 깃에 단 삼방그룹 배지를 보고 말했다.

“어느 부서에서 오셨습니까?”

“상무님 계시죠? 이번에 새로 비서실로 발령받은 강시혁 대리입니다.“

강시혁은 이제 당당히 대리라고 말했다.

“안에 계십니다. 들어가세요.”

강시혁이 노크를 하고 이영진 상무 방에 들어갔다.

이영진 상무는 책상 앞에 앉아서 노트북을 보고 있다가 고개를 들었다.

“이번에 새로 발령을 받아 인사를 하러 왔습니다.”

“어머! 강 반장, 아니 강 대리님! 축하해요.”

이영진 상무가 화사하게 웃으며 말했다.

일본에서 보았을 때는 얼굴에 수심이 많이 껴 있었으나 오늘은 아주 밝아보였다. 고민거리가 없어져서 그런 것 같기도 했다.

아름다운 얼굴에 미소까지 짓자 강시혁은 현기증을 느끼는 듯 했다. 확실히 이영진 상무는 눈부신 여자였다.

“앉으세요.”

강시혁이 테이블에 앉자 이영진 상무가 비서를 불러 차를 가져오게 했다.

테이블 위에 있는 난초 화분에서 뿜어져 나오는 향이 싱그러웠다.

자리에 앉자 이영진 상무 방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책상 뒤에는 고급 책장이 있었었는데 꽂혀있는 책들은 주로 경영학 관련 원서들이었다.

이영진 상무는 아름다운 용모에 지적 수준까지 갖춘 여자라 기품이 있어보였다.

“일본서 고생 많았죠? 손은 좀 어때요?”

“괜찮습니다. 접합도 잘되었다고 의사가 말했습니다. 재활운동만 잘 하면 될 것 같습니다.”

이영진 상무는 붕대감은 강시혁이 왼팔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병원에 누워있을 때 그가 한 말이 아직도 귓가에 들리는 듯 했다.

[손가락 열 개가 모두 잘려 나간다고 해도 상무님을 지켜 드리겠습니다.]

이영진 상무는 이 말을 기억하고 미소를 지었다.

강시혁은 이영진 상무의 미소를 또 보자 웃는 모습이 참 아름다운 여자라는 생각을 했다.

비서가 차를 가져왔다.

비서는 찻잔을 테이블에 올려놓으며 강시혁을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그룹의 실세 중의 실세인 이영진 상무가 대리급 정도에 차를 대접해주니 의외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강시혁은 이영진 상무가 고마웠다.

대그룹의 따님이 하찮은 자기를 집무실에서 이렇게 차를 대접해주니 고마울 뿐이었다.

강시혁이 더듬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번에 비서실로 끌어주시고 승진까지 시켜줘서 고맙습니다.”

“고맙긴요. 회사의 룰 때문에 더 좋은 대우를 못해드려 미안합니다.”

“저는 공채 직원도 아니고 아직 승진후보가 될 기준 연수도 채우지 못했습니다. 혹시 기존 직원들의 반발로 상무님께 폐를 끼치는 것이 아닌 가 모르겠습니다.”

“아닙니다. 강 대리님의 승진은 충분히 논의된 끝에 회장님이 결정해 주신 겁니다. 특히 전자 사장님이 추천을 해주셨습니다.”

[전자 사장님이? 전자 사장님은 확실히 나한테 관심도 많고 은근히 도와주시는 것 같아. 언젠가 나를 보고 자네는 지금 그대로만 하면 되네. 라고 하셨든 분 아닌가.]

“전자 사장님이 고맙네요. 이따가 그분한테도 인사를 하러 가겠습니다.”

“그렇게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전자 사장님은 그룹의 2인자라 저보다도 영향력이 크신 분입니다. 인사를 해두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꼭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리고 가와라 흥업에서 오늘 정식으로 오사카 우체국 내용증명 소인이 찍힌 우편물이 왔네요. 정식으로 주식 가압류를 신청하겠다는 뜻입니다.”

“저는 경영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그런데 한국에 오기 전에 오사카에서 이이다 유키 씨에게 들은 것이 있습니다.”

“그분이 뭐라고 하셨는데요?”

“가압류는 법률적 효력이 없겠지만 언론 플레이용은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잘 보셨습니다. 가와라 흥업이 노리는 것은 바로 그것입니다.”

“상무님께서 또 걱정이 많으실 것 같습니다.“

“예견했던 일입니다.”

그러면서 이영진 상무는 옅은 한숨을 쉬었다.

강시혁은 자기가 뭔가 힘이 되어주었으면 좋겠는데 경호하는 일 이외엔 아무것도 할 줄 아는 게 없어 미안하기만 했다.

강시혁은 자기가 비록 경호요원이지만 이제는 이 문제 해결에 적극 끼어들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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