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화 승진 (2)
(113)
강시혁이 문화재단 사무실을 들렸다.
자기는 소속이 문화재단 소속이라 일단 귀국 보고는 해야 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면세점에서 사가지고 온 선물을 들고 문화재단으로 갔다.
먼저 문화재단의 살림을 도맡고 있는 사무국장에게로 갔다.
“일본 출장 잘 다녀왔습니다.”
“아, 수고했어요. 다쳤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괜찮아요? 저런! 손가락에 붕대가 아직도 감겨져 있네.”
“예, 이제 많이 나았습니다. 접합수술도 잘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다행이네요.”
“저, 그리고 이것......”
“이게 뭐예요?”
“공항 면세점에서 산 컴팩트 파우더입니다.”
“호호. 출장비도 얼마 안 되는데 이런 것 까지 챙겼네. 고마워요. 관장님 마침 사무실에 계시니까 인사하고 내려오세요.”
“알겠습니다.”
관장실로 갔더니 관장은 누구와 통화하면 서 깔깔 웃고 있었다.
강시혁이 다시 문을 닫을까 하는데 관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들어와요!”
“네.”
강시혁이 허리를 깊숙이 숙이며 인사했다.
“일본 출장 잘 다녀왓습니다.“
관장이 스마트폰 손으로 막고 말했다.
“잘 다녀왔어요? 다쳤다고 들었는데 괜찮아요?”
“예, 수술은 잘되었습니다.”
“내가 직원들한테 산재처리 하라고 했으니 그렇게 아세요.”
“‘감사합니다.”
“그럼 나가봐요. 나는 지금 내 대학 동창인 XX장관 부인과 통화중이에요.”
강시혁은 더 이상 말을 못하고 또 크게 허리 꺾어 인사하고 관장실을 나왔다.
그리고 바로 설운동 대리를 만나러 갔다.
설운동 대리에게 인사를 했다.
‘일본 출장 잘 다녀왔습니다.“
“다쳤다더니 얼굴은 좋네.”
“얼굴 다친 건 아니니까요.”
“지금 우리 사무실에선 강 반장이 야쿠자를 일곱 명이나 상대했다는 헛소문이 떠도는 중이요. 일곱은 아니지만 두세 명과 같이 싸웠더라도 여기는 여자들이 많이 근무하는 곳이라 믿을 수도 있겠지.”
강시혁은 진짜 일곱 명과 싸웠다는 말을 할까 하다가 그만 두었다.
설운동 대리 같은 사람과 긴 대화는 하고 싶지 않았다.
“공항 면세점에서 넥타이가 눈에 띠어 하나 사가지고 왔습니다.”
그러면서 두 손으로 넥타이를 설운동 대리 코앞에 받쳤다.
설운동 대리가 넥타이를 싼 포장지를 자기 책상위에 던지며 말했다.
“집에 넥타이 많은데 뭐 하러 이런 것 사와요. 사오려면 양주나 한 병 사오지! 그리고 업무일지는 오늘부터 작성해주시고 출장 복명서도 작성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한국에 와서 다시 병원에 들르면 말해주세요. 산재처리는 해야 되니까. 강 반장 대문에 나만 일이 많아졌네.“
“죄송합니다.”
“손가락 보니까 칼 맞은 것이 아니라 어디 오사카 도톤보리(술집 많은 거리임)에 가서 아가씨한테 물린 것 같기만 하네.”
“하하. 그건 아닙니다.“
강시혁이 이번엔 큐레이터 신종화한테 갔다.
신종화가 먼저 알아보고 인사했다.
“강 반장님이 일본서 대활약을 했다면서요?”
“활약은 무슨! 다치기만 했는데요.”
“수술은 잘되었나요?”
“예. 잘되었습니다. 그리고 이것.....“
“어머나, 컴팩트 파우더네요. 고마워요. 나까지 챙겨줘서.”
그러면서 신종화는 얼른 선물을 받았다.
강시혁은 어쨌든 문화재단 사람들에게 선물을 잘 전달해주었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지하철을 타고 영빈관으로 돌아왔다.
이날 오후
그룹 비서실장이 문화재단 사무국장에게 전화를 했다.
“사무국장이요? 나, 비서실장이요.”
“어머, 실장님!”
“그쪽으로 가더니 일 할만 해요?”
“예, 열심히 잘 하고 있습니다.”
비서실장은 경영기획실에서 임원을 할 때 과장이었던 사무국장을 그 밑에 데리고 근무한 경력이 있었다. 그래서 옛 상사의 마음으로 일 할 만 하냐고 물었던 것이다.
“거기 강시혁이라는 사람 있죠?”
“예, 있습니다. 이번에 이영진 상무를 따라 경호요원으로 일본 출장을 다녀온 사람입니다. 무슨 일이 있습니까?”
“비서실 전출발령을 하기로 했습니다.”
“예? 비서실요? 그럼 이영진 상무님 정식 수행비서가 되는 겁니까?”
“아니요. 영빈관에 그대로 있으면서 비서실 파견으로 할 거요. 소속만 바뀌지 지금 하는 일과 크게 달라지는 건 없습니다.”
“아, 그런가요?”
“그 사람 입사서류와 인사카드를 전부 비서실로 보내주세요.”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런데 호봉 조정이 되는 겁니까?”
“호봉조정이 아니라 대리 승진입니다.”
“어머나! 그래요?”
“이번에 일본에 가서 이영진 상무의 목숨을 구해줬고 앞으로도 특별한 일을 할 사람이니 그 정도의 직급은 줘야겠지.”
“잘 되었네요. 그 사람 근무성적은 아주 좋은 사람입니다. 사실 인서울 대학을 나오고 나이도 든 사람이라 잡급직 취급하기는 미안한 감이 있었습니다.”
“그래요?“
“하지만 공채 직원이 아니라 본인도 감수하고 열심히 일 했습니다. 행정 능력도 있고 몸이 빠릿빠릿하여 바지런하기도 한 사람입니다. 그럼 발령은 내일 날짜 인가요?”
“내일이 초하룻날이니까 그래야 되겠죠.”
“정말 잘되었네요.”
“오늘 자로 인사품의 올리라고 비서실 인사담당 과장에게 내가 지시 했습니다. 그러니 입사서류나 빨리 이쪽으로 보내줘요. 아니, 내가 내 차 기사를 사무국장에게 보내지.”
“그럼 내일 그룹사 전산망에 뜨겠네요.”
“그렇게 될 겁니다.”
삼방그룹은 공채직원 이상자의 인사발령에 대하여는 언제나 전산망에 떴다.
그래서 정규직원이라면 누구든지 볼 수 있도록 했다.
사무국장이 설운동 대리를 불렀다.
“조금 있다가 비서실장 기사가 오면 강시혁 씨 입사서류와 인사카드 넘겨주세요. 비서실로 전출발령을 낸답니다.”
“예? 비서실요? 강 반장이 비서실에 가서 뭐합니까?”
“특수 업무를 수행한답니다. 그 사람 영어도 잘하고 태권도 유단자 자격이 있다니 VIP경호 업무를 하겠죠, 이번에 이영진 상무 일본 출장에서 크게 활약했다고 했으니 보상 차원에서 전출발령이 나는 거겠죠.”
“강시혁이 운 좋네. 호봉 조정도 있습니까?“
“호봉조정이 아니라 대리 발령이 난답니다.”
“예? 대리요? 강시혁은 입사 1년도 안된 사람입니다!”
“일 년이 아니라 일 개월이라도 능력 있으면 되는 것 아니에요? 축하나 해줘요.”
“역시 사람은 높은 사람 근처에서 알짱거려야 해. 나는 대리되는데 4년이 걸렸는데 강시혁은 단숨에 되네.”
“설 대리도 추천해 드릴까요? 비서실장님은 기획실 전무이사 시절에 내가 모시고 있었던 분이에요. 내 말이라면 들을 거예요. 여기 문화재단에 인재가 또 한사람 있다고 추천해 드릴까요?”
“회사가 인사원칙도 없이 연공서열을 무시하는 것 같아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정말 내가 추천한다니까요! 여기 사무국에 계신 인재는 강시혁 씨보다 영어도 더 잘하고 태권도나 유도도 강시혁 씨보다 뛰어나다고 해드리죠.”
“너무 약 올리지 마세요. 에효, 배경 없는 놈은 언제나 만년 대리지.”
이때 큐레이터 신종화가 들어왔다.
“설 대리님도 한숨을 쉴 때가 있네요?”
사무국장이 웃으며 말했다.
“이번에 강시혁 씨가 비서실 대리로 발령이 나니까 설 대리가 한숨을 쉬는 것 같네요.”
“어머! 그래요? 강 반장 정말 잘됐다! 그 사람은 영어도 잘하고 격투기도 잘하니까 바로 비서사실 스카웃 된 것 같네요. 전화로 축하나 해줘야겠네요.”
이 말에 사무국장이 화들짝 놀라며 손을 저었다.
“아니, 하지마세요. 아직 관장님께 보고도 안 했고 비서실에서 인사품의도 아직은 안 올라간 상태예요. 내정만 된 상태예요. 그룹사 전산망에 인사발표가 나오면 전화하세요.“
“그런가요? 알겠습니다. 국장님!”
사무국장이 관장실로 들어갔다.
관장은 작은 거울을 책상위에 올려놓고 화장을 하고 있었다.
“관장님!”
“뭔가요?”
“비서실장님한테서 전화가 왔습니다. 영빈관 관장을 비서실로 전출 발령을 내겠답니다.”
“그거는 회사의 필요에 의해서 그랬겠지요.”
관장은 심드렁하게 말했다.
잡급직 인사이동에 관장인 자기가 신경 쓸 필요도 없다는 태도였다.
“입사 구비서류와 인사기록 카드를 보내달라고 했습니다. 비서실장님이 운전기사를 보낸다고 했으니 준비해 두라고 설운동 대리에게 말해 두었습니다.”
“잘했어요. 참 잘했어요.”
“그런데 비서실장님 말씀이 강 반장을 호봉 조정하지 않고 바로 대리 발령을 내겠다고 했습니다.”
“대리?”
그때야 관장은 화장을 멈추고 사무국장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입사일로 보아서는 대리가 안 되지만 이번에 일본에 가서 VIP경호업무에 나름대로 역할을 했기 때문에 그런 것 같습니다. 대리가 되어도 영빈관에 있으면서 기존 업무는 그대로 본다고 했습니다. 이를테면 하는 일은 똑 같지만 소속만 달라진 거죠.”
“발령을 언제 낸다고 합니까?”
“아직 품의서 작성이 안 되었으니 내일쯤에야 그룹사 전산망에 뜰 겁니다.”
“강 반장한테는 아직 전화 안했죠?”
“안했습니다. 강 반장은 아마 이런 사실을 모르고 있을 겁니다.”
“흠, 흠. 그럼 내가 전화하지. 사무국장은 그만 나가봐요.”
“알겠습니다. 관장님.”
사무국장이 문을 닫고 나오다가 뒤를 돌아서며 입을 삐죽 내밀며 말했다.
“강시혁에게 자기가 생색을 내려고 하는 것 같군. 그런 건 내가 양보해 줘야지. 그래야 내가 여기서 오래 버티지.”
강시혁이 영빈관 마당의 나무를 쓸고 있었다.
한손으로 빗질을 하니 팔이 좀 아팠다. 그래서 마당에 있는 정자의 의자에 앉아서 쉬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문화재단 관장의 전화였다.
“강 대리요?”
[강 대리라니? 이 여자가 드디어 치매에 걸린 것 같군]
“나, 관장이요.”
“넵, 강시혁입니다.”
“이번에 일본 출장을 가서 경호업무를 잘했다는 소리를 들었어요.”
“완벽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지난번에도 그랬지만 회장님과 비서실장님을 만나면 강 반장을 꼭 대리시켜줘야 한다고 말해왔어요.”
“예? 저는 아직 대리 승진대상자도 아닙니다. 정규직도 아니고 입사 연수도 아직은 조건이 안 됩니다.”
“그게 무슨 소리에요? 능력이 있으면 다 되는 거지? 나, 봐요. 특별한 빽이 없어도 오로지 그림 실력 하나만으로도 4년제 대학교 미대 학장도 지냈고 지금은 대그룹 산하의 미술관 관장도 하고 있잖아요?”
강시혁은 이번에 관장에게 아부 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휴, 관장님은 충분히 그럴만한 분이시죠. 제가 아는 분한테 관장님 이름을 한번 댔더니 미술계의 거목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관장님 밑에서 일하는 게 정말 영광입니다.”
“호호호. 그래요? 내가 거목까지야 될 수 있나?”
“아닙니다. 그 사람은 진지한 표정으로 그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나라 미술계를 받치는 기둥이라고까지 말했습니다.”
“호호. 오늘 아침에 언론사 인터뷰할 때 그런 소리를 듣더니 강 반장 한테 또 듣네. 흠. 흠. 그건 그렇고 내일이면 강 반장한테 좋은 소식이 갈 거예요.”
“예? 좋은 소식이라니요?”
“내가 그동안 강 반장을 대리 시켜줘야 된다고 말해왔으니 좋은 소식이 갈 거예요. 강 반장은 어디를 가더라도 내 사람이라는 것을 잊지 마세요. 알았어요? 강 대리?”
강시혁은 눈을 껌벅거렸다.
[정말 내가 대리가 되는 건가? 정규직 전환만 해도 영광인데 대리라니! 이 여자가 뭘 잘못알고 이러는 것 아닌가? 뭐, 어쨌든 날 대리시켜줘야 한다고 높은 분들에게 약을 팔았다니 고맙긴 하네.]
역시 관장은 무언가 허술하고 코믹한 것 같지만 내공이 있었다.
강시혁의 대리 발령을 즉각 자기 공인 것처럼 하였다. 이렇게 하여 사람을 자기 사람으로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
관장은 산전수전 겪어가며 미술대학 학장을 지낸 사람이다. 그리고 지금은 대 그룹사의 미술관 관장을 하고 있다. 이런 자리들을 그냥 고스톱을 쳐서 딴 건 아니었다.
강시혁은 일본서 귀국할 때 면세점에서 관장 선물이라도 챙겨가지고 올 걸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물은 관장 이하 사람들에게만 줄 간단한 것만 샀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강시혁은 자기가 정말 대리가 되는 건가 하였다.
[대리 급여가 6천이나 7천은 될 텐데 정말 그렇게 되려나? 그 정도 받으면 일본 경호회사보다는 작지만 앞으로 과장, 차장, 올라가려면 삼방그룹에 그대로 있는 게 좋을 것 같은데?]
[내가 대리가 된다면 설운동 대리와 업무 분장은 또 어떻게 되는 건가?]
강시혁은 여러 가지로 복잡한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 관장이 괜히 자기 듣기 좋으라고 한 소리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